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미군 ‘위안부’에 국가의 불법 행위 인정

기지촌 여성들 손해배상청구소송 일부 승소

나랑 | 기사입력 2017/01/21 [17:53]

법원, 미군 ‘위안부’에 국가의 불법 행위 인정

기지촌 여성들 손해배상청구소송 일부 승소

나랑 | 입력 : 2017/01/21 [17:53]

법원이 미군 기지촌 ‘위안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월 20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민사부(부장판사 전지원)는 국가가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이 시행된 1977년 8월 19일 이전에, 성병에 감염된 기지촌 여성들을 강제로 격리수용한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판결했다. 이로 인해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손해를 입은 원고 57명(원고 전체 120명)에 대해 각 500만원씩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국가의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해 ‘소멸 시효’를 주장해 온 피고 대한민국 측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가가 미군 ‘위안부’들의 성매매를 조장한 점, 경찰이나 공무원 등이 기지촌 성매매 알선업자와 유착해 각종 불법 행위를 방치한 점, ‘애국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기지촌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점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

 

▶ 1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미군 '위안부' 소송 선고 공판 후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일다

 

‘낙검자 수용소’ 수용, 법적 근거 없는 인권침해

 

재판부가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부분은 보건 행정당국이 강제적인 정기 검진을 통해 성병에 감염된 기지촌 여성들을 ‘낙검자 수용소’ 등에 강제로 격리한 행위다.

 

재판부는 “전염병예방법은 1963년 3월에 제정되었으나 시행규칙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1977년 8월 19일 제정, 시행됐다. 시행규칙이 시행되기 전에는 성병 감염자를 격리 수용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1977년 8월 19일 이전에 기지촌 ‘위안부’들을 낙검자 수용소에 격리 수용한 행위는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위법행위”라는 것이 재판부 판결의 요지다.

 

또한 재판부는 국가의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소멸 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5년의 공소 시효를 갖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당시 원고들이 그 위법성을 쉽게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원고들의 나이, 교육 수준과 함께 격리 수용이 ‘공권력 집행’이라는 외관을 띄고 보건소와 경찰에 의해 행해졌다는 점, 수시로 이에 대한 교육이 실시됐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또 사회적으로 성매매를 금기시하던 분위기에서 기지촌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점,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 등도 참작됐다.

 

“국제적으로도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가 배제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되고 있고, 이 사건과 같이 국가 권력 기관의 위법행위로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던 경우 소멸시효 항변이 배척돼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 57명을 제외한 나머지 63명의 원고의 사례는 이러한 불법행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들은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이 시행된 1977년 8월 19일 이후에 낙검자 수용소에 수용됐거나, 낙검자 수용소에 격리 수용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기지촌 성매매 조장 책임은 인정 안 해

 

또한 재판부는 국가가 나서서 성매매를 권유하고 조장해 왔으며, 기지촌 내 불법행위를 방치하고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원고 측의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가가 기지촌을 형성하고 관리한 점은 사실이지만, 기지촌 정화운동이나 기지촌 주변 종합개발계획 등은 지역사회 환경 개선, 성병 검진 치료 등 공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사인(私人)의 성매매 종사를 강요하거나 촉진, 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국가 소속 공무원들과 성매매 알선업자들이 유착 관계에 있었고, 경찰 공무원들 또한 기지촌 내 불법 행위를 묵인하고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원고들의 진술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애국교육’의 경우, 재판부는 미군 의무부대 장교, 보건소 직원, 경찰서장, 관광협회장, 군수 등이 기지촌 여성들을 모아 놓고 교육한 사실은 맞지만, 교육 내용이 주로 원고들의 건강이나 보건에 직결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를 두고 미군의 이익만을 위한 교육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식품위생영업에 종사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은 피고 대한민국의 정책 시행에 관한 재량 영역이며, 공익성도 인정되고, 그 자체로 원고들의 기본적 인권 침해한 불법행위라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 1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선고 공판 후 열린 기자회견.  ⓒ일다

 

한계에도 불구 “용기 준 판결”…국가 책임 더 밝혀낼 것

 

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원고 측은 국가가 성매매를 조장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면서도, 앞으로 기지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전망했을 때 “부족하지만 첫걸음을 뗐다”는 입장이다.

 

소송 대리인단 대표인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그동안 마치 국가와 완전히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개인의 불행한 일로만 여겨졌던 기지촌 성매매가 국가의 책임 하에서 이뤄지고 관리돼 왔다는 것을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었다.

 

김진 변호사는 이어서 “1심 판결이기 때문에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항소, 상고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기지촌 위안부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실태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법령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추가 자료를 확보한다면 더 많은 피해 사실을 밝혀내고 더 많은 국가 책임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송 대리인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국가가 구조적으로 기지촌 성매매를 조장하고 방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건 명백한 한계이지만, 앞으로의 행보에 용기를 준 판결이었다”고 평가했다.

 

하 변호사는 “그동안 기지촌은 특수한 영역으로 간주되면서 그 불법성이 묵인돼 왔으나, 이번 판결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불법성이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멸시효와 관련해서 피해자들이 지금까지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던 객관적 사정을 법원이 인정했고, 피고인 대한민국이 지금 이 시점에 ‘소멸 시효’를 주장하는 건 권리 남용이라고 판결한 것은 의의가 크다”고 진단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여성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진짜 민주주의 2017/01/23 [01:25] 수정 | 삭제
  • 기사 감사합니다. 일단 기쁘면서도... 아직 갈길이 많이 남았네요. 보다 많은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보입니다. 피해자분들 힘내세요~

    일본군'위안부'가 국가에 의한 성노예였던 진실을 일본정부가 인정하고 사죄하고 역사에 기록하는것은 피해당사자분들만이 아니라 일본남성들의 정상적인 자존감과 성교육을 위해서 일본의 민주주의국가로의 첫 걸음마로서 중요하듯이,

    미군'위안부'로 국가에 의해 강제되고 감금되고 목숨을 잃기도했던, 평생을 '양공주'로 불리우며 스스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했던 분들의 진실을 한국정부가 제대로 인정하고 사죄하고 역사에 기록하는 것은 한국 (여성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첫 걸음마가 될것입니다.

    남성들의 성매수/성폭력을 “남성의 본능 운운”하고 성매매자를 (윤리적 포함) 범죄화하는 정서도 "국가에 의한 성매매 조장 범죄"인데,
    당시 한국정부는 성매수자를 위해 성매매를 강제하고 직접 감금 관리하는 포주의 역할을 한 반인륜적 패륜적 범죄였음에도 일부만 인정하려한다면 한국남자아이들 성교육은 늘 요원할것입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