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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공동묘지에서 보낸 오후
죽음연습 (1)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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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다>에 ‘도서관 나들이’, ‘철학하는 일상’을 연재한 이경신님의 새연재 ‘죽음연습’이 시작됩니다. 현재 이경신님은 의료화된 사회 속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를 탐색하고 있는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과 관련한 생각들을 <일다>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으로 충만한 날의 오후, 난 친구와 함께 근처 묘지를 찾았다.     © 이경신
그릇을 싸게 사기 위해 엠마우스에 간 날이었다. 슈퍼의 싸구려 새 그릇보다도, 벼룩시장의 낡은 그릇보다도 더 싼 값에 필요한 식기를 구할 수 있어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으로 충만한 날의 오후였다. 그 날 오후, 난 친구와 함께 근처 묘지를 찾았다.

 
묘지는 대규모 상가들과 더불어 도시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싸구려 물건이나 헌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나 기왕이면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상점들과 달리, 인적 드문 묘지는 비현실적으로 적막했다. 우리 말고는 살아 있는 인간을 찾아볼 수 없어 산 사람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곳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옛날 로마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죽음에 익숙해지도록, 우리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의 공동묘지도 도시 중심가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있긴 해도, 도시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면 채 15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묘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운 사람들이 묻혀 있지 않는 한, 묘지에 발걸음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죽지 않을 듯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묘지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전락해 있었다.
 
성녀의 무덤은 어디 있을까?
 
공동묘지의 입구를 들어서니, 프랑스의 다른 도시에서처럼 질서정연하게 잘 배치되어 있는 무덤들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의 무덤은 떼를 얹은 동그란 봉분을 가진 한국 무덤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각진 사각형으로 잘 다듬어진 돌무덤 곁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다. 죽은 이의 사진이 놓여 있는 무덤도 보인다. 사진은 죽은 자도 한 때는 우리처럼 살아 숨 쉬던 사람이었음을 말해준다. 산 자들로부터 잊힌 무덤에는 이끼만 무성하지만, 산 자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자의 무덤은 색색의 꽃들로 화사하다.
 
앞장 서 가던 친구는 무덤 곁에서 나뒹구는 화분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웠다. 지난 밤 비바람에 쓰러진 모양이다. 우리는 물기가 마른 벤치를 겨우 찾아냈다. 잠시 앉아 쉬면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었다. 도대체 주머니들을 매단 성녀의 무덤은 어디 있을까?
 
수백 년 전 이 땅을 떠난 여인, 그녀는 죽어 성녀가 되었다. 그녀가 묻힌 무덤가 흙을 담아 주머니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면 병이 낫는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그녀를 성녀로 만든 것이다. 이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는 우리까지 이 공동묘지로 이끌고 왔다. 친구는 평소 잘 앓는 나를 위해 기적의 흙을 퍼서 주머니에 담아 목에 걸어주겠다며 내 손을 이곳으로 잡아끌었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전설만큼이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확실한 정보도 없었다. 다만, 치유된 사람들이 성녀에게 되돌려 준 흙주머니가 무덤가 십자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테니까, 멀리서도 금방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사실, 내가 가까운 사람이 묻혀 있지 않은 낯선 공동묘지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 전, 불어를 배우기 위해 파리에서 몇 개월 머무는 동안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에 마침, 여행안내책자에도 소개된, 유명인들이 안장된 공동묘지가 있었다. 샤르트르나 보부아르, 보들레르처럼 이미 고인이 되어 직접 만날 수 없는 유명인들, 그들이 묻힌 무덤이 가까이 있다고 하니까 한번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시간에 그곳을 찾아갔다.
 
유명인의 흔적을 찾아 방문한 묘지였지만, 어느 새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덤 사이를 그냥 거닐고 있었다. 마치 공원 산책하듯 그렇게 어슬렁거렸다. 걷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내 주변을 둘러싼 죽은 자들, 보이지 않는 그들을 가만히 느껴보기도 했다. 묘지는 소란한 도시 속에서 굳건히 침묵을 수호하는 섬 같았다. 죽은 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평화의 시간으로 환대받은 자임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묵직한 침묵 속에서였다.
 
그날 이후, 나는 짬이 날 때면 묘지에 갔다. 어떤 날에는 넋을 놓고 걸어 다녔고 또 다른 날에는 한참동안 책을 읽다 돌아오곤 했다. 또 낯선 도시나 마을을 방문할 때도 묘지가 눈에 띄면, 그곳을 둘러보고 쉬다 왔다. 내게 묘지는 더는 공포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지듯 유령이나 귀신이 출몰하는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죽은 자들의 침묵 속에서 삶의 분주함을 잠시 떨쳐놓는 휴식의 공간이 되었다.
 
아기들의 작은 무덤
 
▲ 성녀의 무덤을 찾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는 우리 앞에 작은 무덤들이 나타났다.     © 이경신
우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무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친구는 쓰러진 화분들을 세우느라 잠깐씩 걸음을 멈췄다. 그때마다 나도 함께 멈춰서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거대한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무덤들을 보호하기 위한 거인들처럼 보였다. 널따란 공동묘지를 가로지르는 동안, 그 어디에도 주머니를 매단 십자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성녀의 무덤을 발견하지 못한들 어떠리. 적막함 속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친구는 반드시 성녀의 무덤을 찾고 말겠다며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갔다.

 
성녀의 무덤을 찾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는 우리 앞에 작은 무덤들이 나타났다. 도대체 무슨 무덤이 이렇게 작고 허술할까? 살펴보니, 그 무덤들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떠난 아기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이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프랑스에서 아기들의 무덤을 만들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락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란다. 아기와 짧은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기에 이 무덤들이 결코 작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얼마나 걸었을까? 성녀의 무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실망하는 친구를 위해 난 솔방울을 주워 들고 위로했다. “성녀의 무덤이 이곳 어딘가에 있다면, 그녀의 육신이 거름이 되어 키운 이 나무들의 솔방울도 결국 그녀의 무덤가 흙만큼이나 똑같은 효험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릇이 가득 담긴 가방 한 귀퉁이에 솔방울 세 개를 챙겨 넣었다. 친구가 내 말을 수긍했는지는 모르겠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것은 비단 성녀의 무덤가 흙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치고 갔다. 죽은 자는 흙으로 돌아가고 산 자는 그 흙을 갈아 삶을 지속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이 아닌가. 어쩌면 산 자를 살리는 죽은 자의 이야기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 맺음을 들려주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묘지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 삶과 죽음의 이어짐을 성찰하기에 적당한 공간일 것이다. 묘지는 살았던 자가 죽어 제 육신을 누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산 자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여 죽음의 슬픔을 녹여냄과 동시에 언젠가 자신도 그들처럼 죽음의 길을 떠나야 함을 진지하게 생각토록 하는 공간이니까. 게다가 묘지를 걷다보면, 우리가 ‘언젠가’ 죽어야 할 운명의 존재라는 것만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까지도 분명하게 직시할 수 있다.
 
미련이 남는지 조금만 더 걸어보자는 친구를 따라 무덤 사이를 한참 더 걷다가 마침내 묘지  문을 나설 때까지도 우리 이외에 묘지를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공동묘지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를 용케 잘 피해 즐거워졌다. 버스에 오른 뒤에는 그때까지 잊고 있던, 좋은 그릇들을 싼 값에 구입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다시 일상의 행복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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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15 [09:06]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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