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 편에 이어 “몸해방 프로젝트” 편이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첫 가슴 노출을 앞두고
금요일 밤 10시, 방금 해가 완전히 졌다. 창문을 열어 선선한 밤공기를 들이고 은은하게 촛불을 밝혔다. 잔잔하지만 어쩐지 섹시한 스페인 기타 음악을 골라 틀었다. 한껏 분위기가 잡혔으니 이제 변신할 시간. 화려한 목걸이와 머리띠를 두르고 종이에 그려둔 밑그림대로 얼굴엔 물감을 칠한다. 이번 테마는 원시림을 누비는 여전사로, 모래색의 헐렁한 바지를 입고 상의는 모두 벗었다.
다음 날 있을 퍼레이드 분장을 미리 연습해보는 중이다. 난생 처음 탈의실도 목욕탕도 누드비치도 아닌 거리에서 맨가슴을 드러낼 작정을 했는데 마냥 들뜨고 설렌다. 마침 음악도 좋겠다, 야밤에 춤바람이 나 흔들흔들, 좁은 방을 누비고 다닌다.
올해 크리스토퍼 스트릿데이(Christopher Street Day; CSD) 기념 퍼레이드에서는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Free the Nipple’ 캠페인을 하기로 했다. ‘젖꼭지를 자유롭게 하라’ 캠페인. 남녀에게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웃통 벗기’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지? 남자는 벗으면 상남자, 여자는 비키니를 입어줘야 섹시? 우리는 몸에 대한 편견과 금기에 도전하는 의미로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종일 거리를 활보하면서 여성의 자유와 몸의 다양성을 존중하라고 외칠 것이다.
※ CSD(크리스토퍼 스트릿데이)는 1969년 미국 뉴욕시 그리니치 빌리지 구역 크리스토퍼 거리에서 LGBT(성소수자)들이 경찰의 폭력 진압에 맞서 일으킨 최초의 대규모 저항을 기리는 날이다. 도시마다 행사 날짜는 조금씩 다르지만, LGBT의 권리 향상을 위해 6월 중 집회와 행진을 하는 전통이 북미와 유럽에 널리 자리잡았다. 독일에서는 1972년도에 뮌스터에서 처음 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여자의 젖꼭지는 감춰야 하나?
앞서 월요일 저녁엔 캠페인 기획 겸 토론 모임이 있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캠페인이 LGBT들의 축제인 CSD에 완벽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자로서의 여성의 처지를 알리고 포괄적인 연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퀴어 퍼레이드 조직위원회와 합의를 봤다.
‘다들 이 캠페인에 참여하려는 동기가 뭐야?’ 공통 질문이 떨어지자 작년에 첫 경험을 한 후 열성적인 ‘Free the Nipple’ 캠페인 전도사가 된 L이 먼저 입을 연다. 요가 수련을 하는 그녀는 자기 몸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싶고 온 몸의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더 찾고 싶은데, 가슴을 항상 가리고 다녀야 한다는 것, 목이나 배나 팔처럼 보일 수 없다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마치 가슴이 몸에서 잘려나가 외따로 있는 듯한 끔찍한 기분이라서. 그래서 가슴 노출의 자유를 누리는 게 소망이라고 했다.
S는 시선 폭력에 대해 얘기했다. 호숫가에서 누드로 일광욕을 할 때, 가슴을 노골적으로 응시하며 때론 칭찬이랍시고 코멘트까지 하는 남자들 때문에 움츠러드는데, 그렇게 움츠러든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커서 쉬러갔다가도 결국엔 기분만 나빠졌다는 경험을 전했다.
작년에 ‘Free the Nipple’ 캠페인에 참가한 M은 퍼레이드 안에서는 마치 보호막이라도 둘러쳐진 듯 아무 불안 없이 유대와 환대 속에 행복했지만, 그 대열을 벗어난 순간 갑자기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 캠페인이 일회성 해프닝을 넘어 매일 매일의 질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지 생각게 하는 대목이었다.
한편, 일상에서 웃통을 벗고 가슴을 드러내는 ‘액션’을 할 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동의를 구할 것인지도 의제로 등장했다. 사회적 용인 하에 이미 양식화된 행위가 된 ‘남자들의 웃통 벗기’에 비해 여성들의 가슴 노출은 아직 동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 여성들이 한다면 남성들도 매번 동의를 구하는 것이 새로운 에티켓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 억압을 당하는 당사자가 특권을 누리는 자(남성)들을 배려까지 해야 하냐는 의견 등으로 갈렸다.
사실 난 좀 놀랐다. 특유의 누드 문화 덕에 공공장소에서 나체를 보이는 것이 흔하고 법적 제재도 없는 독일에서 나고 자란 젊은 여성들이 이토록 울분에 쌓여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또, 캠페인에 참여할 것인지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며 망설이고 긴장하는 모습도 내 예상 밖이었다. CSD가 일탈이 장려되는 대규모 퍼레이드라는 상황과, 독일 남부치고는 젠더 다양성에 상당히 개방적이고 호의적인 우리 도시의 지리 조건을 고려할 때, 나는 더 과감하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반면, 나는 걱정은커녕 기대가 컸다. 좀 더 크게 재밌게 제대로 놀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한국처럼 지팡이 휘두르는 해병대 전우회 어르신들이나, 일베와 소라넷을 오가는 여성혐오 세력과 변태분자들, 자극적인 장면 사냥에만 혈안이 된 언론사 카메라, 축제 분위기에 초치는 경찰의 철벽대응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것이 나의 몸해방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한 챕터가 되리라는 것을.
금기와 검열에 맞선 “Free the Nipple” 캠페인
‘Free the Nipple’ 캠페인은 2014년 미국에서 개봉한 동명 영화에서 이름을 따온 젠더 평등 캠페인이다. 여성과 남성이 가슴을 완전히 드러내는 상체 탈의에 있어 ‘법적으로 동등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6년 7월 기준, 나체 및 공공장소 외설법(Nudity and public decency laws)에 의해 미국의 대부분 주들은 아직도 여성의 유두 노출을 범법 행위로 간주한다. 즉, 공공장소에서 어떤 형태로든 유두를 내보이는 여성은 음란한 행위로 치안을 어지럽히는 ‘외설죄’ 명목으로 기소될 수 있다. 다만 10여 개 주는 모유 수유를 위한 가슴 노출만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시켜놓았다. 50개 주 가운데 겨우 6개 주(뉴욕, 하와이, 메인, 뉴햄프셔, 오하이오, 텍사스)만이 여성이 유두를 드러내는 것을 합법화했다.
좀 놀랍지 않은가? 작금은 19금 영화와 인터넷 배너광고 등 굳이 포르노까지 안가도 유방과 유두가 흔한 21세기 미디어 천국인데 웬 음란죄? 웬 이런 후진적인 검열법? 더구나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성적 방종을 등에 업고 선정적인 문화콘텐츠를 연신 토해내는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에서 말이다. 물론 미국사회 안에는 모순이 들끓는다. 지난 해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선포한 시기를 전후로 사회가 좀 ‘LGBT프렌들리’해졌나 싶었더니, 얼마 전 올란도에서는 게이혐오 총기난사 사태가 벌어지고, 아직도 중남부 보수적인 주에 있는 다수의 공립학교에선 창조론에 근거해 동성애를 죄악시한 내용을 가르친다.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 미국의 이러한 현실은 어디에 살고 있든 무시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성매매와 같이 남성이 주로 가해자가 되는 범죄에서는 규제가 너무 느슨한 게 문제인데, 이 가슴 노출 사안에 있어서는 법이 너무 준엄해 여성들을 쉽게 ‘풍기문란의 가해자 혹은 범법자’ 위치로 몰아넣는다. 이것은 또 남성주도의 권력(국가)에 의해 특정 장면(여자의 가슴 및 젖꼭지)에 대한 접근과 통제가 결정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련의 악법들은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적인 행동양식을 규제한다. 가슴을 내보여도 되는(내보여야 하는) ‘서비스 제공 여성-셀러브리티나 성산업 종사자’와, 남성과 실제로 관계 맺기 때문에 ‘조신해야 하는 여성-아내, 딸, 누나, 여동생, 엄마, 여자친구’를 구분해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 여성들은, 그리고 여성운동은 아직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약자이고 소수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아직도 싸울 거리가 너무 많다.
‘젖꼭지 캠페인’(Free the Nipple)은 이러한 현실에서 탄생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자주권을 침해하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검열에 맞서고, 그 검열을 작동시키고 유지시키는 남성중심 사회의 금기에 도전한다. 이 캠페인이 온/오프라인 세계곳곳에서 반향을 얻으면서 법적 검열뿐 아니라 여성들의 자기긍정을 위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또 몸매 비난(body shaming)이나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에 반대하는 의미로도 확장되고 있다.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하는 우리들은 ‘여성의 가슴=성적 대상’이라는 도식을 도발하며 아예 벗어버린다. 여성의 가슴은 성적 흥분거리가 아니라 우리 몸의 일부이다. 그래서 그 자체로 완전하고 아름답다고 받아들이고자 한다. 또, 가슴을 언제 어디서 드러낼지는 남성의 시선이나 언어폭력이나 몸매품평과 상관없이 우리가 결정한다.
하늘거리는 레이스 브라로 유두는 아슬아슬하게 가리되 유방은 가운데 모아 ‘업’한 모습이 섹시하다는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에도 제동을 건다. 여자 가슴이 실은 얼마나 다양한가 말이다. 사람의 눈이 그렇듯 두 유방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유두가 큰 편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사람도 있다. 한쪽 유두가 함몰 상태이거나, 유독 까만 유두, 물컹하고 처지는 가슴도 있고, 절벽 가슴, 운동할 때 덜렁거리는 큰 가슴, 나이 들며 주름진 가슴, 아직 멍울만 잡히는 어린 가슴, 유방암 수술로 모양이 달라진 가슴 등….
한편, 온라인 검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회사에서 개발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자국의 검열 기준에 따라 여성의 유두가 나온 사진을 음란물로 간주해 업로드를 못하도록 해놓았다. 이는 불필요하고 차별적인 정책이다. 젖꼭지 캠페인을 홍보하는 페이지에 젖꼭지가 등장할 수 없는 것이다.
몸 해방구가 된 신나는 퍼레이드 경험
토요일 오후 3시. 퍼레이드를 시작하기 위해 도심에 모였다. 날씨가 끝내준다. 햇살이 뜨겁고 하늘은 새파랗고. 좀 덥긴 하겠지만 축제 땐 땀이 좀 나야 더 신난다. ‘똘레랑스(관용)의 춤’이라 적은 배너를 건 트럭이 일렉트로닉 음악을 틀며 선두로 나가자, 천천히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앙역 앞을 포함, 시내의 주요도로가 낮 동안 퍼레이드를 위해 통제되었다. 제복 입은 경찰은 띄엄띄엄 보이지만 위압적인 철창 차는 없다. 독일 축제에 맥주가 빠질 수 없지. 맥주병 든 참가자들은 코스튬을 뽐내며 흔들흔들 걷고, 구경하는 행인들이 벌써 길게 늘어선다.
망사스타킹에 터질듯이 꽉끼는 미니스커트, 맞지도 않는 브라, 과장된 화장을 한 ‘크로스 드레서’(cross-dresser; 이성 복장을 한 사람)들과 태양의 신 컨셉으로 황금색 치장을 한 몸매 좋은 게이들, 뼈만 남은 생선을 형상화한 괴이한 개조차량 속에서 광적으로 바(bar)춤 추는 사람들, 폭탄머리 가발을 쓰고 팔짱끼고 걷는 사이좋은 언니들, 해삼 멍게 문어를 연상케 하는 전신 탈을 쓴 덕후들. 온갖 ‘이상한’ 사람들 사이를 걷는다. 이상해서 참 좋다. 기분이 서서히 달아오른다.
친구들과 적당히 분위기를 봐 탈의하기로 했는데 못 기다리겠다. 그냥 혼자 훌러덩 벗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주위의 시선이 확 쏠리며 엄지를 치켜든 손, 격려의 휘파람, 공감의 눈짓과 미소가 여럿 내게 날아든다. 허전한 상체와 쏟아지는 시선으로 인한 어색함은 잠시 잠깐. 퍼레이드의 흥겨움과 주변의 긍정적 반응이 위축감을 압도해버리고 나는 통쾌해서 절로 함박웃음이 나왔다. 우리 팀은 아니었지만 역시 가슴을 드러낸 네 명의 용감한 여성들을 만났다.
2백 미터쯤 더 가자, 다른 친구들도 다 벗고 내 옆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열 명 남짓.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로 또 같이 어깨춤 허리춤 엉덩이춤, 그리고 무엇보다 덜렁이는 가슴 춤을 추며 걷는다. 퍼레이드에 가장 눈이 휘둥그레지는 건 쇼핑백 든 관광객들과 방갈로에서 커피 마시던 노인들이다. 잽싸게 폰카를 들이대며 사진 찍는 건 젊은 남자들이고. 아직 편견이 적은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어 한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살 찌푸리며 뜨악한 표정을 지은 중년의 어떤 아시아 여성 말고는, 적대적인 반응이나 공격은 겪지 않았다. 코스튬을 입은 아시아인은 드물었고 젖꼭지를 내보인 아시아 여자는 더구나 나뿐인 것을 의식했을 때 좀 외롭긴 했다. 그러나 거리를 온통 적시는 퍼레이드 카의 비눗물 세례, 지나가다 마주친 지인들과 나누는 호들갑스러운 포옹, 시시각각 바뀌는 시끄러운 음악 속에 금방 잊혀졌다.
뜬금없이 옛날 기억이 났다. 여름이면 교복 밑에 비치는 브래지어 끈 갖고도 수군대던 남자애들의 얄미운 얼굴. 꽉 끼는 브라를 입고나간 날 소화가 안 돼 가슴팍을 두들기다 화장실가서 후크를 풀던 기억. 피식 웃었다. 지금은 그저 우습다. 유교적 관습 어쩌고 하는 한국의 케케묵은 규범과 속박이 우습다. 엄마, 그런 소리 이제 좀 그만해. ‘여자가 조신해야지, 다리 좀 모아라, 화장 좀 하고 다녀야 괜찮은 신랑감 만나지.’ 떠오르는 얼굴과 목소리를 손사래 쳐 흩어내고 누구든 보란 듯이 가슴을 오센티 쯤 더 내민다. 신나게 흔든다. 난 자유로워!
우리 도시 인구의 1%라는 많은 수가 참여했다고 집계된 CSD 퍼레이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나의 벌거벗은 나신도 뜨거운 관심과 성원 덕에 종일 뻔뻔하게 나다니다 예쁜 사진으로 남았다. 퍼레이드에서 나를 목격한 친구들은 나중에 입을 모아 말했다. ‘너 진짜 그날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 그래, 그랬을 법하다. 그 날은 내 안의 신성, 우리 안의 여신들이 죄다 깨어나 펄펄 날던 순간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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