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오렴” 아이를 함께 키운다

‘도시마 어린이 와쿠와쿠 네트워크’ 구리바야시 치에코 씨

아카이시 치에코 | 기사입력 2015/07/02 [14:58]

“우리 집에 오렴” 아이를 함께 키운다

‘도시마 어린이 와쿠와쿠 네트워크’ 구리바야시 치에코 씨

아카이시 치에코 | 입력 : 2015/07/02 [14:58]

일본에서는 지금 아동의 빈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가슴 아픈 사건도 일어났다. 올해 2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남자중학생이 살해당한 비극이이다. 모자 가정의 어머니가 장시간 일하는 사이, 누구도 아이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듣지 못했다.

 

가정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아동을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도쿄 도시마구에서 지역아동 학습지원 단체와 어린이식당을 만든 구리바야시 치에코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연히 마주친 T군공부방을 시작하다

 

▲  구리바야시 치에코 씨(1966년생)   © 사진: 이다 노리코

구리바야시 씨는 4년 전, 생각지도 못했던 계기로 지인인 T군에게 공부를 가르치게 되었다. 어느 날 슈퍼에서 우연히 마주친 T군이 “나, 공립학교에 못 들어갈지도 몰라”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 발단이었다. T군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구리바야시 씨가 “공부하러 우리 집에 오렴” 했더니, 그날 밤 “진짜로 가르쳐줄 거예요?”하고 드릴을 들고 T군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날부터 구리바야시 씨는 공부방을 시작했다.

 

T군은 오후 6시에 오겠다고 약속해 놓고 오후 9시에 오는 일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상대방이 약속 시간을 지켜준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구리바야시 씨와 저녁도 같이 먹었다. T군은 가르쳐주는 내용을 쑥쑥 흡수했다.

 

3개월 후 간신히 연락이 닿은 T군의 어머니에게, 수험생이니 전문학원에 보낼 수 있도록 도쿄도의 학원비 대출 지원을 받게끔 제안했다. 그리고 보증인이 된 구리바야시 씨는 지역 지인에게도 동참해줄 것을 권하고 T군을 위한 모금도 했다.

 

구리바야시 씨의 지인들은 대부분 “요새 잘 안 보인다 싶더니 그런 일을 하고 있었구나”, “좋은 일이네”라고 얘기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T군은 무사히 공업고등학교에 합격했다.

 

그 T군의 공고 합격축하 파티모임이 지금의 ‘도시마 어린이 와쿠와쿠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와쿠와쿠 WAKUWAKU는 ‘두근두근’이라는 뜻의 일본어이다.)

 

가난, 불안, 폭력 속에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오사카 출신인 구리바야시 씨는 결혼 후 이케부쿠로로 이주해 11년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 혼초에서 ‘플레이파크’ 활동에 참여했다. 플레이파크는 어린이들이 직접 놀이를 만들어 노는 놀이터다.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배낭을 짊어지고 외출하던 나날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 놀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 축구클럽에 들어가지 못하는 초등학생이 무심코 “중학생이 되면 들어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얘길 듣기도 하였고, “어제도 아버지가 난동을 피워 경찰차가 출동했다”고 말하는 아이도 보았다.

 

“우리 아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

 

사회활동가를 양성하는 강좌에 “어린이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어린이 모두가 웃는 얼굴로 뛰어 놀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지망 동기로 응모해 수강했던 경험도 있다.

 

그 시기는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 몇 년이 지나고, 회사를 경영하던 남편은 폐업하고, 시작한 식료품가게도 적자로 폐점하고, 저축은 바닥을 드러내고 구리바야시 씨가 생계를 위해 취직했을 무렵이었다.

 

가정 경제도 어려운데, 구리바야시 씨의 활동에 대해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을까?

 

“시어머니에게서는 한 소리 들었지만, 남편에게 어머니를 설득하는 역할을 맡겼어요. 가족들이 같이 사이타마시의 아동 학습지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애들이 저보고 ‘엄마, (활동할 거면) 제대로 해’ 라고 하던 걸요.”

 

어릴 적 구리바야시 씨의 성장 환경은 유복했다.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의 철공소에서 자라며 자기 집에서나, 이웃의 친척집에서나 똑같은 밥을 먹었단다. 여름이면 아버지가 사촌들과 함께 저녁 바다에 데려가 주고, 겨울에는 눈 쌓인 산에서 구르며 놀았다. 아이는 모두가 함께 키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데는 이러한 성장 배경이 있었다.

 

“피륙(옷감)점을 해서 똑 부러지던 할머니”의 성격도 물려받았다. 구리바야시 씨는 고등전문학교에 진학해, 아무도 유급 당하지 않는다는 1학년 때 선배들과 어울려 너무 노는 바람에 유급을 당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두 배로 늘잖아요. 행운이죠”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낙천주의자였다.

 

놀고, 먹고, 실패도 성공도 체험할 수 있는 장소

 

2011년 설립된 ‘도시마 어린이 와쿠와쿠 네트워크’는 현재 무료 학습지원 프로그램인 ‘와쿠와쿠 공부방’을 구내 두 군데 운영한다. 그리고 외국 국적의 어린이들을 위한 일본어 교실도 열고 있다. 학습지원에는 구내 법률사무소 변호사나 학생이 자원활동가로 참가한다.

 

또한 와쿠와쿠 네트워크에서 힘을 얻은 모자 가정이 주축이 되어 싱글맘이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모임인 ‘포코아포코’도 월 1회 열고 있다. ‘가나메초 아침노을 어린이식당’도 운영한다. 사찰에서 밤에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작년에 와쿠와쿠 네트워크의 존속이 위험해졌을 때, 구리바야시 씨가 동분서주한 덕에 도시마구 측에서 플레이파크 부지를 매입해 와쿠와쿠 네트워크에 운영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주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곳, 실패도 성공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를 이제껏 찾아 뛰어왔다. 협력해주는 마을회의 사람들은 “정말 끈질기다”고 그녀를 평한다.

 

이 ‘오지랖쟁이 아줌마’는 여기에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고집한다.

 

“지역에서 하기 때문에 보람이 있다. 보수적인 자민당을 지지하는 사장님들과도 연결점을 찾으려 노력하며 지역 안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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