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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 위험이 없다고 말한다면 범죄다”
<체르노빌의 봄> 작가 엠마뉘엘 르파주 인터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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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후쿠시마를 방문했다. 금지 구역과 오염 지역을 보면서 분노를 느꼈다.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한다.”

 

▲  프랑스의 그래픽노블 작가 엠마뉘엘 르파주(Emmanuel Lepage)  ©박희정

프랑스의 만화작가 엠마뉘엘 르파주(Emmanuel Lepage)가 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르파주는 프랑스의 사회참여적인 그림 작가들의 연대모임인 ‘행동하는 데셍’(association les dessin'acteurs) 일원으로, 체르노빌 참사가 일어난 지 꼭 20년이 되던 2008년 4월 체르노빌의 금지 구역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2012년 11월 르포르타주 만화 <체르노빌의 봄>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한국에서도 발간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행동하는 데셍’을 실천하기 위해 체르노빌로

 

“행동하는 데셍은 십 년쯤 전에 도미니크(Dominique Legeard)라는 만화가에 의해 창립되었다. 만화책을 만들거나 엽서를 만드는 등 그림이 들어가 있는 작업물을 만든다. 창립자인 도미니크는 반핵운동가이다. 여러 신문에 관련 만화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멤버들이 이미 반핵에 대한 감수성이 높았다.

 

매우 구체적인 현실과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인데, 이를테면 체르노빌에 갔을 때는 크로키 책을 내기 위해 갔다. 책에 대한 저작권은 ‘행동하는 데셍’에 있고, 수익은 체르노빌의 방사능 오염 지역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 아이들이 적어도 3주나 한 달에 한번 그 지역을 떠나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연을 누리도록 지원하는 데 쓰인다.”

 

엠마뉘엘 르파주는 2년 전 후쿠시마의 금지 구역에도 다녀왔다. <체르노빌의 봄>은 그에게 금지 구역의 문을 열어주었다. 체르노빌을 통해 시작된 핵 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를 후쿠시마로도 이끈 것이다. 그러나 르파주는 그를 ‘반핵운동가’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선을 그었다.

 

“나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 단 두세 마디로 말할 수 없다. 나는 운동가가 아니고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의 복잡성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지성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메시지를 바로 전하는 게 아니라, 책을 쓰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담론을 만들거나 교훈을 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내가 갔던 곳을 무대화하고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독자에게 내가 느낀 것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진실이 이것이다’라고 말로써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증언자’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자기가 알아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판단에 대해서는 독자의 자리를 남겨두는 것으로 내 역할은 충분하다.”

 

‘평화로운 얼굴’을 가진 죽음, 더 끔찍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상상으로 채우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고 말하는 엠마뉘엘 르파주.  © 박희정

엠마뉘엘 르파주는 동료들과 함께 핵발전소에서 40km, 금지 구역에서는 20km 떨어진 볼로다르카라는 곳에 머물며 금지 구역에도 방문해 현장의 모습과 인상을 화폭에 담는다. 작품 초반에는 무채색의 사실적인 그림으로 시작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색이 더해지며 인상을 적극적으로 담아낸다. 르파주에 따르면 ‘빛’은 ‘삶’과 관련이 있다.

 

현장을 방문하기 전에 르파주의 상상 속 체르노빌은 암울하고 공포로만 가득 찬 곳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오염된 땅’을 방문했을 때 그가 목격한 것은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사람들의 펄떡대는 삶과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이었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등 방사능 오염 지역의 사람들에 대해 우리들은 흔히 갖는 생각은 밤에 빛이 난다든지, 세 번째 팔이 날 거라든지, 물집이 생긴다는 식이다. 돌연변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대상을 보지 않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공포심을 그들에게 투사한다. 나에게 체르노빌은 우리의 공포의 거울이었다. 우리가 직접 목격한 체르노빌의 현실은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충돌했고, 체르노빌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서도 숲은 아름다운 봄을 빚어내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춤추며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는 도처에 깔려있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아이러니와 상황의 복잡성 속에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진실이 있다.

 

“죽음이 보이지 않고 이러한 평화로운 얼굴을 가졌다는 것이 더 끔찍했다. 숲에 갔을 때 강하게 동요를 느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상상으로 채우는 것이 작가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프랑스와 ‘달리’ 낙후되었다던 소련의 핵발전소는…

 

책 속에서 엠마뉘엘 르파주는 프랑스 언론이 ‘낙후되었다’고 떠들었던 체르노빌의 현대적 시설에 놀란다. 체르노빌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 프랑스 언론은 ‘소비에트의 낡은 기술’과 달리 프랑스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사실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현재 58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인구 대비 핵에너지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2011년 후쿠시마 참사 직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여러 차례 연설을 통해 핵발전을 고수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의 핵발전 기술이 일본보다 나으며, 프랑스에는 쓰나미가 덮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엠마뉘엘 르파주는 “이러한 선동에 화가 매우 났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위험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범죄다. 위험이 없는 핵발전소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사르코지의 연설)은 ‘시민’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를 안심시키려고 하듯이 말하는 것이지 어떠한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  부천국제만화축제 체르노빌의 봄 전시관에서.   © 박희정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체르노빌의 봄>은 프랑스 출간 당시에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평단의 평가도 좋았고, 입소문을 통해서 책이 많이 알려졌다.

 

“프랑스에서는 우파든 좌파든 모두 핵발전소를 찬성하고 핵발전을 장려한다. 처음에 <체르노빌의 봄>이 나오고 핵발전과 관련된 자리에 불려가서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도 시민들이 핵발전소 참사가 당장 우리한테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인식을 많이 하고 있다.”  (통역 지원: 조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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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8/17 [23:29]  최종편집: ⓒ 일다
 
blanket 14/08/18 [14:07] 수정 삭제  
  오염된 땅에서도 숲은 빛나고 삶은 계속된다... 작가의 성찰이 와닿네요. 체르노빌의 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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