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의 전통 가옥, 무엇이 있을까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5)

정인진 | 기사입력 2013/06/25 [00:23]

브르타뉴의 전통 가옥, 무엇이 있을까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5)

정인진 | 입력 : 2013/06/25 [00:23]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브르타뉴의 집으로 가기 위해, 파리 샤를드골공항(Charles de Gaulle Airport)에서 렌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조금 가다보면 차창 밖으로 빨간 기와집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풍경이 달라지는 건 ‘르망’(Le Ment)을 지나면서다. 르망에 다다르면, 빨간 기와지붕과 아르두와즈(ardoise)라 불리는 검은색 돌판 지붕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그러다 어느 새 온통 검은 돌판 지붕으로 마을 모습이 바뀌면, 브르타뉴 지방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조금만 가면 집이다.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
아르두와즈' 지붕 

▲ 못을 이용해 엮은 아르두와즈 지붕. 지붕의 낡은 버팀목 때문에 돌편을 못으로 어떻게 고정시켰는지 알게 된 건 행운이다. (Vitre에서)     © 정인진
 
이 검은 돌판 지붕만큼 브르타뉴 지방을 잘 표현하는 것이 있을까? 빨간 벽돌집이 북부 프랑스를, 붉은 기와에 아이보리 색으로 벽을 칠한 집들이 남부 프랑스를 대표한다면,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건 아마도 이 아르두와즈 지붕일 것 같다.

 
아르두와즈는 열과 압력에 의해 형성된 돌로, 편암의 일종이다. 여느 편암처럼 얇게 쪼개지는데다가 육중하고 강한 성질 덕분에 오래 전부터 지붕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아르두와즈를 사각형이나 비늘 모양의 얇은 판으로 쪼개 지붕을 엮는다. 판의 두께는 3~9mm, 또는 20~40mm 로 다양하다. 색깔은 검정색, 회색, 청회색 등 검은 빛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짙은 붉은 색이나 초록색을 띄는 것도 있다고 한다.
 
지붕을 엮기 위해서는 옛날에는 못으로 고정했고, 19세기 말부터는 갈고리를 이용해 고정시켰다. 이러한 고정방법 때문에 아르두와즈 지붕을 고치기는 쉽지가 않다. 아르두와즈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돌판들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를 함께 바꿔야 한다. 게다가 값도 비싸서 현대에 와서는 옛날보다 덜 사용하는 편이지만, 브르타뉴에서만큼은 여전히 아르두와즈로 지붕을 엮는다. 

▲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아르두와즈 돌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Copain de la Bretagne 중에서 Milan 2001.    
브르타뉴 외에 맨에루와르(Maine-et-Loire), 아르덴느(Ardennes)와 피레네 고산지역에서도 지붕재료로 아르두와즈를 사용한다. 이 지역들은 모두 아르두와즈가 생산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들을 포함해, 프랑스 전역에서 아르두와즈가 생산되는 곳은 약 10개 지역이 있는데, 이중 세 지역이 브르타뉴에 있다. 브르타뉴의 네 지역 중, 일에빌렌느를 제외한 모르비앙, 코트다모르, 피니스테르, 이 세 지역에서 모두 아르두와즈가 생산된다.

 
옛날에 아르두와즈 돌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리 사이에 돌을 끼고 정으로 돌판을 쪼갰다고 한다. 과거의 돌판 쪼개는 방법을 보여주는 그림은 브르타뉴를 소개하는 책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하도 불편해보여 볼 때마다 얼마나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요즘은 생산과정이 기계화 되어, 과거 부자들의 대저택에나 사용되었던 아르두와즈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건축 재료가 되었다. 그러나 서민들까지 아르두와즈 지붕을 갖게 된 건 오래된 일은 아니다. 메밀대나 늪지의 갈대 같은 건초로 엮었던 서민들 가옥의 지붕이 아르두와즈로 대치되기 시작한 건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오늘날, 브르타뉴에서는 큰 공공건물이나 소규모 개인주택 가릴 것 없이 이 돌판으로 기와를 잇는다. 창고나 우체통 위까지 아르두와즈로 지붕을 얹은 경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르두와즈는 건축 재료만이 아니라 손 칠판으로도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한편 요즘은 접시로도 인기가 많다. 슈퍼마켓에서는 아르두와즈로 만든 접시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서민들의 집 벽을 장식한 붉은 편암
 
브르타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르두와즈 돌판 지붕은 프랑스의 유명한 궁전이나 고성을 소개하는 책에서 여러 차례 보았던 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르두와즈보다 더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건 건물의 벽돌 재료로 쓰인 ‘붉은 편암’(schiste-rouge)이었다. 적갈색 빛을 띠는 이 돌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돌도 아르두와즈처럼 편으로 쪼개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기와로 쓰지는 않고 건물과 담장의 벽돌로 주로 사용한다. 특히 일에빌렌느 지역에서는 이 돌로 만든 집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브르타뉴의 다른 대부분 지역에서는 벽돌 재료로 화강암을 사용하는데, 일에빌렌느 지역에는 이 붉은 편암으로 지은 집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옛날에 건설된 것들로 최근 지은 건물에서 보기는 힘들다. 이 편암은 주로 서민들의 집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클뢰네(Cleunay)라는 마을에도 이 붉은 편암으로 지어진 전통적인 가옥들이 많다. 옛날에는 늪지와 채소밭뿐이었다는 클뢰네는 마을 중앙에 전통적인 단독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중심지를 벗어난 곳에는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같은 구조와 모양을 한 주택 단지들과 아파트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클뢰네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건 순전히 붉은 편암을 벽돌로 쌓은 이 전통가옥들 때문이었다. 넓적하게 자른 붉은 돌이 촘촘히 박힌 건물에서 나는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 붉은 편암으로 지은 이런 집들을 주변에서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인진
게다가 알록달록 다양한 꽃들과 과실수로 꾸며진 넓은 뜰을 갖춘 낮은 담장의 단독주택들은 이웃들과 다정하게 벽을 맞대며 펼쳐져 있다. 이런 가옥배치는 브르타뉴의 전통방식으로,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 속에서 서로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나누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전통방식이 그대로 유지되어, 브르타뉴 지방의 집들은 이렇게 이웃들과 서로서로 의지하며 서있을 때가 많다. 이런 마을 풍경이 너무 예뻐서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는데, 그 바람이 얼마나 컸던지 힘들게 발견한 집이 우연히도 이 동네에 있는 아파트였다.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길에서 아주 작은 붉은 편암조각이라도 눈에 띄면,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귀하게 생각하며 주워왔다. 나는 이 돌이 요즘은 엄청 구하기 힘든 것인 줄 알았다. 남의 집 낡은 담장 아래 부서져 뒹굴고 있는 작은 조각들을 몇 개 주워와 수저받침대로 쓰다가 손바닥만 한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물론 그것도 주워 와서 문진으로 쓰기도 하고, 그저 책꽂이 위에 올려놓고 장식물로 삼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붉은 편암은 이 지역에 너무 흔한 돌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 돌들로 새로 만든 도로의 가로수를 꾸몄고, 어린이 놀이터의 빗물 길에 채워 넣기도 했다. 또 집 앞에 있는 넓은 시민운동장의 트랙은 잘게 부순 이 돌가루로 만들어졌다. 브르타뉴의 일에빌렌느 지역에서는 이렇듯 도처에서 이 붉은 편암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편암은 대체로 짙은 붉은 색을 띄지만, 브르셀리앙드 숲가의 돌은 짙은 자줏빛이고, 보엘의 빌렌느계곡에서는 보랏빛을 띠는 편암 절벽들도 볼 수 있다.
 
헛간이 딸린 방 하나, 단순한 구조의 전통농가
 
브르타뉴의 집들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나쁜 날씨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기능은 공통된 특징이다. 예를 들어, 바람과 추위를 막기 위해, 옛날 집들은 남쪽으로 향한 벽면에 아주 작은 구멍을 하나 뚫었을 뿐이라고 한다. 물론, 오늘날 브르타뉴의 현대화된 집들은 여느 지방의 가옥과 다름없이, 전망을 즐기고 빛을 들어오게 하기 위해 커다란 유리창을 달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브르타뉴의 옛날 농가들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저 헛간이 딸린 긴 경사지붕의 1층 건물로, 건물 안 한쪽에서는 가축들을 키우고 다른 쪽 방에서는 사람들이 살았다. 집의 가장 중앙에는 요리를 하거나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는 커다란 벽난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가족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상황에서 혼잡함을 피하면서도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이 ‘리 클로’(lit clos) 라고 불리는 ‘닫힌 침대’였다. ‘리 클로’는 옛날에 브르타뉴 사람들이 잘 때 사용했던 벽장처럼 생긴 침대를 일컫는다. 리 클로’는 꼭 찬장처럼 미닫이문이 달린 것도 있고, 반 정도는 나무로 막았지만 중앙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등,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띤다.
 
브르타뉴의 오래된 전통 농가들은 많이 사라져 찾기 힘든데, 운 좋게도 우리 동네에는 이런 집이 아직 남아있다. 게다가 이 집은 옛날 렌 근방에서 볼 수 있다는 자갈, 지푸라기 등을 섞어 이긴 진흙(pise)으로 지은 집이다. 우리 집에서 몇 블록 지난 곳에 진흙으로 지은 농가가 있다. 그러나 이 농가는 너무 낡아, 허물어지기 직전이라 곳곳에 버팀목을 세워놓았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집은 곧 헐릴지도 모른다.
 
▲ 우리 동네에 있는 진흙으로 지은 낡은 농가, 이 집의 담장은 붉은 편암으로 만들었다.     © 정인진
 
하나둘씩 사라지는 오래된 집들
 
요즘 우리 동네의 단독주택들은 이 농가보다 훨씬 현대적인 건축물임에도 꾸준히 헐리거나 리모델링되고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1년 사이에도 여러 채 허물어지는 걸 보아왔다. 그나마 비슷한 단독가옥으로 지으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더 많이는 사라진 자리에 소규모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에도 옆 골목에서는 오래된 화강암 돌집이 부수어졌다. 버스를 타기 위해 그곳을 지나며, ‘설마 저렇게 튼튼하고 예쁜 집을 다 부술까? 일부를 허물고 보충하는 식으로 집을 수리하겠지’ 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며칠 뒤 다시 골목을 지날 때 그 집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옆집 아주머니는 흙먼지가 자욱이 쌓인 앞마당을 묵묵히 쓸고 계셨다. 동네에 집이 또 한 채 사라졌다.
 
건물로 가려져 길가에서 볼 수 없었던 그 집의 뜰은 정말 넓었다. 저렇게 넓은 뜰을 가진 집터라면, 아파트가 한 채 자리 잡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어쩜 그곳에도 아파트가 지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서 이런 식으로 단독 가옥을 허물고 지은 작은 규모의 아파트들이 여러 채 있다. 지금도 골목 끝에는 그렇게 지은 아파트가 완공되어 입주를 시작했고, 우리 집 바로 옆에도 가옥을 허물고 뭔가를 지으려고 대기하고 있는 공터가 있다. 이처럼 프랑스도 한국처럼 땅이 점점 건축물로 덮여가고 있는 추세다.
 
물론, 춥고 낡은 전통 가옥을 없애고 더 쾌적하고 현대적인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게다가 집 한 채를 허물고 여러 가구가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짓는다면,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이익이 있을 터였다. 이를 무시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니, 나의 안타까움이란 것도 그저 여행자의 마음일 뿐일지 모르겠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을의 낡은 농가 담장 위에 자라고 있는 다육식물을 더 볼 수 있도록 이런 변화들이 천천히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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