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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Halloween) 밤에
죽음연습 (2)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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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다>에 ‘도서관 나들이’, ‘철학하는 일상’을 연재한 이경신님의 새연재 ‘죽음연습’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경신님은 의료화된 사회 속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를 탐색하고 있는 중입니다. 잘 늙는 것, 그리고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죽음과 관련된 철학적 탐구를 <일다>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서운 가면을 쓰고 독특한 복장으로 변장한 채 무리지어 지나가는 프랑스 아이들과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할로윈(Halloween)’ 밤이다.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등지에서는 할로윈 때, 아이들이 유령, 마녀, 괴물 등으로 변장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릿, 젤리, 과일, 약간의 돈 등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동네에서는 영미국가에서만큼 할로윈 축제로 들썩이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기괴한 가면, 옷, 도끼나 빗자루 등과 같은 할로윈 상품으로 한 몫 챙기려는 상술이 더 요란할 뿐이다. 그래서 할로윈으로 가장 떠들썩한 곳은 대형슈퍼마켓인 것 같다.
 
호박초롱, ‘등불을 든 잭’
 
▲ 할로윈의 상징 '등불을 든 잭'은 다양하게 변주된 이미지로 대중문화 곳곳에 등장한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주인공 또한 '잭'이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당한 죽음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예외적인 날이라는 점에서 ‘할로윈’은 흥미로운 날이기도 하다. 이 날에는 죽음처럼 두려운 것만 아니라 끔찍한 것, 징그러운 것, 기괴한 것, 신비로운 것도 함께 부각된다. 다시 말해서, 해골, 좀비, 유령, 괴물, 마녀, 박쥐, 검은 고양이, 거미, 지렁이 등 평소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공포영화의 등장인물들까지 가세한다.

 
무엇보다도, 할로윈하면, 속에 양초를 밝힌 주황색 호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호박초롱은 영어로 ‘Jack-o-lantern(잭 오 랜턴: 등불을 든 잭)’이라 불린다. ‘등불을 든 잭’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우리에게 들려주는 아일랜드의 옛 이야기가 재미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잭은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주정뱅이이다. 어느 날 밤, 잭은 선술집에서 악마를 만난다. “잭, 네 영혼을 거두러 왔다.” “그럼, 지옥에 가기 전에 한 잔만 더 할 수 없을까?” 잭의 제안을 받아들인 악마는 6펜스 동전으로 변한다. 잭은 그 동전을 곧바로 지갑에 넣고서는 악마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십자가 자물쇠를 채운다. “잭, 1년 더 살게 해 줄 테니까 나를 풀어줘.” 악마는 잭을 1년 더 살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겨우 지갑에서 빠져나온다. 약속한 12달이 지난 후에도 잭은 악마가 두 번 다시 그를 뒤쫓지 못하도록 또 장난을 친다. 세월이 흐른 후, 잭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거절당하는 신세가 된다. 결국 잭은 최후의 심판 때까지 어둠 속을 방황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잭은 악마를 설득해 활활 타오르는 석탄 한 조각을 얻는다. 그리고 속을 판 무 속에 그 석탄을 넣어 어둠을 밝힐 초롱불을 만든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할로윈 날 죽은 잭이 매년 할로윈 때면 우리 앞에 다시 등장한다고 한다. 바로 순무, 사탕무, 호박 등 갖가지 야채 속을 파서 만든 할로윈 등이 죽은 잭의 환생인 셈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등불을 든 잭’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따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잭, 죽음을 거부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과 참으로 닮았다.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하고 죽음을 계속 뒤로 미루던 잭이 어둠 속을 떠돈다는 이야기는 그냥 흘려듣기 어려운 대목이다.
 
죽은 자를 떠올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
 
사실 ‘할로윈’은 ‘만성절’과 어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할로윈’의 어원을 살펴보자. ‘할로윈’은 ‘모든 성인(聖人)의 저녁(All Hallows Eve)’을 뜻하며 영어의 고어표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즉, ‘만성절’ 전날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성절’은 11월 1일이다. 이날은 로마 가톨릭의 축제일로서 모든 성인을 기리는 날이다. 그리고 다음 날인 11월 2일은 고인이 된 기독교 신자들을 추모하는 날이라고 한다. 모두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날들이다. 만성절이 공휴일인 프랑스에서는 두 날을 구분하지 않고, 만성절 때 죽은 자들을 떠올리며 묘지를 찾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만성절에는 꽃을 사들고 묘지에 가서 죽은 이를 추모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만성절이 항상 11월 1일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만성절이 11월 1일로 정해진 것은 8,9세기 때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5월 달에 만성절이 있었단다. 켈트족의 종교적인 풍습을 바꿔놓으려 했던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로마 가톨릭에서 만성절을 켈트족의 사마인 축제 때로 옮긴 것이다.
 
켈트족의 사마인 축제는 변화와 이행의 축제로서 묶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열린다. 12월에 한 해가 마감되고 1월에 또 다른 해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켈트족은 한 해가 11월 1일에 시작해서 10월 31일에 끝난다고 생각했다. 또 이들은 한 해가 두 계절, 어두운 계절과 밝은 계절로 이루어져 있고, 어두운 계절이 바로 11월 1일에 시작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날이자 어두운 계절이 시작되는 11월 1일을 사마인 축제의 기점으로 삼았다. 새해 첫날을 중심으로 앞, 뒤 3일씩을 더해서 일주일동안 축제가 벌어졌다. 켈트족은 이 기간 동안 다른 세상이 열리고 인간과 신들이 서로 만난다고 믿었다. 특히, 한 해가 끝나는 마지막 날, 즉 10월 31일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되살아나고 마녀나 정령이 나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족의 묘지를 참배하거나 마녀나 정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가면을 쓰거나 모닥불을 피웠다고 한다. 할로윈을 켈트족의 종교적 풍습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오늘날 영미국가의 ‘할로윈’이 켈트족의 사마인 축제나 로마가톨릭의 ‘만성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죽음’, ‘죽은 자’와 연관된 축제라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점이 있어 보인다. 죽은 성인이나 수사, 일반 신도들을 추모하는 로마 가톨릭의 축제, 한 해의 마지막 날 죽은 자들이 되살아난다고 믿었던 켈트족의 종교축제, 두려운 죽음을 희화화시킨 오늘날의 할로윈, 모두 겨울을 향해가는 문턱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죽은 자들을 떠올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이끈다.
 
죽음을 회피하는 문화 속에서 죽음을 드러내고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살아 있는 존재에게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죽음을 삶의 축제 속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삶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할로윈 밤, ‘등불을 든 잭’의 노란불빛을 따라 죽음에 대한 사색의 길로 잠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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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1/04 [14:17]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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