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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사이에 ‘계급’을 말하다
<동물권 이야기>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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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여성들의 인터뷰 기록 “Over the rainbow”의 필자 박김수진님이 “동물권 이야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동물권’에 대해 깊이 살펴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모색해봅니다. [편집자 주]
 
“돼지는 먹는 용도일 뿐이고, 이용가치가 있는 존재 그 이상이 아닌 거죠. 그리고 돼지 등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육식은 필수라는 신화에 갇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식탁 아니면 동물원이니 그 이상의 존재로 생각할 수가 없는 거죠.”(A /35세 여성, 불교)
 
“우리가 이렇게나 많은 동물을 공장식으로 사육하고 먹는 것은 꼭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잖아요. 고기를 먹는 문제는 개인의 선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고기를 먹고 안 먹고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산과 소비 전 과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동물들을 그렇게 키워지고, 사람들은 주어지는 대로 그저 먹게 되고 그런 것이 반복되는 구조요, 견고한 구조요.” (C /37세 여성, 심리상담가)
 
이데올로기와 그 효과
 
이데올로기(Ideolog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계급이나 계층 간의 진짜 관계를 보기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작동하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숨기는 기능을 하는 ‘가짜 의식’을 뜻합니다.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 계급이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를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보편적인 체제’라고 전제하는 것,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체제를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보편타당한 체제’라고 전제하는 것, 그리고 그 강제 효과들을 통틀어 이데올로기라고 부릅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결혼 이데올로기, 강압적 이성애주의 이데올로기 등은 권력을 가진 계급이나 계층의 이익을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의 공통된 이익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죠. 칼 맑스의 표현을 빌자면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념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라레인(Larrain)이라는 학자는 지배 계급의 주도 하에 만들어지는 이데올로기의 효과를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째, 이데올로기는 특정 사상이나 신념을 ‘사실’로 표방하면서 ‘사실’을 왜곡합니다. 둘째, 이데올로기는 인지적인 차원의 문제를 포함한 규범을 생산합니다. 셋째,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이고 가변적인 속성을 가진 사회적 산물을 마치 자연적이고 영구적인 것인 양 부각시키는 상징적인 효과를 나타냅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효과는 한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나타납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다시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 확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란?
 
▲ 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2011. 노순옥 역. 모멘토)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 멜라니 조이(Melanie Joy)에 따르면, 육식주의란 특정 동물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 체계입니다.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는 통상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다는 인간동물에 의해 구성된 허위의식이지요.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는 인간동물이 어떤 비인간동물을 먹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고, 그 동물을 먹을 때 정서적, 심리적으로 불편하지 않도록 보호해준다는 것이지요.

 
이데올로기 개념은 통상 자본가와 노동자로 대변되는 인간동물의 경제적 계급, 계층에 관한 이론과 논쟁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멜라니 조이의 설명처럼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로 이분화 된, 또 다른 두 개의 계급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에 관한 일반적인 정의와 설명은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에서도 역시 그대로 통용됩니다.
 
앞서 이데올로기에 관한 일반적인 정의를 설명하고, 이데올로기의 효과에 관한 라레인의 설명을 덧붙였는데요, 이 문장들을 재구성하여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를 정의하고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의 효과 3가지를 요약해 보았습니다.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는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이라는 두 개의 계급 사이의 관계를 감춤으로써 지배 계급으로서의 인간동물의 이익을 사회 구성원의 공통 이익으로 표상시키고, 또한 그 계급의 이념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의 효과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는 “육식은 자연스럽다” 등 특정 사상이나 신념을 ‘사실’로 표방하면서 ‘사실’을 왜곡한다. 둘째,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는 인지적인 차원의 문제를 포함한 규범을 생산한다. 셋째,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이고 가변적인 속성을 가진 사회적 산물을 자연적이고 영구적인 것으로 부각시키는 상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인간의 우월성을 전제한 ‘종차별주의’
 
지배 계급임을 자처해 온 인간동물은 인간동물만을 위해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는 만들어냈습니다. 앞서 칼럼에서 소개했던 개념인 ‘종차별주의’가 바로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의 효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은 인간에게 자원이자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것 같아요. 인간이 중심이고, 인간이 살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은 다 파괴하거나 인간의 필요에 맞게 만들어도 되는 대상으로 자연과 동물을 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수단이나 대상으로만 삼는 거죠.” (E /36세 여성, 여성단체 활동가)
 
종차별주의는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고, 살해하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이데올로기의 하나입니다. 데카르트가 그랬듯, 대부분의 인간동물은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봐왔습니다. 그러니 인간동물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비인간동물 역시 지배와 정복의 대상일 뿐이었고,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의 사용을 정당화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인간동물이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종차별주의는 인간동물이 아닌 모든 비인간동물을 고등동물과 하등동물로, 반려동물과 식용동물 등으로 나누고 또 나누어 왔습니다. 그리고 ‘서열’이란 것을 창조하고는 소위 ‘먹이사슬’이라는 것의 제일 꼭대기에 자신을 두었습니다.
 
도구를 이용하면 호랑이도 때려잡아 먹을 수 있는 인간동물의 ‘위대한 능력’을 스스로 칭송한 꼴입니다. 자연 없이는, 비인간동물 없이는, 스스로도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지요. 어쩌면 무시한 것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종차별주의는 “인간(동물)이 자신의 우월성을 전제로 특정한 동물 종을 차별하거나 착취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동물의 우월성에 관한 증명은 주로 ‘과학’이 담당을 해왔겠지요. 지배 계급인 남성이 피지배 계급인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과학’을 끌어들여 “여성의 뇌는 남성의 뇌보다 작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것과 유사하게 말입니다. 동성애자를 억압하기 위해 “동성애자들의 뇌는 이성애자들의 뇌보다 작으며, 동성애자들의 두 번째 손가락은 네 번째 손가락에 비해 현저하게 짧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것과 유사하게 말이지요.
 
이렇듯 인간동물이 인간동물 스스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종차별주의는 끊임없이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동물의 일방적인 착취와 학대를 정당화하는 것을 도와왔습니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출현과 강화는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순간조차 어떠한 죄의식도 느낄 수 없는 무감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정당화의 3N -Normal, Natural, Necessary
 
“고기는 언제나, 당연히 먹는 음식이니까요. 고기를 먹는 이유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죠. 사람이 화장실을 가는 이유, 잠을 자는 이유와 같은 거죠. 동물을 당연히 먹고 쓰는 것이라 생각했죠. 고기를 먹는 이유는 ‘동물은 사람에 의해 그렇게 쓰이기 위해 있는 일종의 물건, 당연히 그렇게 쓰는 물건이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것 같아요.” (G /38세 여성, 채식기간 2년)
 
“어린 시절 우리 집에 동물들이 참 많았어요. 새장 속에 카나리아도 있었고, 붕어, 토끼, 이구아나도 키웠어요. 새는 원래 그렇게 새장 속에 갇혀 지내는 게 정상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환경이 내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아요. 다양한 동물들이 있고, 카나리아가 알을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배운 것이 없어요. 정작 배워야 할 것은 동물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잖아요.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을 보면서 한다는 생태체험, ‘이런 동물이 있구나’, ‘갇혀 지내는구나’ 외에 뭘 보고 배울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왜 새들은 새장에 갇혀만 지냈어야 했는지, 알을 낳고 새끼를 낳은 후 어미 새와 아기 새는 왜 헤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그런 것들에 관해 배우지도, 생각하지도 않잖아요. 아주 나쁜 환경이었다고 생각해요.” (A)
 
인간동물들은 더 이상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서 손도끼나 활을 들고 비인간동물을 잡아먹어야만 살 수 있는 시대를 지난 것이지요. 그런데도 인간동물들은 살아있는 비인간동물을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쓰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여전히 구석기, 신석기 시대의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동물들은 무지하기까지 합니다. ‘새’라는 비인간동물이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사실을 당연하다 여기고, 반려견과 식용견은 완전히 다른 종의 동물이라 착각하기까지 하지요. 그 새장의 만든 장본인이, 새를 잡아 새장 속에 감금한 당사자가, 같은 종의 비인간동물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종인 양 분류해버린 주체가 인간동물 자신이라는 사실엔 관심도 없습니다.
 
‘3N’(Normal, Natural, Necessary) 개념은 멜라니 조이가 제안한 개념입니다.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동물의 일방적인 착취와 학대에 관한 정당화는 크게 세 가지 근거로 구성되는데, 첫째는 정상적이라는 것(normal), 둘째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natural), 셋째는 필요한 일이라는 것(necessary)입니다.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고기’로 섭취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름 하여 “정당화의 3N"이라는 것인데요, 3N의 정당화는 단순히 행위를 이끄는 일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3N은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착취하고 학대하고 섭취할 때 느낄 수도 있는 도덕적 불편함과 죄책감을 완화해주거나 삭제할 수 있도록 기능한다는 것이죠.
 
인간동물의 비인간동물에 대한 착취와 학대가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이성애가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라는 고정관념과 유사합니다. 인간동물의 비인간동물에 대한 착취와 학대가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가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라는 고정관념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더 이상 남성 지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성애만이 ‘정상’이라는 기존의 생각들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동물의 비인간동물에 대한 기존의 태도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눈치 챈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3N은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사회의 소수집단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요한 특성이기도 합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고, 남성에게 여성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역시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결과라 역설해 왔지요.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민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정당화의 3N’은 인간동물에 의한 비인간동물에 대한 지배와 착취에는 물론 소수집단 전체에 적용되는 개념인 것이지요.
 
이쯤에서 잠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인간동물과 같은 ‘동물’이기도 한 비인간동물을 사회의 약자 집단인 ‘소수 집단’(Minority Group) 내에 포함시키는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다>에서 동물권 관련한 칼럼과 기사가 실리는 카테고리는 ‘녹색정치’인데요, 비인간동물을 사회의 소수 집단으로 간주한다면 ‘소수자 시선’ 카테고리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다음 칼럼에서는 인터뷰 대상자들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서,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재강화하는 메커니즘에 관해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맑스. 1997. 「독일이데올로기」,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김세균 감수. 박종철 출판사.
미셸 푸코. 2000.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역. 민음사.
라레인, J. 1984. 『현대 사회이론과 이데올로기』. 한상진‧심영희 역. 도서출판 한울.
멜라니 조이. 2011.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노순옥 역. 모멘토.
조너선 사프란 포어. 2011.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송은주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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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01 [11:09]  최종편집: ⓒ 일다
 
머루 13/11/01 [22:32] 수정 삭제  
  이번 글도 좋네요.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동물의 무자비한 착취를 인식하게 되기 전에 저 자신이 동물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육식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이데올로기인지 알 수 있어요. 이것에 그야말로 푹 젖어있는 상태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충격적인 어떤 계기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육식주의' 자체를 이데올로기로 인식하는 것 조차도 불가능하다시피 하죠. 많은 책들 다큐멘터리들이 나오고 있고 미미하지만 '육식주의'를 흔들고는 있는 것 같아요.
달밤 13/11/04 [23:35] 수정 삭제  
  이런 글을 꾸준히 써주시는 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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