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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서 나온 노래’ 할머니와 시
<노년여성의 경험을 잇다>5. 어르신 시작(詩作) 교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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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여성들이 살아온 생의 이야기와 다양한 경험이 역사 속에 그냥 묻히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며 다음 세대와 교류할 수 있도록, 노년여성을 만나 인터뷰해 온 여성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한글 쓰기도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시를 가르치다?

 

▶  할머니의 시 <바보처럼>   ⓒ 박계해

인근의 문경보건소에서 주관하는 어르신 시작(詩作) 교실에 강의를 나가는 중이다.

 

실은 강의 요청을 받고 얼떨결에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는 곧 나의 경솔함을 자책했다. 장르 불문하고 내게 저서(2011 <빈집에 깃들다>, 2015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요청을 한 그들이나, 세상에 내 놓은 시 한 수 없이 수업에 응한 나는 어르신들이 시에 문외한이라는 생각을 무의식 속에 깔고 있었던 것이니.

 

게다가 매일 한 시간의 수업을 하기 위해 일터(나의 주 업은 카페 운영이다)를 비우는 것도, 자가용이 없어 택시며 버스를 타고 오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한글 해득이 선행되어야 할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시작(詩作)을 가르치다니, 그야말로 난감했음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이라도 제대로 알고 하자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첫 수업을 마치고 와서는 마을회관 벽에 걸려있던 현수막 문구인 ‘우리 마을 예쁜 치매 쉼터’를 검색해 보았다.

 

“예쁜 치매쉼터는 지역 어르신들의 인지기능 향상과 치매예방을 위해 신체단련, 음악, 미술, 감각자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치매예방 프로그램이다. 각 쉼터마다 ‘명찰 만들기’를 시작으로 화분 만들기, 노리개 만들기 등 본인의 완성된 작품을 통해 성취감 향상과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치매예방 체조 등을 통해 삶의 활력소를 제공해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많은 호응이 예상된다…”

 

이런 저런 정보를 짜깁기 해보니, 이 사업은 경북도지사의 선거 공약인 ‘생활밀착형 복지시스템’, 일명 ‘찾아가는 노인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활동에 닿아있었다. 경북 전체에 있는 마을회관 중 3백여 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그 제목과 활동의 일사불란함에 잠시 숨이 막혔다. 그러나 곧 나의 구부러진 심사를 바로 잡는 쪽으로 숨길을 열었다. 어떤 조직적 활동 속에서도 ‘독립하기’는 내게 거의 반사작용과도 같은 익숙함이었고, 그때 생기는 ‘난감함’이란 내가 선택한 감정의 산물이므로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선생 왔다!’ 다이내믹한 할머니들의 현장

 

보건소까지는 택시비가 칠천 원 정도 나오지만 시내버스를 타면 제법 걸어야 해서 주로 택시를 탔다. 보건소에 도착하면 담당직원이 보건소 전용차로 그 날 수업할 마을회관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 일이 아니면 평생 가 볼 기회가 없을 낯선 동네를 들어설 때의 묘한 설렘과 현관에 어지러이 놓인 어르신들의 색색가지 고무 슬리퍼가 주는 편안함, ‘선생 왔다!’ 소리치고는 깔깔대며 화투판을 접는 풍경 등, 다이내믹한 현장감에 후회가 기대로 바뀌고 있었다.

 

▶  마을회관 여성어르신들의 다이내믹한 현장감이 나를 맞아준다.  ⓒ 박계해

 

지금까지 무려 열두 곳의 마을회관을 돌았는데 가는 곳마다 공간의 상황이 달랐다. 주로 마을회관이긴 했지만 노인요양원과 보건소 같은 공공시설에도 갔다. 칠판이 있고 수강자와의 거리가 넉넉히 확보되는 곳도 있었지만, 옆 사람과 몸을 붙이다시피 둘러앉은 어르신들 틈에서 싱크대에 등을 붙이고 수업을 하기도 했다.

 

주름진 얼굴, 세월을 ‘적나라하게 숨긴’ 새까만 머리칼, 꽃분홍색 인견 셔츠와 치마를 입은 그들은 나의 할머니고 엄마이고 이모이며 고향 아주머니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공부’라는 단어에 대한 경외심, ‘배움’이라는 단어에 대한 그리움, ‘수업’이라는 단어에 대한 수줍음 혹은 두려움으로 살짝 달아오른 듯도 보였다. 더러는 경계심, 자포자기, 방어처럼 보이거나 무관심처럼 읽혀지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부모형제들을 난처하게 하고 노름을 하고 술주정을 하고 서방을 두들겨 팼다거나 낭비벽으로 집안을 말아먹었다는 얘기는 이제껏 들은 적이 없다. 게을러서 일거리를 산더미 같이 쌓아놓았다거나 서방질 하느라 자식들을 내팽개쳤다는 소리도 못 들었다. 영 없었던 일이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대개 딸이라는 이유로 탄생과 성장 과정에서부터 차별을 받았고, 학교를 못가서 까막눈으로 살았고, 그것을 자기 탓인 냥 부끄러워했으며, 시부모를 모시고 얼굴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상을 차리고 빈 쌀독을 긁으며 끝없이 가족의 끼니를 이어왔고, 자식의 삶이 자신과 다르기를 바라며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리하여 자식들이 엄청남 부담을 지게 된 것은 사실이나 자식에 대한 그들의 세계관을 탓할 수는 없다. 만약 지금의 시대를 살았다면 그들 역시 우리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을 테니까. 우리가 그들의 시대를 살았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으리라.

 

못 다한 말…시는 내 가슴이 싼 똥이다

 

▶ 가슴 속에 감정을 꾹꾹 눌러온 말과 행동이 곰삭아서, 할머니들은 그냥 내 뱉어도 모두 시다.  ⓒ 박계해

‘한글을 모르는 친정엄마의 서러움을 지켜본 딸’인 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첫 인사를 건네고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먹은 대로 싼다, 옥수수를 많이 먹으면 옥수수 똥을 싸고, 푸른 야채를 많이 먹으면 푸른 똥을 싼다. 곶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리고, 상한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

 

우리는 느낀 대로 표현한다. 좋은 느낌이 가득차면 좋은 표현을 하게 되고, 안 좋은 일을 겪으면 마음이 상하거나 울게도 된다. 쌓인 것을 잘 내보내지 못하면 마음도 변비에 걸리고, 상한 마음을 꺼내 놓지 못하면 썩어서 곰팡이가 피게 된다. 곰팡이가 마음 가득 번지면 고치기도 힘든 병이된다. 그게 화병(火病)이다. 그것을 꺼내서 버릴 건 버리고 건질만한 건 씻고 말려서 쓸 만한 느낌인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건진 감정이 ‘시’다.

 

타워팰리스에서 태어나 거기서 평생을 보낸 사람은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듣고 아무리 눈을 감아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핀 고향 산천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눈만 감으면 그 풍경을 볼 수 있다. 정말 쉽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맞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핀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다, 내용이 하나도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는 내 가슴이 감응하는 노래다. 내 가슴이 싼 똥이다. 먹지 않은 것을 배설할 수 없고 느끼지 않은 감정을 토해 낼 수 없다. 우리들은 감정을 묵힐 새도 없이 글과 말로 다 표현하지만, 어르신들은 꾹꾹 눌러온 말과 행동이 곰삭아서 그냥 내 뱉어도 모두 시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에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말’도 발표하고, 손뼉을 치면서 “고향의 봄” 노래도 불렀다. 다행히 그 노래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곡을 뺀 가사만 한 번 더 암송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어쩌면 그 풍경이야말로 나만이 읽을 수 있는 시였다.

 

전쟁을 겪은 세대, 여성들의 그때 그 시절

 

“글 배아도 다 이자비리. 바보맹키로, 등신맹키로.”

“날 새마 들일하고 날 어두워지마 잠만 자고 살안기지. 자식 잘 되기만 바라고 살안기지. 영감 할마이 둘이 인지도 자식들 걱정 뿌이라.”

“맨날 아파, 속이 씨리고 무릎도 아푸고 허리도 아푸고 다 아파, 속씨린거는 신경성이라는데 신경 안씨고 살 수 있나, 살림하고 사는게 다 신경씨이지.”

“젊어서는 그 많은 농사 둘이 우재든동 다 짓고 그랬는데 혼자서 할라니 들에 가는 질도 멀어, 재미도 엄꼬.”

“인자 다 베맀어. 80년 세월 암것도 한 거 업시 내 몸 아픈 것만 남았어. 자식들이나따나 건강하게 살마 좋것어.”

“자식들이 전화 자주 해 주마 좋것어. 학실이 잘 있는 지 궁금해. 내가 하마 지들한테 방해될까봐서 안해. 전화 자주 해 주마 좋지.”

 

▶ 할머니의 시 <딸에게>  ⓒ 박계해

그리고 가슴 속 깊은 얘기는 차마 꺼낼 수 없다며 손을 내젓고 고개를 돌리거나 눈시울만 붉히던 어르신들은 누군가 육이오 얘기를 꺼내자 모두 웅변가가 됐다.

 

“육이오가 나서 폭격 마자가이고 암것도 엄써. 천막서 살다 시집을 갔는데 거는 더 해. 굶는 거는 당연시지만 몸 가릴 끼 엄써서 산에 가서 죽은 사람 옷을 벳기와서 입고 그랬어. 아이구, 너무 불쌍해. 나는 너무너무 불쌍해”

 

“말도 몬하지 머. 나는 육이오 나던 날 큰 아를 낳았어. 서방은 군대 가 있고 마을 사람들은 다 피난가고 아도 첨 나아보는데 옆에서는 총소리 나고 폭탄 떨어지고 난리도 아이고-.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인민군 딜이닥치까봐 문구녕 뚫어놓고 밤에도 낮에도 내다보니라고 내가 한쪽 눈구녕이 펭생 씨리여, 이 오른쪽 눈이. 아이구”

 

한 마디로 속 깊이 숨겨둔 공공연한 비밀들을 꺼내지 못하는 대신 ‘공동 배설’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화제를 돌리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그 때 그 시절’이 계속될 판이었다.

 

나는 앞에 놓인 강사용 생수병을 집어 들고 ‘자, 이 페트병이 필요한 분은 손들어보세요!’ 라고 묻는 것으로, 육이오 웅변대회 시간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주병 하나도 귀한 살림이었던 시대와 페트병 따위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한 이 시대 중 어떤 쪽이 더 나은 세상일까, 똥이며 오줌이 귀한 거름 대접을 받던 시절과 변기가 뒷물까지 해결해 주는 요즘 세상 중 어떤 쪽 환경이 더 깨끗할까, 엄마가 차려 준 밥상을 그리워하는 세대와 엄마랑 간 식당의 음식을 추억하는 세대 중 누가 더 행복한 세대일까…>

  

‘남은 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 생각하기

 

그리고 이제 남은 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쏟아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습관 탓일 터였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느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한 날들의 연속, 대문 안의 일만 반복해 온 터라 그 밖의 세상에는 눈을 돌리지 못한.

 

나는 마칠 시간에 도달한 시계 바늘을 바라보며 ‘죽기 전에 나를 위해 꼭 해보고 싶은 일 한 가지 생각하기’를 숙제로 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답할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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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07 [16:19]  최종편집: ⓒ 일다
 
뽀동 16/08/08 [12:01] 수정 삭제  
  "딸에게"라는 시 보구 울컥했습니다. 할머니들이 왜 그냥 써도 시가 되는지 알겠네요..
소만 16/08/10 [00:56] 수정 삭제  
  와...한 분 한 분이 시네요...
가회동 16/08/10 [09:08] 수정 삭제  
  멋져요. 한세기를 가까이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 슬프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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