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 여성가구, 어슬렁 정거장에 모여라

예비 사회적 기업 ‘그리다 협동조합’의 꿈

안미선 | 기사입력 2014/07/28 [00:57]

일인 여성가구, 어슬렁 정거장에 모여라

예비 사회적 기업 ‘그리다 협동조합’의 꿈

안미선 | 입력 : 2014/07/28 [00:57]

홍대입구역 근처에 재미난 카페가 생겼다. 어슬렁 정거장. 이곳은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그리다 협동조합은 작년 10월에 창립총회를 하고 올해 1월에 개소식을 했다. 이 협동조합은 1인 여성가구를 위한 협동조합으로,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마을기업으로 서울시에서 공간 지원을 받았고 현재 조합원은 90명을 넘어섰다.

 

홍대입구역 근처 어슬렁 정거장 카페.    © 안미선

‘생기랑 마음달풀 연구소’와 ‘지속가능한 빈스달 커피’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곳으로, ‘성평등한 민주 사회, 여성의 자립 지원, 지속가능한 커피를 생산 판매하여 3세계 노동자의 삶과 생태 환경을 보호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층은 카페이고, 2층은 여성들에 대한 교육과 상담, 나눔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리다 협동조합은 여성의 치유와 성장을 돕는 ‘생기랑 마음달풀 연구소’, 대안적 경제와 협동적 삶의 방식을 도모하는 ‘모아놀이창작소’, 지속가능한 커피를 통해 생태 보호와 윤리적 소비를 제안하는 ‘커피제작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다 협동조합의 유경희 이사장은 전 한국여성민우회 대표이자 현재 녹색연합의 공동대표이다.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여성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생각했어요. 또, 여성운동의 경험을 살려 여성들이 이 공간에 와서 힘을 내고 주고받으면서 일상이 조금이라도 풍요롭게 되면 좋겠다고 바랐지요. 마침 서울시에서 마을기업 프로젝트가 있어 신청해서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어떤 변화의 과정에서도 도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유경희 이사장은 어슬렁 정거장 카페 2층에 있는 교육, 상담 공간에서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 심리적 충전, 네트워킹. 이 세 가지가 이 공간이 꿈꾸는 주요한 목표다. 구체적으로 마포구의 1인 여성가구를 염두에 두고 있다.

 

“마포구에는 1인 여성가구가 많아요. 앞으로 1인 여성가구는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여성들이 자연스레 택배를 이곳에 맡겨놓고 찾아가기도 합니다. 1인 여성가구가 사는 데 도움이 되면 무엇이든, 경제적이든, 심리적이든, 네트워킹이든, 범죄로부터의 안전이든, 이곳에 와서 ‘우리는 뭐가 필요하다, 힘들다’ 털어놓는 마당이 되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경험을 나누며 자립을 도모하는 곳

 

지금 이곳에서 시작한 강좌는 “내 인생을 빛내줄 반짝반짝 어슬렁 아카데미”, “생태드로잉”, “나를 읽는 타로 강좌” 등이다.

 

그리다 협동조합의 유경희 이사장.    © 안미선

“여성이 자신이 가지는 실제 경험을 통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자신의 경험이 이용되고 필요로 하는 분과 소통도 하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타로 강좌의 수강료는 독특하다. 1인 가구와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에 수강생의 10시간을 나누는(쉐어링) 것이다. 돈이 아니라 나눔을 명시한 것은 그리다 협동조합의 취지가 잘 드러난 예다.

 

“쉐어링에서 당신이 일인 여성가구와 만날 때 뭐를 공유하겠냐고 물어보니 다양한 게 나왔어요. 발레, 운동, 심리학 책 토론, 자기를 알아보는 체크리스트, 여행 가기, 반찬 나누기, 그 속에서 1인 여성가구의 건강권 문제와 심리적, 경제적 관심사가 다 나오죠. 여성들이 어슬렁 정거장에 가면 ‘아무 얘기나 편하게 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나눠줄 수 있겠다.’ 그런 게 자리를 잡아가면 된다고 봐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고 외롭지 않고, 자기 주도적인 삶에 지원을 주는 공간!”

 

카페와 교육장은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조명과 나무 재질 벽, 연둣빛 책상, 서로 다른 무늬의 의자, 구석구석 쓰인 손 글씨, 책꽂이에 단아하게 꽂힌 책들, 포근한 발도로프 인형, 저무는 하늘 아래 꼿꼿이 서 있는 풀꽃 그림들…. 긴장을 풀고 잠시 주저앉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문 심리상담사이기도 한 유경희 이사장이 여성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여자들끼리 경험을 나눌 수 있다. 너무 애쓰지 말라, 아프고 힘든 것도 자기 삶의 과정이다.’ 이 공간이 그런 것을 서로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들어주는 곳을 통해 자기를 긍정적으로 돌아보고, 가부장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죄책감으로 돌리는 부당한 고통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함께 직면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로 각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마음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잘 만들어가도록 도울 수 있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 협동조합은 거의 없어요. 어찌 보면 힘들고 무리한 도전일 수 있는데, 여성주의를 가지고 협동조합의 틀 속에서 대안 가치를 통해 각자의 삶을 한 단계, 한 단계 높여갈 수 있게 해보려는 겁니다. 이런 의미를 공유하는 조합원이 앞으로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여성주의 협동조합의 모델이 될 수 있기를…

 

▲  “생태드로잉” 프로그램.   © 그리다 협동조합

그리다 협동조합은 여러 군데에 카페와 교육 공간을 두고 있다. 도봉여성센터에서 이루어지는 바리스타 교육장, 어린이대공원의 꿈마루 카페, 성산동의 커피문 카페가 있다. 전직 여성운동가들이 협동조합 사업을 함께 꾸려가고 있다.

 

“도봉에서는 여성센터 1층에 바리스타 교육장을 위탁 받아서 운영하고, 그 교육을 받은 실습생들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요. 교육을 수료하신 분들이 사회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거죠. 그런 방식으로 교육이나 실습의 공간도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환원하려는 거예요. 저희가 학교 CI 프로그램에 출강해서 고등학생에게 커피를 직접 내려보고 커피가 가지는 의미성이나 공정무역 커피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데 그것도 지역 활동인 셈이죠.”

 

어린이대공원의 꿈마루 카페는 3층을 위탁해 운영하는 북카페이다. 그리다 협동조합은 예비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에 카페의 수익이나 자산이 지역 사회에 환원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꿈마루 카페에서는 시민 참여와 교육 프로그램을 꾸리고 어린이 체험학습을 진행한다. 교육장과 카페라는 공간들을 통해 여성들의 직업훈련을 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다.

 

여진 씨는 십 년 넘게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활동했고 재정 사업을 위해 커피와 인연을 맺었다. 그녀는 이제 그리다 협동조합을 함께 만들고 조합원 확대와 모집, 교육을 맡고 있다.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빈곤층이고 약자인데,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었던 게 수익 사업을 위한 것도 있지만 경제적 차원에서 바리스타 교육이 여성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거라는 생각에서였지요. 커피나 공정무역을 통해 사회적 공헌활동을 하는 방법을 찾았어요. 또 상담과 교육 또한 여성의 임파워먼트(힘 키우기)잖아요. 커피를 통해 경제적 임파워먼트, 즉 취약 계층의 고용이라든지, 지역에 대한 수익 환원이라든지를 도모하고, 상담과 교육을 함께하면서 그리다 협동조합이라는 공간 안에서 여성의 경제적, 정서적 지원이 한꺼번에 발현되기를 바란 거죠. 여성들의 임파워먼트를 목적으로 조직과 세부 내용을 구성하고 복합문화공간의 형태로 구현한 거예요.”

 

여진 씨는 “수익을 지역과 마을로 환원하기 위해” 협동조합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포구에 있는 마을기업 형태가 되면서, 지역과 마을과 커뮤니티를 이루어 환원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였어요.”

 

사회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에 있어서, 1인 여성 가구에 대해서는 이제 막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협동조합 마을기업이 주로 ‘제조’ 중심의 형태를 띤다면, 그리다 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무형의 교육 인프라와 자기 성장이라는 가치다. 공정무역 커피를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면서, 일상의 권리를 일깨우고, 많은 참여를 통해 힘을 서로 북돋아주며 취약계층의 여성을 고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1인 가구 여성들이 어슬렁거리며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고 지역과 마을에 안착해 커뮤니티를 이루려는 시도를 지금 이곳은 하고 있다.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재정적 문제, 임대료, 인건비, 공간을 유지해나가기 위한 노력들, 조합 활동의 안정화….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이 도전을 멈출 수는 없다. 이런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취지에 공감을 하는 이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함께 운영을 지원해줄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이 생활하는 여성들의 문제들과 만나야 해요. 제도와 정책이 중요하지만 일상의 문제가 같이 풀어질 수 있는 활동을 담아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가구는 일인가구의 형태로 늘어날 거예요. 소소하게 일상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여성주의 협동조합이고, 여성 활동가들이 조직화한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니까 잘됐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불빛이 오랫동안 켜있어 좋아요, 깜깜했거든요”

 

▲   어슬렁 정거장 카페의 차림.   © 어슬렁 정거장

어슬렁 정거장 카페의 차림도 세심하게 마련한 것이다.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고 혼자 즐길 수도 있게, 한상 차림의 메뉴로 짜였다. 스튜와 밥과 빵, 샐러드로 차려지고 혼자 와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느낌을 주게 꾸몄다.

 

그런 마음이 받아들여질 때 여진 씨는 기쁘다고 했다. 혼자 와서 맛있게 먹고 가는 여성들을 보면 이 공간에서 바란 것이 확인 받는 것 같아 즐겁다고 했다. 차를 마시며 책을 보다가 “저도 일인가구인데요” 말하는 여성들을 만나면, 이 공간이 반짝이는 느낌이 든다.

 

“맨 처음 여기 오픈하고 원룸에 사는 분이 와서 공간 구경하면서, 1인 여성가구 활동 설명을 듣고 한 말이 있어요. ‘아, 여기 카페 불이 오랫동안 켜져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여기 밤이 정말 깜깜했거든요. 카페 불이 켜져 있어서 안심이 돼요.’ 전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 와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좋았어요. 스스럼없이 택배 맡겨 놓고 이곳을 가깝게 여길 때, 만나게 될 때, 이 공간에 와서 사람들이 뭔가 힘을 받고 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저도 힘이 나요.”

 

평범한 카페나 교육장이 아니라 뭔가 환한 빛이 구석구석 스며 있는 밝고 따뜻한 공간이라는 느낌은, 그렇게 공간을 만들고 지키는 이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이곳에 오면 노란 꽃 속에 들어와 앉은 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건 손을 쫙 벌려 꽃받침이 되어준 이들의 바람, 여성의 생활과 일상을 소소하게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움찔 꿈틀거리기도 하고 출렁거리며 흔들리기도 하고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파닥거리며 빛날 수도 있는, 그런 숨을 쉬는 공간이 된다. 그리다 협동조합은 기다린다. 아직 만나지 못한 여성들이 서로 만나며 웃는 힘, 함께 살아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과 공명하며 발산되는 에너지. 그것이 얼마나 소소할지, 얼마나 거대할지 누가 미리 알겠는가?

 

‘나도 어딘가 비빌 언덕이 있다’

 

▲  한 조합원이 쓴 <하우스메이트 구함>   © 그리다 협동조합

나는 창밖에 있는 건물을 보고 잠시 엉뚱한 상상을 했다. 그건 담쟁이 넝쿨이 우거진 그 묵묵한 사각건물이 허리춤을 질끈 동이고 푸른 치마를 출렁이며 그 자리를 떠나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을 거라고 여겨진 것들이 신명이 나서 푸른 잎사귀를 풀썩대며 떠나는 장면은 떠올리기만 해도 근질대게 신났다. 이곳에서 그런 상상을 하며 통쾌해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실은 이 공간이 나에게 슬그머니 던진 즐거운 농담이 아닐까?

 

“혼자 살든, 여럿이 살든, 나도 어딘가 비빌 언덕이 있다, 그런 공간이 있을 때 개인이 가지는 자신감이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 공간이 이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고 여기 오는 사람도 그런 것을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와서 뭐 하나를 먹어도, 뭐 하나를 마셔도 ‘너 괜찮아, 너를 지지할 거야.’ 그런 느낌과 에너지를 이 공간에서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려고 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자기도 줄 수 있고. 아주 사소한 거라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힘을 받고 힘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되었으면 좋겠어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고 외롭지 않고 자기 주도적인 삶에 지원을 주는 공간.’ 그리다 협동조합은 그것을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삶의 방식을 더 다양하게 생각하고 많은 만남 속에 자신을 열어놓고 오가면서, 기어이 이 세상을 외롭지 않게 살아낼 작정을 한 여성들이 앞으로 그리다 협동조합과 함께할 것이다. (그리다 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www.wgree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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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도 2014/07/31 [21:55] 수정 | 삭제
  • 시니어 바리스타 티엔유 협동조합도 들어 본 기억이 있어요.
    그곳에 찾아가봐야겠다고 머리속으로만 그리고 있었는데요. 이렇게 그리다협동조합도 알게 되었네요. ^^!
    언젠가 가더라도 서로가 힘을 받고 힘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남은 곳으로 계속 유지된다면 좋겠어요.
  • 나라 2014/07/29 [10:57] 수정 | 삭제
  • 꿈꾸는 곳이이네요. 멋져요 집 가까이 있으면 좋으련만. . 가맹점 모집하나요? ㅋㅋ
  • C씨 2014/07/28 [16:48] 수정 | 삭제
  • 기사를 읽으니 기분이 좋네요.찾아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 2014/07/28 [12:36] 수정 | 삭제
  • 재미진 공간이 또 하나 생겼군요. 좋네요. ㅎㅎ
  • 탱자 2014/07/28 [02:16] 수정 | 삭제
  • 조만간 가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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