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의 종말’ TPP 가입하겠다?

밥상의 개방, 위협받는 먹거리 안전과 식량민주주의

김신효정 | 기사입력 2015/07/30 [19:15]

‘삼시세끼의 종말’ TPP 가입하겠다?

밥상의 개방, 위협받는 먹거리 안전과 식량민주주의

김신효정 | 입력 : 2015/07/30 [19:15]

※ 필자 김신효정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수입 먹거리로 안전을 위협받는 한국인의 밥상

 

▲  한국인의 밥상은 현재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 © 김신효정

당신이 지금 먹고 있는 밥상을 살펴보라. 쌀, 고기, 채소와 과일, 각종 양념들은 모두 어디에서 생산된 것일까? 한국인의 밥상은 현재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농민의 수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식량 생산 자급률은 낮아지고 있다. 낮아지는 자급률에 비례하여 계속 늘어나고 있는 각종 수입 먹거리들은 한국인의 식문화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과연 우리 밥상의 미래는 어떠할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은 한국의 시장을 전세계에 개방시켰다. 시장 개방은 곧 먹거리 시장의 개방이자 밥상의 개방이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 중국과 모두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국가로, 칠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세계 50개국과 FTA를 맺은 국가다. 이는 곧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전세계 50개국의 장벽을 넘어 물밀 듯이 밀려온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입 먹거리들은 대부분 정부나 기업의 보조금 지원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생산된 먹거리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게 되고, 이는 농민과 어민들의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 소비자는 저렴한 수입 먹거리를 구매함으로써 당장에는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밥상의 안전과 나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이는 독사과일 수 있다.

 

우리가 먹는 수입 먹거리들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식품 안전과 검역, 환경 기준들은 국내의 상황과 관계없이 무역협정의 국제 기준에 따라 운영된다. 그런데 국제 기준은 국내보다 더 허용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당연히 먹거리 안전을 위협한다.

 

예를 들어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쌀, 특히 미국 쌀의 경우 높은 비소 함량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보다 허용기준치가 높은 미국 수입쌀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비소는 사약의 주성분이자 피부암과 폐암, 방광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이다. 식용 GMO(유전자변형식품) 수입국 세계 1위인 한국에서 시판되는 식용유, 두부, 간장, 물엿 등은 대개 GMO 콩이나 옥수수로 만들어진다. 아토피, 불임,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GMO 식품의 안정성은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GMO식품, 방사능 수산물 먹게될 것

 

우리의 밥상은 갈수록 더 위험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지난 4월, 박근혜 정부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TPP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자유무역 지대를 창설하기 위해 2005년에 체결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회원국 간 관세의 90%를 철폐하고 모든 무역 장벽을 철폐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

 

현재 TPP 참여 국가는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태평양 연안 국가 12개국이다. TPP협상이 타결된다면, 중국을 배제한 거대한 경제블록이 탄생하게 된다. TPP는 한미 FTA 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개방 즉, 예외 없는 관세 철폐와 예외품목 사전 제시 금지, 투자와 서비스 시장 완전 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 상품 거래, 원산지 규정, 무역 구제 조치, 위생검역, 무역에 있어서의 기술 장벽, 서비스 부문 무역,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경쟁 정책 등 자유무역협정의 거의 모든 주요 사안이 포함되어 있다.

 

TPP는 일종의 FTA이지만 기존의 FTA와 극명한 차이가 있다. 먼저 예외 없는 관세 철폐가 대표적인 특징이다. 특히 먹거리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면 농촌 경제와 농촌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끼칠 것이다.

 

쌀의 경우, 지금까지는 수입 쌀에 관세를 부가해 한국의 농민 생산자들을 최소한으로 보호해왔다. 그러나 TPP의 경우엔 수입 쌀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므로, 수입 쌀에 비해 비싼 국산 쌀은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결국 농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농민이 빚에 허덕이며 쌀 생산을 포기하게 되면, 결국 소비자에게는 수입 쌀 외에는 선택권이 없어진다. 수입 쌀에 어떠한 위험 물질이 섞여 있더라도 소비자에겐 대안이 없는 것이다.

 

쌀만이 아니다. 더욱 낮은 관세로 수입될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으로 인해 축산농가에도 큰 타격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단순히 수입산 먹거리가 증가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안전하지 않은 먹거리를 수입하게 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특히 미국은 한국과의 TPP 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검역 기준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광우병 위험이 높은 30개월령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과의 TPP 협상에서는 방사능 위험이 있는 농수산물 수입 규제가 완화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TPP에 가입하면 미국의 기준에 따라 농약 잔류 허용 기준과 식품첨가물 인정 기준 등 식품 기준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 절반 이상의 유전자변형식품(GMO)을 생산하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GMO의 유해성 평가와 표시 의무 제도도 무력화될 수 있다.

 

‘음식 독재’와 ‘식량 전체주의’의 연속적인 폐해

 

시장 개방으로 국적 농기업이 육성되면서, 토종 종자는 자취를 감추고 식량 민주주주의가 크게 훼손된다.  © 김신효정

‘통상 독재’라고 부를 수 있는 TPP는 시장 개방으로 그치지 않는다. TPP는 기업 중심의 대량 생산을 위해 단일경작 농업과 GMO 생산을 장려하고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음식 독재’와 식량 전체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세계무역협정으로 뒷받침 되는 종자에 대한 기업의 지적재산권은, 농민들뿐만 아니라 먹거리를 소비하는 소비자에게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종자와 비료, 살충제 비용을 기업에 지불하게 만든다. 기업이 씨앗과 농자재에 대한 가격을 올리면, 결국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먹거리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권리와 식량 민주주의가 침해 받게 되는 것이다.

 

TPP는 미국 주도의 규칙에 따라야 하므로 각국의 사회 안정망, 식품안전, 환경 규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공산품 생산에 있어 안전과 환경 기준에 대한 국내 법규나 지침이 TPP의 협약 내용에 따라 약화될 수 있다. 또 기업의 노사 관계에 있어서도 노동운동 억제 조항과 같이 기업 위주의 협약 내용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TPP 협상의 또 다른 쟁점은, 식품안전 기준과 의료 민영화, 지적재산권 문제와 국영기업 우대 철폐 등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TPP는 완전한 수입개방이자 국가의 규제를 완화하고 ‘정책 주권’을 약화시킨다. 식품, 지적재산권, 공공의료, 농업, 노동, 환경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정부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WTO도 FTA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GDP(국내총생산)를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GMO 식품을 먹어야 하고 사회 안전망이 해체된다면, 과연 국가의 경제성장과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여성의 빈곤화’ 심화시키는 세계화, 대응 절실해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농업시장의 개방은 농촌지역의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농민의 빈곤’을 심화시켜왔다. 수입 농산물 증가로 농가 소득이 하락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농사를 큰 규모로 짓게 되고 그만큼 빚이 증가하면서 여성농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세계화는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농업을 재편해왔다. FTA와 TPP를 통해 시장이 개방되고 기업의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면서 몬산토, 카길과 같은 초국적 농기업이 육성되었다. 초국적 농기업에 의한 종자의 독점, 대량생산과 대량유통 체제는 성별 분업 체계로 인해 여성농민들이 담당해왔던 씨앗 관리와 같은 토착적인 식량재배 기술을 비롯해 의식주와 연관된 여성농민의 노동 가치와 경제적 지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결국 TPP는 농민의 지식과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협정이 아니라, 농기업의 지식재산권과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한 협정이다.

 

▲  <여성식량주권지킴이단>의 "TTP와 식량주권 워크샵"   © 김신효정

 

어디 그뿐인가? TPP를 통한 완전한 시장개방은 여성노동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칠뿐더러 여성의 전반적인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생계가 어렵고 가난할수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건강을 챙겨야 하지만, 결국 안전하지 않은 값싼 수입 농산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의료 민영화를 비롯한 공공 서비스 민영화로 취약계층 여성의 삶은 더욱 열악해진다. 물, 전력, 가스와 같은 공공서비스 부문의 사유화와 비용의 증가, 보건의료와 교육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사회 안전망의 부재는 송파 세 모녀 사건, 부천 세 자매 사건처럼 여성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여성대책위’가 출범한 이후, TPP에 저항하기 위해 다시 여성들이 모였다. 2014년 소비자와 생산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5천여명의 선언을 통해 ‘여성 식량주권 지킴이단’이 발족했다. 그러나 유사한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다. TPP와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변화가 여성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여전히 부재하다. 이는 여성운동이 대중운동으로서 의제와 논리를 만드는데 어려움으로 연결된다.

 

TPP 반대를 위해 여성운동 진영이 독자적인 실천 전략을 계획하고 이를 협상의 테이블로 가져가는 일은 쉽지가 않다. 이를 위해선 여성들의 공동 연대라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TPP가 끝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다. 지금 여기 어디에도 세계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은 없다. 그 누구도 세계화를 피할 순 없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2015/08/10 [10:36] 수정 | 삭제
  • 식량에 대한 감사한 마음, 우리 식단과 반찬에 대한 경외심도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된 게 갓김치, 김치녀, 된장남, 김치남, 등등 여성혐오 또는 여성혐오의 혐오 용어들이 '김치'란 단어를 쓰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김치든 된장이든 고도의 화학작용과 섬세한 손기술로 만들어지는 건강식품이고 사람을 살리는 음식들인데, 차라리 햄버거녀, 캔커피남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요. 햄버거나 캔커피는 공장식품이고 몸에도 안좋으니.. 고급 한정식을 먹으면서 상에 올라온 반찬들을 보고 곧장 혐오용어나 발언을 연상해버리는 사태는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 효정 2015/08/04 [18:43] 수정 | 삭제
  • 우선 백미가 아닌 현미를 드시면 당뇨같은 부분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쌀이 너무 흔해진 세상에 쌀이 이닌 다른 농사를 지으면 어떠냐는 생각은 하나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쌀이 갖는 음식의 문화적 의미입니다. 씰이 주식인 한국에서 쌀밥을 먹음으로써 각종 반찬, 장류와 발효음식들이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김치와 장아찌는 밥과 먹는 것이지 빵과 먹지는 않죠. 잡곡밥도 결국 쌀과 함께 콩이나 다른 곡식을 섞은 것으로 쌀이 기본이 됩니다. 쌀을 수입하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국산쌀 생산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쌀 생산이 주인 한국에서 쌀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농산물 생산도 줄어들거나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쌀을 수입하거나 적게 소비하는 것은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합니다.
  • lumierre 2015/08/03 [17:54] 수정 | 삭제
  • 밥상에 쌀밥이 있네요 쌀을 적게먹으면 쌀농사를 적게 지으도 되는데 잡곡이 좋지않을까요? 그러면 쌀자급률이 좋아질텐데요 건강에도 그렇고요, 당뇨병의 원인이라고 그러던데.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