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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책 귀신’이라 불렸던 아이
<북과 남을 가로지르다>⑧ 독서 이야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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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년 전, 한국으로 와서 살고 있는 북한이주여성 효주 씨가 북한의 서민문화와 남한에서 겪은 경험을 전하는 <북과 남을 가로지르다> 칼럼이 연재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한국의 21세기는 스마트한 시대?

 

한국에 살면서는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21세기는 정보화 시대, 스마트한 시대라고 해야 하나? 여기는 어른이나 학생이나 아주 어린 초등학생까지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다 보니, 정보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찾아본다든가 웹툰 사이트에 들어가서 재미있는 만화를 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더 좋은 스마트폰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 스마트폰을 사서 쓰다가, 또 다른 더 새로운 모델을 추구한다.

 

학생들이 숙제를 하려고 해도 컴퓨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니, 어쩌면 현실이 그렇게 따라갈 수 밖에 없게 만든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아직 스마트폰을 써본 적이 없다. 특별히 쓸 이유가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어르신들이 가지고 다니는 일명 ‘효도폰’)은 사진을 찍을 때 스마트폰처럼 아주 잘 나오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조금 아쉬울 뿐 불편함은 별로 없다.

 

요즘은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한번 써보고 싶은 욕구가 들기도 했다. 어차피 바꿀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 나는 요양보호사로 어르신 돌보미를 하고 있는데, 출퇴근 카드를 찍으려면 스마트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아버지가 치매중증으로 앓고 계시는데(게다가 폭력성 치매이다), 며느리인 나만 알아보고 또 내 말만 듣기 때문에 매일 90분씩 돌봐드리고 있다.

 

북한에서는 지금에야 인터넷이 들어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아직도 지방의 학교들에서는 컴퓨터 없이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 접하고 배웠던 때가 기억난다. 텔레비전 화면 같은 작은 화면과 글자판을 가져다 주며 ‘이게 뭔지 아는가’ 하고 묻기에 ‘작은 텔레비전’이라고 했더니 막 웃으며 컴퓨터라고 알려줬다.

 

그 직원이 컴퓨터를 설치한 다음 의자에 앉아 타자를 치자 화면에 글자가 나오는데, 신기하고 놀라웠다. 타자 연습 화면을 켜 놓은 상태에서 매일 밤낮 타자 연습을 했고, 누워서도 손가락으로 연습을 하다가 잠이 들곤 하였다. 그 때의 그 열정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저 한 남자의 아내로,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답답하고 슬픈 마음이 들 때가 많다.

 

‘1년에 만 페이지 책 읽기 운동’

 

북한 동화 <보물통과 빈통> (금성청년출판사. 1988)  © 출처- 북한자료센터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에게 책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한 스승과도 같은 존재이다. 말없이 누군가의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슬픔과 감동, 희망과 기쁨, 때로는 스릴과 공포, 환희와 즐거움을 준다. 살면서 실천해야 할 용서와 배려심도 책을 통해 먼저 배웠다.

 

그래서 한낱 종이에 쓰여져 있는 글에 불과해 보일 지라도, 책의 힘은 보이지 않는 지식의 창고이자 상상력,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어느 장소에 가든, 어떤 상황에 부딪히든, 거기에 맞는 판단과 행동을 하고 말도 조리 있게 잘 하는 편인 것 같다.

 

한때 북한에서 책 읽기 붐이 인 적이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을 보는 것은 아니고, 학교에서 지정해준 책을 봐야 했다. 내가 학교 다닐 당시에 ‘1년에 만 페이지 책 읽기 운동’을 벌였는데, 당의 방침에 따라 전국의 학생들이 책을 읽느라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김정일 장군으로부터 길을 걸을 때나 앉아서 쉴 때나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잠자기 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말라는 지시가 전해졌다. 그래야 머리에 지식이 쌓이고,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수 있는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국적으로 학교에서 누가 더 많은 페이지를 읽었는지에 따라 교실 뒤쪽에 경쟁도표를 그려놓고, 매일매일 도표를 그려가며 총화를 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책을 보았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책 제목과 느낀 점을 꼭 쓰도록 하는 전략까지 세워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항일 빨치산들의 회상기는 수십 권으로 된 책이었는데, 거의 다 보았던 것 같다. 김일성 저작선집과 김정일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대한 책들을 학교 혁명력사 연구실에 가서 빌려보거나 소년단실에서 빌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지정해주는 책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본 책이 아니어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내용이 별로 없다.

 

책을 읽히고 끊임없이 학습을 하도록 강요한다고 해서, 과연 그런 지식이 머리 속에 저장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들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으니, 진심이 빠지고 가식적인 틀 속에서 창작을 하게 된다. 가끔 텔레비전에 북한 영상이 나올 때가 있는데, 대동강변을 거닐며 연애를 한다거나, 인터뷰하는 장면들은 다 각본에 짜여진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어떤 질문에든 막힘 없이 대답할 수 있도록, 미리 대비를 시켜놓는다는 것을 북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러시아 소설에 푹 빠져 살았던 시절

 

북한만화 <장검>(문학예술출판사. 2005)  ©북한자료센터

북한 사람들이 재미없는 책들만 읽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북한에서는 <이름없는 영웅들>이나 <명령027호>를 비롯하여 인기 있는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그림책처럼 간단하게 수첩으로 만들어 보급하였는데, 그런 책들은 영화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나는 원래 책을 좋아했으니, 읽어야 하는 책들은 미리 감상문을 날짜 별로 다 써놓고 군 책방에 가서 소설책을 빌려다 몰래 보곤 하였다. 한때는 ‘책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책에 빠져 살았다. 점심 먹는 것도 잊고 책을 빌리기 위해 그 1시간 동안 멀리 읍 도서관까지 가서 책을 빌려왔다. 그리고 밤새도록 읽고는 다음날 수업 한 시간이 끝나면 10분 간의 휴식 시간에 학급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내 주변에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들으려고 뱅 둘러 앉아 있었다. 반 아이들에게 내가 해주는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어서 듣는 거냐고 묻자, 한 친구가 하는 말이 ‘네가 책 내용을 이야기하면 영화 화면처럼 눈앞에 선하게 지나간다’고 하였다.

 

지금은 제목도 가물거리지만, 내가 봤던 책들 중에는 북한 책은 물론이고 중국 책도 있었고 러시아 책도 꽤 있었다. 가장 좋아했던 책은 국외 추리소설과 탐정소설, 역사소설이었다. 외국 동화책도 많이 읽었다. 우리 반에 아버지가 안전원(경찰)이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가끔 앞 부분이나 중간 부분이 뜯어져 나가 제목이 뭔지도 모를 러시아 탐정소설들을 가져왔다. 하도 재미있어서 내가 아끼고 안 쓰고 있었던 귀한 선물노트를 그 아이에게 뇌물로 주면서까지 뜯겨져 나간 러시아 책들에 푹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얼마나 소설책에 미쳐서 살았던지 학교에까지 가지고 가서 수학, 화학 시간에 책상 밑에 놓고 몰래 보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회수를 당하기도 했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빌어도 책을 돌려주지 않아 벌금을 문 적도 여러 번이다.

 

북한에서는 학생이든 성인이든 책방에서 책을 빌릴 때 도서카드를 발급해준다. 특히 학생인 경우에는 책을 빌려가는 당사자의 이름과 날짜, 어떤 학교의 몇 학년 몇 반인지와 주소가 적혀있고, 그리고 보증인란에 세대주인 아버지 이름이 올려져 있다. 책을 빌려갔다가 잃어버리거나 선생님에게 회수 당해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 열 배의 벌금이 아버지 월급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가도록 되어있다.

 

나에겐 그런 일이 다반사여서, 처음엔 아버지가 아무 말씀 안하셨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니 호된 꾸지람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아버지는 책을 많이 보는 것은 좋지만 공부 시간에 책을 보다가 뺏겨서 직장으로 벌금 쪽지가 날아오게 하려면 아예 안보는 편이 낫다고 혼을 내곤 하셨다. 다행히 어머니에겐 벌금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셨다. 아마도 나 때문에 벌금을 낸 돈만 하여도 당시 돈으로 100원이 훨씬 넘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책 읽기를 많이 한 덕분에, 거짓말처럼 내 머리에 지식이 쌓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디 가서도 주눅이 들거나 당황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질문도 할 수 있고 또 대답도 할 수 있는 재치와 능력이 조금이나마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말로만 듣던 19금 성인소설을 접하다

 

책 읽기를 그렇게 좋아했으니, 한국에 와서도 책을 많이 빌리거나 사서 읽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 탓인지 노안이 와서 책을 읽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침침한 눈으로 책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눈이 더 아파지기 때문에 책 읽기를 거의 포기한 상태다. 책을 안 보게 되니, 머리에 들어있던 것들마저 바닥이 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에 와서 처음 도서관에 가보았을 때, 정말 책이 많았다. 어떤 책을 봐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은 주로 추리소설 장르여서 역시나 한국에서도 그쪽 책들을 빌려다 읽었다. 북한소설보다 훨씬 내용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책 읽는 재미가 솔솔했다.

 

북한에서는 소설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대한 찬양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19금, 15금으로 연령 제한을 두는 것 외에는 마음대로 책을 볼 수 있어서 독서가 만족스러웠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어 부산에 여행을 다녀 오는 도중, 기차역에서 어떤 책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책 제목도 그렇고 표지 그림도 요상하여 뭔가 수상하다 싶었는데, 웬걸 퇴폐적이라고 표현해야 되나? 내용을 들춰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19금 성인소설이었다.

 

처음에는 19금, 15금, 그런 것이 뭔지 몰랐는데 내가 이런 책을 읽게 될 줄이야…. 내용이 아주 적나라한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이런 책을 들여다보다가 기겁을 하여 사방 눈치를 보며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렸다. 어쩐지 가게 주인이 나를 유심히 살펴보더라니,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한국은 많은 것이 오픈되어 있는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남북이 교류하며 문화적인 힘을 키우게 된다면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얼마나 더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나올까 하고! 언젠가는 그 날이 오겠지만, 우리 세대에 하나가 된 한반도가 완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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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8/03 [14:40]  최종편집: ⓒ 일다
 
sungsook 14/08/03 [15:40] 수정 삭제  
  러시아 책들이라면~ 한국에서 보는 책과 겹치는 것도 있겠네요. 왠지 반가움.. ^^
비니 14/08/04 [12:46] 수정 삭제  
  한국도 독재정권 시절에 검열 무지 했죠. 가당치 않은 문서를 책이랍시고 학교에서 읽히고 독후감을 억지로 써야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북한과의 닮음과 다름.. 좋은 정보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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