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담 너머 엿보는 작은아지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63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9/17 [18:23]

고양이처럼 담 너머 엿보는 작은아지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63화

김담 | 입력 : 2014/09/17 [18:23]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야야! 인제는 불앞에 앉기만 하몬 일나기가 싫데이!-

고개를 삐딱하게 뉘여 아궁이속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보면서 광수에미가 말한다.

-지도 그렇심더. 아침에 식은 방에서 이불속에 있는 거 보담예. 고만 불 때고 그 앞에서 불째는 기 한결 따십니더!-

소매를 걷어붙이고 정기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두 여자는 주거니 받거니 하거나 하지 않거나 별로 다를 바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우리 아아들 안 춥겠나? 입동이 어젠가 그젠가? 인젠 군불도 넉넉히 때야 아침꺼정 간데이. 그나저나- 하고는 정기 한 편에 쌓인 장작더미를 둘러보는 광수에미는 -뒷단에 장작은 울매나 있노?- 바로 정기 뒷문밖에 있건만 불앞을 떠나기 싫은 광수에미는 소향에게 묻는다.

-요새는 세 군데나 때다 보이께네예. 벌써 쑥 들어갔어예-

-내 글치 싶다. 아바이한테 말해서 몇 평 더 사오라 케야지. 눈 쌓이기 전에 나무는 들여놔야 된데이. 이참에 우리 집에도 들이놓고-

 

대부분의 집에서는 볏단이나 깻단 혹은 콩단들이 아궁이 속에 들어가지만 그래도 종가에는 장작을 때고 있다. 산에는 나무가 귀하디귀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산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는 통에 알불을 피울 장작은 멀고 깊은 산에서 나오는 통에 값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종가에서는 정기 뒷단 처마 밑에 넉넉히 쌓아놓고 겨울을 나는 것이 다 태봉뜰이 주는 후한 가세 덕이다.

 

-아주버님은 여태 안 일났나? 우째 기척이 없노? 아침이 다 됐는데-

소향은 대꾸를 안 한다. 요즘 영감님 말만 나오면 괜히 화두를 피하거나 딴말로 얼버무린다. 하기야 소향이 신발 감추고 건넌방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이미 공표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소향의 입으로 초저녁은 건넌방에서 자고 새벽잠은 아래채에서 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알게 되면 알 테고 모르면 모를 테지 하는 마음이다.

 

-광수야! 일나라. 학교 안 가나?-

태섭도 광수에미의 거칠 것 없는 목소리를 방안에서 듣고 있다. 사나흘째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어색해하는 소향을 방으로 불러들였는데 아침마다 자고나면 소향이 없어져 버린다. 동지는 아직 달포쯤 남았지만 그래도 겨울밤이 긴데 눈이 떠지는 새벽에 옆이 허전한 것이 내심 아쉽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 걸쭉한 제수가 소향이 건넌방에서 나오는 걸 보기라도 한다면 태섭의 체면도 사나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알 때 알지라도 목격은 피하는 게 한결 낫다고 생각한다.

-광수야! 집에 가서 아부지 오라 케라. 밥 묵구로!-

그 말은 태섭이에게도 들으라는 소리다.

아래채 방문이 열리고 광수가 눈을 비비며 나와 정기로 들어서서 -재수가 오줌 쌌다. 내  옷도 젖었다 아이가- 하며 바지를 들어 보인다.

-우야꼬. 그 자슥- 하고는 큰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아직 방문이 열려있는 소향이 방으로 광수에미가 간다.

 

이불을 푹 둘러쓴 채 꼼짝도 안하고 있는 재수를 손바닥으로 크게 한 대 후려치며 -내 안켔나? 오줌 마려우민 말하라꼬. 이불에 싸지 말고- 하고는 이불을 확 걷어내자 재수가 꼬물거리며 일어나 앉으며 -아지매가 엄따- 하고는 눈을 비비며 엄마의 눈치를 한껏 본다.

-아지매가 엄따이? 밴소 가자꼬 안했나?-

-할라꼬 일났는데… 아지매가 엄었다- 하고 지은 죄값을 치르느라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소향이가 엄써? 일났는데?-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올린다. 아! 그래! 형님이 절간에 가고…. 소향이가 아를 놓으려고 왔다고 켔지.

참 무서운 아이다.

오라버니에게 돈도 주었다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은 아이다.

문둥이라는 사실은커녕 만났다거나 보았다는 말도 한마디 없었던 아이다. 머리채가 휘둘려 땅에 꼬꾸라졌을 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은 아이다. 기가 막힐 만큼 차돌 같은 아이다 싶은 생각에 광수에미는 중치가 막힌다. 그러면… 이제 건넌방 출입을 한단 말인가? 하기야… 하늘을 봐야 별을 딸 일 아닌가 하면서도 모든 상황이 그저 엮어지지 않은 짚단모양으로 어수선하게 마음속에 널려있다.

 

그때 소향이 밥상을 들고 문 앞에 왔다. 여름 같으면 부엌에서 먹곤 했지만 추워진 다음부터는 상을 방에 들이는 것이다.

-광수아부지하고 영감님 상은 건넌방에 들랐습니더-

영감님이라고 부르는 소향의 말이 광수에미의 귀에 오늘따라 이상하게 들린다.

광수에미는 상을 들고 문 앞에 서있는 소향을 물끄러미 보면서 상을 문지방 안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영감님? 이라고? 귀에 울리는 단어를 되새긴다.

-좀 받아주이소-

소향의 말에 정신이 드는 광수에미는 그제야 큰 엉덩이를 방에서 떼며 -그래, 그래, 내 정신 좀 봐라- 하고는 상을 받아들이고 나간 넋을 추린 후 상 앞에 앉는다.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어수선한 광수에미다.

자기 서방이 딴계집을 품는 것도 아니고 자기 딸이 남정네를 품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이미 듣기도 하고 알기도 한 사실이건만 막상 한밤중에 건넌방으로 소향이 출입을 한다는 것을 짐작 하고나니 마음이 산란한 광수에미다.

아! 그래! 그것이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장손 문제. 혹시라도 소향이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니면 낳더라도 계집을 낳는다면…. 여전히 우리 광수나 재수가 이집의 대를 이을 수 있다는 것. 바로 그 미련 때문에 지금 광수에미는 정신이 혼란스러운 것이다. 판이 벌어진 것이다. 그 판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하고 정신을 차려 맞은편에서 숟가락질을 하고 있는 소향의 얼굴을 본다.

이 집안 모든 재물을 저 아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자기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입맛도 없고 밥맛도 없어진 광수에미는 상에서 돌아앉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와예? 와 안 잡숩습니꺼?-

소향이 숟가락을 입에 걸친 채 의아하게 눈을 뜨고 묻는다.

-아이다. 어서 묵어라. 광수야. 오늘밤부터는 재수하고 집에 와 자거래이- 하고 광수의 밥 먹는 얼굴을 대견한 듯 한번 들여다보고 일어서서 나와 버린다.

 

*     *     *

 

태섭도 건넌방에서 태광이와 겸상을 하고 있다.

-니는 운제 읍내에 갈 일 없나?-

태섭이 태광이에게 묻는다.

-와예?-

고개도 눈길도 태섭에게 향하지 않은 채 무심히 답하는 태광이다.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고 한참을 우물거려 삼킨 후에야 태섭이 입을 연다.

-지목수한테 그 장씨라는 사람 좀 데리고 오라 케라. 한번 말이 난 김에 일을 매조지야지. 오든가 말든가… 아니몬… 딴사람을 알아보든가-

-아! 맞심더! 이왕지사 머슴을 들일 거민사… 그 사람이 제법 쓸 만하던데. 내 오늘 지목수 찾아서 말하지예 뭐. 요새 담뱃돈이 풀리서 읍네에도 시끌시끌합니더. 술집들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무렵부터 시작된 잎담배 수납이 고을에 돈을 풀었다. 태봉이나 인근의 넓은 뜰은 대부분 나락농사를 짓지만 조금 멀리 있는 산골에는 목돈 마련하기에 가장 좋은 담배 농사가 제일이었다.

찌고 말리고 또 찌고 말리고를 반복할 때마다 초가지붕보다 높은 마치 전망대 같은 건조장 통풍구에는 흰 연기인지 수증기인지가 풀풀 뿜어져 나오곤 한다. 댓진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워도 일 년 피워댈 담배만 남기고는 모두 엮어서 뭉치고 수매를 하고 그나마 등급을 잘 받는 날에는 시퍼런 지전을 다발로 구경할 수 있는 때가 바로 그날뿐이었다. 그 담뱃돈이 요즘 읍내를 시끌거리게 하고 있다는 태광의 말이었다.

 

-그래? 다 한때지! 아, 그런 맛에 사람들 사는 거지. 케도… 노름은 하지 말아야 될낀데-

염려하는 마음으로 태섭은 한마디 한다. 그것 역시 태광을 빗대어 하는 말 인줄 태광도 안다.

태광은 힐끗 눈을 치켜뜨고 형님을 한번 본다. 그 태광의 눈길을 태섭도 받았다. 태섭은 그래! 너도 내 말을 알아들었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다. 긴 겨울철 농한기에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서 태광도 논 몇 마지기 날린 것을 태섭이 형수 모르게 대신 갚아준 것을 둘만이 알고 있다.

 

지난 일에 입맛이 쓰게 변한 태광은 담배를 핑계 삼아 태섭의 방을 나와 마당에서 담배 한대를 깊게 피워대는데 정기에 있던 마눌이 고개를 빼내어 한마디 한다.

-광수아부지예, 장작 좀 들라야 되겠심더-

타는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채 대문으로 발을 옮기며 태광은 짧게 답한다.

-알았다-

 

*     *     *

 

마을이 시끌거린다. 초가지붕을 잇느라고 집집마다 남정네들이 벅적거리고 여인네들은 매운 눈을 찡그려가며 가마솥에 불을 때어 메주콩을 익히거나 밤이 되면 고치를 물에 풀어 저어대며 실을 뽑고 물레를 돌리랴 명주를 짜랴 모두들 나름대로의 일에 매달린다.

 

태양빛도 죽어가는 동짓달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할 일도 그다지 없는 태광이지만 오늘도 어디선가에서 얻어 마신 술로 떡이 되어 늦게 돌아왔다.

광수에미는 늦게 돌아온 서방을 이미 잠에 취해 널브러진 광수와 재수 옆에 잡아끌어 눕히고는 그뭄에 가까운 칠흑의 밤을 고양이 마냥 엿보고 있다. 하지만 엿보기에는 너무 어두운 탓에 오히려 귀를 세워 엿듣고 있는 중이다. 혹시라도 소향이 건넌방으로 가는 것을 목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을 열고 닫고 하며 방을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담 너머로 귀를 세워보지만 여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추위에 방문을 닫고 안에 들어가 있으면 또 궁금해져서 문을 열고 나와서 담 너머 소리를 기다리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몸이 후들거리면 또 방안으로 들어가고 하는 중이다.

 

-추버 죽겠다. 니는 와 들락거리노? 한밤중에?-

태광이 버럭 지르는 소리에 마루에 있는 광수에미가 후다닥 방안으로 뛰어든다.

-와카노? 밖에 뭐있나?-

태광의 말이 술에 꼬여있다.

-아입니더. 그냥 자소고만!-

거의 소곤거리듯이 광수에미는 답한다.

-아까부터 들락거리는 기… 니 무슨 일 있제? 뭐고?-

술기운이라 말소리가 더 크다.

-고마 자라카이. 이 양반이 한밤중에 와 이리 큰소리요?-

팔을 허공에 대고 한바탕 휘저으며 하는 말이지만 여전히 광수에미의 말은 소곤거린다.

-내 밴소 좀 갔다 올란다-

비틀거리며 문을 활짝 열고 나선 태광이 한참 후에 돌아왔다. 오줌보를 시원하게 비운 탓인지 아니면 찬 밤공기에 정신이 번쩍 든 탓인지 제법 맑은 정신이다.

-니 아까부터 와 들락거맀노?-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대며 묻는다.

-아이구! 숨통 막히구로 와 자다가 담배를 피울꼬-

대답 대신 팔로 연기를 휘저어댄다.

 

그때 꼬무락 생쥐소리 들은 고양이 마냥 광수에미가 무슨 소릴 감지한 듯 귀를 쫑긋 문에 대더니 살며시 일어서서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마루로 나서 담 너머로 얼굴을 빼내어 살핀다.

소향이 아랫방 문을 이제 막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소향이 옷가지를 손에 든 채 건넌방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보니 무슨 큰 비밀이라도 풀린 양 옳지! 하고 입맛을 다신 후 방안으로 들어선다.

-니 와카노? 정말! 밖에 무신이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대며 태광이 버럭 소릴 지른다.

광수에미는 손사래를 치며 조용히 하란 듯 또 소곤거리는 말로 달랜다.

-아무것도 아입니더. 고마 잡시더- 하면서 체념한 듯 자고 있는 광수와 재수에게 이불자락을 끌어다 덮어준다.

-말하라이! 뭐꼬? 아까부터?-

채근하는 태광에게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광수에미는 무슨 큰 비밀이라도 토설하듯이 제법 줄기가 들어있는 말투의 굵직한 목소리로 -소향이가 건넌방에 들락거립니더- 하고는 태광의 얼굴을 그대로 보고 있다.

 

갑자기 들은 소리에 태광도 말없이 마누라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그래서 니가 들락거맀나?- 마치 나무라듯 한마디 한다.

또 한참을 마누라의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기던 태광이 벌렁 자리에 누우며 -그기사 그리 될 일 아이가? 행수가 절에 갈 때부터- 체념한 듯 당연한 듯 말하지만 태광도 속으로는 무슨 비밀을 안 것처럼 신기한 마음이다.

-아가… 우째나… 구렁이 같은지. 말도 한마디 없이-

주섬주섬 옷가지를 벗어젖히고는 이불속으로 몸을 들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마누라를 향해 눈을 감은 채로 아직 잠이 들지 않은 태광이 -그럼 니한테 행님하고 자러 건너방에 갑니다 하고 고하고 가야 되나?- 마치 비아냥거리는 말투다.

 

광수에미도 문득 서방의 말을 듣고 보니 자기가 좀전에 한 말이 우습다. 한마디 말도 없이 라는 자기의 말이 마치 원망하듯 들리는데 도대체 누굴 원망하고 뭘 원망할 것이 있는가?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깜깜한 천장만 보고 있자니 눈이 감겼는지 눈이 떠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꼼지락 하고 태광이 돌아누우며 탄식조의 말을 한다.

-행님은 무신 복이 그리 많은지-

 

광수에미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다. 아니 그 말이 뭔지 생각하느라 한참이 걸린 것이다. 갑자기 벌떡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더니 서방의 등짝을 후려친다.

-와? 당신도 젊은 아 하나 들이고 싶나?-

-아프다! 여편네야! 와 때리고 지랄이고?-

되돌아 누워 마눌의 얼굴을 보며 짜증을 내자 광수에미는 이번에는 손가락을 모아 태광의 팔을 꼬집어댄다.

-당신은 꿈에도 생각만 해봐라. 내 가마 안 둔다!-

-아야! 이 마누라가 미쳤나? 한밤중에 와 이 지랄이고? -

 

그 뒤로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깜깜한 천장만 보고 누워있다. 태광은 형님의 복이 부럽고 광수에미는 자신과 가족의, 특히 자식의 복이 저 소향이의 가랑이 사이에 놓여있다는 것에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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