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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서 만난 혼잣말하는 할머니
죽음연습(8) 노망에 대한 두려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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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새 연재 ‘죽음연습’.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동네를 산책할 때면 여러 집 앞을 지나간다. 아담한 프랑스 집에는 저마다 자기 식으로 개성 있게 가꾼 정원이 있어, 이 정원들의 꽃, 나무, 풀을 곁눈질하며 걷는 것도 산책의 적지 않은 즐거움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낡고 허름해서 오히려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가 녹슨, 대문조차 없어 참으로 초라한 집이다. 하루는 그 집 앞을 지나는데 한 할머니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여러 날이 흘렀다. 산책에서 돌아오던 길에 다시 그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대문 밖에 나와 앉아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께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무표정하게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대신,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며 묻지도 않는 말을 꺼내며 횡설수설 말을 끝없이 이어갔다.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말을 그냥 무시하고, 그 곁을 서둘러 지나쳐 왔던 기억이 난다.
 
그날, 할머니와는 평범한 대화도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치매나 노망에 걸린 걸까?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아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 혼자 낡고 허술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지나칠 때마다 그 집을 눈여겨보는 습관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 그날, 할머니와는 평범한 대화도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치매나 노망에 걸린 걸까? 할머니 혼자 낡고 허술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 걱정스러웠다.     © 이경신

죽는 것보다 두려운 ‘노망’
 
나이가 들어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다. 죽음의 순간까지 또렷한 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죽음의 공포에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을 더한다. 노인들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노망, 치매라고 말한다. 이처럼 노인들이 정신 줄을 놓을까 불안해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통계를 보자. 전 세계에서 3천 5백 6십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치매로 고통 받는 사람들 가운데 70%는 ‘알츠하이머(Alzheimer)’ 환자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알츠하이머는 어떤 질병인가? 연구자들에 의하면, 알츠하이머는 두뇌퇴행질환인데, 노화 침착물과 신경구조 단백질의 변형으로 인한 뇌손상이 그 특징이다. 신경독성단백질이 쌓여서 두뇌신경 단백질을 변형시키고 두뇌를 퇴행시켜 죽음을 야기한다.
 
이 병은 대개 8년에서 10년 동안 진행되는 것으로 본다. 병이 진행되는 동안, 기억력이 약화되고 인지능력이 퇴행하고 행동장애를 가져온다. 따라서 자율성을 상실하고 노망에 이르며 결국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8년 반으로 본다. 증상이 처음 나타나서 알츠하이머로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대개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여기서 알츠하이머로 고통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만 보더라도, 알츠하이머 환자의 74%는 80세 이상의 노인이고, 90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환자의 40%에 해당된다. 알츠하이머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대가로 얻은 ‘노년의 병’이라고 요약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장수하면 할수록 노망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는 것 같다. 죽기 전 10여년의 세월동안 뇌기능을 점차적으로 잃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이 오히려 고통일 것이다. 잘 늙고 잘 죽어가는 것에 대한 소망이 노망의 위협 앞에서 무력해지는 느낌이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알츠하이머
 
알츠하이머는 1906년 독일의 신경학자인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이 끔찍한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껏 등장한 그 어떤 알츠하이머 약도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이 밝혀졌다.

 
최근, 연구자들은 알츠하이머가 ‘광우병’이라 불리는 ‘크로이츠펠트-야곱병’과 유사한 전염성 질환일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바이러스도 박테리아도 아니면서도 전염가능한 단백질인 ‘프리온’에 의해 발생하는 전염성 질환과 닮았다는 것이다. 신경이 퇴행되기 시작하면 조금씩 뇌 전체로 퍼져서 퇴행과정을 중지시키기가 어렵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발병 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전염병 가설에 근거해 여러 연구들이 진행 중이다. 면역강화를 위한 항체주입, 예방을 위한 백신 개발, 기존 약품의 예방적 효과에 대한 연구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당장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날로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또 사람들은 목숨을 늘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치매에 걸릴 가능성도 함께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두뇌의 퇴행을 회복시킬 방도가 없다면, 뇌기능을 상실해 사망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알츠하이머는 환자 개인의 비극만은 아니다. 환자를 둘러싼 가족들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환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장기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까, 가족들의 심리적, 육체적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환자를 가족이 직접 돌보건 시설에서 맡기건, 환자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에서는 알츠하이머 환자를 1년 동안 돌보는데, 3천 만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뇌건강을 결정하는 ‘삶의 방식’
 
나이가 들면 두뇌를 포함해 신체 전부가 쇠약해진다. 이처럼 노쇠를 거쳐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젊어 목숨을 잃지 않고 노화 과정을 밟아 죽을 정도로 생명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었다면, 운이 좋은 셈이다. 게다가 노년에 치매에도 걸리지도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행운이 아니겠나.
 
비록 노인들이 주로 알츠하이머에 걸린다고 해도, 모든 노인이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귀가 솔깃해진다. 65세 이상의 프랑스인 5%, 80세 이상의 15%만이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사실이 그 점을 뒷받침한다. 알츠하이머가 아닌 치매나 노망까지 감안한다고 해도 모든 노인이 정신이 혼미해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알츠하이머조차 발병을 뒤로 미룰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고 해도, 또 그 병의 유전적 요인은 벗어나기 어렵다고 해도, 후천적 요인만은 피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담배를 즐길수록, 신체적인 활동량이 적을수록, 심리적으로 우울할수록, 고혈압이나 비만, 당뇨에 노출될수록 알츠하이머에 걸리기 쉽다. 그렇다면 평생도록 배움을 가까이 하고, 담배를 끊고, 몸을 많이 움직이고, 지방, 당분, 염분이 적은 음식을 섭취하고, 인간관계를 폭넓게 맺으면서 즐겁게 살아간다면, 두뇌퇴행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뇌 기능의 퇴화를 늦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 손상조차 복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망’에 대한 불안 극복하는 길은
 
문제는 건전한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한 캐나다 의사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식이요법, 운동, 두뇌훈련을 지속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한 채 약을 더 선호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평생 살아온 방식을 병에 걸렸다고 해서 갑자기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효과도 없는 치료약에 매달리거나 효과를 짐작할 수도 없는 신약의 임상시험에 자원하는 것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결국, 늙고 죽어가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살아온 방식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삶의 방식을 유지해 잘 살아왔다면 잘 늙고 잘 죽어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노망의 불안과 두려움을 멀리하려면 개인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보인다. 평소 살아가는 방식을 되돌아보고 바로잡는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노년을 폄하해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바뀌지 않는 이상 노인들의 우울을 모두 거둬낼 수 없을 것이다. 가난하고 고독한 노년이 노인을 우울하게 만들고 노망, 치매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친구를 기다린다며 길에 나와 앉아 있던 그 할머니의 지친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그 날 이후 더는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뜯겨진 울타리, 굳게 닫힌 덧창과 현관문, 방치된 집 마당에는 잡초들만 무성해졌다. 가끔씩 동네고양이들만 대문 없는 그 집 안뜰을 들락거릴 뿐이다.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을까? 어디에 계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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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5/08 [02:08]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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