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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가 소중한 까닭
격변기를 살아낸 여성민중사, 만화로 엮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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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게 눈 앞에 왔다. 만화책 얘기다. 기다린 만화책이 출간되어 나왔다며 좋아라 손에 들고 가슴 벅차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아니, 만화책을 떠나 책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이런 감정을 가진 것 또한 처음이 아닐까 싶다.

 

<내 어머니 이야기>(김은성, 새만화책) 1부

1부가 2008년 12월에 출간되고, 올 3월에 2부, 3부, 4부가 한꺼번에 출판되었으니 만 5년을 꽉 채우고 세상에 나온 셈이다. 나같이 그의 만화가 책으로 묶이기를 고대해온 사람들에게는 참 긴 시간일 테다. <내 어머니 이야기>(김은성, 새만화책) 전 4권이 모두 다 나왔다!

 

“엄마의 얘기를 처음 그릴 때 엄마는 ‘나 같은 사람을 그린 것도 만화가 되냐?”고 의아해하셨고, 나는 오히려 ‘엄마 같은 평범한 사람의 얘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엄마는 이해 못 하시는 것 같았다.”

 

김은성 작가는 8년 동안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왔다. “나 같은 사람을 그린 것도 만화가 되냐?”고 물었다는 어머니는 여든에 만화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되어 8년 동안 출연, 가슴에 묻어둔 88년 인생 이야기는 만화책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우리 역사’

 

작가의 어머니 이복동녀 씨는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국전쟁 때 피난으로 부모와 언니들과 헤어진다. 당시 오빠 가족들이 남쪽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쪽으로 피난 나온 이복동녀 씨는 분단된 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오빠네가 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한 이복동녀 씨는 이산(離散)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내왔다.

 

그러니까 이 만화는 어머니의 이야기지만, 일제 강점기 때 함경남도의 한 마을의 일상이 그려지고(1권), 마을공동체와 결혼 풍습, 가족문화가 나타나있고(2권), 한국전쟁 때 민간인들의 삶과 피난, 이산과 이주의 삶이(3권) 그대로 담겨있다.

 

세계의 어느 땅이든 인간이 사는 동네 중 안 그런 데가 있겠냐마는, 우리 역사로 보자면 이복동녀 씨와 엇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을 경험하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아낸 세대이다. 문서에 나타난 역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역사를 쉽게 접하기가 어려웠다. 왜일까? 아마도 우리가 살아있는 역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은, 공식적인 역사 기록이란 것들이 그렇듯 권력과 주류의 이념에서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그렇다 해도, 역사를 살아낸 개인들 또한 어떤 이야기는 발설될 만하고, 어떤 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검열 때문에 침묵했을 것이다. 힘없이 살아가는 개인들이란, 사회에서 용인될만한 정체성만 드러내고 사는 것이 도움이 될테니. 

 

<내 어머니 이야기>(김은성, 새만화책) 1부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지만, 전쟁과 분단, 그리고 독재시기를 거쳐온 우리는 근현대사와 관련해서는 언제나 목소리를 낮춘다. 어릴 적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그 세대가 겪었을 법한 역사에 관련해 철없이 몇 가지를 여쭤봤을 때,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 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유독 몸을 사리듯 목소리를 낮추던 분위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분단 이후 남한 땅에서, 목소리를 낮추어야 하거나 유독 스스로 검열해 어떤 이야기만 취사선택해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위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내 어머니 이야기>의 이복동녀 씨에 대한 기록은 너무도 소중하다. 한국전쟁 전 북쪽 지방의 한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고, 전쟁과 분단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견뎌왔는지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정치적인 의도나 검열 없이 그냥 그대로의 민중사이다. 또, 격변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역사란 남성들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탈북자들이 아는 것보다 더 깊은 북녘의 속살

 

2년 전, <내 어머니 이야기> 1권을 탈북자들과 함께 읽고 토론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김은성 작가도 함께 있었다. 만화책을 읽은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바로 자신의 고향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향이 북한인 사람들은 “북한”이라는 단어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그런 고향의 오래 전 모습, 문화, 사투리가 나오니 검열의 빗장이 풀리면서 감정이 봇물처럼 터져버린 것이었다.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하는 내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한 탈북 여성은 “고향…”이라는 말을 몇 번 되뇌이다 펑펑 울어버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전쟁 전의 북한 모습이기 때문에, 탈북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속살에 해당하는 북녘의 모습이 이 만화책에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적에 할머니한테서 들은 북한 모습과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만약에 여기가 북한이면 이 만화책은 출간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이런 얘기 하면 안 됩니다.” (30대 초반, 여성, 북한이탈주민)

 

이 여성은 할머니한테서 은밀하게 듣던 북쪽의 일상과 고향의 모습을, 남한에 와서 만화책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반가워했다.

 

타고난 이야기꾼, 한 할머니의 입담

 

<내 어머니 이야기>(김은성, 새만화책) 4

특히, 이복동녀 씨의 얘기 중 흥미로운 대목은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억지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지 닷새 만에 해방이 되어 남편이 군대에 끌려 나가지 않게 됐다는 이유로, 해방된 게 너무도 싫었다”는 대목이다. 한 개인의 인생으로 보면, 원치 않는 사람과의 결혼과 조국의 해방 사이에서 더 중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만화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일제 강점기, 전쟁, 분단, 이산과 같은 주제어가 나오니 묵중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책은 정말 재미있다. 한번 손에 들면 다 읽을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북청 사투리와 문화를 보는 재미도 솔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인공 이복동녀의 탁월한 캐릭터 때문이다.

 

김은성 작가 또한 “운 좋게도 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를 엄마로 두었다”고 말한다. 그 말에 백 번 동감하며, 이제는 여든여덟 나이가 된,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인 한 할머니의 재미난 입담에, 그리고 따뜻한 마음씨와 고향을 향해 가지는 애타는 감정에, 함께 웃고 또 울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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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5/26 [22:58]  최종편집: ⓒ 일다
 
백작 14/05/27 [09:58] 수정 삭제  
  오. 책으로도 나와있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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