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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한복으로 만든 찻잔받침
죽음연습(7)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덜어내는 법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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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대학후배가 보내온 것이었다. 편지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그 고통을 함께 지켜보는 사람의 힘겨움이 담겨 있었다. 죽음이 우리 곁에서 소중한 사람을 데려갈 때, 감정의 동요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겪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분명한 것은 죽음이 우리에게 안겨준 상실의 깊은 수렁을 서둘러 빠져 나오기는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간의 힘을 빌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수용할 힘과 지혜를 얻는다. 그렇다면 다들 어떻게 그 슬픔을 견뎌냈을까? 죽은 사람의 공간을 한동안 보존하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회고하며 글을 써 보기도 하고…. 방법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죽은 이들이 남긴 물건들, 반지 칼 옷장…
 
지금껏 나도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여럿 잃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슬픔을 어떻게 삭혀냈었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선 유품에 기댔던 것 같다. 죽은 자가 남긴 물건으로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 난 할머니와 부모님이 내 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몇 가지 유품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반지, 휴대용 칼, 옷장이 그렇다.
 
할머니의 반지와 어머니의 반지는 책상 서랍 깊숙이 감춰놓았다. 할머니의 반지도, 어머니 반지도 대단히 값나가는 것들은 아니지만, 두 분이 생전에 즐겨 끼면서 소중히 여겼던 터라, 내게는 그 반지들이 두 사람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또 휴대용 맥가이버 칼은 아버지가 동료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왔을 때 사가지고 온 칼이다. 아버지께는 첫 유럽여행 기념품인 셈이다.
 
사실, 아버지가 이 칼을 즐겨 사용하셨던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랍 한 귀퉁이에서 이 칼을 발견하고, 나는 동생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가졌다. 그때부터 이 휴대용 다용도 칼은 내 필수품이 되었다. 이 칼은 평소에도 요긴하지만, 집을 떠나 길을 나설 때도 유용하다. 풀밭에서 민들레를 자를 때나 기차 안에서 사과를 먹을 때만이 아니라, 불현듯 뭔가 만들고 싶을 때도 이 칼을 꺼내면 된다.
 
▲ 어머니의 한복을 보관해오다가 수년 전 조각보를 만드는 친구에게 건넸더니, 예쁜 찻잔 받침을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 이경신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삼층장과 자개장 한쪽을 내 옷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란히 서 있지만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구식 옷장들은 내 평생의 옷장이 될 것이다. 삼층장은 어머니가 신혼살림으로 마련해 오신 것이다. 합판으로 만들어져 허술하고 사용하기에도 불편한 장이지만, 나는 내 나이보다 오래된 그 장이 항상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의 결혼생활을 신혼 때부터 줄곧 가까이서 지켜본 유일한 증인이 아닌가!

 
삼층장을 내게 물려달라고 졸랐을 때 어머니가 빙긋 미소 지었던 기억이 난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여기저기 흠집이 생겨 새색시 같았던 삼층장의 꼴이 참으로 초라해졌다.
 
삼층장 옆에 놓인 자개장은 어머니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자개장 세 쪽 중 한 쪽이다. 어머니의 자개장을 갖고 싶어 했던 여동생이 집이 좁아서 자개장 두 쪽만 가지고 내게 한 쪽을 남긴 때문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항상 반질반질 새 것처럼 윤이 나던 장이었다. 날마다 자개장을 닦는 것은 어머니의 낙이었던 것 같다.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도 장 닦기를 멈추지 않았던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귀히 대접받던 장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조카 손에 망가지고, 또 이 집 저 집으로 나눠져 위풍당당하던 그 모습을 잃었다. 겉보기에는 세월에 빛 바랜 허름한 장들이지만 내 일상 속에서는 변함없이 당당하다.
 
이처럼 사랑하던 사람들이 평소에 즐겨 사용하던 물건, 추억의 기념품으로 간직하던 물건, 아끼고 소중히 다루던 물건을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간직하고 있는 까닭은 이 물건들을 그들의 일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상실감을 물건으로라도 채워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마음 깊이, 지난 날 함께했던 추억을 담아
 
하지만 유품이 죽은 사람과 함께 나눈 추억을 담은 것이었다면 오히려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 네덜란드 어린이 책 작가인 베테 베스테라(Bette Westera)의 한 그림책을 보면, 죽음으로 할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할아버지의 붉은 손수건을 통해 그 상실감을 치유해 나간다. 할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손수건을 가지고 즐겁게 놀았었다. 아이는 손수건을 통해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달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쉽게도 내게는 그런 유품이 없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유품들은 모두 돌아가신 부모님, 할머니, 당신들의 추억을 담은 물건들이지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은 아니다. 게다가 할아버지나 중학교 시절 선생님의 경우, 간직하고 있는 유품조차 없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 모두의 유품을 지니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빈자리를 그들이 남긴 물건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한 기억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유치원을 오갔던 일, 겨울날 등굣길에 할머니가 부뚜막에서 데운 신발을 신고 뜨거워서 폴짝폴짝 뛰어갔던 일, 병원에 입원해 거동을 거의 하지 못했던 어머니와 침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 아버지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때문에 잠시 휴게소에서 머물러 시간을 보내던 일 등.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는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비록 죽은 사람들과 더는 현실 속에서 시간을 나눌 수 없지만, 이들과 함께 했던 과거의 시간들은 원할 때면 언제나 되살려낼 수 있다. 죽은 자들과의 기억은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마음속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유품 따위 필요 없는 것이다. 죽은 자와 함께 한 따뜻한 시간들에 대한 추억을 마음에 담아둘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죽은 사람의 유품을 남기지 않는 집시들이 떠오른다. 토니 가트리프(Tony Gatlif) 감독의 영화 <스윙>(Swing, 2002)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집시 음악가가 죽었을 때, 집시들은 그의 소중한 기타까지, 그가 남긴 모든 물건을 불 질러 소각한다. 유랑하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물건까지 지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주 현실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품과 같은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도 죽은 사람을 충분히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다는 대목에 주목하고 싶다.
 
마음 속 깊숙이 담아두다 보면, 시간이 흘러 더는 그 사람이 우리의 의식 위로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 저 깊은 곳에 죽은 자를 품어둘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살아가다 언뜻언뜻 떠난 사람을 떠올리거나 가끔씩 꿈에서 만나더라도 더는 눈물짓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 또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도 자유로워져 죽은 사람을 우리 곁에서 홀가분히 떠나 보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전까지는 충분히 울고, 물질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붙들어 보려 애쓰고,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추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의 신행한복을 무작정 보관하고 있다가 수 년 전, 조각보를 만드는 친구에게 건넸다. 얼마 전 친구가 어머니의 한복을 잘라서 내게 예쁜 찻잔 받침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낡은 한복의 멋진 변화에 감동했다. 죽음도 이렇듯 또 다른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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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4/07 [18:45]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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