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증 까라’는 말, 이제 없어질 때 됐다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 1년① 주민등록법 개정안 비판

신훈민 | 기사입력 2015/01/26 [14:57]

‘민증 까라’는 말, 이제 없어질 때 됐다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 1년① 주민등록법 개정안 비판

신훈민 | 입력 : 2015/01/26 [14:57]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 이후 1년, 정부가 내놓은 대책과 사회적 논의들을 검토하며 주민번호 시스템의 현 주소를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사를 3회 보도합니다. 주민등록법 일부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첫 기사의 필자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신훈민 변호사입니다. –편집자 주

 

유출된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14년 1월 18일, 카드3사(KB국민, NH농협, 롯데)에서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주민등록제도를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손질하겠다는 취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같은 달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는 주민번호가 대다수 거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있어서 한번 유출이 되면 그 피해가 2차, 3차 피해로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외국 사례를 참고로 해서 주민번호와 함께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변죽만 울리고 끝났습니다. 소란스러웠지만, 변한 것은 없습니다.

 

▲  2014년 9월 안전행정부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개최 <주민등록번호 개선방안> 공청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작년 내내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했던 정부가 한 해를 마무리하던 12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주민등록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나 봅니다. 정부는 유출된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있다고 알렸습니다. 언론도 정부의 자료를 그대로 받아서 올해부터는 유출된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개정안을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제7조의 4(주민등록번호의 변경)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갖추어 주민등록지의 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1.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어 생명ㆍ신체에 대한 위해(危害) 또는 재산에 대한 중대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2. 다음 각 목의 성폭력 관련 피해자로서 주민등록번호의 유출로 인하여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가.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6호에 따른 피해아동ㆍ청소년

나.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에 따른 성폭력피해자

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4호에 따른 성매매피해자

 

요약하면 1)주민번호가 유출되어 생명ㆍ신체에 대한 위해나 재산에 대한 ‘중대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는 사람과 2)성폭력 관련 피해자가 주민번호 유출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면 바꿔주겠다는 것입니다.

 

‘중대한’ 피해 입증…주민번호 변경 거의 불가능

 

문제점을 간단하게 말씀 드리면 ‘중대한’이라는 요건 때문에 주민번호 변경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성폭력 피해자를 중심으로 주민번호 변경이 가능해진다면 ‘주민번호 변경 = 성폭력 피해자’ 라는 인식이 생겨서 주민번호 변경 자체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에도 주민번호를 변경하기 위해서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갖추어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주민번호 변경 신청을 해야 합니다. 실효성이 있을지 정말 의문입니다. 언론 홍보를 위한 생색내기용 입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지시가 무서웠나 봅니다.

 

▲  2014년 8월 현행 주민번호 체계의 근본적인 개편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 제공: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부가 홍보했던 주민등록법 일부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와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바탕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중대한’이라는 요건을 문제 삼았습니다. “‘중대한’이라고 하는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재산상 손실이 발생한 자는 자신의 주민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가 이미 유출되어 금융 범죄에 잠재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보 주체의 재산상 피해 금액이 크고 작음에 따라 법률적 구제의 형평성을 달리하여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주민번호 변경 사유가 드러날 경우, 성폭력 관련 피해사실이 알려질 우려가 있다”면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우려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안과 같이 주민번호 유출로 인해 생명ㆍ신체 혹은 중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는 사람으로 제한할 경우에 개정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어렵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요컨대 주민번호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민번호도 유출되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부의 개정안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개인정보 유출사고 이후 한 달 동안 카드 3사에서 탈회 84만건, 재발급 383만7천건, 해지 228만3천건이 이루어지는 등 사회적 혼란이 있었지만, ‘모든 개인정보의 핵심고리인 주민번호가 유출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은 형식적인 입법안 만들기에 그쳤습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원칙은 주민번호 변경 허용, 예외적으로 신분 세탁ㆍ범죄 은폐 등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금지하면 됩니다. 참고로 몇 년 전에 주민식별번호를 도입한 일본은 한국의 주민번호 유출 사고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민식별번호의 자유로운 변경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일본보다도 못합니다.

 

생일, 성별, 출생지, 외국인 여부까지 드러내는 번호

 

주민번호는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주민번호 변경과 더불어 집중했던 이슈는 ‘주민번호 체계의 변경’입니다. 현재 주민번호 부여 체계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생년월일, 성별, 출신 지역, 외국인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고, 특정 자리에 따라 다문화 가정이라는 사실까지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된 주민번호는 식별이나 인증을 넘어서 개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본인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까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과도한 침해입니다.

 

주민번호는 카드번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민번호는 식별이나 인증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포함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민번호를 도입할 때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주민번호를 생성한 것은 주민번호의 중복 발급의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수작업으로 주민번호를 부여하면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생년월일ㆍ성별ㆍ지역 코드ㆍ출생신고 순서를 기반으로 주민번호를 발급하게 되면 전국적인 전산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중복되지 않는 주민번호를 발급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뒤쳐져 있던 시대적 한계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적인 전산망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주민번호를 발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개인정보가 없는 임의의 숫자로 된 주민번호를 부여하더라도 중복 발급 문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나이, 성별, 출생지에 따른 차별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주민번호 때문에 이런 차별이 발생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주민번호가 이런 현상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민증 까라’는 이야기가 이제 없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일베’에서 주민번호의 출생지 번호에 기반한 ‘전라도 검색기’를 만들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의식이 만연한 상황에서, 출생지가 표시된 주민번호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정부의 일부 개정안에는 주민번호 부여 방법을 변경하겠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문제의식의 부재입니다. 정부는 주민번호를 이용해 엑셀로 국민을 관리하나 봅니다. 일괄적 변경이 불가능하다면, 주민번호 변경을 신청한 사람들과 신생아들에게 임의숫자로 구성된 새로운 주민번호를 부여하면 됩니다. 순차적으로 점진적인 변화가 가능합니다.

 

요약하겠습니다. 정부가 주민등록법 일부 개정안을 만든 목적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이 체계가 좋다. 바꿀 생각 없다. 너희들은 국가가 부여한 번호 부여잡고 살아라.’ 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조(정의) 제1호에서 개인정보를 정의하면서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개인정보의 대표적인 예시로 들었습니다. 성명은 바꿀 수 있습니다. 특별하지 않습니다. 성명학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바꿀 수 있습니다. 개인의 통제권 하에 있어야 개인정보입니다. 주민번호가 과연 개인정보인가요? 법에서는 개인정보라고 규정하였지만, 정부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꿀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선택지조차 없다면 개인정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이핀, 누가 쓰고 계십니까?

 

앞서 개인정보 유출사고 이후 정부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정부가 무엇인가 하기는 했습니다. 혼란만 야기했고 쓸모 없는 일이라서 문제입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겠습니다.

 

정부는 주민번호 해결책으로 마이핀을 도입했습니다. 주민번호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입니다. 마이핀은 곧바로 도입되었습니다. 마이핀은 아이핀 뒤에 숨겨져 있는 숫자를 외부로 표시한 것이라 예산도 거의 안 듭니다. 언론과 공공기관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습니다.

 

지금 이 기사를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 몇 분이나 마이핀을 쓰십니까? 호기심에 만들었을지언정, 실제 사용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당연합니다. 필요가 없는 제도였습니다.

 

철저하게 기업을 위한 제도입니다. 그 동안 기업에서 주민번호로 고객을 관리했는데, 이제 주민번호를 사용하지 못하니 정부가 주민번호에 기반한 마이핀을 발급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고객관리는 기업의 몫입니다. 거의 전 국민의 주민번호가 유출되어 충격에 빠진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을 위해서 주민번호에 기반한 마이핀을 발급하겠다고 나서는 상황 자체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국가가 국민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일종의 식별 번호는 필요합니다. 정부와 기업은 글로벌화를 외칩니다. 그러나 이런 번호를 기업의 고객관리용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마이핀은 기업의 고객관리를 위해서, 쉽게 말하면 마일리지 등을 관리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소상공인들에게 마이핀은 의미가 없습니다. 고객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최소한 정보만 받아도 고객관리가 가능합니다. 이름과 전화번호면 됩니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여러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고객의 통합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 경우 주민번호가 있다면 매우 편리합니다. 기업에서 주민번호를 장사 수단으로 마구 활용하다가 거의 모든 국민의 주민번호가 유출되었습니다.

 

주민번호에 기반한 마이핀도 대기업에겐 편리한 방법입니다. 정부에서 대기업의 고객관리를 도와준 꼴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객관리를 못하는 기업은 도태되면 됩니다. 글로벌화? 한국의 대기업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식별 수단이 없는 외국에서 어떻게 장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부는 국민의 주민번호를 효율, 관리, 수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이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주민번호 문제 소홀히 하고 회피하는 정부

 

주민번호체계 개편 요구 1인 시위.  ©진보네트워크센터

주민번호 체계 개편 논의도 있었습니다. 주민번호 일부 변경이 아니라 주민번호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작년 중반에 정부에서 TF를 꾸렸습니다. 9월에는 공개 공청회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결론도 없었습니다. 결론이 없었으니 이것도 하나의 결론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여러 가지 안이 제시되었지만, 각 안에 따른 제대로 된 비용 추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논의가 이어질지 의문입니다. 늘 그렇듯이 반짝하고 그만입니다.

 

작년부터 주민번호 수집ㆍ처리가 제한되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른 조치입니다. 그런데 이 개정은 2013년에 있었습니다. 작년에 시행되었을 뿐입니다. 우연히 개인정보 유출사고와 겹쳐서 주민번호 수집ㆍ처리 제한이 정부의 대책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우연일 뿐입니다.

 

법령에 의하지 않고는 주민번호를 수집ㆍ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병원 예약할 때 주민번호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계속 논란이 되었습니다.

 

법령을 정비할 때는 40일 정도의 입법예고 기간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들이 법령에 대해서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는 제도입니다. 주민번호 수집ㆍ처리 제한을 앞두고 무려 135개의 대통령령이 일괄 개정되었습니다. 입법 예고 기간은 고작 25일이었습니다. 정부가 주민번호 문제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정부에서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논의와 고민이 있기는 했겠지만, 면피용으로 그쳤습니다. 그나마 정부가 제시한 실효성이 없는 몇 가지 정책도 앞으로 잘 해보겠다는 것뿐입니다. 이미 유출된 주민번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색내기용 법안만을 내밀었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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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uno 2015/02/01 [12:01] 수정 | 삭제
  • 국민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쉽게하려고... 박근혜 정부는 바꿀 생각 전혀 없을 것 같군요
  • 흐얼 2015/01/27 [07:24]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마이핀이 그래서 도입된 거였군요... 이 정부 정말 짜증나네요
  • nikky 2015/01/26 [18:17] 수정 | 삭제
  • 기업이랑 사이트들에서 주민번호 수집 안하겠다는 메일 계속 받았었는데 그게 주민번호 대량유출 사태 때문에 바뀌게 된 게 아니었군요. 헐. 그럼 정부가 대책으로 한 게 뭐가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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