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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동네 도서관’을 누리는 행복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6)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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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클뢰네 시립도서관’을 소개합니다
 
교사를 동반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교사가 큰 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틈에서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깔깔거리기도 하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도서관은 다시 평소의 평안함을 되찾았다.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에 클뢰네 시립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에서는 어린이와 어른들을 위한 도서와 신문, 잡지들을 볼 수 있으며 영화 DVD나 음악 CD까지 구비되어 있다. 내가 집에서 영화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건 바로 이 도서관 덕분이다. 이 도서관에서는 자녀들을 데리고 와 동화책을 빌려가는 부모들도 볼 수 있지만, 잠시 들려 잡지나 신문을 읽는 노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 맑거나 상관없이 내가 이곳을 자주 찾을 수 있는 건, 집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 클뢰네 시립 도서관 1층, 청소년들의 모습     © 정인진

옛날부터 나는 도서관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지루하면 도서관에 있는 책이나 잡지를 뒤적이기도 하고, 그것도 싫증이 나면 시청각실에서 무료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센터에서 동양화를 배우기도 했다. 시립 도서관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그저 파 몇 잎과 고춧가루만 들어간 우동이 그 때는 왜 그리 맛있었는지……. 그것을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이런 시립도서관이 동네 곳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시립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는 십 여분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몇 십분은 걸어야 했다. 도서관은 가볍게 나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도서관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늘 바랐는데, 그 꿈이 이루어진 건 한국의 지금 집에 살면서부터다.
 
한국의 우리 집 가까이에도 이렇게 시립 도서관이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옛날에 비해 마을마다 도서관이 좀 더 잘 갖추어져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이렇게 도서관 가까이 살 수 있는 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도서관 근처에 살게 된 걸 내 몇 안 되는 행운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곳 브르타뉴에서도 그 꿈이 이루어졌다.
 
동네 도서관에 어린이들이 가득한 이유는…
 
▲ 클뢰네 시립 도서관에서는 매일 어린이를 위한 문화교실이 열린다.     © 정인진

이곳, 클뢰네 시립도서관은 오후부터 문을 열 때가 많다. 또 오전에 개관을 하더라도 점심에는 두 시간씩 문을 닫기 때문에 주로 오후에 가는 편이다. 점심을 먹고 산책 삼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다가 돌아올 때는 관심 있는 책이나 영화 DVD등을 빌려와 보기도 하는 등, 도서관을 잘 이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자리’로 정한 키 큰 잣나무가 보이는 창 앞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참 즐겁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바로 옆 만화책 코너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어린이들을 잠깐씩 바라보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붐비는 곳은 늘 만화책 코너인 걸 보면, 한국이나 프랑스나 아이들은 역시 만화책을 좋아한다.
 
이 도서관에서 내가 특히 부럽게 생각하는 건 도서관이 지역 아동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도서열람실과 몇 개의 그룹 활동실로 이루어진 2층과 달리, 1층은 넓은 홀 하나로 되어 있다. 이 홀에는 오후마다 청소년들로 넘친다. 그들은 홀 중앙에 있는 탁구대에서 탁구를 치기도 하고, 주변에 놓인 소파에 둘러앉아, 삼삼오오 짝지어 왁자하니 떠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을 제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수요일 오후에는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이 음악회가 열리는 날은 위층까지 전자 악기들과 드럼 소리로 엄청 시끄럽지만, 자칫 음침한 곳으로 숨을 수도 있는 청소년들의 숨을 트이게 해준다고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
 
한편, 2층에 위치한 작은 그룹 방에서는 매일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교실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미술과 음악, 무용 같은 취미활동들을 한다. 보통 도서관은 오후에 문을 열지만, 학교 수업이 없는 수요일이나 토요일은 오전에도 문을 열어, 직장인 부모를 둔 아이들을 돌봐준다.
 
이 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한 전시나 행사가 펼쳐지기도 한다. 유명 그림동화 작가의 원화 전시회나 시 낭송회가 열린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교사가 학생들을 데리고 온다. 얼마 전 한 그림동화작가의 원화 전시회가 열렸을 때도 이곳에서 수업이 펼쳐지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작가를 소개하고 그의 동화책을 한 권 읽어 주고, 동화의 내용과 관련해 질문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또 특별한 전시가 없는 날에도 교사들은 가끔 아이들을 이끌고 와서 동화책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곤 한다. 오늘도 이런 수업이 있었다.
 
▲ 동네 도서관으로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 동화책으로 수업을 하는 풍경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 정인진

문턱 없는 문화공간 ‘샹 리브르’ 렌메트로폴 도서관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가는 곳이 동네 시립도서관이라면, 시립도서관이 문을 닫는 목요일과 일요일에는 렌 시내의 ‘샹 리브르’(Les champs Libres)라는 문화공간에 있는 ‘렌메트로폴’ 도서관을 간다.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까지 갈아타가며 복잡하게 가야 하지만, 지름길을 이용하면 30분이면 걸어갈 수 있다. 전통적인 브르타뉴식 가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을 지나, 키 큰 보리수나무들과 개암나무들이 가로수로 펼쳐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새 ‘샤를드골’ 광장에 도착한다.
 
‘샤를드골’ 광장은 ‘샹 리브르’ 건물 앞에 있는 큰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는 쉼 없이 렌 시의 주요 행사들이 벌어진다. 차 없이 사람들만 오갈 수 있는 광장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공간들’이라는 뜻의 ‘샹 리브르’는 ‘샤를드골’ 광장에만 접어들어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샹 리브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공간에 들어온 걸 실감하게 된다.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비장애인이나 장애인 모두,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었다는 것이 이들이 내세우는 ‘샹 리브르’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문턱이 없는 정문을 들어서는 것부터가 너무 쉽다. 청각, 시각, 지체 장애인들이 모두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안내판과 구체적인 장소를 말해주는 건물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신청을 하면, 안내자의 인솔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가이드를 동반해 시각장애인들이 도서관 곳곳을 오가는 것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장애인 이용자 관점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 렌메트로폴 도서관의 4층 서가. 이곳에는 시민들에게 태블릿 PC도 제공하고 있다.     © 정인진

특히, 샹 리브르 안에 있는 ‘렌메트로폴’ 도서관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와 음성서비스가 제공되는 시각장애인 전용공간이 있다. 이곳에 있는 자료들은 점자로 출력도 받을 수 있다. 이곳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음성으로 제공되는 잡지와 전자자료, 점자책이 7천여 편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또 매달 하루는 <캄캄한 방에서 보고 듣는다>(Ecouter-Voir en Chambre noire>라는, 영화를 소리로만 상영하는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한편,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뀔띠흐 수흐드’(Culture sourd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여기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대사가 적힌 DVD와 잡지, 책 등을 갖추어 놓았다. 특히, 음성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신문과 잡지 등, 각종 출판물들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청각장애인을 위해 ‘샹 리브르’에서 전시되는 모든 전시에는 간단한 텍스트자료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렌메트로폴’ 도서관을 자주 오가며, 내가 가장 감동하는 건 바로 책꽂이들이다. 책꽂이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쉽게 자료를 빼고 꽂을 수 있도록 모두 낮게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그 간격도 너무 넓어 휠체어는 물론, 침대차조차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하루는 도서관 안에서 전동 침대차를 스스로 운전하며 다니는 중증 장애인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자유롭게 혼자 서가 사이를 오가며,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는 한국의 우리 동네 시립 도서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우리 동네 시립 도서관은 우선 책꽂이가 너무 높아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은 가장 높은 데에 꽂힌 책을 뽑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책꽂이 간격은 너무 좁아 휠체어가 드나들 엄두를 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물론, 부탁을 한다면 사서들이 친절하게 책을 찾아다 주겠지만,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하는 건 그들을 대신해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우리 동네 시립 도서관에는 장애인을 위한 승강기는 없고, 휠체어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리프트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시설로는 장애인들이 2층에 있는 신문과 잡지들을 볼 수 있는 정기간행물실을 자유롭게 드나들기는 무척 어려워 보인다. 이 도서관을 드나드는 동안 나는 리프트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 그전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도서관에서 만난 적조차 없다.
 
우리 시대, 도서관의 의미는 무엇일까
 
▲ 따보흐-뤼시앵 로즈 시립도서관 1층. 이곳에서 영화가 상영된다.     © 정인진

‘샹 리브르’ 안에는 도서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르타뉴 박물관’(Musée de la bretagne)과 ‘과학관’(Espace de la science)이 도서관과 함께 자리해 있다. 장애인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특히, 브르타뉴 박물관의 상설전시와 관련해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상자료와 특별히 제작된 책도 갖춰놓고 있다.
 
이곳 ‘샹 리브르’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회와 행사들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또 영화를 상영하고 심포지엄을 할 수 있는 행사장도 갖추고 있다. 이 행사장에서는 매주 수요일에는 음악회가 열리고, 주말에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들이 시민들에게 무료로 상영되고 있다. 그러니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들이지 않고도 교양을 높일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물론, 이런 문화행사들이 ‘샹 리브르’ 에서만 전개되는 건 아니다. 동네마다 있는 시립도서관에서도 학술강연과 전시회, 영화상영 등의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프랑스에서 도서관은 더 이상 책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닌 것 같다. 지역주민의 교양을 높을 수 있게 도와주는 문화공간이기도 하고, 어린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젊음을 분출할 수 있도록 문화와 휴식의 공간이 되어주는 곳도 도서관이다.
 
떠나온 곳에서 우리와 너무 비슷한 모습을 볼 때도, 혹은 우리와 너무 다른 모습을 발견 할 때도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늘 마음이 아프다. 한국의 우리 도서관들도 이런 장소가 되길 바라는 게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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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7/03 [13:22]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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