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6주년에 묻다 ‘생명은 소중한가요?’

[내가 만난 세상, 사람] 안전한 삶을 희망하며

너울 | 기사입력 2015/01/21 [12:25]

용산참사 6주년에 묻다 ‘생명은 소중한가요?’

[내가 만난 세상, 사람] 안전한 삶을 희망하며

너울 | 입력 : 2015/01/21 [12:25]

※ 너울 님은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수기를 쓴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예전에 일했던 공장의 대리님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자신의 친구가 사정이 아주 딱하게 되었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도움을 청해오셨다.

 

대리님이 말한 친구분은 오래 전에 이혼 문제로 나와 한번 통화했던 적이 있는 분이었다. 그녀는 한때 ‘사모님’이었다. 남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고, 시부모님 뒷바라지를 말끔하게 해내었고, 딸 하나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유일한 걱정이었던 사람이다. 오롯이 살림만 할 줄 알던 그녀가 집안의 ‘가장’이 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별안간 찾아왔다.

 

어느 날 남편이 이혼을 요구해온 것이다. 남편에게는 오래 전부터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남편은 ‘아들 못 낳은 네가 양보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자격지심에 이혼에 응했다고 한다. 치밀하게도, 시아버지가 돌아가긴 후 3년 동안 남편은 재산을 다른 사람들 명의로 다 돌려놓았다. 이혼을 결심한 그녀는 재산 분할도 제대로 요구하지 않았다.

 

딸을 대학에 보내고, 그녀는 자신이 늙어서 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가진 것 다 털어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가게 문을 연 지 4개월만에 재개발 공시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게를 얻을 때만 해도 건물주는 하고 싶은 만큼 오래오래 장사를 하라고 했었다. 높은 권리금을 치렀고, 남은 생 바지런하게 함께할 가게를 예쁘게 인테리어 했는데, 모든 것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곳 저곳 문의를 해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으니 재개발이 될 때까지 장사를 하라며 ‘운이 나빴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전화기를 타고 그녀의 울음 속에 한숨이 전해져 왔다. 사람의 삶이 자본에 의해 예상치 않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세상이 해주는 말은 ‘운이 나빴다’는 것이 전부이다. 재개발로 인해 막대한 이윤을 얻을 대기업의 자본도, 그리고 국민을 지켜줘야 하는 공권력도, 그녀에게 아무 대책도 사과도 없다.

 

▲  용산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 사진작가 정택용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났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철거에 반대하는 상가 세입자들이 빈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의 진압으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했다. 유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시신이 부검되었고, 사망자에 대한 영결식이 치러지기까지 355일이 걸렸다. 철거민 여덟 명이 구속되었다. 최근에야 배후 세력이라고 몰렸던 전국철거민연합 대표가 마지막으로 출소했다.

 

용산참사에 충격을 받은 대한민국은 이후 대책을 촉구하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이어졌지만, 철거민들의 현실은 여전히 막막하다.

 

6년 전 그날 이후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살인진압을 지휘했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상가 권리금 문제도 진전이 없다. 상가 임차인의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한다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정부 안으로 지난해 발의됐지만, 재개발과 재건축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제2의 용산참사를 방지하려면 ‘강제 퇴거 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국회는 귀를 닫고 있다.

 

용산참사를 통해, 자본이 얼마나 무서우며 이를 옹호하는 국가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로 인해 서민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 목도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보며 이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수익과 비용 절감 논리, 생명보다도 돈이 더 중요해진 가치관, 관료 사회의 부정부패와 적당주의, 구조와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 그로 인해 학생들 다수를 태운 세월호 탑승 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였고, 9명이 실종되었다.

 

지금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6년 전, 망루 위에 올랐던 용산 참사 철거민들의 외침은 ‘여기,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져가고 있다.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해,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의 외침을 깊이 되새겨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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