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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와 프랑스의 접경지대를 가다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3) 브르타뉴의 성곽도시들①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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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날은 흐렸지만, 오랜만에 비가 그쳤다. 며칠 째 계속되던 비가 그치자, 어디든 훌쩍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고 간단하게 가방을 챙겼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마음이 일 때 나설 수 있을 만큼, 렌 근처에는 볼만한 유적지들이 많다.
 
특히, 프랑스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동쪽, 일에빌렌느(Ille-et-vilaine)지역에는 옛날 프랑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던 요새형태의 성들이 많다. 그런 만큼 이곳들은 참혹한 전투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브르타뉴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현장이었던 ‘푸제흐’(Fougeres)성을 가볼 생각이다.
 
변방의 참혹한 전투현장, 푸제흐성
 
▲ 푸제흐 성은 복원된 탑들과 폐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정인진

렌에서 북서쪽으로, 시외버스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푸제흐라는 도시가 있다. 푸제흐는 맨느(Maine)와 노르망디(Normandie)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브르타뉴의 대표적인 변방지역 중 한 곳이다. 푸제흐가 속해 있는 곳은 예로부터 ‘막슈 드 브르타뉴’(les Marches de Bretagne: 브르타뉴의 변방들)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수세기 동안 프랑스와 브르타뉴의 국경이 계속 옮겨지면서 치열한 전투들이 벌어진 곳이다.
 
변방에 속하는 도시로는 푸제흐 외에도 비트레, 라 게흐슈-드-브르타뉴, 샤토브리앙, 앙스니, 클리쏭, 마슈쿨, 게랑드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푸제흐는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어, 과거 프랑스군은 물론 백년 전쟁 동안에는 영국군과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흐린 날씨였지만, 길을 걷기는 상쾌했다. 도시 바로 입구에 그 유명한 푸제흐 성이 있고, 버스정류장도 성을 뜻하는 ‘샤또’(chateau)역이다. 나는 더 가지 않고 그 곳에서 내렸다. 지도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푸제흐 성은 깎아지른 듯한 산들로 둘려쳐져 있는 ‘낭송’(Nancon)계곡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계곡과 같은 이름의 낭송강의 작은 물줄기가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성은 계곡 한가운데 불쑥 솟아있는 붉은 빛 화강암 바위 위에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성 문앞으로는 낭송강의 깊은 물길이 마치 폭포처럼 성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흐르고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높고 수려한 여러 채의 탑들과 무너진 건물들의 폐허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옛날에 무너진 걸 20세기에 복원시켰다는 성 안의 탑들도 감탄스러웠지만, 군데군데 다시 만들지 않고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인 건축물들의 폐허는 더욱 인상적이다. 푸제흐성은 무너진 탑들 일부는 복원이 되었고 또 몇몇은 허물어진 채 존재하는데, 이런 모습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뭐든 완벽하고 깔끔하게 예전 모습 그래도 만들어 놓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런 폐허들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폐허로 남은 오랜 점령의 역사
 
푸제흐 성은 11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완공된, 유럽에서도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성이다. 옛날부터 프랑스와 함께, 10세기 북쪽으로부터 내려온 바이킹들은 항상 브르타뉴의 큰 위험 세력이었다. 11세기 맨느와 노르망디, 그리고 앙주(Anjou)가 만나는 교차로에 성을 세움으로써, 푸제흐는 중요한 방어요충지의 성격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1166년 영국의 플랜테저넷가의 왕, 헨리 2세가 쳐들어와 이곳을 포위하고 나무로 만든 성을 불태운다. 불탄 성을 돌로 다시 쌓은 사람은 하울 2세 남작이었다. 현재, 푸제흐 성은 그 당시부터 차례로 세워진 높은 탑들과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13세기에 들어서는 푸제흐성의 주인이었던 쟌 드 푸제흐가 위그 12세 드 뤼지냥과 결혼한 뒤에 뤼지냥 일가는 성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때 세워진 것이 이 성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고블랭 탑(Tour des Gobelins)과 멜뤼신 탑(Tour Melusine)이다. 이 탑들은 전형적인 고딕식 원통형탑으로 불을 밝히기 위한 계단과 벽난로, 변소까지 갖추고 있는, 당시로서는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 멀리 보이는 탑이 멜뤼신탑(좌)과 고블랭탑(우)이다.     © 정인진

이후 1373년, 뒤궤슬랭에 의해 푸제흐 도시와 성은 점령당하고 이때부터 푸제흐 남작령이었던 것들은 알랑송(Alencon)영주의 소유가 된다. 15세기, 영국과의 100년 전쟁기간 중에도 쉬리엔의 기습으로 성이 함락된다. 그러다가 1488년, 푸제흐 바로 근처 ‘생또뱅뒤꼬르미에’(Saint-Aubin-du-Cormier)에서 브르타뉴의 프랑수와 2세의 군대가 프랑스에 대패함으로서 푸제흐성의 오랜 전쟁의 역사는 끝이 난다. 
 
16-18세기 동안, 중앙에서 임명된 통치자들은 더 이상 성을 돌보지 않았고, 결국 성 아래쪽 마당의 건물들이 주저앉고 만다. 20세기에 들어, 그렇게 방치되어 있던 성을 시에서 사들여 역사적 기념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존재하는 고딕식 탑들은 모두 198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무엇보다 시에서 성을 참 잘 돌보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오디오기의 설명을 들으며 성 구석구석을 탐방할 수 있고, 탑들 안에는 푸제흐의 역사를 영상과 조명을 이용해가며 설명을 해 준다. 그래서 재밌게 성을 둘러 볼 수 있고 교육적인 역할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내가 성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교사를 동반한 학생들 그룹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뱀의 몸을 가진 여성 ‘멜뤼신’의 전설
 
성을 나와 도시를 둘러보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성쉴피스(Saint-Sulpice)성당을 들러, ‘중세 마을’을 거쳐, 방어벽으로 높게 둘러쳐진 시내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성곽 위에서 내려다 본 그쪽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해자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성쉴피스 성당으로 향했다. 성의 둘레는 물로 가득 찬 해자로 둘러 싸여 있었다. 깊은 해자에 담긴 물에 비친 성의 그림자가 숭고함과 장엄미를 더해 주었다. 성쉴피스성당은 11세기에 지어진 것을 14세기에 불꽃양식의 고딕식으로 재건축하기 시작해, 공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성쉴피스 성당은 규모는 작지만, 불꽃양식으로 장식되어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는 성당이다.
 
▲ 성 쉴피스 성당의 한 처마에서 용의 하체를 한 여인의 갸르구이를 볼 수 있다.     © 정인진
그러나 이 성당의 화려한 건축양식보다 더 내 관심을 끈 건 한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얼굴부터 가슴까지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하체는 용의 형상을 한 ‘갸르구이’(gargouille)였다. 갸르구이는 유럽의 고딕식 성당의 높은 처마 끝에 붙어있는 석루조, 즉 빗물을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려고 만든 괴물이나 용 등의 형상을 한 조각품을 일컫는다. 나는 평소에도 이 석루조에 관심이 많다. 특히, 높은 처마 끝에 불쑥 튀어나온 석루조를 파란 하늘과 함께 사진에 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성쉴피스 성당의 이 석루조를 보면서는 푸제흐성의 한 탑의 이름으로 붙여진 ‘멜뤼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멜뤼신은 이 지역에 전하는 머리부터 가슴까지는 사람, 몸통은 뱀 모양을 한 전설의 여인이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멜뤼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전설에서는 남편에게 학대받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인 죗값으로 토요일마다 하체가 뱀으로 변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멜뤼신은 뱀으로 변할 때마다 푸제흐성 지하에 스스로 몸을 숨겼다고 한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멜뤼신은 빛나는 금발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는 것과 그녀의 비밀을 남편이 알게 되자, 용으로 변해 하늘로 날라갔다는 이야기는 공유하고 있다.
 
한편, 일에빌렌느 지역에 전하는 한 전설에는 이복 오빠인 아더 왕에게 대항한 죄로 브로셀리앙드 숲에 갇혔다는 모르간의 이야기도 전한다. 모르간과 멜뤼신 전설은 모두 가부장에 대항한 브르타뉴 여성들의 이야기다. 난 이런 전설들 속에서 가부장에 대항한 옛날 여성들의 담론의 흔적을 본다. 가부장에 대항한 그녀들은 그것이 어떤 이유건 저주를 받아 흉칙한 존재로 변하거나 깊은 숲에 갇히는 벌을 받는다.
 
갸루구이가 되어 성당 지붕의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저 용의 몸을 한 여인은 누굴까? 갸루구이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존재로, 악마나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무슨 이유로 저렇게 괴물의 한 종류가 된 것일까?
 
옛 영화 사라진 곳, 낭송강은 아름답게 흐르고
 
▲ 푸제흐 성 입구, 오래된 물레방아들이 이 도시의 영화를 짐작케 한다.     © 정인진
 
성당 옆 전통 가옥들로 이루어진 ‘중세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건물 벽은 적갈색의 화강암을 벽돌로 쌓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푸제흐를 높게 둘러싸고 있는 계곡에 드러난 화강암과 같은 돌이었다. 그래서인지 계곡과 마을은 매우 조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이 무엇보다 아름답게 여겨지는 건 건물들보다 마을 사이를 관통하는 작은 폭의 낭송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을 지나 집들 발치 아래 딱 붙어 흐르는 강은 마치 유럽의 유명 도시에서 본 운하들을 연상시켰는데, 운하보다 훨씬 맑은 물이 또랑또랑 소리를 내며 집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사람들이 뒷문으로 나와 물을 떠갔을 수도 있겠다 싶은 문들과 계단들이 물가까지 놓여 있기도 했고, 옛날의 빨래터였다는 곳까지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빨래터가 바라다 보이는 다리 위에는 옛날에 이 빨래터가 염색, 직물, 가죽무두질 작업현장이기도 했다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17~18세기, 프제흐는 아마포 직조와 가죽 산업이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당시 이 산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지금은 너무 낡아 돌아가지 않고 멈춰져 있는 물레방아들의 규모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었던 옛 시절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손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내릴 것 같은 낡은 물레방아들은 세월의 흐름과 도시의 퇴락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지금은 물레방아도 멈춰 있지만, 낭송강가의 빨래터도 한적하기만 하다. 그저 관광객의 눈길을 끌며, 그들의 사진 속에 배경으로 담겨질 뿐이다.
 
브르타뉴의 변방에서 위치한 푸제흐성은 끊임없이 외세와 전투를 벌이고, 침략자들에게 수없이 함락 당한다. 점령은 늘 방화와 노획과 강간으로 이어졌다. 푸제흐를 둘러보는 내내 처연한 느낌을 거둘 수 없었던 건 푸제흐의 참혹하고 어두운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아니, 어쩜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도시 위로 오늘도 멜뤼신이 날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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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6/10 [12:59]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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