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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없는 이야기는 고민없이 들어야 할까
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9) 미스에이 “남자 없이 잘 살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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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 ‘블럭의 한 곡 들여다보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블럭(bluc)’님은 음악웹진 스캐터브레인의 편집자이자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의 운영진입니다. [편집자 주]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오마주
 
▲ 작년 12월 발표한 미스에이(Miss A)의 EP [Independent Women Part III] 

“남자 없이 잘 살아”는 2012년 10월에 미스에이(Miss A)가 EP(Extended Play, 미니앨범) [Independent Women Part III]를 발표하면서, 첫 싱글로 선택하여 활동했던 곡이다. 곡은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가사 내용으로도 나름의 주목을 받았다.
 
음반 보도자료에서는 이 곡을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그린 서던힙합 곡”이라고 소개했다. 근데 정말 이 곡은 홍보 내용 그대로일까?
 
우선 앨범 제목(Independent Women Part III)이 다소 뜬금없이 파트 3으로 건너뛰는 이유에 대해서 찾아보니, 이전에 미국 3인조 알앤비 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가 “Independent Women”이라는 이름의 곡을 Part 1과 2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번 앨범의 컨셉을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오마주 격으로 쓴 것이다. 전후 이야기를 알고 보니 원곡들의 가사와 의도를 따라 “남자 없이 잘 살아”라는 곡을 만든 이유, 동시에 타이틀 곡으로 밀게 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미안한 이야기지만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원곡은 그렇게 감수성을 지닌 곡이 아니다. 2000년에 발표된 영화 <미녀 삼총사>의 OST인데, 영화는 세 명의 천사라고 불리는 사립탐정들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내용이다. 극중 세 여성은 당당하고 진취적인 캐릭터이다. 그런 맥락을 따라 OST 중 하나로 “Independent Women”이라는 곡을 쓴 것이다.
 
영화 자체가 할리우드 특유의 가부장적 남성성이나 여성의 시각적 상품화를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OST 수록곡 역시 영화가 지닌 감수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강인한 캐릭터에 어느 정도 틀을 맞춰가다 보니 “남자 없이 잘 살아”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가 나오게 된 것이다.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이란 무엇일까
 
▲ 미스에이(Miss A)의 “남자 없이 잘 살아”
사실 원곡의 가사와 비교해보면 “남자 없이 잘 살아”의 절반 정도는 번안에 가깝다. 원곡과 이 곡 모두 들었을 때 뚜렷한 상이 떠오르지 않는 일차적이고 추상적인 문구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가사는 다소 유치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함부로 날 안 팔아”, 혹은 “잘나진 않았지만 자신감은 넘쳐”, “남자 믿고 놀다 남자 떠나면 어떡할 거야” 등 한 발짝 빼는 듯한 뉘앙스로 수세적인 표현들이 이어진다.

 
그 결과, 곡은 독립적인 여성을 표방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일종의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남녀간의 관계만이 ‘관계’인가? 하는 질문부터 해볼 수도 있겠으나 생략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이라고 했을 때 단순히 경제력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 동시에 그 경제력이 남성에 비해 낮다는 전제만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남자가 작사해서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혼자 작사했는지 혹은 멤버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선입견이 될 수 있으니까.
 
아쉬운 것은, 별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가사이다. 우리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수준에 비춰보았을 때 이 곡은 큰 문제는 없지만, 나름의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위치가 없는 반쪽짜리 반향일 뿐이다. 독립적인 여성상을 메인 테마로 세운 것은 좋았다. 흔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수동적, 피지배적, 감정적, 도구적’인 여성에서 벗어난 것도 좋다. 하지만 자신감 넘친다고 말하면서도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자존감이 아쉬운 것이다. 어쩌면 ‘남자 없이 잘 사는 여자’ 역시 성공과 물질, 외적 조건을 중시하는 기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의 변형 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곡은 서던 힙합(미국 남부에서 발생하여 유행하는 곡 스타일) 곡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물론 서던 힙합이라고 할 수 있는 BPM(음악속도)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기는 하나, 풀어내는 방식은 팝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안무 속에 잠시 남부에서 유행했던 춤 스타일들을 차용하였기에 서던 힙합이라고 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이 춤도 사실 200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시기가 좀 지난 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래 저래 아쉬움이 많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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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0/06 [15:39]  최종편집: ⓒ 일다
 
히다 13/10/08 [17:11] 수정 삭제  
  노래에서 말하고자 하는 독립성이란 그 자체로 의미 있다기 보다는, 남성이 알아주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 듯하기도 해요. 나 독립적인 여자야, 알겠니 남자들아? 요런 느낌.
mgtd 13/11/11 [23:02] 수정 삭제  
  사실 True East Side라는 노래에서 한국을 "예쁜 여자와 파티가 끊이지 않는 천국"으로 묘사해서 물의를 일으킨 과거 전력을 생각해 보면 박진영을 아주 여성 친화적이거나 페미니즘적인 음악인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의 거의 모든 남자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를 뒤덮고 있었던 "내가 지켜줄게"라는 소리에 넌더리가 나있던 저에게 이 노래의 등장은 사회 주류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것같은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것이 이 노래가 갖춘 한 가지 미덕인 것 같습니다.
heum 13/11/13 [10:50] 수정 삭제  
  나름의 시도에 좋아해주고 싶은 노래이나 가사가 좀 세련되지 못한 점 때문에, 좋아지지가 않는다는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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