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영화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미래 사회에서는 ‘몸’의 가치가 어떻게 될까?
영화 <더 나은 선택>(Advantageous)이 그리는 전망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주연
배너

작년부터 최근까지, 보고 싶은 국내 영화가 거의 없어서 주로 해외 영화를 보곤 했다. 스토리가 뻔해 보이는 암청색 영화들을 피해 선택한 것들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선택도 다양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해외’ 영화라고 하지만 등장인물 대부분이 백인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1월에 열린 2018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시상하러 나온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모두 남성인 후보들을 소개합니다”라고 말한 게 많이 회자되었다. 할리우드의 성차별을 꼬집기 위한 발언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별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TV드라마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스털링 K. 브라운(Sterling K. Brown)이 수상했다. 올해 75회인 이 시상식에서 흑인이 TV드라마 남우주연상을 받은 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감독상 후보들은 남성인 것뿐만 아니라 모두 백인이었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자유롭고 쿨한 할리우드로 인식되지만 실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연장인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할리우드에서 보기 힘든 영화 중 하나가 ‘아시아인’이 등장하는 영화다. 거기다 ‘아시아 여성’인 감독이 만든 해외 영화를 한국에서 접하는 일은 정말 드물다.

 

▶ 제니퍼 팡 감독, 재클린 킴 각본 주연의 영화 <더 나은 선택>(Advantageous, 2015)

 

<더 나은 선택>(Advantageous, 2015)은 그런 점에서, 우리 손에 쉽게 잡히는 영화는 아니다. 201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특별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중국/말레시아/베트남계 미국인 여성 감독 제니퍼 팡(Jennifer Phang)이 연출했다. 제니퍼 팡 감독과 한국계 미국인 여성 재클린 킴(Jacqueline Kim)이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재클린 킴이 직접 주인공을 연기했다. 국내에서는 23분의 단편 버전이 2012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되었지만, 2015년에 나온 장편 영화는 정식으로 개봉된 적이 없다. 지금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한국에서 보기 드문 헐리우드의 ‘아시아 여성’ 감독 작품인데다 아시아 여성이 주인공인, 흔히 말하는 ‘여성영화’라서 소개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인 건 맞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에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더 나은 선택>은 가까운 미래, 지금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한 사회가 배경이다. 주인공 그웬은 ‘발전된 건강과 삶을 위한 센터’에서 성형, 미용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상사인 피셔가 그웬이 회사의 얼굴로 많은 일을 했다고 얘기하는 걸로 봐서, 그웬은 마케팅을 비롯한 중요한 일들을 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그웬에게는 줄스(Jules)라고 하는 딸이 하나 있다. 싱글맘이지만 직장을 가진 그웬은 풍족하진 않아도 딸을 양육하는데 무리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줄스가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엘리트 공립학교 입학에서 탈락한 후 상황은 급변한다.

 

뛰어난 성적에도 비롯하고 입학에서 탈락한 줄스에게 남은 선택은 값비싼 사립학교에 가는 것 뿐이고 그웬은 그걸 감당할 수 없다. 그웬은 상사이자 동료인 피셔에게 연락해서 줄스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상담을 청한다. 이때 피셔는 이렇게 말한다. “알잖아, 아마 인맥이 없어서 떨어졌을 거야,”

 

그웬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임금을 인상해 줄 수 없냐고 말을 꺼내는데, 피셔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실 회사의 타깃을 조금 더 어린 여성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면서 해고를 통보한다.

 

▶ 제니퍼 팡 감독, 재클린 킴 각본 주연의 영화 <더 나은 선택>(Advantageous, 2015)

 

순식간에 실업자가 된 그웬은 절망하지만 빨리 방법을 찾기 위해 헤드헌팅 회사에 연락해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다. 경력에 자신이 있었던 그웬은 비슷한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하지만 좀처럼 연락이 오질 않는다. 결국 헤드헌팅 담당자는 일을 구하기 어렵다며 ‘난자 판매’를 제안한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된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에서도 그랬지만(참고 기사: 성평등에 반대하는 사람들 http://ildaro.com/8078), 이 미래에서도 ‘불임’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다.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아직 가임기인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난자를 판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돈도 줄스의 학비를 충당할 수는 없었고, 그웬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영화는 한편으로 그웬이 사는 집 근처에 지내는 홈리스 여성청년의 모습과 마스크를 쓴 여성청년이 폭발물 테러를 일으킨 듯한 암시를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이 사회가 일자리가 부족한 상태이며 피해를 보는 이들 대부분이 그웬을 비롯한 여성들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웬이 줄스의 미래를 위해 그렇게나 값비싼 엘리트 사립학교를 보내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학교를 들어가면 줄스는 정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피셔의 말이 다시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인맥이 없어서 그랬을 거야.” 줄스는 자신이 원했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고 결국 그 인맥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줄스는 언제, 어떻게 해야 그 인맥의 고리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걸까? 들어갈 수 있긴 한 걸까?

 

그웬과 줄스에게 남겨진 선택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는 여지라도 만드는 것, 아니면 포기하는 것. 만약 ‘포기’를 선택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그웬이 마주쳤던 여성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 제니퍼 팡 감독, 재클린 킴 각본 주연의 영화 <더 나은 선택>(Advantageous, 2015)

 

‘몸’ 이미지에 대한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웬은 포기할 수가 없다. 그웬은 전 직장을 찾아가 회사가 준비하고 있던 실험 프로젝트의 첫 대상자가 되겠다고 하며 회사와 재협상을 한다. 그 실험은 성형수술으로 더 아름다워지거나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몸을 바꾸는 수술이다. 그웬의 생각과 기억, 감정들을 이동시킨 후 원래 몸을 버리고 더 젊고 아름다운 몸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회사가 그웬과의 협상에서 승낙하는 걸 보면, 애초에 회사가 그웬의 일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해고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단지 그웬이 가진 몸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거였다. 능력 있고 나이 든 여성인 그웬은 필요 없었지만, 능력 있고 젊고 더 아름다워진 그웬은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영화는 다양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그 과학기술이 많은 사람의 자리를 대체하는 마당에, 사람의 몸뚱이라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몸이라는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에 끝은 과연 어디인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몸의 이미지에 대해 강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모순적이게도 그웬은 자신의 몸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 누군가는 그웬의 선택을 전혀 불리한 점이 없는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더 젊고 아름다운 몸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회사에서 일을 다시 하게 되었으며 줄스의 학비를 댈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한 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왜 그웬은 그웬의 몸일 때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자신의 몸을 버리는 순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이렇게도 할 수 있다. ‘왜 자신의 몸을 버려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 제니퍼 팡 감독, 재클린 킴 각본 주연의 영화 <더 나은 선택>(Advantageous, 2015)

 

‘여성영화’는 뭐가 다르냐고?

 

인류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의 사회, 그 사회에서도 몸을 담보로 한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상상, 겉보기의 노동 환경은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노동자, 특히 더 열악한 위치에 있는 싱글맘인 중년의 여성 노동자가 놓인 위치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압박할 것이라는 상상은 ‘소수 인종 여성’으로 살아온 감독과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수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틈에 약자와 소수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고민해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주목하게 된다. 단지 ‘아시아 여성’ 제작진이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인종, 성별, 나이, 계급, 노동 등의 이슈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해주는 그 시선이, 관객의 시야 범위를 흔드는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종종 대체 ‘여성영화’가 뭐냐?, 영화는 영화지, 왜 굳이 여성영화라고 하는가? 그럼 남성영화도 있나?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영화를 여성영화로 호명하는 것은 영화를 반으로 쪼개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개인의 삶은 다 다르고 다양하지만 그 개인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 놓여있음으로써 가지게 되는 공통된 특질이 있다. 그 특질이 드러날 때, 무언가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 그 특질이 반영되었을 때 ‘OO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더 나은 선택>(Advantageous)은 훌륭한 여성영화다. 그리고 또한 SF영화이고 인종, 계급, 성차별, 노동, 과학기술,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영화를 여성영화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배너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02/21 [10:31]  최종편집: ⓒ 일다
 
독자 18/02/22 [11:09] 수정 삭제  
  이런 영화 좋아요. 넷플릭스 신청해야겠다 싶네..
캐치볼 18/02/27 [16:09] 수정 삭제  
  흥미로운 영화네요! sf물중에 눈에 띄는 괜찮은 작품일 것 같아요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비혼여성의 시골생활
너무 애쓰지도, 매이지도 않고 ‘한량’처럼…
메인사진
.... / 정상순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 출점기
메인사진
. ... / 이민영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안전한 해외여행을 위한 가이드라인
메인사진
. ... / 최하란

독자들의 화력 지원 영상
메인사진
일다소식
[뉴스레터] 모델을 착취한 사진, 정말 예술 맞아요?
[뉴스레터] ‘인터섹스’로서 느끼는 내 존재의 무게
2018년 8월 <일다> 독자위원회 모니터링 모임이 열렸습니다!
[뉴스레터] 베를린에서 ‘트랜스 여성 난민’으로 산다는 것
[뉴스레터] ‘생각많은 둘째언니’ 장혜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