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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성곽도시 ‘디낭’을 찾아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8) 브르타뉴의 성곽도시들②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정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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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가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디낭, 삶과 죽음의 여신의 언덕
 
북쪽 생말로(Saint-Malo)만으로 열린 넓고 긴 랑스(Rance)강은 강가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생말로에서 배를 타고 랑스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떡갈나무 숲과 새들이 있는 아름다운 강가 마을로 널리 알려진 ‘생쉴리악’의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그 강 깊숙한 곳에 디낭(Dinan)이 있다.
 
▲ 랑스강을 통해 배를 타고 디낭 항구에 닿을 때, 멀리 계곡사이를 잇는 고가다리가 보인다.     © 정인진

디낭(Dinan)이라는 단어는 켈트어의 ‘언덕’(Dunos)과 ‘삶과 죽음의 여신’(Ahan)이 결합된 단어로, ‘삶과 죽음의 여신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이름만큼, 강에서 배를 타고 항구로 들어갈 때나 시외버스로 언덕 위의 고가다리(viaduc)를 통해 들어갈 때나, 언제나 디낭으로 들어설 때는 늘 탄성이 먼저 나온다.
 
성곽 안으로 들어서면 도시는 더 아름답다. 계곡사이를 잇는 고가 다리가 없었을 때는 내륙에서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던 곳이 디낭이다. 게다가 높고 튼튼한 돌벽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외세로부터 침입이 적어, 오늘날도 여전히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한편, 디낭은 혁명기까지 직물산업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다. 오늘날 문화재로 존재하는 시계탑(15세기), 생말로성당(15~19세기), 생소베르성당의 장식들(17~18세기)은 모두 그때 이룬 부로,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기계화된 대량생산에 밀려, 브르타뉴의 다른 도시들처럼 디낭의 직물산업도 실패하고 만다.
 
경제적으로 피폐해 있던 디낭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1852년, 계곡을 잇는 고가다리와 주변에 신도시들이 건설되면서부터다. 특히 1879년, 성벽 밖에 기차역이 건설되면서 브르타뉴의 발전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또 매년 5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며, 2년마다 열리는 ‘성벽축제’(Fete des Remparts)는 매우 유명하다.
 
수백 년간 건재해온 요새의 성벽 위에서
 
디낭은 9세기에 세워진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도시가 건설될 당시 세워진 나무로 된 성곽은 1065년 기이욤(Guillaume)에 의해 정복당했을 때 불태워진다. 이후, 1283년 브르타뉴 공작 령이 되면서 디낭에 성벽공사가 시작된다.
 
이렇게 돌 벽으로 둘러쳐진 디낭은 군사적으로 높은 방어력을 갖춘 요새로서 중요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디낭은 결국 포위당하긴 했지만, 뛰어난 방어력 덕분에 브르타뉴의 지배자들 간에 벌어진 공작계승전쟁과 영국의 침략에 완강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이 성벽은 19세기까지 끊임없이 보강되어, 현재 길이가 2,650m에 이른다.
 
디낭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성벽 위에서다. ‘영국정원’(Jardain Anglais)에서 성벽에 딱 붙어 목을 길게 빼면, 생-카트린느 탑(13세기)과 성발치 아래 자리한 항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생-카트린느 탑 옆에 있는 계단을 타고 성벽위로 올라가 제르쥐알 탑(13~15세기)으로 가야 한다.
 
▲ ‘영국정원’의 성벽에 붙어서 바라본 항구 풍경, 왼쪽으로 ‘생-카트린느 탑’이 보인다.     © 정인진

이 탑 위에서는 항구로 향하는 제르쥐알 길이 꼬불꼬불 가파르게 내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길 위로 끊임없이 오가는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길에 사람들이 왜 저렇게 많지?’ 궁금해지면서 재빨리 내려가봐야겠다는 마음이 걸음을 재촉한다. 제르쥐알 길은 길 자체도 아름답지만, 길 위에 있는 옛날 집들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상점의 장식들이 더 그 길을 돋보이게 한다.
 
또 높고 뾰족한 기념비적인 건물들과 아르드와즈 돌판 지붕 집들이 조화를 이루며, 비좁게 들어앉아 있는 디낭 성내가 훤히 보이는 곳도 바로 제르쥐알 탑 위에서다. 무엇보다 성벽 위에서는 골목에서 볼 수 없는 꽃과 나무로 잘 정돈된 개인주택들의 뒤뜰을 보며 걸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성곽 위에서 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건 길지는 않다. 성곽 위를 걷는 건 생말로문(13~15세기)까지가 전부다. 구베흐네흐탑(15세기)을 지나면 생말로문으로 내려와야 한다.
 
군데군데 훼손된 성벽과 탑들 위를 걷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성곽을 둘러보는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생말로문부터 생루이문(17세기)까지는 성 밖에서 성벽을 감상할 수 있다.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성벽은 수백 년간 여전히 그 위용을 드러내며 건재하다.
 
그 사이에 여러 개의 탑과 성문, 그리고 ‘디낭성’이라고 불리는 망루(Le Donjon)가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망루는 브르타뉴의 공작 계승전쟁에서 디낭이 반대한 장 4세(Jean IV)가 실권을 잡게 되자, 장 4세가 디낭 주민의 환심을 얻기 위해 세워준 것이다. 디낭 성곽에는 이 유명한 망루를 포함해, 10개의 탑과 4개의 문이 보존되어 있다.
 
▲ 옛날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제르쥐알 길’     © 정인진

전통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콜롱바주’와 ‘앙코르벨망’ 집
 
성벽으로 둘러싸인 디낭의 성 안에는 천년의 역사를 잘 간직한 문화재들로 가득하다. 이것들 가운데,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나무 대들보를 가진 ‘콜롱바주 집’(maison a colombage)들이었다.
 
‘콜롱바주’는 ‘겉으로 드러난 목재골조’를 일컫는 말로, 기둥, 대들보 따위의 목재를 외부에 노출시키고 그 틈새를 석고나 흙, 벽돌 같은 것으로 메우는 건축방식이다. 이 콜롱바주 집은 중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9세기까지 존재했다. 특히, 도끼날 자국이 그대로 살아있는 옛날 나무기둥의 콜롱바주 집들이 브르타뉴 지방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디낭이다.
 
콜롱바주 집은 나무골조에 높고 낮은 대들보, 기둥, 헛간, 샛기둥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 골격과 격자틀 사이사이는 가공하지 않은 벽돌로 메우기도 하지만, 보통은 짚을 섞은 벽토나  회반죽 같은 가벼운 재료로 메웠다. 지붕의 기와는 악천후로부터 벽을 보호하고 비둘기들이 앉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약간 앞으로 내는 것이 보통이다.
 
▲ 디낭에는 돌출부가 돋보이는 이런 ‘앙코르벨망’ 집들이 많다.  ©정인진
콜롱바주 집의 초기 형태는 긴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이 방식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이 집은 기둥들이 혼자 서 있고 맨 땅위에 건설되는 만큼, 나무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쉽게 썩었다. 게다가 도시에서 긴 목재를 구하는 것도, 또 꾸불꾸불하고 좁은 중세 도시의 골목길로 긴 목재를 들여오는 것도 힘들어졌다.

 
결국 짧은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는 기술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런 방식의 집을 ‘메종 아 앙코르벨망’(maison a encorbellement)이라고 불렀다. ‘앙코르벨망’은 ‘돌출부’를 의미하는 단어로, ‘메종 아 앙코르벨망’은 ‘돌출부를 가진 집’이라는 뜻이다. 디낭에는 바로 이 ‘앙코르벨망’ 집들이 많다.
 
앙코르벨망 집은 1층을 만들고 그 위에 굵은 대들보들을 줄지어놓은 후 2층을 얹는다. 이 때, 대들보들을 앞으로 조금 빼내면 상부를 돌출시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아래층보다 튀어나온 위층을 가진 집을 짓는다. 보통 2~3층의 건물이 많은데, 어떤 것은 4~5층에 달하는 것도 있다.
 
‘앙코르벨망’ 방식은 아래층보다 조금 넓은 공간의 위층을 만들 수 있고, 특히 위층이 튀어나온 덕분에 아래층은 빗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약간씩 변형되기는 했지만, 브르타뉴에서 19세기까지 지속되어온 콜롱바주 건축방식은 바로 이 앙코르벨망 집들이었다.
 
중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고풍스러운 골목길
 
앙코르벨망 집은 주로 14세기 이후부터 볼 수 있는데, 특히, 디낭에는 15~16세기에 지어진 것들이 많다. 이렇게 오래된 집들은 브르타뉴에서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알록달록 화려한 색깔로 채색한 다른 도시와 달리, 디낭에는 갈색으로 칠한 나무기둥의 콜롱바주집들이 많아, 매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메종 아 뽀르슈(maison a porche), ‘현관을 가진’ 콜롱바주 집들     © 정인진

한편, 디낭에는 ‘메종 아 뽀르슈’(maison a porche)라고 부르는 16세기에 지은 콜롱바주 집들도 많다. ‘현관을 가진 집’이라는 뜻의 이 집들은 1층에 나무기둥으로 떠받친 현관이 있고 현관 깊숙이 1층이 있다. 2층은 주로 현관 위에 얹힌다.
 
옛날 ‘현관을 가진 집’의 1층은 주로 상점이나 작업장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오늘날도 이런 집의 1층은 상점들이 많이 자리해 있다. 이 현관 앞으로는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다. 처음 디낭을 방문했을 때,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잠시 피하며 서 있었던 곳도 바로 이 집들 아래서였다. 그러고 보면, 비가 자주 오는 기후 속에서 ‘현관을 가진 집’들은 비를 피하면서 골목을 걸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브르타뉴 지역을 방문하다보면, 너무 아름다워 감탄만 하다가 돌아오게 되는 도시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 가운데 으뜸이 디낭이 아닌가 싶다. 다른 곳과 달리, 나는 디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디낭은 도시 안으로 들어설 때도 그렇지만, 떠날 때도 뒤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한다. 세 번째 디낭을 다녀온 날도 그랬다. 내 인생에 브르타뉴에 올 기회가 또 있다면, 디낭은 꼭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고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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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7/14 [23:48]  최종편집: ⓒ 일다
 
pure 13/07/17 [09:49] 수정 삭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름조차 낯선 브르타뉴 도시들에 대한 글들을 흥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눈앞에 한폭의 풍경이 펼쳐지고 어느새 저도 함께 그 오래된 도시들의 골목골목을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멀리서 도시풍경을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자연과 역사와 인간의 삶과 죽음이 뒤섞여 만들어진 흔적들이 고스란히 우리 모습과 닮아 있어 낯선 이국의 고성에서 현재의 나를 성찰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브르타뉴 도시에서 날라오는 감동적인 편지와 사진을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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