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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들어섰으니 싸움은 끝났다고?
행정대집행 이후를 살아가는 밀양 용회마을 이야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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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렇게 가까웠나요.”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 구미현씨 댁 마당에서 뒷산을 올려다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1/3쯤 몸체를 드러낸 송전탑은 그야말로 바로 ‘뒷산’에 있었다. 

 

용회마을은 101번 송전탑이 들어서고 있다. 부북면 평밭마을(129번)과 위양마을(127번), 상동면의 고답마을(115번)에 이어 6월 11일 행정대집행 때 마지막으로 농성장이 철거된 곳이다. 30가구 남짓한 용회마을은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송전탑 반대싸움을 시작한 곳이다. 싸움을 시작한 후 2년여 동안 고령의 마을 주민 중 6분이 돌아가셨다. 주민들은 이 연이은 죽음이 단지 나이나 지병탓만이 아닌 송전탑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송전탑이 논 한가운데를 지나는 보라마을. 송전탑에 반대하며 분신한 이치우씨는 보라마을 주민이었다. © 박희정

 

세 번 정도 용회마을 주민들이 움막을 짓고 있던 101번 송전탑 부지에 올라간 적이 있다. 가파른 산길을 40분가량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어서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며 오르던 길이었다. 한참을 올라 산에 올라서면 숲에 가려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가늠할 수 없던 거리가 이제야 체감이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느꼈을 공포감이 더욱 피부로 와 닿았다.

 

“우리는 지지 않았어요”

 

6월 11일에 있었던 행정대집행 이후, 송전탑 공사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129번과 127번 송전탑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용회마을에 들어설 101번 송전탑도 완공은 그저 시간문제다.

 

현재 101번으로 향하는 공사차량은 용회마을을 통하지 못하고 반대편 보라마을을 통해서 올라간다.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공사차량의 통과만은 막았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송전탑을 못 짓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을 매일매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너무 큰 스트레스가 될 터였다.

 

▲   6.11 행정대집행 당일. 101번 움막위에 몸을 묶고 올라간 주민.   © 박희정

 

밀양 싸움이 송전탑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으로 알려진 만큼, 이제 밀양의 싸움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싸워왔던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고 단호히 말한다. 용회마을 주민 송루시아씨의 말이다.

 

“비록 우리는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밀려가지고 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싸움에서 결코 진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 쪼끄마한 밀양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잖아요. 사람들에게 전기에 대한 문제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우리가 진 게 아니라 생각해요. 지금 우리 눈에 실현은 안됐지만 긴 시간이 지나서도 반드시 진실은 드러날 것이고, 뭐가 더 정의로운지, 우리가 왜 그리했는지를 알게 될 거다. 우리끼리 그런 이야기를 해요.”

 

6월 11일의 잔혹했던 무법천지의 강제철거를 겪고서도 밀양 주민들은 빠르게 다시 일어섰다. 이틀 만에 주민회의를 열고 서로를 격려하며 새로운 싸움을 준비했다. 대책위 활동가들이 어리둥절해할 정도였다. 한동안 한가해지리라 생각했던 활동가들이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바빠졌다. 7개 마을의 농성장을 새롭게 마련하고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시즌2’를 선언했다.

 

그와 함께 노후 핵발전소 폐쇄운동, 전원개발촉진법으로 대표되는 송전탑 3대악법 개정운동 등 구체적인 활동과제들을 내놓았다.

 

새 단장된 마을 사랑방에서 이어지는 연대활동

 

▲  용회마을 사랑방에서는 금요일마다 바느질 모임이 열린다.    ©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새로이 마련된 7개 농성장 중 하나인 단장면 용회마을에 마련된 사랑방에서는 매주 금요일 마을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바느질 모임이 열리고 있다. 팥주머니, 보자기 등 손바느질을 통해 다양한 물품들을 만든다.

 

이 모임은 꾸준히 밀양에서 연대활동을 해오고 있는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들이 주최하는 모임이다. 어린이책시민연대는 지난해 10월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연대활동을 시작했다. 매주 한 번씩 열리는 정기모임을 밀양에서 진행하면서 경상남도 각 지역에서 모인 여러 회원들이 밀양주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나갔다.

 

어린이책시민연대 김금일씨는 경찰의 폭력을 목격하고 “우리가 없으면 경찰이 사람을 잡겠구나 하는 생각에” 밀양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용회마을의 101번 송전탑 부지는 다른 마을과 달리 차량접근이 어렵고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어린이책시민연대의 꾸준한 연대활동은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 사람들 아니었으면 우리도 그렇게 오래 못 갔을 것 같아요. 연대의 힘이라는 게 진짜 중요해요.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향으로 바라본다는 게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만난다는 자체도 그렇고 서로 힘이 되고 보완이 되요.” 용회마을 주민 송루시아씨의 말이다.

 

연대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어린이책시민연대의 김금일씨는 101번 송전탑 부지에 세워졌던 움막에서 머무른 시간이 많았다. 101번 움막은 다른 움막과 달리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물도 끌어올 수 없어서 일일이 물을 짊어다 날라야 했다. 김씨는 “전기 없는 삶이라는 게 얼마나 평화로운지 알겠더라”며 그 경험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때 삶이 좀 달라질 거 같다”고 말한다.

 

“전 비염이 정말 심하거든요. 거기 있으면서 비염이 사라졌어요. 지금은 내려온 지 몇 달 됐다고 비염이 다시 생겼어요. 그 정도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자연도 해치지만 우리 몸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고요.”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관계가 바탕이 되었기에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20일부터 모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함께 할 거리를 찾다보니 선택된 바느질인데,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현장에서 욕설과 폭력을 당하며 시끄럽던 마음이, 함께 모여서 바느질을 하면서 고요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서툴지만 하나씩 물건을 만드는 재미에, 함께 어울려 깔깔거리며 웃는 재미에, 바쁜 농사일을 잠시 놓고 함께 하는 주민들이 많다. 연대하러 오는 사람들까지 매주 20여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그동안 만든 물품들은 8월 30일로 예정된 밀양 연대 장터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할매들의 힘, 쉽게 무너지지 않겠구나

 

밀양의 싸움은 ‘할매’들의 싸움으로 이야기될 만큼 여성들의 힘이 큰 주목을 받았다. 용회마을 주민 구미현씨는 8월 22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국여성학회 주최의 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해 질문을 받았다. 구씨는 여성들이 도드라진 활동을 해내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지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우선 시골마을에 여성들이 많다는 현실적 이유를 먼저 꼽았다. ‘할배’보다 ‘할매’들이 더 많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할매’들의 활동이 눈에 띈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꼽은 이유는 ‘전략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이었다. 남성들이 전면에 서서 경찰이나 한전과 싸우게 되면 폭력사태가 더 많이 발생하고, 또 ‘남성’이기 때문에 연행되는 일도 잦다는 것이다. 나이든 여성들이 전면에 서면 상대적으로 그러한 일들이 덜 일어난다고 한다. 나이든 여성은 물리적인 힘의 위계에서 가장 약자에 속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6.11 행정대집행 당일 움막에서 끌려나온 구미현씨.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공권력의 폭력과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 박희정

 

구미현씨는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면서 여성들이 더 적극적이고 끈질긴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꼽았다. 어린이책협동조합의 김금일씨는 이와 관련해 행정대집행이 있던 날 밀양 여성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한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129번 무너지고 127번 무너지고 상동 무너지고 하는 걸 실시간 SNS로 보면서 사실 비참했거든요. 그 때 밀양 언니들이 어떻게 했냐면 움막에 있던 짐을 다 챙겼어요. 하나하나 다 챙겨서 한곳에 가져다 모으는 거예요. 다 건져야 된다고. 그리고 남은 음식 재료로 부침개 부쳐서 다 나눠먹였어요. 저는 다 내버리고 싶고, 이게 뭐가 중요해 분노하고 있는데. 언니들은 딱 눈물 닦고 그거 챙겨서 사람들 거두어 먹이는 거예요. 저 힘이 있는 한은 안 무너지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할매들의 힘이 저런 거구나.

 

끊어진 쇠사슬을 구미현 선생님이 챙겼어요. (끌려나오지 않기 위해 주민들은 움막에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었다) 그날 몇날 며칠을 산에서 있었고 온몸이 아픈데도 그 쇠사슬을 다 들고 내려왔단 말이에요. 그 언니들이 가지고 있는 의지. 힘들을 꺾이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옆에 같이 있고 싶었어요.”

 

다양하게 전개될 ‘송전탑 반대 싸움’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싸움은 더욱더 다양한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 8월 19일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6월 11일 행정대집행 당시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유린하였으며 이것이 헌법상 자유권을 침해한 행위임”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때 경찰공무원과 밀양시 공무원의 폭력과 불법행위로 입은 신체적 상해와 정신적인 손해에 대해 국가배상청구소송도 진행 중이다.

 

▲  토요일인데도 장터에 내놓을 물품 준비를 위해 모인 바느질 모임. 왼쪽 구미현. 가운데 김금일.   © 박희정

 

또한 현재 송전탑에 맞서 싸우고 있는 청도 삼평리를 비롯, 새롭게 고압 송전탑 예정지로 거론되고 있는 곳들과 연대활동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한전은 지난달 8일 신울진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2019년 말까지 765㎸ 신경기변전소와 송전선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여주, 이천, 광주, 양평 등 4개 시,군 5곳에 변전소 예비후보지를 확정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는 송전탑 건설지역 및 예정 지역의 주민들과 연대해 송주법, 전기사업법, 전원개발촉진법 등 ‘송전탑 3대 악법’의 개정 운동에도 함께해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면서 주민들은 자연스레 탈핵에 대해 눈뜨게 되었다. 밀양을 관통하는 76만 5천 볼트의 고압송전탑은 핵발전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탈핵에 대한 관심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등 노후한 핵발전소를 멈추기 위한 운동은 ‘밀양 송전탑 시즌2’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의 설립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농민들이 생업을 이어나갈 힘을 기르고, 도시와 연대통로를 더욱 확장해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300여명의 출자자가 모여 창립총회를 치렀고, 8월 30일 첫 연대장터를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my765kvou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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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8/29 [12:20]  최종편집: ⓒ 일다
 
독자 14/08/29 [17:38] 수정 삭제  
  이후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꾸준한 연대와 기록으로 함께하는 작가님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gram 14/08/30 [12:03] 수정 삭제  
  밀양의 친구들... 희망입니다.
14/09/05 [15:38] 수정 삭제  
  기사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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