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아동의 성보호’ 사이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헌법소원 제기돼

너울 | 기사입력 2013/04/04 [00:37]

표현의 자유와 ‘아동의 성보호’ 사이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헌법소원 제기돼

너울 | 입력 : 2013/04/04 [00:37]
※ 최근 헌법소원이 제기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논란에 대해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 너울 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편집자 주]
 
아동과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는 목적을 가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오픈넷’(opennet.or.kr)이 이 법률에 적용돼 기소유예 처분을 당한 피해자를 대리하여, 지난 달 13일 ‘표현의 자유’와 ‘국민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이사장 전응휘)은 네티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올해 2월 창립한 NGO이다.
 
아동으로 ‘보이는’ 가상 캐릭터까지 단속 대상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은 아동과 청소년을 포르노, 성폭행, 성매매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2000년 7월 제정되었다.  원래는 ‘청소년의 성보호에 대한 법률’ 이었지만, 아동 성범죄가 늘어나면서 아동도 이 법의 보호대상이라는 사실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2009년 개정을 통해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이 법은 2011년 잔혹한 초등학생 강간상해 사건인 ‘조두순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아동 성범죄를 막기 위해 법의 적용 범위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그 해 9월 개정됐다.
 
아동과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에 반대할 사람이 없겠지만, 특히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다음의 조항이다.
 
2조 5항에 보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아동과 청소년 또는 아동이나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 대상은 필름, 비디오물, 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 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이다.
 
동법의 제4호에서 문제로 삼는 행위는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나 그 행위를 알선한 자와 같이 성매매와 관련된 내용이 있고, 나아가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라고 광범위하게 규정되어 있다.
 
표현물과 관련하여, 기존에는 실제 아동과 청소년을 음란물에 출연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했지만, 개정법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가상 표현물에 등장하는 아동.청소년 캐릭터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으로 개정된 아청법은 작년 3월 1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와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에 대해서는 성범죄와 인신공격 범죄 등으로부터 국가공인이 엄격하게 보호한다는 취지이므로, 이 법을 어길 경우 가해자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실제 아동이 아닌, 아동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성적 행위를 하는 장면을 그릴 경우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을 가져왔다.
 
아청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의 입장은, 이 법의 가장 큰 문제로 ‘보호법익이 애초에 다른 두 경우를 애매하게 합쳐놓았다’는 것을 지적한다.
 
기존의 법률은 실제 아동과 청소년이 등장하는 아동포르노만을 단속하였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그래픽 등의 가상 표현물은 직접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경우 음화 제작, 유포죄 및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일반 음란물로 규제되었다. 그런데 아청법은 ‘음란물 유포죄’에 해당하던 대상을 ‘청소년 성범죄자’로 처벌받게 한다는 것이다. 또 ‘음란물 유포죄’와 달리 아청법은 표현물을 소지하는 행위까지도 규제한다.
 
현재 이 법을 둘러싼 논란은 예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던 ‘무엇을 음란하다고 볼 것인가’라는 기준에 대한 것과, ‘청소년처럼 보이는’이라는 규정의 모호성, 그리고 ‘표현의 자유 침해’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표현물의 아동’ 보호하고 실제 피해자는 무시?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4월 1일부터 경찰 인력 1천여 명을 투입해 인터넷 음란물 집중 단속에 나선다고 한다. 경찰청은 1일 ‘이날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음란물이 아동, 여성 대상 성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아동, 여성 보호를 위해 음란물 통제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됨에 따라 집중적인 단속을 벌인다’고 밝혔다.
 
얼마 전 청소년을 대상으로 발생한 강간미수 사건에서, 아청법이 적용되지 않은 판결이 내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발육 상태가 ‘청소년처럼 보이지 않아서’ 가해자가 청소년이란 걸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청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판결은 아청법이 ‘표현물의 아동’을 지키느라 ‘실제 피해아동’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의 힐난을 받았다. 실제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표현물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단속을 하는데 인력과 예산을 들이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공분을 사는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은 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책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당장의 시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실제로 성범죄를 감소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정보공개센터가 밝힌 바에 따르면, 아청법이 개정되고 나서 이 법을 위반하여 처벌받은 경우가 22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범죄자만 양산되었을 뿐, 국가가 아동과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한 것이라고는 보기는 어렵다.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물론 아동과 청소년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아동포르노에 대한 규제도 필요할 것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사건에 대한 엄격한 법 적용과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성범죄 신고율과 기소율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성폭력 예방’이라는 단기적인 구호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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