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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도시에서의 배회
죽음연습 (4) 놀이가 된 죽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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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의 에딘버그 성 풍경. 이 도시 곳곳에는 죽음의 역사가 깊이 배여 있었다.     © 이경신
잔뜩 찌푸린 하늘, 물기를 머금은 대기, 우산을 내치는 바람. 이른 아침, 온 몸을 비옷으로 감싸고 호텔을 나섰다.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일까? 긴 세월을 견뎌낸 건물들의 짙은 검은 빛과 벽 위 군데군데 자리 잡은 이끼의 선명한 녹색은 묘한 대조를 이루며 눈길을 끈다.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생생한 이미지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낯선 도시, 그 도시의 옛 중심가 거리는 어둡고 비좁은 골목길들로, 미끄러운 작은 계단들로 이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도착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그, 이 도시를 배회하며 다닌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이끼 낀 낡은 건축물, 건물들 사이의 어둠침침한 골목길, 음산한 지하 감옥, 오래된 묘지 속의 쓰러진 비석들과 버려진 무덤, 무너져 내린 건물들의 잔해가 만든 폐허 등,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도시의 스산하고 음산한 아름다움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햇살이 났다 바람이 불었다 비를 뿌렸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이런 독특한 도시 분위기를 더해 준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죽음의 옛 이야기로 가득한 도시
 
도시 곳곳에는 죽음의 역사가 깊이 배어 있었다. 도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섬찟한 죽음의 이야기들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우리를 더 전율케 한다.
 
우리는 여름철 더위를 식히려고 공포를 찾기도 한다. 공포소설, 공포영화, 공포 테마 놀이동산에 등장하는 드라큘라, 유령, 좀비, 마녀 등 무섭고 기괴한 존재들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체온을 내려준다. 이때 우리가 경험하는 두려움은 죽음과 관련한 우리의 상상이 낳은 공포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구시가를 걸으며 만나는 공포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한다. 에딘버그의 성을 방문해 지하 감옥을 들여다보거나 우물가를 지날 때, 구시가의 골목길, 다리 밑을 걸을 때, 홀리루드 공원((Horyrood Park)의 폐허를 맞닥뜨릴 때, 박물관을 관람할 때조차,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음으로 내몰린 끔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힘없는 여성들을 겨냥한 마녀사냥, 잉글랜드의 국교도에 맞서 장로주의를 지지한 스코틀랜드 서약자들(covenanters)의 대학살, 공중보건이 미비한 도시의 비위생적인 삶이 퍼뜨린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 등.
 
여성억압,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박해, 도시의 전염병처럼 과거사 속에 실재한 비극적인 집단적 죽음에 자살과 살인과 같은 개개인의 불행한 죽음이 더해져 도시에는 죽음의 옛 이야기들, 허구가 아닌 진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 끔찍한 진짜 이야기들이 어두운 도시의 분위기를 더더욱 침울하고 음산하도록 만든다.
              
지하에 묻힌 ‘메리 킹의 골목길’에 얽힌 사연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거나 죽음으로 내몬 역사가 이 도시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살이나 살인사건은 어느 사회나 도시에 존재했기 마련이다. 다만, 그 일을 숨기고 묻어 부각시키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에딘버그는 이 죽음의 사건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여행객의 구경거리로 만들었다는 점이 유별나다.
 
대표적 사례로 ‘죽음의 도시관광(City of the dead tours)’과 ‘실재한 메리 킹의 골목길(The real Mary King’s close)’을 들 수 있다. 둘 다 에딘버그 시의 지하세계를 안내하는 관광 상품이다. 전자는 코버넌트들에 대한 박해의 역사와, 후자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의 과거와 관련된다. 마침 시간이 맞아, 나는 ‘메리 킹의 골목길’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 '실재한 메리 킹의 골목길' 모형.     © 이경신
로열마일이라는 별명이 붙은, 에딘버그 언덕 위의 성에서부터 홀리루드 궁전에 이르는 길을 걷다 보면, 이 길 양 옆에는 아치모양의 지붕이 있는 골목길을 비롯해 다양한 골목길들이 많다. 로열마일이 높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골목길을 통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그 많은 골목길 중 하나가 ‘메리 킹의 골목길’이다. 대부분의 골목길이 스티븐로, 잭슨과 같은 남성들의 이름을 땄다는 점을 주목할 때, ‘메리 킹’이라는 여성의 이름을 골목길에 붙였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하지만 그보다도 우리가 메리 킹의 골목길에 끌리는 이유는 도시의 지하에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메리 킹의 골목길이 지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골목길이 지하세계가 된 사연이 흥미롭다. 1645년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였다. 이 골목 주민들이 페스트에 걸리자 시에서는 이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되 골목길을 벽으로 에워싸서 폐쇄시켰다고 한다. 이들이 죽은 후,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문으로 시신을 꺼내기가 힘들어서 시신을 토막 내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다.
 
페스트가 휩쓸고 간 후, 용기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다시 정착하려 했지만, 페스트로 죽은 자들의 끔찍한 유령 때문에 하나 둘 떠나고, 골목은 버림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18세기 중엽, 아무도 살지 않아 폐허가 된 골목길의 저층 건물 위에 새 건물을 지어 올렸다. 그때 이후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그 누구도 메리 킹의 골목길에 접근할 수 없었다.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지금 현재, 그 건물은 시에서 사용하고 있고, 골목길은 2003년 이래 대중들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
 
골목길을 포함한 지하공간은 낮은 조명으로 간신히 사물을 분간할 정도로 어둠침침했다. 살인,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 자살 등, 이 공간에서 벌어진 과거의 무시무시한 죽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안내자의 과장된 말투와 고전적인 옷차림, 영사기가 투영하는 기괴한 영상들, 그리고 무서운 분위기를 고조하는 음향효과로 마치 공포극 속을 거니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방을 들어서니, 한쪽 벽에 인형들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다. 페스트로 오래 전 죽은 여자 아이가 한 일본 관광객에게 나타나서 ‘외롭다’고 말한 이후에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형을 놓고 갔기 때문이란다.
 
놀이와 웃음으로 승화시킨 죽음의 공포와 비극
 
이제 지나간 시간 속의 진짜 죽음 이야기들은 초현실적 경험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죽은 메리 킹의 유령에서부터 페스트로 죽은 여자아이 유령까지, 오늘날의 관광객들에게 도시 아래  숨겨진 이 어두운 공간은 돈을 지불하고 공포를 맞보는 다른 공포 체험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죽음의 역사가 죽음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비극적인 과거의 실제 죽음이 현재에 이르러 공상이 가미된 오락거리로 돈벌이가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과거의 죽음을 현재의 삶을 살아내는 데 이용하는 이들을 영리하다고 해야 할까? 죽음, 아니 비극적인 죽음의 역사조차 돈벌이로 삼는 자본주의에 진저리를 쳐야 할까?
 
▲ '메리 킹의 골목길'을 나와서 만난 상점. 해골처럼 죽음을 소재로 한 장난스러운 물건들을 진열해 놓았다.     © 이경신
사실, 에딘버그에서 관광 사업에 동원된 죽음들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류의 죽음이 과거이기만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민족적 차이, 종교적 차이로 인한 전쟁, 다수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 등이 계속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게다가 사회면을 채우고 있는 살인과 자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죽음을 희화화하고 놀이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그 죽음이 현재의 사건이 아니라 머나먼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며, 죽음의 현실에 상상력을 발휘할 때만이 가능하다. 또 나 자신의 죽음이 아니고 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 아닐 때만이 죽음을 희롱하고 죽음의 공포를 즐길 수 있다.
 
어쨌거나 죽음을 삶 속으로 끌어내어 비극적인 죽음, 두려운 죽음을 놀이로,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놀라운 것임에 분명하다.
          
지하세계에서 지상으로 나오니, 해골처럼 죽음을 소재로 한 장난스러운 물건들을 진열해 놓은 가게들이 여럿 눈에 띤다. 나는 이 신기한 가게들의 진열창을 곁눈질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비록 언젠가는 죽을지라도 아직은 죽지 않았으니, 죽음의 공포조차 놀이감으로 삼을 여유가 있는 것 아니겠나. 어느 덧 도시의 해는 기울고, 거리 어딘가에서 오래 전 죽은 자와 부딪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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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1/30 [06:38]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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