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영웅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웅이 됐다”

<페미니스트라면 이 뮤지션> 재즈 색소포니스트 록시 코스

블럭 | 기사입력 2019/05/01 [13:16]

“그녀는 영웅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웅이 됐다”

<페미니스트라면 이 뮤지션> 재즈 색소포니스트 록시 코스

블럭 | 입력 : 2019/05/01 [13:16]

미국의 유명 재즈 잡지 중 하나인 <다운비트>(DownBeat)는 이 사람을 두고 “복잡하고 성실하고 지능적이지만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을 재정립해왔다”고 평가했다. 다른 재즈 잡지인 <올 어바웃 재즈>(All About Jazz)는 이 음악가를 재즈 역사상 대가로 꼽히는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과 비교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콜트레인과 마찬가지로, 그는 훌륭한 타이밍에 관한 감각과 리듬과 하모니의 구조를 통해 가사의 완성도와 즉흥 연주의 강렬함의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모두 재즈 연주자 록시 코스(Roxy Coss)를 두고 한 찬사다.

 

▲ 재즈 색소포니스트 록시 코스(Roxy Coss)가 2018년 발표한 앨범 [The Future Is Female] 커버  

 

재즈의 미래, 여성의 미래를 제시하는 록시 코스

 

록시 코스가 최근 발표한 [The Future Is Female] 앨범은 재즈 잡지 <다운비트>와 <올 어바웃 재즈> 양쪽 모두에서 별 다섯 개 만점에 네 개 반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재즈 색소포니스트인 록시 코스는 앨범 전체를 통해 강렬한 포스트밥 사운드를 선보인다. 여기서 포스트밥이란 비밥과 하드밥이라는 장르가 재즈 역사 속에 등장한 이후의 시점, 1960년대 중반에 생겨난 장르다.

 

흔히 ‘비밥’이라는 장르는 거친 속주를 비롯해 즉흥 연주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열정적인 음악이라고 설명된다. 그 반대편에 있는 ‘쿨 재즈’는 멜로니 하나 하나에 감성을 더하며 서정성과 감성을 중시한다고 설명된다. ‘포스트밥’은 열정적인 연주의 끝자락에 있으며, 당시 함께 등장했던 프리재즈와 아방가르드 재즈 등의 즉흥성을 더 품고 있다. 록시 코스는 그러한 음악을 통해 ‘여성의 해방’을 이야기한다.

 

우선 이 앨범의 트랙 리스트를 보자.

 

Nevertheless, She Persisted(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속했다) ②Little Did She Know(그녀는 거의 알지 못했다) ③She Needed a Hero, So That’s What She Became(그녀는 영웅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웅이 되었다) ④Females Are Strong As Hell(여성은 지옥만큼이나 강하다) ⑤Mr. President#MeTooChoicesFeminist AFNasty Women Grab Back(거친 여성들이 다시 잡는다) ⑩Ode To a Generation(한 세대를 위한 송가)

 

앨범은 단 한 줄의 가사도 없는 연주곡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현재 페미니즘 이슈와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곡의 제목만 봐도 록시 코스의 앨범이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지만, 음악을 들으면 가사가 없어도 그가 전달하고자 느낌이 직관적으로 닿는다.

 

▲ 재즈 연주자 록시 코스(Roxy Coss)가 2017년 발표한 앨범 [Chasing The Unicorn] 자켓 중에서 

 

위에서 두 재즈 잡지가 칭송했던 것처럼, 록시 코스는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 그런데 결코 쉬운 음악을 하는 건 아니다. 기존 재즈의 문법을 자신만의 것으로 체화하고, 그걸 넘어 새로운 모습의 재즈로 나아가는 지점을 제시한다. 음악적으로도, 메시지로도 미래를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여성이 재즈 연주자로, 밴드의 리더로 산다는 것

 

록시 코스가 어느 날 갑자기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물론 아니다. 그의 블로그를 방문해보면 2014년경부터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여성이 연주를 직업으로 삼는 것이 미국 사회에서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는 내용도 나온다. 록시 코스가 연주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음악계 남성 이야기부터, 정규 앨범을 내고 미국 재즈 내에서 보기 드문 여성 밴드 리더로 활동하는 그에게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성들까지… 그가 겪는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다.

 

록시 코스에 따르면 ‘여성'이 ‘재즈’를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전업 음악가’로 ‘어려운 즉흥 음악’까지 ‘연주’하며 ‘밴드의 리더’로 사는 것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가득한 재즈 음악 시장에서, 록시 코스는 그것을 하나하나 깨고 있다.

 

그는 2016 ASCAP 허브 알퍼트 젊은 재즈 작곡가상, 다운비트 비평가 선정 라이징 스타 등에 선정되었다.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은 물론, 북미와 유럽을 오가며 밴드 리더로서 연주 활동도 활발하게 하는 중이다. 또한 그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디바 재즈 오케스트라(The Diva Jazz Orchestra)의 일원이기도 하다.

 

▲ 재즈 색소포니스트 록시 코스(Roxy Coss)가 2018년 발표한 앨범 [The Future Is Female] 자켓 중에서 

 

착실하게 교육 과정을 밟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자신의 어머니이자 비주얼 아티스트인 메리 코스(Mary Coss)와 협업도 선보인 록시 코스는 누구보다 바쁘다. 페미니스트 재즈 음악가답게 ‘우먼 인 재즈 오거나이제이션’(Women In Jazz Organization, WIJO)의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이 단체를 통해 소수자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주고 재즈 음악 내 소수자를 지원하고 있다.

 

여러 활동을 소화하면서도 2016년에 [Restless Idealism], 2017년에 [Chasing The Unicorn], 2018년에 [The Future Is Female] 세 장의 정규앨범을 연달아 발표하며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너무 바빠서인지 블로그는 아쉽게도 2017년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다.) 좋은 균형감을 통해 뛰어난 작곡 실력과 즉흥 연주 실력 모두 선보이는 록시 코스의 행보를 보며, 이제 재즈에서도 여성이 미래로 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기존 문법과 다른, 그러나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호흡을 선보이는 세 장의 앨범을 모두 자신 있게 추천한다.

 

※ Roxy Coss Quintet “Mr. President” 2019 NY Winter Jazzfest https://bit.ly/2vtmOhL

※ Roxy Coss Quintet Live at Newport Jazz Festival 2016 https://bit.ly/2XSqJkv

※ Roxy Coss Quintet “Never Enough” Solo 2016 https://bit.ly/2GK1n17

※ Roxy Coss “Nevertheless, She Persisted” 2018 https://bit.ly/2JbQd8v

 

필자 블럭(bluc, 박준우): 음악에 관해 글을 쓰고 행사 기획을 하는 프리랜서이며, 올해 <노래하는 페미니즘>(니나 시몬부터 비욘세까지 페미니즘과 연대하는 팝뮤직)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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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아 2019/05/02 [07:51] 수정 | 삭제
  • 연주곡만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았다니 멋지네요 이렇게 많은 페미니스트 뮤지션들을 알게되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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