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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옆 ‘이상한 나라’로의 초대
<까페 버스정류장>의 주인 박계해를 만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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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였나. 막 출간된 <빈집에 깃들다>라는 책을 손에 들고 하루 종일 누워 빈둥거렸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라는 부제처럼, 저자 박계해씨는 2002년에 교사 생활을 접고 남편과 함께 경북 문경의 한 산골마을로 들어가 빈집살이를 시작한다.
 
이 책의 이야기가 거기서 시작되는데, 산골에서 사는 그의 하루하루 일기이다. 책을 읽다 보니 당시 열 네살, 열 두살이던 딸과 아들은 부모와 뜻을 같이하지 않고 각자 따로 산다는 걸 알게 됐다. 부부는 산골마을 빈집에, 십대 아이들은 도시의 원룸에서. 조금 충격.
 
▲  <빈집에 깃들다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의 저자 박계해  © 일다
켜켜이, 라는 단어가 이럴 때 맞을까. 그의 십 년 간 산골마을 일기는 차곡차곡 쌓여 책을 이루었고, 독자의 눈에는 그가 어떻게 시골에서 세월을 보내왔는지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그려졌다. 그가 산딸기를 따러 가면 나도 따라갔고, 그가 일하다 산나물을 따다 점심도시락을 먹으면 나도 먹었다. 그가 논일을 하러 가면 나도 따라 나갔다. 그만큼 그가 써 내려간 글은 맛깔스러웠다.

 
첫 페이지를 연 순간부터 흠뻑 빠져 새벽녘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작가 후기를 읽을 무렵, 하늘이 우루룽 쾅쾅 소리를 내더니 비를 쏟아 부었다. 요란한 빗소리가 무슨 전조였나. 작가 후기에 반전이 있었다. 독자는 그가 그려낸 아련한 시골마을 수채화 풍경에 완전 빠져서, 그가 귀촌했던 모래실 마을에 온전히 마음이 머물고 있는데, 지금 그는 모래실에 살고 있지 않았다. 모래실 마을의 귀촌일기는 2002년부터 2009년까지의 일이었다.
 
“2009년, 비가 많이 내리던 깊은 가을밤, 술에 취해 잠든 승희 씨의 머리맡에서 나는 긴 편지를 썼다. 당신을 참 많이 사랑했다, 우리 이제 서로를 아끼는 친구로 살자는 요지의 편지였다. 그가 읽던 책 사이에 편지를 넣어놓고 깜깜한 밤길을 걸어 나오는데 눈물이 많이 났다.”
 
아이들을 도시에 남겨두고 남편과 귀농해 7여 년간 부녀회장도 맡으며 마을 사람들을 돌보고, 지역에서 노인대학도 열고, 시골학교서 연극교실도 하며 영화를 찍듯 빈집살이를 했던 그가, 잠든 남편의 머리맡에 편지를 두고 깜깜한 밤길을 걸어 간 곳은 어디일까. 충격.
 
책의 뒷장까지 완전히 덮고 그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초여름 밤에 내리는 비는 세상을 서늘하게 깨우고 있었고, 나는 책을 덮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맥주 한 캔이라도 있길 간절히 바라며, 혹시 지난번 먹다 만 막걸리가 남아있지 않나 냉장고를 눈으로 샅샅이 뒤졌다. 냉장고 안에는 알코올이 한 방울도 없었다. 그를 따라 깜깜한 밤길을 걸어 나온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두 번째, 빈집에 깃들다
 
책을 낸 출판사 <민들레>를 통해서 작가가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 입수됐다. 도시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던 십대의 두 아이들, 이제는 이십 대가 된 딸과 아들까지 온단다. 박계해, 그를 만나야 했다.
 
큼직큼직한 이목구비, 자연스러운 행동, 호탕한 웃음.
“거 봐요. 내 이럴 줄 알았어요.”
그가 계단을 올라와 약속 장소에 등장하는 순간, 그를 만난다는 기대에 차있던 나는 옆에 있던 지인에게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로부터 1년. 몇 개월 전 그가 깜깜한 밤길을 걸어 나와 거처했던 문경의 한 마을에서 인근의 상주로 이사했고, 카페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얼마 전 남쪽의 한 도시에 일이 있어 들렀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 그가 살고 있는 상주로 가기 위해 핸들을 돌렸다.
▲ 박계해 선생님은 산골에서 함창 읍내로 나와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까페 버스 정류장”을 열었다.    © 일다

아담한 시골 읍내,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위치한 카페. 이름은 “버스 정류장”. 버스정류장 앞은 한산했다. 한가로운 초여름 오후, 날씨가 좋았다. 카페 입구는 여느 카페 입구 같지 않다. 그답다. 카페의 아담한 텃밭이 푸르게 열려 있고, 야외 테이블은 햇볕에 잘 마르고 있었다.
 
“나는 딴 데 안가. 이제 아무 데도 가고 싶은 곳이 없어요.”
이곳에 터를 잡은 그는 땅의 주인처럼 말했다.
“월세 40만원에 살면서도 이곳의 영주 같아요.”

 
일본식 가옥 구조라고 하는데, 그는 특이한 이 건물의 이층에 저녁이면 올라가 마을을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곳의 영주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상주군 함창읍. 왜 이곳인가, 어떻게 여기를 알게 됐나. 바로 이 건물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는 몇몇 학교서 연극반 수업을 해왔다. 수업을 마치고 집이 있는 문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면, 꼭 여기 버스정류장에 잠시 정차했다가 떠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버스정류장 앞에 위치한 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비어 있어 방치된 낡은 이층 건물.
“(건물이) 참 재미있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 지나갔다. 지난해 가을이 오고 있던 어느 날. 그날도 수업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는 잠이 들었고, 버스는 또 함창 버스정류장에 들렀다.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내다보던 그의 눈에 이 ‘이상한’ 건물이 와서 박혔다. 건물을 재미있게 쳐다보던 여느 때와는 달리, 버스에서 내렸다.
 
건물 앞으로 다가간 그는 작은 메모 하나를 발견한다. 건물을 임대한다며 세를 놓는다는 것. 그는 바로 전화를 걸었고, 근처에 살고 있는 주인을 만나 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건물은 세를 놓은 지 몇 년 됐지만 문의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 보니 거의 폐허 수준이었다는데, 그 집에 뭐가 끌린 것일까.
 
“뭔가 해보고 싶은, 청소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집이었다.”
청소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켜서라니. 기가 막히다. 남들은 번듯하게 차려진 집, 깨끗하게 청소와 정리가 된 집에 이사 들고 싶은데, 청소하고 싶은 욕구가 나서 누구도 찾지 않아 오랫동안 비워진 빈집을 빌렸다니. 두 번째, 빈집에 깃들다. 이 문장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날 밤, 집에 와서 딸에게 얘기했더니, 딸이 울었어요. ‘엄마, 이제 좀 충동적으로 그러지 좀 마!’라면서 막 우는 거에요.”
 
이십 대가 된 딸은 만화를 그리고 있고, 만화 잡지에 등단한 이후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문경에 와서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십 년 전 귀농할 때도, 자녀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훌쩍 떠났던 엄마. 이번에도 연극수업 마치고 오다가 덜렁 집을 계약하고 와서 이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 딸은 “충동적인” 엄마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테다.
 
“지금은 딸도 여기를 엄청 좋아해요.”
 
그도 이제는 어디도 갈 마음이 없단다. 말을 하며, 흐뭇하게 웃는 여유가 보인다. 그는 이 빈 집에 깃들며, 이곳의 영주가 됐다.
▲  까페 버스정류장의 주인이 된 박계해씨는 월세 살아도 밤에 옥상에 올라가면 영주가 된 기분이 든다.  ©일다

‘카페 버스정류장’을 열었고, 그리고 인근 학교에서 연극수업도 계속하고 있다. 점촌중, 문경여중, 함창고, 세 학교에서 청소년들과 만나며 연극을 한다.
 
“세 학교 아이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연극 수업을 받는데, 한 학교 아이들은 정말 연극을 배우기를 원하는 아이들이고, 한 학교는 8,9교시 보충수업을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이 오고, 한 학교는 입시 준비 와중에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으로 수업을 들어와요. 수업하는 매일매일이 영화 찍는 것 같아요.”
 
그가 예전에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 간절히 바랬던 게 있었다. 다른 수업은 안하고, 연극 수업만 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지금이 딱 그렇다.
 
한편의 연극이 펼쳐지는 곳 ‘카페 버스정류장’
 
일요일 오후 시간. ‘카페 버스정류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층까지 있는 테이블도 웬만하니 채워졌고, 야외 공간에도 곳곳이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자리를 점하고 있다. 함창 읍내 지역주민들, 인근 대안학교 교사들, 부모와 함께 커피와 차를 마시러 온 청소년들, 문경에 사는 예술가들까지. ‘카페 버스정류장’은 함창 읍내에서 문화적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 무렵, 야외 테이블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흰 파라솔 테이블 위엔 더운 열기를 식히기 위한 얼음 든 콜라가 놓여져 있다.
▲ ‘카페 버스정류장’에서는 매일 새로운 방문객들이 만들어내는 한편의 연극이 펼쳐졌다 사라지곤 한다.   © 일다

일본과 인도를 다니며 음악을 하는 뮤지션 둘. 서울에서 내려온 여행객 둘,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않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지금은 거창에 머물고 있다가 이곳을 다시 찾은 젊은이,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여행 온 여행자, 대안학교 교사와 아들.
 
여행자들이 자기들이 직접 만든 자작곡을 기타를 치며 들려준다. 청아한 목소리가 카페 텃밭에 울려 퍼지고, 오후 햇살이 그윽하다.
 
“이곳은 이상한 곳이에요. 정말 이상한 곳이에요.”

 
노래가 끝나자 옆에 앉아있던 사람, 오늘 만난 이가 내게 말했다. 그는 평생을 서울과 일본의 도시에서 음악을 해오다가 최근 아는 지인을 따라 문경에 왔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주에 이 카페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날 밤 이 카페에서 즉석 연주를 하고, 밤새워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도 정말 이상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단다.
 
그날 밤 그들이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운 공간은 카페의 한 켠에 있는 어두운 공간. 원래는 농기계 등을 보관하는 창고였는데, 그곳을 청소를 싹 하고 이곳 영주인 박계해씨가 ‘카페 타임스탑’이라고 밖에 간판을 붙였다. 이 건물로 이사올 때 우물가에 있었던 고장 난 시계도 방 앞에 놓았다. 카페 안의 별도의 카페, 타임스탑.
 
박계해씨는 그곳을 청소하고 새로 꾸미면서, 자기의 삶의 철학이 든 비밀스러운 것들과 소품을 곳곳에 숨겨두었다고 말했다. 연극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하는 카페라서 그럴까. 이 카페에는 손때 묻은 수많은 책들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노래와, 기발한 소품들이 널려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긴 건물까지. 오전에 건축 공부하는 건축학도가 와서 카페를 구경하고 가기도 했다.
 
마치 ‘카페 버스정류장’라는 무대 안에, 그날 하루만 공연되는 한편의 연극이 펼쳐졌다 사라지곤 하는 것 같았다.
 
“지난 겨울 눈이 오는 날, 오늘 첫손님은 누굴까 궁금했어요. 조금 있으니까 하얀 눈 위로 자전거를 탄 한 젊은이가 왔어요. 커피만 사가지고 가려다 카페 공간을 이렇게 보더니, 멀리 있는 친구를 불러요. 얘기를 들어보니, 그 젊은이가 그날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내려왔다는 거에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는데 가난하더라도 이곳에 와서 사진 작업을 하며 살겠다고 결정하고 내려왔다는 거에요. 나중에 우리 카페에서 사진전도 하기로 했어요.”
 
시간이 멈췄다 유유히 흘러가는 정류장
 
옛날 버스정류장. 아마 그 옛날엔 버스정류장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시골 장날에 나왔다가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모여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카페 버스정류장’이 그 옛날 버스정류장을 재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 농기계를 보관하던 창고를 청소하고, 까페 안의 까페 ‘타임스탑’을 만들었다. 시간이 정지한 곳, 우물가에 있던 멈춰진 시계를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다. 이곳에는 박계해씨의 철학과 비밀스러운 소품들이 들어 있다.    © 일다

“지역의 할머니들이 슬리퍼 신고 와서 차 마시고 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카페를 운영하는 박계해씨의 꿈이다. 꿈만은 아니다. 어제 저녁은 건물주인 할머니가 그냥 카페에 나와서 차 한잔 하고 가시기도 했다.
 
“고물상 아저씨가 아침마다 왔어요. 이제까지 원두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었던 분인데. 겉으로는 남루해 보여도, 여기 오면 위로 받고, 행복한 일상의 삶을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
 
고물상 아저씨뿐 아니다. 얼마 전에는 이 건물 보일러 공사를 해준 “보일러 아저씨가 카페에서 시 낭송이 있던 저녁에 왔었다”고 한다. 그는 “맨날 소주 먹고 했는데, 이것도(차 마시고, 시 낭송 듣는 것) 재미있다”고 하셨단다.
 
‘카페 버스정류장’은 지역에 사는 분들뿐 아니라, 여행자들에게도 언제나 열려있다. 카페 옆 건물이 한동안 비워있어서, 박계해씨는 그곳도 인수해 게스트하우스를 열까 고민한 적도 있다. 아직은 여력이 되지 않아서 포기했다.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앞에 위치한 ‘카페 버스정류장’. 시간이 정지하고,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 마치 눈으로 그려지는 곳 같은 공간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조금만 걸으면 함창역인데, 무인역이다. 역무원은 없지만 기차가 서고, 가고 한다.
 
* ‘까페 버스정류장’ 블로그 http://blog.daum.net/acha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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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6/05 [17:31]  최종편집: ⓒ 일다
 
아이스 12/06/11 [18:20] 수정 삭제  
  서울 한복판에선 느껴볼 수 없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가고 싶다.
물하 12/06/20 [13:17] 수정 삭제  
  까페 버스정류장에 들르시는 분들은 정말 온전한 휴식과 충전을 얻어가실 것 같네요.
거침없이 뜻 가는대로 행동하여 맑은 샘을 만들어내신 박계해님도,
그 행적을 오롯이 따라가 글을 전해주신 윤정은님도 감사합니다.
가을바다 12/10/21 [00:37] 수정 삭제  
  얼마전 상주에 갔다가 낯익은 카페를 발견했지요
아하!! 일다에서 봤던 카페인걸 알고 무지 반가웠답니다
주인장도 매력적이고~ 피리연주자의 멋진 연주도 듣고~ 커피도 좋고~
마당의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도 달달했답니다 ^^
갈아놓은 커피 한봉지 사왔더니 다들 행복해하며 좋아합니다
눈오는 겨울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카페 버스 정류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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