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혐오’와 ‘예술 검열’은 맞닿아 있다

연극 <이반검열> 이연주 연출 인터뷰

나랑 | 기사입력 2016/08/05 [13:02]

‘소수자 혐오’와 ‘예술 검열’은 맞닿아 있다

연극 <이반검열> 이연주 연출 인터뷰

나랑 | 입력 : 2016/08/05 [13:02]

연극 <이반검열>이 무대에 올랐다.

 

‘이반검열’은 2000년대 중반 중고등학교에서 실제 벌어진 대대적인 동성애자 색출 작업을 뜻한다. 특히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머리가 너무 짧다고 두발을 규제하고 여학생들끼리 손만 잡아도 벌점을 매겨댔다. 교사들은 반장을 불러 “우리 반엔 그런 애 없냐”고 은밀히 물었다.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채 교무실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다. 전학 조치되거나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 이연주 연출 연극 <이반검열>의 한 장면.

 

연극 <이반검열>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 이야기에 세월호 생존학생과 희생자의 형제, 자매 이야기를 더했다. 성소수자를 뜻하는 용어인 이반(異般 또는 二般, 한국 동성애자들이 ‘일반’이라는 용어를 풍자하며 스스로를 칭한 용어)의 사회적 범위가 확장된 셈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형제인 나는 유가족의 일상을 페이스북에 올리지만, 이내 일베에 의해 캡쳐 되며 조롱을 당한다. 일상을 ‘검열’당한 나는 더 이상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너희는 왜 수련회를 안 가니?”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같은 반 친구는 뒤에서 “아, 세월호 씨발”이라고 말하고 나는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한다. 애도하고 싶은데,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스스로를 ‘검열’해야 한다.

 

“어딜 가서든 튀지 않으려고, 유가족이라는 티를 안 내려고 했어요. 노란리본도 늘 달고 다니고 싶은데 너무 티 날까봐 가끔씩만 달아요.” -연극 <이반검열> 중에서

 

‘순수함’, ‘건전함’이라는 잣대는 어디서 왔을까

 

▶ 연극 <이반검열> 연출가 이연주  ⓒ일다

우리는 ‘혐오’가 키워드인 세상에 살고 있다. 혐오의 시대는 검열의 시대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준에 비추어 ‘건전하다’, ‘순수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이들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연극 <이반검열>은 불온하다고 낙인찍힌 사람들,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고 강요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희생자나 약자에게 순수함을 강요하면서 그들이 순수할 때는 연민으로 봐주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불순하게 보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순수함을 강요하잖아요. 성소수자들도 그냥 저쪽에서 (없는 듯) 살았을 때는 상관 안 하다가, 학생인권조례나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때처럼 단체행동을 하니까 집단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어요.”

 

이연주 연출의 설명이다. 연극은 애국체조, 새마을운동, 삼청교육대 등 ‘불순분자’들을 가려내 낙인찍고 탄압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혐오와 배제는 이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순수하다, 건전하다는 얘기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생각해 봤더니 6.25 이후 반공교육부터 그 뿌리가 깊더라고요. 국가가 개입하면서 ‘건전’이라는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배제시켜온 역사가 있었어요. 삼청교육대의 구호가 ‘사회악 일소’였고, 형제복지원도 그런 맥락이었죠.”(이연주 연출)

 

※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는 1980년 전두환 정권 초기에 군부대 내 설치한 기관으로, 범죄자 교화 명목으로 사람들을 잡아들여 가혹 훈련을 시켰다. 피해자들은 큰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훈련 도중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들도 상당 수였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1975-1987) 부산에 있었던 부랑자 수용시설로, 노숙인과 고아, 장애인 등 수천 명을 감금해 강제 노역시키고 학대하고 심지어 살해한 대표적인 시설 인권 유린 사건으로 꼽힌다.

 

‘예술 검열’에 맞선 연극인들의 대대적인 저항

 

<이반검열>은 국가의 예술 검열에 맞선 연극인들의 저항 프로젝트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의 작품 중 하나다.

 

작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과 대선에서 야권 후보 지지 연설을 했던 연출가의 작품 등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공연을 방해하면서, 국가의 ‘예술 검열’ 논란이 점화되었다.

 

▶ <이반검열>은 예술 검열에 맞선 연극인들의 저항 프로젝트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의 작품 중 하나다.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는 올 6월부터 10월까지 장장 5개월 동안, 총 21개의 극단이 참가해 연극으로 ‘검열’을 논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연극인들이 국가의 검열에 맞서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연극’을 무기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지원금을 빌미로 예술을 탄압하는 국가의 행태에 반발한 기획인 만큼, 국가기관의 지원 없이 관객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시작했다.

 

그 흔한 초대권이나 할인티켓 한 장 없음에도, 객석 점유율이 85%를 넘어서고 있다. 작품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개근하는 관객도 생겨나고 있다.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의 기획자인 고주영씨는 “이 기획을 시작한 6월에는 검열 사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공연이 올랐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검열에 대한 관점이 확장돼 ‘사고를 재단하는 것’, ‘삶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등으로 공연 내용이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전한다.

 

타자화하지 말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이연주 <이반검열> 연출가는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마라, 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는 작품만 지원하겠다, 라는 정부의 태도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검열, 폭력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적이지 말라고, 순수하라고 강요하는 건, 결국 ‘존재’ 자체를 드러내지 말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상연 중인, 이연주 연출 <이반검열>의 한 장면.

 

연극 <이반검열>은 성소수자 청소년들과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 자매의 구술(口述)을 날 것 그대로 전한다. 이연주 연출은 “그 자체가 ‘진실’인 목소리를 가공된 대사로 대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연극을 보고 집에 돌아가도 배우들의 육성이 귓전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건, 바로 이 ‘날 것’이 가진 힘 때문이다. <이반검열>은 연민이나 동정으로 그들을 섣부르게 타자화하지 말고, 대신 그 육성에 귀 기울이라고 당부한다.

 

“‘이반’이라는 건 한정된 대상이 아니에요.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사람들은 차별이나 혐오를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면서 ‘일베’같은 사람들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혐오세력이 이미 집단화되어 있고 국가적으로 봐도 그 역사를 갖고 있다는 걸 생각해 봤으면 해요. 우리는 모두 ‘학습된 개인’들이 아닐까요?” (이연주 연출가)

 

<이반검열>은 8월 7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블로그 http://blog.naver.com/right_project
    페이스북 페이지 http://facebook.com/project.for.right
    문의 메일 right_projec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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