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마음에 들기, 여간 까다롭지 않아요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가마를 만들다④

이민영 | 기사입력 2019/04/30 [15:29]

흙 마음에 들기, 여간 까다롭지 않아요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가마를 만들다④

이민영 | 입력 : 2019/04/30 [15:29]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미장하기 좋은 계절, 봄을 떠나보내고

 

돌이켜보면 가마 만들기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핑계를 몇 가지 대자면 우선 일정을 조율하기 어려웠다. 가마 만들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현장연수를 떠나 3주가량 작업이 중단됐다. 며칠만 지나면 날이 더워지겠는데 싶은 늦은 봄날에 시작한 가마 만들기의 주 작업 시기는 여름이었다. 사실 한국의 여름은 고온다습한 계절의 특성상 대기 중 수분함유율이 높아 되도록 미장을 피하는 시기다.

 

게다가 일본 연수를 다녀오자마자 뒤늦게 하지감자를 캐고 밭의 풀을 뽑으며 밀린 농사일하기에 바빴다. 무사히 장마 오기 전 얼추 급한 농사일을 마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장맛비가 쏟아졌다.

 

그렇게 잠시 시야에서도 관심에서도 멀어졌던 가마의 초벌 미장은 그동안 마르고 갈라지고 깨지고 비 맞고를 여러 차례 반복했을 테다. 가끔 우리 가마 손봐야 하는 게 아니야,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장마의 습기와 한여름의 무더위에 어깨가 처질 만큼 무거워져 있었던지라 애써 모른 척하기 일쑤였다.

 

▲ 미장 흙을 부수다. 공구함 속 공구가 모두 나온 듯 각자의 방식으로 잘못한 초벌 미장을 털어냈다.  ©촬영: 홍정현

 

그동안 제작자들의 심정과는 무관하게 미생물들은 부지런히 활동을 개시했었나 보다. 오랜만에 가 본 가마 작업현장은 방수포를 꼼꼼하게 여며놓은 노력이 무색하게 바닥 미장에서부터 검은 곰팡이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습기에 약했을 지지대도 얼룩덜룩 곰팡이 천지에 이미 부식의 흔적이 보이는 곳도 있었다. 금이라고 표현하기 민망한 미장 사이 큼지막한 틈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도 했다. 충분히 마르지 않았던 벽면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농작물보다 까탈스런 미장 흙 다루기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지난 미장을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수밖에. 볕 좋은 어느 날, 도끼와 드릴 등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적합한 형태로 마른 미장 흙을 깼다.

 

미장은 공정상 초벌건조 후 재벌작업, 재벌건조 후 정벌작업까지 하는데, 단순하게 말하자면 미장용 흙을 만들고 붙여 마르기를 기다리는 일을 최소 3번은 해야 미장이 끝난다는 뜻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걸 다음 단추 꿰기 전에 알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임과 동시에, 유사하고 고된 작업을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앞길이 구만리처럼 느껴졌다.

 

▲ 곰팡이 샤워. 지지대도 모두 해체한 후 대나무 살을 더 촘촘히 고정하고 노끈으로 얼기설기 엮어 요철을 늘렸다. 미장 전 곰팡이를 닦아내고 내화벽돌의 습도를 조절하려 물청소를 해주었다.     ©촬영: 김경미

 

그보다 어려운 건 막막함이었다. 기존 제작은 주어진 설계도와 공구를 사용하면 질과 무방하게 얼핏 흉내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흙이라는 재료의 물성을 이해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가마의 골조를 만드는 일이 제작이나 건축의 방식과 비슷했다면, 미장은 오히려 농사에 가까웠다.

 

일례로 흙과 모래의 배합비율은 미장의 균열 발생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 배율이 정량적이지 않다. 선택한 흙에 따라 성분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흙을 구하고 나면 이를 보고 만지고 비율을 달리해 실험해보면서 가장 적당하다 싶은 배합률로 정한다. 그런데 어떤 미장이 가장 좋은지에 대한 선행경험이 없는 제작자들끼리 머리를 맞대보아도 무엇이 최선인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 지지대 사이로 미장 흙을 꾹꾹 누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꼭꼭 붙인 흙이 밀려나기도 한다. ©촬영: 김미경

 

이 점은 물이나 결합재와의 비율을 정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였다. 흙에 섞은 물의 양이 많으면 작업할 때는 편하지만 수축이나 균열이 발생할 위험이 높고, 그렇다고 물의 양이 적으면 잘 발리지 않는 데다 부착력도 떨어진다. 결합재로 볏짚을 섞을 때도 통상 오래되지 않고 비를 맞지 않았으며 노랗게 잘 보관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볏짚을 찾기가 수월치 않은 데다 볏짚의 품질 이전에 얼마나 숙성시키느냐에 따라 풀이 빠지지 않아 뻣뻣할 때도 있고 너무 오래 삭혀 썩을 때도 있어 적정한 지점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더불어 들쑥날쑥한 날씨의 입맛까지 맞춰 미장을 하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흙과 물과 바람을 기다리기

 

흔히 장인들이 흙 미장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시멘트모르타르 미장에 기준을 두고 작업하고, 시멘트모르타르 미장과 같은 품질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인도 아니고 그저 첫 시공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공기 중에 방치하면 굳어지는) 기경성 재료인 흙이나 석회는 시멘트와 같은 (물에 의해 굳어지는) 수경성 재료에 비해 확실히 고려할 점이 많고 다루기 난감했다.

 

단순히 수경성 재료로 일하는 경험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익숙해서 장인들이 시도하지 않는다 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 않을까 싶다. 흙이 마르는 시기와 계절의 적절성을 따져가며 공사 기간을 설정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더 많은 작업자들이 자연친화적인 재료에 노련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흙 미장을 고유성이나 전통성 또는 건강과 환경에 무리가 덜 간다는 이유로 고집하기엔, 이미 저비용 고효율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당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 미장은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바람과 나무 그늘도 미장이 잘 마르기를 거든다. 초벌 미장을 건조하는 중.   ©촬영: 조채윤

 

결국 가마 미장의 가장 큰 난제는 지금 여기 그리고 ‘내 뜻’이었다. 한 번 시험하고 분석하려면 족히 일주일은 기다려야 하고 기후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기 일쑤인데,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꾸 태풍철은 다가오고 그 와중에 기상청의 예보는 오락가락하고. 당장 해내야 한다고 누군가 닦달한 것도 아닌데, 허송세월하며 공정 시기가 늦춰지는 게 아닌가 조바심이 났다. 나의 기술과 역량이 더디 성장하는 점엔 눈 감고, 미장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끝없이 치밀었다.

 

하지만 미장의 완성은 내가 아니라 흙과 물과 바람의 몫이었다. 그래서 어느 세월에 완성하겠느냐는 행인들의 참견에 잠시 귀를 닫고, 작업자는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한 뒤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 또한 작업자의 주요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 바람도 비도 내 뜻대로 불고 내려야 할 이유가 하등 없는데, 그들의 기세를 읽을 줄도 모르면서 가마가 뭐라고 내 뜻대로 되어주길 기대했는지.

 

자립하겠다 벌인 일 속에서 도리어 나를 내려놓아야 함만 자꾸 터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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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9/05/02 [17:36] 수정 | 삭제
  • 아구구 여름에 곰팡이 ㅠㅠ 흙미장 결국 가마를 만드셨겠죠? 시행착오를 겪은 이야기가 왠지 더 값지게 느껴지네요.
  • 새로 2019/05/02 [08:13] 수정 | 삭제
  • 흙미장은 정말 정말 고난이도의 작업인데 초심자들이 애쓰셨네요. 다시 첨부터 시작하기로 했을때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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