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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 건 실패가 아닌, 걷기 위한 과정
<나의 페미니즘> ‘꽃을 던지고 싶다’ 저자 너울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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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창간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그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하여 대안담론을 만드는 기획으로,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아기가 먹고 말하고 걷는 연습의 시간들
 
낮에 노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출근을 마치고 가게들이 하나 둘 얼굴을 내미는 오전 열 시, 글을 쓰기 위해 찾은 카페는 동네 사랑방으로 변해 있다.
 
그 시간 카페를 찾아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린 엄마’들이다. 똘망똘망한 아이들(아직은 인간인 것 같아 보이지 않는)을 데리고. 그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홀로 부담해야 하는 어린 엄마들(아직은 육아에 익숙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지지해주기 위해 사랑방을 찾아온다.
 
‘저출산’이라는 국가의 비명이 무색할 만큼 카페에는 어른들의 수와 비슷하게 아이들이 유모차에, 혹은 어린이용 의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의 옹알대는 소리와 사람의 언어가 아닌 소리로 뭐라 뭐라 하는 소리를 엄마들은 용케도 알아채고 한국말로 통역해낸다. 어린 엄마들은 육아와 그에 따른 두려움을 자연스레 모여들어 해결해내고 있는 듯하다.
 
채 걸음마도 떼지 못할 것 같은 옆 테이블의 아이는 이유식을 하는 중인가보다. 엄마들은 이유식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나누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떠먹여주는 것이 영 마뜩찮은지 스스로 숟가락을 쥐겠다고 짧은 팔을 숟가락을 향해 뻗어댄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내 굴복하고 숟가락을 아이에게 빼앗긴다. 아이가 입으로 넣는 음식보다 더 많은 것을 옷에, 그리고 주변에 버리면서 이유식을 해치우는 순간 어린 엄마는 ‘유레카’라도 외칠 기세로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잘하네 잘하네~’ 외치고 있다. 아이는 이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밥 먹는 것조차 저렇게 수많은 연습의 결과라는 생각이 스친다. 밥을 먹기 위해 수백 번 숟가락을 쥐어보고, 그 수만큼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그보다 더 많이 밥알을 흘려보고... 오랜 시간이 지나 아이는 빈 그릇을 탁자를 향해 흔들며 자신의 성공에 고무된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거짓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백 번의 연습을 통해, 걷고 말하고 밥 먹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말이 전달되지 못하고, 흘리는 음식이 더 많지만, 비난을 받거나 실패라 이름 붙지 않은 경험들이다. 가족을 통해 매일매일 관계 맺는 법을 연습하고, 사회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배워간다.
 
만일 배우지 못한 것이 있다면 책을 통해 전달받고 어른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하지 못하는 일들을 구분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과정을 통해 우리는 행동하고 삶을 예측하며 미래를 꿈꾸고 삶을 통제하고 살아가는, 비로소 인간이 되어간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인간, 그리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다운 삶을 꿈꾸는 인간.
 
성폭력으로 무너져버린 삶, 여성주의와 만나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전혀 예측한 적이 없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래서 연습조차 시도되지 못한 불행이 찾아오면, 예측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삶은 이내 방향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연습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드러나도 지지를 받기보다는 비난 받고 ‘실패’라고 이름 붙여지는 경험. 나에게 있어 성폭력 피해는 그러했다.
 
가정폭력, 우리 사회가 그려내는 가정은 ‘화목한 정상가족의 모습’뿐이었기에 적응할 수 없었던 나의 집. 그리고 9살 첫 번째 강간에 대한 기억. 그 당시의 대부분 아이들처럼 나는 침묵했고, 숨겨야 했다.
 
항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왜 그런 불행이 일어났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이라면 경험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왜 나에게 발생했는가가 나의 화두였다.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과 안정감에 대한 위협이 일어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고민을 갖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 나의 인생에 있어 숙제와 같았다.
 
초등학교 때는 위인전을 읽으면서 나에게 일어났던 불행이 역사 속 위인들도 경험한 일이었는지, 왜 그런 일들이 가능했던 건지 해답을 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위인전에서는 그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철학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하였지만 역시 남는 건 공허함뿐이었다. 위안을 받기 위해 술, 담배도 해보았지만 그마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종교를 가졌다. 성경을 7번 읽고 신에게 기도도 해보았지만 그곳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공부에 매달려 보았다. 하지만 1등이라는 성적도 나를 살고 싶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면 나의 고민도 해결될까, 계급의 문제를 해결하면 내가 살고 싶어질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나의 불행을 설명해 주는 곳이 없었다. 오히려 그곳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나는 세상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
 
철학도, 공부도, 종교도, 사회운동도 나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설명해 주는 사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매 사건마다 낯선 경험들은 통합되지 못했고,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도 모르는 낯선 시간들을 보냈다.
 
돈을 벌면 조금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돈도 연애도 나를 살고 싶게 만들지 않았다. 2007년까지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10여 차례 자살 시도를 했지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또다시 병원응급실에서 눈을 떴을 때, 정신과 선생님이 와서 왜 죽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때 처음으로 난 강간을 당했었노라고 말했고, 선생님은 상담을 해보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또 다시 주어진 나의 삶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 우연히 여성주의 상담소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고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여성주의를 처음 만난 나는 첫 걸음마를 떼고 걷기 시작한 아이가 넘어져도 비난 받지 않고 발아래 돌부리가 있음을 인정받는 것처럼,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걷기 위한 과정이라고 지지를 받는 것처럼, 나의 경험이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피해경험을 나눌 수 있는 용기를 얻다
 
사라져버려야 할 나의 시간들이 그대로 존재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은, 비록 폭력의 피해로 인하여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나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인간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경험을 이해 받고 상담을 받으면서, 상담선생님이 권해준 여성주의 서적을 읽으면서, 나는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을 만들어 갔다.
 
2008년 상담을 받고 그 후 3년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상담원으로 1백여 명의 내담자를 만났다. 4백 시간의 상담을 했고, 두 번의 재판 과정을 지원하는 동안 나는 여성들과 자매애를 나누고 여성주의를 나누었다.
 
내담자들과 여성주의 서적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들의 경험을 ‘성차별’ 문제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내담자들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여성주의보다 약자에 대한 폭력의 원인과 해결을 제시해주는 사상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여성들을 만나 여성주의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평등이 무엇인지 경험했고 자신의 피해를 재해석하는 능력을 알게 되었으며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밟았다.
 
여성주의를 접하고, 나의 피해 경험을 나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하게 됨으로써 내가 느낀 무력감과 피해의식을 사회적 맥락에서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잘못이 아님을 깨닫고, 비로소 나를 용서할 수 있었다. 성적인 피해가 나의 잘못된 순결의식과 연결된 것임을 알게 되고, 성폭력이 ‘순결을 더럽힌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내가 느꼈던 수치심과 죄책감은 가해자의 몫이며, 내가 살아내기 위해 했던 방어기제들 –과음, 폭식, 그리고 자해와 성판매-을 인정하고 이제는 안정적인 방법으로 나를 지켜내기 위해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무엇보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이 가지고 온 후유증으로 인해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나의 시간들이 ‘실패’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고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경험들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기록해내기 시작하면서, 오랜 기간 나를 괴롭혔던 섭식장애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야 나의 피해경험을 사람들과 나눌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페미니즘이 ‘성폭력 피해를 해석하는 가장 올바른 가치관과 치유에 이르게 하는 사상과 실천’이기에, 나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다른 생존자들에게 페미니즘으로 손을 내미는 행동이다.
 
더 많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페미니즘을 만나고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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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6/15 [20:38]  최종편집: ⓒ 일다
 
소림사 13/06/16 [20:12] 수정 삭제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악랄하게 작동하는지. 여성주의만이 그 틀을 깰 수 있다는 생각. 여성은 여성주의와 제대로 만날 때, 철학이든 뭐든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여성이 있어 인간을 낳았고 그로 인해 철학이든 뭐든 생겨나게 된 것이니. 논리적 정합성에 맞음. 머리가 시원하게 됨.
발칙한양 13/06/16 [21:59] 수정 삭제  
  너울 님, 너울 님의 글에는 울림과 진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밥 먹는 것조차 저렇게 수많은 연습의 결과라는 생각이 스친다. 밥을 먹기 위해 수백 번 숟가락을 쥐어보고, 그 수만큼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그보다 더 많이 밥알을 흘려보고... 오랜 시간이 지나 아이는 빈 그릇을 탁자를 향해 흔들며 자신의 성공에 고무된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거짓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백 번의 연습을 통해, 걷고 말하고 밥 먹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말이 전달되지 못하고, 흘리는 음식이 더 많지만, 비난을 받거나 실패라 이름 붙지 않은 경험들이다. 가족을 통해 매일매일 관계 맺는 법을 연습하고, 사회인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배워간다." 특히 이 부분을 읽을 때 가슴이 울컥했어요. 저 또한 제 상처를 직면하고 다른 생존자와 만나며 상담공부를 하면서... 언젠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는 것을 깨닳았을 때 더 괜찮아진 경험들을 하면서... 뭐라고 정리가 잘 안 되네요. 좋은 글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갱개 13/06/18 [11:36] 수정 삭제  
  너울님 글 너무 좋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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