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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 추방해야 할 것은 성(性)이 아니라 ‘폭력’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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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원구, 광주, 경남 창원, 부산 등 전국각지의 고등학교에서 교사 성폭력을 폭로하는 학생들의 ‘스쿨미투’(#SchoolMeToo)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움직임을 지지하면서 청소년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에 변화를 촉구하는 기고를 싣습니다. 필자 쥬리 님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편집자 주]

 

▶ 지난 5월 3일 서울 북부교육지원청 앞에서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이 주최한 기자회견. 교사 성폭력에 항의하는 용화여고 학생들의 용기를 지지하며, 학교와 교육청의 책임을 물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부모 동의 없인 성폭력 사건 수사를 못한다고?

 

내가 ‘미성년자’로 분류되었던 몇 해 전,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러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 “성폭력을 신고하러 왔는데요”라고 이야기할 때 목소리를 얼마나 크게 또는 작게 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너무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성폭력 피해자답지 않다’고 여겨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작게 이야기하긴 싫었다. 성폭력을 신고하러 왔다고 하자 남자 경찰이 여자 경찰을 불렀다. 여자 경찰은 나를 작은 방으로 데려가 진술을 받았다. 그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최초의 증언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최초의 증언이 있은 후, 같은 내용의 증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야 했다. 경찰차를 타고 해바라기센터에 가서 상담원에게, 수사 담당경찰에게, 법률 조력인에게, 또 형사들에게. 증언을 되풀이하는 게 힘들었던 건, 그 일련의 사건에서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이 굴었는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되풀이되는 증언 행위는 당시의 행동들을 계속 후회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던 순간은,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이야기해야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상담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고 고려해본 적도 없었다. 나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지도 않았고,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길 부모에게 할 자신도 없었다. 부모에게 알려야만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면 차라리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부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수사를 원치 않는다고 말해도, 주민등록상 등록된 부모에게 연락을 해서 내 동의 없이 알려 버릴까봐 두려왔다. 그들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성폭력상담소와 법률 조력인에게 문의했다.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피해자인 내가 오히려 경찰과 해바라기센터에 “법적으로 미성년자도 단독으로 범죄 피해를 신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했다. 법률 조력인에게 부모에게 알려지지 않는 조건으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부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우편과 전화 등을 통한 고지를 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했다.

 

경찰이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학생 본인이 야간자율학습을 할 것인지조차 부모의 의사만을 묻고, 통장 개설부터 집 계약까지 모두 부모가 동의해야 할 수 있는 사회라서 당연히 미성년자에겐 범죄 신고를 할 권리조차 없다고 여기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신고를 받아줬다가 나중에 부모가 항의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전개될까봐 관행적으로 그렇게 하는 걸까?

 

왜 이런 부정의한 관행이 되풀이되는데 국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언론은 이 문제를 보도하지 않은 것일까? 이후 주변에서 다른 청소년들의 비슷한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경찰에 범죄 신고를 하러 갔는데 부모랑 같이 오라고 해서 신고를 포기했다는 증언들을.

 

‘청소년’이라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형사들과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모텔)에 함께 찾아간 적이 있다. 사건이 일어난 구체적인 장소를 증언하기 위함이었다. 남자 형사 한 명이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속아 넘어갔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그는 스스로 이렇게 덧붙였다. “아 맞다, 열아홉 살이었지.”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성인이었다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았을 내 행동이-모텔에 따라 들어간 것-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판단력이 없어서” 그랬던 것으로 그들이 이해해줬으니까. 하지만 모욕감에 치가 떨렸다. 나를 기만하고 이용하기 위해 가해자가 했던 행위들보다 내가 미성년자인 게 사건 수사에 더 중요했다. 평소에 나는 ‘미성숙하다’고 낙인찍히며 권리를 박탈당하고 폭력으로 내몰렸는데, 그 낙인이 이 사건에선 피해자성을 증명하는 요인이 되었다.

 

가해자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나에게 폭력을 저질렀던 수많은 어른들 중 처음으로, 또 유일하게 처벌받은 사람이다. 때리고 모욕하고 빼앗던 어른들의 행위는 ‘교육’과 ‘훈육’, ‘사랑의 매’ 따위의 이름이 붙었지 폭력이라고 간주되지는 않았다. 나에게 성폭력을 가했던 사람의 행위가 처벌받은 건, 그 행위가 폭력이어서라기보다 ‘성’이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벌 근거가 된 법 이름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었다. 국가는 청소년인 나의 ‘성 보호’를 위해 가해자를 처벌했다.

 

지난 4월, 제주지방법원에서 미성년 딸에게 폭력과 성폭력을 행사한 부친에 대한 괄목할 만한 판결이 내려졌다. 수차례 폭행하고 성폭행한 부친의 행위는 ‘성폭력은 유죄’, ‘폭행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딸이 문신을 하고 흡연을 했으므로 아버지가 딸을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진 행위는 폭력이 아닌 훈육으로 본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피해당사자의 입장에서 ‘때리는 아버지’와 ‘강간하는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었을까? 이 사회가 실제로 보호하려 하는 것은 청소년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아닌, ‘성으로부터의 격리’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스쿨미투, ‘성’에 가려진 ‘폭력’의 문제들

 

지금, 교사(어른)에 의한 성폭력을 증언하는 여성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증언되는 만큼 실제 처벌로 연결되진 못 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경찰에 진술하는 것을 피해자의 부모가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면 경찰은 수사를 진척시키지 않으며, 수사가 개시되지 않으면 학교 측에서도 교사를 제대로 징계하지 않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청소년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부모-경찰-학교라는 어른들의 사회가 그 성폭력을 방조한다. 청소년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다(되어선 안 된다)고 여겨지며, ‘이성교제’를 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처벌을 받는 학생들이 아직도 많다.

 

‘스쿨미투’(#SchoolMeToo)를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 역시, 여성 청소년에 대한 ‘폭력’보다는 ‘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어떤 언행들이 이루어졌는지 그 묘사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면서 “어떻게 어른이 청소년에게 성적 언동을 할 수 있는지” 경악한다. 성폭력이 일어나고 은폐되는 원인인 권력 관계 자체의 폭력성은 쉽게 가려진다.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체벌‧폭언‧차별에 대한 심각한 무관심과 한 쌍을 이루는 대목이다.

 

청소년(학생) 간의 성폭력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나,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가해자 개인만이 악마화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청소년이 성폭력 가해자인 사건이 발생해 알려지면, 이러한 사건 자체가 청소년의 미성숙함이나 열등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청소년 인권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성폭력 사건의 책임은 가해자 본인 뿐 아니라,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구조와 집단의 책임자들에게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폭력대책위원회 방식의 처리로는 가해자 개인의 처벌만 가능할 뿐 학교 측의 책임을 묻기는 불가능하다. 성폭력을 발생시키고 은폐하는 학교 내 성 불평등, 성소수자 차별, 교사-학생 간 위계 등은 현재의 학교 시스템에서 반성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가부장적이고 무익한 내용의 성교육만을 제공하여 청소년을 성폭력에 더욱 취약한 상태로 내몬 교육부, 일상적 생활지도를 통해 여학생의 성적 주체성을 위축시키는 학교들, 그리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발언을 농담인 척 지속해온 교사들과 학생들 모두 ‘스쿨미투’에 책임이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이 문제시되고 폭력을 재생산하는 구조는 계속해서 은폐된다면 학내 성폭력이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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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09 [10:56]  최종편집: ⓒ 일다
 
철이 18/08/28 [22:25] 수정 삭제  
  문신과 흡연은 개인의 취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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