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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밖에서도 나의 페미니즘은 계속된다
<나의 페미니즘> 20대 문화 칼럼니스트 블럭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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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창간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그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하여 대안담론을 만드는 기획으로,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왼손잡이, 그저 조금 더 반항했던 아이
 
아직 30년도 채 살지 않았지만 나의 생에 대한 기록은 곧 반항의 기록이다. 초등학교 때는 왼손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실기시험 점수를 받지 못했고, 심지어는 하루 종일 왼손이 묶여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왼손잡이이다. 그때 나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몰랐다. 왼손을 쓴다는 이유로 혼난 것은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를 만날 때도 나는 왼손을 쓴다는 이유로 떨어야 했다. 할아버지와 겸상을 할 때는 그렇게 혼이 나면서도 꿋꿋이 왼손으로 밥을 먹었다.
 
그게 나의 반항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  박상은의 일러스트  [학교]    © 일다 
학창 시절에는 교복을 잘 입지 않았다. 남들처럼 옷을 늘려 입고 줄여 입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내 맘대로 입었다. 처음에는 엄청 혼났지만, 나중에는 선생님들로 하여금 제재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멋을 부린 것은 아니다. 그저 교복을 매일같이 입는 것이 싫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왜 그러는 지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그저 ‘틀에 박히는 게 싫다’ 정도의 막연하고 평범한 개념으로 내 행동의 의미를 대체했다. 보통의 또래들보다 조금 더 반항했고, 그만큼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중학교 생활이 끝날 무렵, 고등학교에 가기가 너무 싫어서 혼자 열심히 대안학교를 알아봤다. 그 때가 흔히 이야기하는 ‘평범한 궤적’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결국 고등학교로 진학하였지만, 나는 대안학교를 선택한 것이 남들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좋은 부모님을 둔 덕에 집에서 그런 문제로 혼이 나지는 않았다. 다만, 사회가 나에게 주는 압박감을 더욱 강하게 느꼈을 뿐이다.
 
고등학교에서는 제식을 배우고 조회 시간에는 거수경례를 하였다. 예전에는 흔했다던 무지막지한 체벌들도 겪었다. 그런 일들은 나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였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긴장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따져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저 몸으로만 느꼈을 뿐이다.
 
군대라는 큰 시스템에서 나를 지켜내는 과정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정확하게 2010년이다. 2008년부터 군생활을 하면서 나는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것들을 느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논의하는 주제들이 그 기간에 나의 머리에 잡히기 시작했다. 국가폭력, 성범죄, 성매매, 권위주의, 성소수자 등등. 신기했던 건, 그 많은 이슈들을 머리로 삼키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가 파편으로만 접했던 것들이 조금씩 엮이는 느낌에 새로웠다.
 
군대라는 공간에서 나를 지켜내고자 노력한 것은, 그 어느 것보다 값진 경험이었다. 군대 내 자살이나 성폭행 같은 사건들, 고참들은 성매매를 권하고 간부들은 성매매를 근절하는 방식, 더불어 책임이라는 것의 무게와 물리적인 근무 시간까지… 그곳에서의 일들은 힘든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굉장히 사소한 부분들에서 내가 그 동안 사회 생활을 하며 지니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들과 마찰이 일어날 때마다, 조금씩 불편했다. 군대라는 곳이 강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 알지만, 2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그 안에서 온전한 나를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해 굉장히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또 참아내야 했다. 큰 시스템 안에서 나를 지켜내는 과정, 그리고 나를 정리하고 다져나가는 과정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큰 훈련이었다.
 
전역한 이후에야 그러한 것들을 부르는 단어가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여성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세간에 있는 책과 자료들을 열심히 읽으며 여성주의를 공부했다. 여러 사회의 사안에 대해 내 나름의 정리와 해답을 내리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생각들을 습득하며 공부하기 바빴던 시간이었다. 명동 까페 ‘마리’의 철거민 폭력 사태를 비롯하여, 이른바 ‘몸 알티’(직접 행동으로 이슈를 널리 퍼뜨린다는 의미)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에 나섰을 때이기도 하다.
 
이후 학내 여성주의 교지와 ‘차별 없는 사회를 실현하는 대학생 네트워크’ [결](지금은 ‘여성주의 행동 집단’ [결]이다)에서 활동하며, 내 안의 논의와 공부했던 내용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대학 내 여성주의를 포함하여 다양한 논쟁을 접하면서, 우리 세대의 여성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학내에서 들었던 인문학 수업들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최근까지 나는 공부하기 바빴고,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다.
 
나의 페미니즘을 사회로 이어나갈 수 있길
 
내가 페미니즘을 찾게 되고 선택하게 된 배경은 아주 간단하다. 남들이 나에게 ‘왜 그리 예민하게 구냐’고 할 때 페미니즘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들어주고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페미니즘은 나를 설명하기 좋은 단어 중 하나이다.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면 어떤 사람들은 불편한 표정부터 짓고 본다. 그들은 이 단어가 정확하게 어떤 것들을 설명하는지도 모르는 채, 판단하려 든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해 말할 때 자신의 무지를 방어 기제마냥 전면에 내세우고 공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세상 실태가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첫째이고, 그러한 목소리를 키우는 것이 둘째, 더불어 당사자의 경험과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셋째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민속학과 인류학을 전공하며 느꼈던 것이기도 한데, 여전히 지니고 있는 내 나름의 신념과 같은 것이다.
 
대학 사회 내 페미니즘, 혹은 대학 시절의 페미니즘 운동, 그리고 그것이 사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의 나’를 사회로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것이 대학 시절을 끝낼 무렵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다.
 
당시 내가 속했던 여성주의 교지와 [결]에서는 활동가의 재생산, 페미니즘 담론의 확장, 우리 세대의 구심점 찾기와 같은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 결정적으로 맞닿아 있는 고민은 여성주의 활동의 지속, 그 자체의 문제였다. 어쩌면 졸업과 동시에 나의 페미니즘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이걸 끝낸다고 끝낼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살면서 느끼는 갖가지 불편함에 그냥 수긍하면서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역 이후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는 일을 해온 나에게, 졸업은 사회를 향한 발걸음의 의미는 없었지만, 여성주의 네트워크와의 단절 가능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문을 두드렸고, “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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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9/06 [10:11]  최종편집: ⓒ 일다
 
박조건형 13/09/06 [14:03] 수정 삭제  
  블럭님이 남자분 이셨군요^^ 전 여자분인줄 알았는데...... ^^
ㅎㄷ 13/09/07 [14:32] 수정 삭제  
  정기 기고글도 잘읽고 있었는데, 나의 페미니즘까지...^^ 감수성이 느껴집니다.
ㄷㄷ 13/12/01 [01:01] 수정 삭제  
  항상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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