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암 주세요” 금연광고에 대한 단상

<반다의 질병 관통기> 정부가 질병을 다루는 방식

반다 | 기사입력 2016/07/16 [22:28]

“후두암 주세요” 금연광고에 대한 단상

<반다의 질병 관통기> 정부가 질병을 다루는 방식

반다 | 입력 : 2016/07/16 [22:28]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동의를 거쳐 인용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흡연은 질병입니다. 치료는 금연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구입한 질병, 후두암 주세요.”

 

처음 저 광고를 봤을 땐 놀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광고를 만든 것일까? 내가 보건복지부 담당자라면 국민의 보건과 복지를 위해 금지시키고 싶은 광고다. 그런데 심지어 이런 광고를 만든 게 보건복지부라니! 지하철에서 저 광고를 볼 때마다 여러 주제의 감정을 겪는다.

 

▶ 지하철 안 금연광고. (보건복지부 제작)     ⓒ 촬영: 반다

 

# 소외감

 

두 줄의 문장 속에서 질병을 다루는 방식이 불쾌하다. 여기서 전제하는 흡연자는 무지한, 무절제한, 어리석은 존재다. 그리고 질병은 그러한 삶의 결과로 등장한다. 즉 질병은 개인의 노력으로 피해갈 수 있는 영역인데, 잘못 살아온 결과로 질병을 얻게 된다는 서사다.

 

여기엔 개인이 담배를 피우게 되는 조건이나 문화, 빈곤층의 흡연율이 높은 이유와 같은 사회적 맥락은 휘발되어 있다. ‘질병에 걸린 건 네가 건강관리에 실패한 결과’라는 지겨운 질병의 개인화 논리만 보인다.

 

암 경험이 있는 이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질병의 고통 이외에도 자책감이나 주위의 시선 때문에 고통 받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은 성격, 음식, 생활습관 등에서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결과로 질병에 걸렸고, 이로 인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고생스럽게 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남모르게 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질병의 어려움 위에 죄인 같은 기분이 덧대지거나, 미안함에 짓눌린 가슴을 안고 사는 것이다.

 

또한 암 완치 판정을 받았음에도, 단지 암과 같은 중증 질환을 경험했다는 이력 때문에 취업 시장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나약한 몸일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라는 시선, 즉 잘못 살아온 결과로 질병에 걸렸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건강은 스펙이고, 중증질환 경험은 낙인이 되었다. 질병의 개인화가 아픈 이들에게 안팎으로 소외의 덫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불온함

 

질병의 개인화는 늘 그렇듯 질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WHO(세계보건기구)가 규정한 1군 발암물질에는 담배도 있지만 미세먼지도 있다. 담배 연기를 1시간 30분 마시는 것과 미세먼지 1시간을 마시는 것의 효과가 동일하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임산부와 유아를 포함하여 모든 국민이 병원, 학교, 직장을 오가며 담배보다 독한 발암물질인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세먼지 관련한 대책으로 ‘경차와 고등어’ 타령을 한 것 이외에 실질적으로 한 게 아무것도 없다. 또 시민들은 정부에게 대책을 적극 요구하기 보단 미세먼지에 도움 된다고 하는 개인 건강관리에 더 힘쓴다. 이 정부에 대한 기대 없음과 개인의 무력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건강이 점점 더 개인의 관리 영역으로 내면화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의구심도 든다.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질병을 개인화함으로써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는 낯설지 않다. 정부가 구조화된 극단적 양극화와 빈곤 문제에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 것 말이다. 동시에 추락하는 개인들에게 끊임없이 자기계발 담론을 유포하고, 허구적 성공 신화를 꿈꾸게 하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니까 ‘능력을 개발하라, 네가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와 ‘건강을 관리하라, 네가 노력하면 질병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은 흡사해 보인다. 불쾌하고 불온한 느낌이다.

 

# 서글픔

 

“흡연은 질병입니다. 치료는 금연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구입한 질병, 후두암 주세요.”

 

저 문장은 자못 점잖은 척 하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그렇게 살다간 암 걸린다!’는 얘기일 것이다. 흡연자에게는 협박으로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암환자에겐 어떻게 들릴까?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암환자에게 저런 광고 문구가 어떻게 들릴 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아니면, 미래의 암환자를 예방하기 위해 저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설마, 암은 본인이 건강관리를 못해서 걸린 거니까 저 정도 표현이 뭐 어때, 이런 생각은 아니었길 바란다.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이와 비슷한 종류의 표현으로는 ‘(인터넷 용어)암 걸리겠다’, ‘공부 안하면 청소부 된다’, ‘운전할 때 안전벨트 안 매면 휠체어 벨트 매개 된다’ 같은 게 있다. 암환자, 청소부,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이런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까? ‘그렇게 살다간 암 걸린다!’라는 의미를 내재한 폭력적인 표현이, 개인도 아닌 보건복지부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 불쾌함

 

▶ 가공육은 담배, 미세먼지와 함께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금연광고를 패러디한 가상 광고.   ⓒ이미지 제작: 조짱

저런 광고 문구는 아픈 이들의 인권 차원에서도 문제적이지만, 흡연자에게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건강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이에게는 건강이 절대적으로 우선 가치가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커피, 밀가루,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섭취한다. 누군가는 커피, 밀가루, 패스트푸드는 담배만큼 해롭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육류는 어떨까.

 

지난해 WHO는 햄, 소시지를 비롯한 가공육을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담배, 미세먼지와 함께 1군 발암물질로 발표했다. 또 붉은색 육류를 발암 가능성이 큰 2군 발암물질로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육류의 유해성을 전달 받기 위해 협박 같은 광고를 만나도 괜찮은 걸까. 그러니까 우리가 조만간 만날 광고는 ‘당신은 지금 대장암(육포, 삼겹살)을 먹고 있다!’, ‘아이에게 암(소세지, 햄버거)을 사주는 엄마!’ 같은 것이어도 될까?

 

# 불안함

 

‘흡연은 질병입니다’ 라니, 하다하다 흡연까지 아예 병으로 명명한다. 놀랍다. 과거엔 사소한 특질에 불과했던 것들이 병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연스런 몸의 흐름인 완경(폐경)은 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되었고, 코골이는 수면무호흡증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증세가 되었다. 역동성이나 산만함 정도로 여겨지던 성격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불린다.

 

수없이 많은 질병명이 개발되고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와 맥락이 있겠지만, 나는 한 제약회사 대표의 말이 떠오른다. 30년 전, 어느 다국적 제약회사의 대표는 ‘회사의 고객이 아픈 사람만인 게 안타깝다,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약을 만드는 게 오랜 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꿈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ADHD 질환을 창시한 의사 레온 아이젠버그는 ADHD를 ‘가장 허구적인 질병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이 병을 창안한 대가로 제약회사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펀드를 제공받은 사실을 고백했다. 제약회사들은 주요 의학단체나 학회들을 후원하며, 의료계의 실질적인 권력이 되어있다고 하니, 이게 ADHD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이 개발되는 게 아니라, 약을 판매하기 위해 질병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금연치료제를 구입하는 금액을 보조해주면서, 금연치료제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흡연자들 사이에선 금연치료제의 안정성이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의사들은 정부 지원 금연치료제와 프로그램에 대해 의료수가 등에 대한 불만으로 시끌시끌하다. 금연 관련 의약품이 금연 ‘보조제’에 이어 금연 ‘치료제’가 추가되면서, 금연 관련 제약시장이 더 넓어지고 있다.

 

# 혐오감

 

올해 시행을 앞두고 있는 또 다른 금연광고가 있다. 질병에 걸린 모습을 혐오스럽게 표현한 사진을 담뱃갑에 부착하는 광고다. 그 사진을 보면 질병은 추하고, 수치스럽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준다. 질병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질병에 대한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유포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암은 성인 3~4명 중 1명이 걸리는 질환이라고 한다. 환자들은 본격 투병 기간 외에도 5년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완치 판정 이후에도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암 이외에도 뇌졸중, 당뇨, 심장질환 등 많은 이들이 만성질환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장수 사회에서 전 생애에 걸쳐 암이나 만성질환을 하나도 경험하지 않고 늙는다는 건 엄청난 확률인 일이 되었다.

 

질병이 단기간에 이별을 고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야 하는 동반자의 위치에 있을 때, 사람들은 인정과 거부, 수용과 좌절을 반복한다. 나 또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질병과 싸우기(鬪病: 투병)를 그만두고, 동반자처럼 적절히 돌보며 잘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지 몇 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한 번씩 엎치락뒤치락 파도를 만난다. 질병에 대한 미움, 무력, 공포, 불안 같은 감정이다.

 

내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어려움이나 좌절감을 토로할 때, 한의사나 대체요법사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질병이나 질병에 걸린 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질병은 몸의 자정작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발생하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일반 병원에서 만나는 의사들도 예전에는 질병을 박멸해야 할 적으로 보는 관점이 많았지만, 요즘은 박멸이 불가한 질병도 많고 만성질환 사회인만큼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게 좋다고들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안에 있는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라고 조언해줬다.

 

▶  아픈 이들은 ‘질병에 대한 느낌’이 곧 ‘몸에 대한 느낌’이 되기도 한다.    ⓒ이미지 제작: 조짱

 

아픈 이들은 ‘질병에 대한 느낌’이 곧 ‘몸에 대한 느낌’이 되기도 한다. 그 느낌을 어떻게 조절해 나가느냐가 삶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만연해 있는 질병에 대한 어둡고, 음습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사회적 차원에서 개선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질병이 함께하고 싶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미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까지 부정적인 이미지어선 안 될 것 같았다.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존재와 동반자로 사이좋게 살아가기란 너무나 어렵지 않은가!

 

이미 현대 사회에서 건강은 개인의 스펙이 되었고 건강관리는 내면화된 윤리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질병 공포를 이용해 질병을 예방하겠다는 발상은 근시안적으로 보일 뿐이다. 질병에 대한 혐오감 조장이 혐오스럽다.

 

질병에 대한 규정은 정치적이다

 

어떤 이들, 그러니까 특히 정부 관계자들은 흡연으로 사람들이 암에 걸릴 뿐 아니라,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위험 질병 유발 논란이 되고 있는 GMO 식품에 대해, 세계 1위 수입국을 유지하고 있는 정부는? 안전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강도 높은 노동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재해국이라는 명예를 유지시키는 기업가들은? 젠더 불평등 사회답게 줄지 않는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으로 아내나 여자친구가 수시로 병원과 약국을 들락거리게 만드는 가해자들은?

 

정부는 국민건강을 위해 강력한 금연광고를 제작하면서, 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그렇게 한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그곳들도 금연정책을 군사 훈련하듯 밀어붙이면서 시행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곳들도 국민 건강을 위해 금연정책에 수백억을 쏟아 부으면서도 국민들이 배가 침몰해서 죽고, 여자라는 이유로 죽고, 가난해서 죽었을 때, 정부가 모르쇠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 금연광고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며칠 밤을 새도 모자를 것 같다. 저 광고를 볼 때마다 왜 내 안에서 지속적으로 여러 감정들과 생각들이 쏟아질까? 사실 저 광고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너무 작아서 필터링이 되지 않고 직접 혈관에 스며들기 때문에 치명적이라는 미세먼지처럼, 광고가 전하는 직간접의 메시지가 무의식적으로 몸속에 흘러들어와 모세혈관을 타고 몸 구석구석 전해지는 게 쓰라렸다.

 

질병을 정의하고, 발생 맥락을 규정하고, 치료 과정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다. 질병을 어떻게 규정하고 질병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몸을 만나게 된다.

 

 

※참고 문헌: 제갈춘기「언론의 건강문제 틀 지우기: 신문의 담론분석의 통한 연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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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6/07/19 [12:30] 수정 | 삭제
  • 좋은 관점 배웁니다!
  • coco 2016/07/19 [10:13] 수정 | 삭제
  • 공포스런 질병 이미지를 유포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 주장을 접하니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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