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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안에서 깨달은 ‘페미니즘의 성찰’
<나의 페미니즘> 양심적 병역거부자 길수 (2)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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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창간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그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하여 대안담론을 만드는 기획으로,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군대에 가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중학교 때 학교폭력에 대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우리 학년은 50명이었고, 남학생은 그 절반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몇몇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돈을 빼앗고 괴롭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누가 괴롭힘을 당하는지를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보복이 두려워서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았고, 친구가 맞고 있는 곳을 외면하며 지나갔다. 학교 공부를 잘 해서 나를 크게 건드리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마음은 요동쳤지만 아무 일 없이 중학교를 졸업했다.
 
나의 잘못이 그리 큰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했지만, 내가 내 앞의 잘못을 보면서 괴로워하면서도 겁을 내고 무서워하고 물러섰다는 것은 여전히 나의 고민이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또 주저하며 마음 아파하면서도, 적당히 외면하며 살아남지 않을까. 난 그럴 수 있는 학벌 권력이 있고, 남성이라는 권력이 있고, 자식을 옥죄지 않는 부모가 있고, 고통에 무지한 건강한 몸도 있으니까 말이다.
 
군대에 가지 않기로 결심한 것도, 이 이유가 가장 절실했다. 다른 사람의 눈치는 잘 안 보지만 권력자의 눈치는 잘 보고,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니라고 말은 하지 않고, 맞아서 아픈 게 너무 무서워서 미리 움츠려드는 모습을, 군대에서 다시, 그리고 자주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계급사회고, 공공연히 폭력조차도 허락되는 군대 안에서 남을 비하하는 말, 여성을 몸으로 평가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내가 내 생각을 얘기할 수 있을까.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 자신이 다치지 않기 위해, 적당한 선을 그어서 맞장구치는 말과 행동이 결국 나의 판단선을 점점 이상한 쪽으로 이동시키지는 않을까. 그래서 가지 않는 게 훨씬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병역거부를 해서 교도소에 다녀온 지금도, 나는 군대에 가지 않기로 한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교도소에서 만난 ‘평범한’ 남성들
 
한편으로 교도소라는 공간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과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교도소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보통 남성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정말 어디서든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성매매 포주라고 해서 더 악독한 것도 아니었고, 강간범이라고 무언가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받았던 충격을 보건대 그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그들에게서 사회가 흔히 말하는 범죄자에게 있을 법한 특성, 이를테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강하다든가 자기 이익만 차리려고 한다든가 화를 못 참는다던가 하는 점들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범죄자의 일반적 특성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시대의 ‘평범한’ 남성들 대개가 여성에 대해서는 아주 저급한 인식을 갖고 있고, 성매매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매우 왜곡된(성폭력적인) 성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 남성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하고 세상에 대해 절망도 했다. 때론 저 남성들과 같은 생물학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나의 페미니즘은 어떤 진정성을 가진 것일까 하는 회의조차 들었다.
 
그들과 대화를 할 때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일관적으로 설명을 제시할 수 있었다. 부끄럽지도 않았고, 상대의 거부반응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상대방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실에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강제성이 없어 보이는 성매매 여성의 삶을 포주에게서 듣게 되면 ‘자발성/강제성’의 해묵은 이분법이 내 머릿속에 그대로 떠올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몸도 상품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그들의 말을 받아칠 언어도 없었다. 가부장제, 노동의 소외, 착취 같은 추상적 개념들만 붕붕 떠올랐다.
 
내 안의 다양한 욕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교도소 안에서 수년 만에 TV를 애청하게 되었는데,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나의 방식에 대해서도 혼란을 경험했다.
 
그전에는 여성 아이돌 또한 성상품 산업의 하나로 여겨서 아예 보지 않았다. 아이돌에 대해 잘 몰랐고, 그런고로 고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음악을 들을 기회가 잘 없는 교도소에서 가요 프로그램을 보게 되니 어떤 노래는 맘에 들어서 따라 부르고 춤도 추게 되었다. 토크쇼 등에서 아이돌, 여배우의 얘기도 듣다 보면 그들이 참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군대 갔다 오면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었다. 아이돌의 노래와 춤, 연기가 전문가들에게 의해 만들어지고 그게 이렇게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데 그걸 거부만 했던 나의 선택이 고루한 것으로 느껴졌다. 이 시대의 유행을 즐기면서 비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세련된 선택이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흔들리는 모습은, 페미니즘을 마치 처음 접한 사람 같아 혼란스러웠다. 여성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 성매매와 성폭력에 대한 입장, 대중문화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은 페미니즘 입문 수년 차인 사람은 벌써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자괴감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그러나 사실은,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옳은 입장을 찾아 그것을 되뇌는 방식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제라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욕망, 생각들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출소 후, 좀 더 솔직한 모습으로
 
교도소 바깥 사회에서는 다양한 경험과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지내면서 그 사람들이 가진 지혜와 경험을 흡수해 비교적 쉽게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교도소에서 외부와 떨어져 평범한 남성들과 지내면 성차별적인 생각과 시선들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벽에 붙은 잡지의 노출 사진과 사람들의 음담패설이 불편하다고 그걸 슬쩍 받아들이지는 않았고, TV를 볼 때도 옳고 그름을 배제한 채 즐기지만은 않았다. 고민하고 있거나 혹은 고민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에서, 그래도 페미니즘이 나를 이정도 성찰은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만족감이 생겼다. 교도소 생활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올해 봄 출소한 후 두 달 정도가 흘렀다. 교도소 밖에만 나가면 모든 걸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많이 게으르고 일을 미루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관계에도 서툴다. 그래도 딱 한 가지, 교도소에 가기 전보다 조금은 더 ‘솔직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한 가지 나아진 점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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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7/11 [08:44]  최종편집: ⓒ 일다
 
13/07/26 [20:35] 수정 삭제  
  ^-^!
감사합니다 13/11/29 [00:29] 수정 삭제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교도소를 경험하셨는데, 이런 성찰적인 귀중한 경험을 공유할수있도록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비현실적(범죄적 망상적)관점은 군대 가기 이전에 형성된 문제라고 남성들 스스로도 인정하곤하지요.
가정에서부터 아버지와 정서적 유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그 자존감을 바탕으로 사회구조적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페미니즘을 자기화하는것만이 역시 정답인듯합니다.
남성동성애자분들이 커밍아웃을 하지않으면 사회적 소수자로 보이지않을지몰라도 드러나면 사회적 소수자이듯이, 남성페미니스트분들도 자신의 성찰적 경험을 드러냈을때 아직도 이 사회에서는 굉장히 마이너리티해지는것같습니다.
그럼에도 깨달음을 통해 자존감을 쌓아가는 사람들은 퇴보하지 않으니까요. 이땅의 많은 남성들과 소통되고 공유될수있기를, 이땅의 아이들에게 희망적 내일이 있기를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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