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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노동자를 최대한 쉬지 못하게 하는 근무환경
[나의 알바노동기] 시급 1만원을 꿈꾸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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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다>는 청년여성들의 가감없는 아르바이트 현장 경험을 기록합니다. “나의 알바노동기”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여기서 근로계약서 쓴 첫 알바노동자가 나?!

 

▶ ‘꿀알바’였던 대형 빵집에서는 그러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노동을 시작한 곳은 지방의 관광지에 위치한 대형 빵집이었다. 당시 최저시급보다 천원이나 많이 준다는 점, 아침부터 낮까지 일해서 저녁에는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점심식사를 무료로 지원해준다는 점에 혹했다. 그런데 그런 ‘꿀알바’에서 내가 처음 찾은 오점은 알바노동자를 대상으로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짧은 시간동안 일한다 해도 근로계약서는 꼭 작성해야 하는데 말이다.

 

서류를 관리하는 직원에게 ‘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지’ 물어봤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지 당황해서 점장을 급히 찾았다. 점장은 근로계약서를 꺼내 작성하고, 내게 내용을 읽어본 후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계약서에는 동기에게 소개받았던 내용과 달리, 첫 달은 수습 기간이라고 해서 7,000원(당해연도 시간급)의 90%만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수습 기간에 받는 시급이 최저시급을 가뿐히 넘는 금액이라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점장에게 주었다. 하지만 내가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소개받았던 내용대로, 점장에게 들은 대로 첫 달부터 시급 7,000원을 받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하지 말 걸’ 후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노동하는지 시급은 얼마인지 확실한 증거가 남는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알고 보니 내가 그 사업장에서 알바노동자 최초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지방이지만 이렇게 큰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최초의 알바노동자가 나라니…! 기본 중 기본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허탈했다.

 

근로계약서를 쓴 이후로 이 사업장에선 첫 달의 시급 600원이 줄어들었다. 내가 들어온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나와 같이 첫 달은 수습 기간으로 시급(7,000원)의 90%(6,400원)을 받고, 이후에 시급이 7,000원이라고 했다. 600원☓6시간 혹은 7시간☓주 2일☓4주=28,800원 혹은 33,600원이다. 더 비싼 밥을 포기하고 맛이 없는 학식을 먹거나 편의점에서 대충 밥을 때우고, 집에 가는 길에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사 먹는 대신 그냥 집에 돌아오고, 책과 옷과 필기도구, 소액이 드는 전자기기 등 새로운 물건을 사는데 망설이거나 포기하게 되는 가격. 생활에 필요한 물품에 드는 돈을 줄이고,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소비를 뒤로 미루게 되는 가격이다.

 

근로계약서 작성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자, 전에 없던 수습 기간을 적용하며 시급을 깎는 모습을 보며 당장이라도 알바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도 그 알바를 놓칠 수 없던 이유는 주말 낮이라는 시간 때문에 과외와 병행할 수 있다는 점, 최저시급도 제대로 주지 않는 사업장이 많은 지역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시급 높은 알바였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생각이 앞섰던 탓에 계속 일했다.

 

‘쉼’의 기준이 왜 이리 낮아졌을까

 

내가 알바노동하는 곳은 관광지 근처에 위치했다. 빵집 그 자체로도 유명했다. 이제 슬슬 대학생들이 종강을 맞아 놀러 오기 시작하고, 직장인들이 휴가를 내 이곳에 들렀다. 처음 몇 주와 달리 사람들이 정말 많이 몰려왔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놀러 다니며 돈을 쓰는지 그곳에서 알바노동을 하면서 알았다. 일이 끝나면 감탄이라도 했지, 일하는 와중에는 정신이 없었다.

 

▶ 지방의 한 대형 빵집에서 알바했을 때.

 

포스기가 없어 빵을 보며 계산기로 가격을 매기고 카드 단말기로 계산을 했다. 계산 결과를 의심하는 손님에게는 빵 가격을 말하며 천천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가 일하던 기간에 계산한 결과와 빵의 가격이 달라 사단이 난 적이 있었는데도, ‘손님을 빨리 보내려고 포스기 없이 처리한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 손님을 빨리 보내서 다음 손님을 많이 들일 수 있어 이득을 얻는 쪽은 경영자지만, 간혹 계산 결과가 실제와 다를 때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사람은 계산대에서 알바노동하는 사람이다. 알바노동자 입장에서는 잘 하면 본전 찾고 못하면 사달이 나서 손님께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해야 한다.

 

알바노동자가 실수하는 이유는 포스기가 없어 계산기를 사용하다 보니 버튼을 잘못 누를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세상이 진보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이 편해지는 것이 마땅하다. 계산 과정이 빨라서 손님을 많이 받고 싶다면 카운터에 사람을 늘리면 될 일이지, 노동자가 더 힘들게 일해선 안 된다. 왜 기술은 발전했는데 사람은 편하게 일하지 못하는가.

 

물론 바쁜 기간에도 손님이 비교적 적게 오는 시간대는 존재했다. 그럴 때면 앉아있고 싶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나오셔서 매장을 감독하는 전대 사장님의 부인을 위한 의자를 제외하고는 직원이 앉을 의자가 없었다. (사장님의 부인이 지점 확대나 기업 간 계약에 대해서 관여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근처 지점까지 감독하시는 등 분명히 기업에서 하는 역할이 있었음에도, 직원들은 업무와 관련이 없는 명칭인 ‘사모님’이라고 불렸다.)

 

나는 동료에게 왜 카운터에 의자가 없는지 불평했다. ‘의자가 있으면 앉아서 수다나 떤다’는 사모님의 말씀에 따라, 전에 있던 의자를 치웠다는 말을 들었다. 사모님의 의도대로 카운터에 의자가 없기 때문에, 손님이 없을 때 내 모습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적게 와서 카운터에 두 명이나 있을 필요가 없을 때엔 상자를 종이봉투에 넣는다든지, 상자에 빵을 넣는다든지, 카운터 밑에 봉투가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봉투를 가지러 지하로 내려간다든지 등의 일을 계속했다. 쉴 시간을 최대한 주지 않았다.

 

어쩌다 일이 없을 때, 옆 카운터에 일하는 동료와 카운터 뒤에 있는 서랍장에 등을 기대고 있음에도 주위에서 다른 업무를 하라고 지시하지 않을 때가 정말 좋았다. 아주 소소한 쉼에도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왜 쉼의 기준이 그토록 낮아져야 했을까. 알 길이 없다.

 

알바노동과 월경이 겹칠 때

 

포스기와 의자가 없는 것보다 더 큰 고충이 있었다. 월경이었다. 어쩌다 생리 기간이 짧거나 운이 좋으면 주중에 월경이 시작하고 끝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생리 기간이 주말을 끼고 있었다. 주말과 월경이 많이 나오는 기간이 겹칠 때면 정말 끔찍했다. 생리휴가 제도가 이 사업장에 적용되고, 노동시간이 아무리 적더라도 생리휴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봤자 무얼 하겠는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후에도 처우가 안 좋아졌는데, 생리휴가까지 말하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생리 기간에도 계속 알바노동을 했다. 손님이 몰려들어 카운터가 바쁘면 계산에 집중해 시간이 금방 갔다. 그러면서도 생리대를 교체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계속 손목에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이 되면 옆 카운터에 있는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하 화장실에 가서 생리대를 갈았다. 그때만은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 놓고 있을 수 있었다. 천천히 올라가 1층 카운터에 가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있던 카운터에 일하는 사람이 없어서 손님들이 줄을 서거나 줄이 길어진 모습을 보며 다음에 생리대를 교체할 때는 처음처럼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알바노동을 마치고 사업장에서 나오면 몇 시간 만에 다시 본 쨍한 자연광이라 그랬는지 머리가 핑 돌고 아지랑이가 보였다.

 

▶ 자주 매는 가방. 면접 때는 혹시나 감점요소가 될까봐 달고 다니던 배지(시급 만원, 사드 반대, 낙태죄 폐지)를 뺐다.

 

여름이라 날이 좋을 때는 기분이 좋아지라고 옷을 예쁘게 입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나와 사업장에서 유니폼으로 나온 앞치마와 윗옷을 입고 모자를 썼다. 카운터에 있을 때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쟁반을 정리하거나 매장 한 쪽에서 빵을 박스에 넣고 있을 때엔 내 바지 길이가 다른 사람 눈에 보였다. ‘왜 이리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니냐’, ‘이러다 험한 일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중년 직원에게 들었다. 성폭력은 내 옷차림과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 말을 계속 들었다. 그래, 나이든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중년의 직원이 또 옆 카운터에 있는 여성 알바노동자와 비교하며 ‘너는 왜 남자친구가 없느냐’, ‘왜 화장을 옅게 하고 다니냐’ 물었다. 내가 하고픈 말을 했다가는 분위기가 싸해질까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에서야 말한다. “아~ 옆에서 빈 상자 날라다가 빵 포장하는 남자 알바노동자에게는 외모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저에게만 그러세요? 저는 제가 하고픈 대로 화장할 것이고 연애에 관심이 없는데 왜~ 고나리 하세요?”

 

알바 구하기도 쉽지 않은 노동시장, 구직은 계속된다

 

지난겨울에 대형 빵집 카운터 알바노동을 그만두었다. 최저시급이 6,030원에서 6,470원으로 올랐음에도 시급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에는 근처에서 알바를 구해 교통비를 아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빵집 알바노동을 그만둔 뒤, 쉬자는 의미에서 알바노동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돈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핸드폰은 액정이 깨져 터치가 잘 되지 않고, 전화를 도중에 끊을 수 없는 등 잔고장이 나 있고, 노트북은 전에는 가끔 시동에 문제가 있더니 이제는 전혀 켜지지 않았다.

 

핸드폰을 수리하러 경로를 알아보니, 내가 사는 지역에는 간단 상담 및 배송 서비스를 위주로 운영하는 서비스센터밖에 없었다. 워낙 각종 할인 받고 산 핸드폰이라서 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 사는 편이 돈이 덜 들었다. 또, 노트북이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기 불편했는데 새로 사야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치과치료, 다음 학기 등록금 등 돈이 나갈 곳이 많아 차마 엄마에게 손을 벌릴 수 없었다.

 

▶ 잔고장이 나서 고치려 했지만, 수리비가 구입비보다 더 나올 것 같아 결국 새 걸로 바꾸려 하는 핸드폰.

 

알바노동을 하기로 했다. 우선 집 근처에서 알아봤다. 편의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중개업체에 올린 공고와 달리 시급이 4,000원이라고 했다. 다른 알바를 알아봤다. 학원 알바는 학원 알바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경력이 애초에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디에서 경력을 쌓아야 할까.

 

카페에 지원을 넣었다. 그 카페에서는 ‘고기’를 팔았다.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 페스코인 내가 직접 고기로 요리를 한다는 점이 걸렸지만,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시급도 6,500원이었다. 면접을 봤다. 면접 시간을 개인별로 따로 잡았음에도 내 앞에 면접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 면접을 보고 채용 연락을 기다렸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때 빵집 알바를 계속하지 않는 것을 후회했다. 그곳에서는 최저시급보다 많이 주었고, 일하는 시간도 길어 돈을 적당히 벌 수 있으면서 아침부터 낮까지 일하기 때문에 저녁 시간을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었다. 빵집에서는 육류가 들어간 음식이 별로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포장과 계산만 한다. 아, 알바에서 괜찮은 일자리 찾기도 쉽지 않고 그나마 찾아도 괜찮은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한탄하며 다른 일자리를 찾다가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수학학원에서 보조교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봤고, 바로 지원했다. 다행스럽게도 합격했다. 주휴 수당도 받지 못하는 초단시간 노동(주 3회 12시간)이었지만 구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학원 알바노동을 하고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밤 11시 반이다. 학원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도 상가와 거리가 있고, 버스가 오기까지 20~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없으면 도로에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주변에는 인기척이 없어서 정말 무섭다. 무서워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지만, 음악소리 때문에 수상한 인기척을 못 느낄까봐 음악을 들으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집 근처 정류장으로 데리러 와주셨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엄마도 파트타임 노동자라 이따금 야간노동을 한다. 어찌 피곤해서 나오지 못할 때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때면 예전에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택시비 아끼려 집에서 5분 거리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웬 남자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달려서 상가 엘리베이터에 급히 탄 후 덜덜 떨며 친구에게 전화했던 때가 생각난다. 혹시 그런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불안하지만, 일단 돈이 급하다.

 

돈이 충분해지면 어서 그만두어야지. 시기를 판단하려 월급을 계산했는데, 핸드폰과 노트북 구입 등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턱도 없다. 곧 종강을 하니 야간알바와 겸해서 평일 낮이나 주말에 할 알바를 구하고 있다. 최저시급이 만원이 되면 투-잡이 간절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다가, 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아르바이트 노동 중개업소에 올라오는 채용공고 목록을 계속 검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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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21 [18:05]  최종편집: ⓒ 일다
 
Dd 17/06/22 [08:13]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쳇바퀴처럼 계속된다는 느낌..ㅠㅠ
경희 17/06/22 [15:52] 수정 삭제  
  시급 600원 차이!
ㅠㅠ 17/06/22 [18:28] 수정 삭제  
  의자 놓읍시다. 빵집 가서 고객 컴플레인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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