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키우는 문화예술계 성폭력…정책적 대안 나와야

여성문화예술연합, 미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도 마련 촉구

박주연 | 기사입력 2018/02/08 [15:09]

‘괴물’키우는 문화예술계 성폭력…정책적 대안 나와야

여성문화예술연합, 미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도 마련 촉구

박주연 | 입력 : 2018/02/08 [15:09]

지난 1월 29일 JTBC 뉴스룸에서 서지현 검사가 검찰 조직 내 성폭력을 고발한 것에 이어,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은 <괴물>이라는 시가 회자되며 문단 내 성추행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고발은 2016년에 SNS를 중심으로 일어난 ‘#OO_내_성폭력’ 말하기를 재조명하고, 2017년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Metoo)이 국내에서도 탄력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특성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의 젠더폭력대책 태스크포스(TF, 위원장 남인순)는 ‘서지현 검사 사건 이후 #미투 운동, 향후 대안마련을 위한 현장 전문가 간담회’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개최했다. 정춘숙 의원은 “서지현 검사가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 왜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집중해 달라는 의견을 반영”하여 간담회를 열게 되었다고 말했다.

 

▶ 더불어민주당의 젠더폭력대책TF에서 주최한 ‘서지현 검사 사건 이후 #미투 운동, 향후 대안마련을 위한 현장 전문가 간담회’ 참가자들. ⓒ일다(박주연)

 

이 자리에서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촉구해 온 여성문화예술연합이 그간의 경과를 보고하고,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각 분야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관련 모임들의 연대체다.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공동대표는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특성에 대해 분석,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①보이지 않는 공동체 내 성폭력: 회사 등의 규범화된 조직이 존재하지 않지만 학연, 지연, 유명세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권력관계 속에 있으며, 가해자의 소속이 불확실한 점 때문에 처벌이 어려움.

 

②남성중심적 예술계의 권력구조: 예술대학의 경우 학생의 성비는 여성 80%, 남성 20%인 반면, 교수진의 성비는 반대. 뿐만 아니라 후원 혹은 지원의 결정권자 대다수가 남성.

 

③권력형 성폭력: 피해자가 주로 작가 지망생, 학생, 예비/신인 예술가인 반면 가해자는 교수, 강사, 유명 작가, 계약 관계의 상사 등. 선배와 스승이 활동 영역의 동료, 심사위원, 비평가로 이어짐.

 

④‘예술 표현의 자유’로 빙자되는 성폭력: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 예술 작품의 뮤즈 및 자유로운 연애 상대가 되길 강요받으며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즉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

 

⑤피해자가 완전히 고립되는 환경: 대다수의 예술인들의 빈곤의 문제를 겪고 있음. 이런 경제적 고립은 성범죄 신고를 불가능하게 하며, 결국 피해자가 문화예술계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

 

▶ 여성문화예술연합 이성미 대표가 발표한 ‘문화예술계 성폭력, 정책이 답이다’ 프리젠테이션. ⓒ일다(박주연)

 

부처 간 떠넘기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라

 

이성미 대표는 2016년 SNS에서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을 폭로하는 해시태그 운동 이후, 발화자에 대해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다수의 보복성 고소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SNS로 익명으로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수의 피해자가 ‘이름 없는/힘이 없는 이들’이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가해자들이 쉽게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역고소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성미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폐지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회에서 이 일을 꼭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 허위가 아닌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과제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1년 전인 2017년 2월 8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과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들이 참가한 ‘문화예술계 성폭력 방지 대책 간담회’에서, 정책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여성예술인들, 문체부에 ‘성폭력 전담기구’ 요구) 거기에는 정부 부처 내 성폭력 해결을 위한 전담기구 설립, 정기적인 예술인 성폭력 실태조사 및 예술인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 실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성미 대표는 그 제안 중에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온라인 사이트에 ‘성폭력 신고를 위한 임시 창구’를 만드는 계획은 일방적으로 무산되었고, 퍼실리테이터 예술인과 파견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교육은 실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 전국 해바라기센터에 배치된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이드라인> 책자 표지

 

여성문화예술연합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공동으로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여성가족부는 이 책자를 전국 해바라기센터(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의 상담과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로 전국 중소 도시 이상의 지역 거점 병원에 병설되어 있음)에 배치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정책 제안들이 표류 중이다. 이성미 대표는 예술인 성폭력 실태조사 등 제안에 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 떠넘기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여당 의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이성미 대표는 ‘회사 등 집단이나 단체에 소속되지 않는 많은 예술인들이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예술중고등학교 및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책임 부처를 명확히 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2차피해’ 대책, 이주여성도 미투를… 각계 요구

 

간담회 2부에서는 문화예술계 뿐 아니라 각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 사안에 대해, 현장 여성단체들의 의견과 요구가 이어졌다.

 

수사 재판 과정의 2차 피해: 젠더폭력 기본법을 제대로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국가에서 ‘성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조차도 없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리고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사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법과 제도 개선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

 

이주여성은 고발도 할 수 없다: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성폭력에 놓이게 된다. 이주여성들도 미투 운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어주셨으면 좋겠다. 이주 여성들이 성폭력 고발, 신고를 못하는 건 체류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해줄 제도가 필요하다. (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대표)

 

성희롱 사업주의 책임은?: 한국여성노동자회 10개 지부에서 운영하는 ‘평등의 전화’에 요즘 왜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상담이 늘어났다.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80%가 임금체불 사안에 매달려 있어서 성희롱 문제를 다루기 힘들다고 이야기하시는데, 이번에 인원이 충원된다 하니 제대로 해주셨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고발 이후에도 생존권이 보장되고 보호받을 있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 김명숙 노동정책국장)

 

고용관계外 성희롱도 규정되어야: 직장 내 성희롱은 관련 법에 적용을 받지만, 고용관계 외에 일어나는 성희롱은 법적 개념이 불분명하다. 다른 성희롱도 법에 적시되어야 하고,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페미니즘 성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의 질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교육부에서 만들고 있는 성교육은 여전히 보건 분야에 머물러 있다. 국제기구에서 포괄적 성교육을 하라고 권고하고 있는데, 국내에선 전혀 변화가 없다. 언제까지 페미니즘, 성평등 교육을 금기시하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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