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언제까지 우연과 운명을 믿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어차피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므로, 생각해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찾아오면 고마워하면 되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 무엇도 탓할 수 없다.
앨범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앨범을 만들라고 돈을 먼저 주는 마음은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을 믿음이라 했으니 말이다. 앨범을 선 주문을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배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특별히 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최대한 찾아가보려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또 생겼다. 잊지 않도록 잘 기록해 두어야겠다.
작은 서점들이 문닫는 요즘 책방을 낸 ‘일단 멈춤’
작년에 부산에서 A의 사진 여행전 오프닝 공연을 했는데, 굉장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가끔 찾아본다.
※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 [러브쏭] 공연 유튜브 영상 youtu.be/5e_xkgb2ZKY
지금은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서 앨범 배달을 핑계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며칠 후 공연할 장소인 독립출판서점 ‘일단 멈춤’에서 만나기로 했다. 낯선 장소에서 하는 공연이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가능하면 공연 전에 기회를 만들어 찾아가보곤 하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일타이피!
볕이 잘 드는 주택가 사거리에 자리잡은 ‘일단 멈춤’은 작은 동네 책방이다. 여행서적을 주로 판매하며 소소하고 재미난 이벤트가 종종 열린다. 출입구 앞 계단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동네 주민들이 조용히 고개를 까딱인다.
대형 서점에 밀려 동네 책방들이 속절없이 문을 닫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책방 일을 덜컥 시작한 젊은 여사장님이 우리에게 차를 내어주며 그 곳의 햇살처럼 웃었다.
A에게 앨범을 건네며 책방 사장님에게도 한 장 선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응원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잘 지켜달라고.
“혹시 가수 이내씨 인가요?”
그때 우리보다 먼저 책방에 와 있던 한 손님이 말을 걸어왔다. (사실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라 무척 신기했는데) 내 얼굴을 보고 긴가 민가 하다가 우리 사이에 내 앨범이 오가는 것을 보고 알아봤다고 했다.
자신은 상주에 있는 함창 <카페 버스정류장>의 주인인 박계해 선생님의 제자인데, 선생님을 통해 나를 알게 되어 유튜브에서 노래를 찾아 들었다고 했다. 부산에 살고 있고, 서울에 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일단 멈춤’에 들렀는데 나를 만나 신기하고 반갑다며 앨범을 한 장 구입해주셨다.
한날 한시에 그 곳에 모인 네 사람은 일단 멈추어, 차를 마시며 제법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한 번의 작은 우연과 운명을 경험한 것이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최근 책방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고백하며 소설가 김연수의 글이 옮겨진 ‘일단 멈춤’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았다. 그녀는 그 글에서 ‘가장 무용(無用)한 시간’으로 지금을 견디겠노라며 필사(筆寫, 베껴 씀) 모임을 제안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의 의사를 밝혀 온 눈치다.
잔인한 4월, 바다 속 깊은 곳의 물 온도는 기온보다 두 달 정도 느리게 변한다고 한다. 차가운 시절에도 구석구석 어딘가에 신성한 마음들이 세월을 거스르며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이제 첫 봄을 맞는 동네책방 ‘일단 멈춤’이 뚜벅뚜벅 잘 견뎌 주었으면 좋겠다.
※ 독립출판서점 ‘일단 멈춤’ 블로그 blog.naver.com/stopfornow
덧) 서울에 산다면 책방 출입구 앞에서 매일 기타를 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그 곳의 햇살은 특별했다.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지나가던 행인들이 무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더니 내 이메일 주소를 적어갔다. 사진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얼마 후 현상과 스캔을 거친 사진들이 속속 도착했다.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고 까맣게 잊어버린 경험이 있는 나에게 이 사진들은 부끄러움이고 놀라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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