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크를 따야 하는데…

<여라의 와이너리 시즌2> 와인 마개 이야기

여라 | 기사입력 2016/08/17 [11:04]

코르크를 따야 하는데…

<여라의 와이너리 시즌2> 와인 마개 이야기

여라 | 입력 : 2016/08/17 [11:04]

내 비록 와인을 좋아라 하며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좀 더 와인을 가깝고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여기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와인의 모든 면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술이나 음료와 달리 까다로운 척 하는 와인을 마시려면 좀 바지런해야 한다. 와인의 온도도 중요하고, 이왕이면 와인 잔도 있으면 좋다. 자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상적으로 난 와인 잔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와인 잔만 신경 쓰지 않아도 대략 절반의 승리인 것 같은데, 와인을 마시려면 결정적으로 와인 따개가 있어야 하니 코르크 마개는 애증이다. 와인에 다가가는 접근성을 고려하면, 코르크 마개는 첫 번째 수문장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한다.

 

오래 전, 그러니까 본인이 소주와 처음 교제하기 시작했을 때 그를 만나려면 병따개가 있어야 했다. 지금이야 드르륵 돌려 따면 되지만. 그 시절 선배들은 소주를 처음 만나는 후배들에게 병따개 없이도 소주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전수해 주셨다. 훌륭하신(?) 가르침에 의해 병따개는 그닥 없어도 되는 물건이 되었다.

 

와인도 코르크 따개(corkscrew)나 다른 방식으로 된 와인용 병따개 없이 병을 열 수 있는 열두 가지 방법, 이런 것들이 인터넷에 돈다. 살펴보면, 코르크 마개를 꺼내거나 병에 넣어 버리거나 온전히 꺼내거나 산산조각을 내거나 하여 어떻게든 코르크의 존재 이유를 흩트려놓는다. 병에서 와인을 탈출시킨다는 목적을 이루기만 하면 되니까. 이를 위해 스크류드라이버, 가위, 젓가락, 심지어 신발도 쿠션이 되어 유용한 도구로 쓰인다. 코르크 마개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해서 와인을 마시나 싶다. 안 먹고 말지.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①코르크 나무 껍질에서 구멍 내 만든 자연 그대로 코르크 마개 ②위아래는 동전 모양 자연 코르크를 대고 가운데는 코르크를 재료로 해 인공적으로 만든 마개 ③땅딸한 스파클링 와인 마개(병입 전) ④스파클링 와인에서 꺼낸 마개들. (③과 ④의 코르크 마개는 코르크 부스러기 또는 가루를 인공적으로 뭉쳐 만든 것이다.)  ⓒ여라

 

와인 마개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와인 만드는 과정에서 발효가 끝나면 그 때부터는 공기와의 접촉을 통제한다. 숙성 과정에서 일부러 산화시키는 과정을 거칠지, 아니면 철저하게 공기와의 접촉을 제한할지 와인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일단 병에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와인은 공기에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

 

이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마개로 코르크만한 재료는 없다. 탄력이 있어서 좁은 병 입구에 밀어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코르크 마개에 와인이 닿아도 와인이나 코르크 성질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와인이 닿지 않아 코르크가 바짝 마르지만 않으면 공기로부터 와인을 성실하게 지켜준다. 그리고 코르크 마개는 아주 극미량으로 들고 나는 공기를 허용한다. 와인이 병입 후에도 계속해서 숙성하도록 하니 마개로서 기가 막히게 훌륭한 역할이다.

 

코르크를 마개로 쓴 것은 상당히 오래전부터다. 문헌에 의하면 기원전 500년경부터 암포라(몸통이 불룩 나온 긴 항아리)의 마개로 쓰면서 대략 6세기에 이르기까지 1천 년 정도 사용했다. 이후 약 500년 동안은 코르크 생산 지역인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이 와인을 만들어 마시지 않는 이슬람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고, 또 코르크 마개가 필요 없는 나무 배럴에 와인을 보관하는 등의 이유로 코르크 사용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17세기에 이르러 와인을 병에 담게 되면서, 코르크는 효과도 좋고 가격도 좋은 마개로 다시 사랑받게 되었다. 그리고 코르크 따개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코르크 시대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전에는 코르크 마개를 손으로 쥐고 잡아 뽑을 수 있게 지금처럼 병에 쏙 집어넣지는 않았다고 한다.)

 

코르크를 대체할 수 있는 마개는?

 

코르크 나무는 오크나무(참나무) 일종인데, 특이하게도 껍질이 하도 두꺼워서 벗겨내어도 나무의 생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이다. 이 두꺼운 나무껍질을 벗겨내어 병 입구 크기에 맞게 구멍을 뚫듯 뽕뽕 잘라낸 것이 바로 코르크 마개다. 이 나무는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유럽 이베리아 반도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를 포함하는 서쪽 지중해 주변에서 자란다. 포르투갈의 경우 세계 코르크 오크나무 숲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①스크류캡 와인 병 ②여러 색깔의 플라스틱 마개 ③진일보한 플라스틱 마개(매끈한 테두리, 코르크 마개처럼 숨도 쉴 것 같은 속으로 채워져 있다) ④유리 마개.  ⓒ여라

 

플라스틱이나 유리, 혹은 스크류 캡(screw cap) 등으로 코르크를 대체할 수 있는 마개를 만든 일은 비교적 최근이다. 1980년대에 이르러 ‘코르크 오염’(cork taint: 영어로는 와인이 corked되었다고 하고, 프랑스어로는 bouchonné 되었다고 표현함. 사과박스 안에서 사과가 썩어 문드러져 축축해진 그 종이박스 냄새, 혹은 지하실에 젖은 신문지 냄새가 남) 문제가 무시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제대로 관심을 쓰기 시작했다. 코르크 오염이 눈에 띄게 번져 나간 것은 아마도 코르크 마개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와인의 대량생산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여서가 아닐까 싶다.

 

2001년 뉴질랜드 와인 산업은 ‘스크류캡 와인 마개 이니셔티브’을 세워 스크류 캡에 대한 연구와 사용을 적극 장려했다.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90% 이상이 스크류캡이다. 호주 역시 스크류캡을 많이 사용하는데,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데에 월등하다는 이유로 아무래도 장기 보관용보다는 몇 년 내에 마실 와인에 특히 선호한다. 스크류캡의 성능은 지금도 개발 중이며, 프랑스나 호주 등 이름난 와이너리들은 몇십 년째 같은 와인을 두 가지 마개로 병입하여 생산하며 코르크 마개와 성능을 비교 중이다.

 

코르크가 아닌 대체 마개를 찾는 노력은 코르크 오크나무를 보호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코르크는 나무의 170년 평균 수명만큼 재생 가능한 자연재료다. 대략 6~9년마다 코르크 오크나무의 껍질을 벗겨낸다. 게다가 코르크는 100% 자연으로 환원된다. 플라스틱 마개나 알루미늄으로 만든 스크류캡은 따라갈 수 없는 코르크 마개의 장점이다. 그런데, 가격으로는 플라스틱 마개를 이길 방법이 없다. 대량생산 와이너리에서는 간과하기 어려운 점이다.

 

와인을 마시며 가끔 코르크 마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그래도 와인은 코르크 마개를 따서 첫 잔을 꼴꼴꼴꼴 따르는 경험을 빼면 너무 밋밋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렇다면 코르크 마개는 와인으로 접근을 막는 수문장이 아니라 사랑스럽고 재미난 장치인가 보다. 게다가 코르크 마개를 모아 놓으면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런저런 재미난 물건들을 만드는 좋은 재료로 쓸 수 있다. 아! 그리고, 코르크 마개를 따서 바로 냄새를 맡기도 하는데, 와인의 질을 판단하는 일과는 별로 관련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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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16/08/19 [17:19] 수정 | 삭제
  • 오 코르크 다시 보이네~
  • n 2016/08/17 [15:23] 수정 | 삭제
  • 코르크 나무 얘기 재밌게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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