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무고’에 대한 통념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졌다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폭력 무고의 젠더분석

박주연 | 기사입력 2019/07/27 [18:38]

성폭력 ‘무고’에 대한 통념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졌다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폭력 무고의 젠더분석

박주연 | 입력 : 2019/07/27 [18:38]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이 겪은 성폭력에 대해 말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이어진 미투(#MeToo) 운동 이후, 성폭력을 인지하는 범위도 넓어지고 성범죄를 고발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피해자를 ‘꽃뱀’이라고 칭하며 많은 성폭력 고발이 사실은 범죄가 아니라 무고일 거라고 믿는 여론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얼마 전 준간강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배우 강지환의 사건에서도, 사건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피해자들을 탓하거나 거짓으로 고발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성폭력 고발이 많은 경우 무고’라는 거짓 신화 탓이다. 그러한 통념에 근거가 되는 실질적인 자료가 없음에도 말이다.

 

▲ 7월 19일 대검찰청에서,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성폭력 무고의 젠더분석과 성폭력 범죄 분류의 새로운 범주화>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 일다(박주연 기자)

 

이렇듯 말만 무성했던 ‘성폭력 무고죄’와 관련된 실체가 드디어 드러났다. 7월 19일 대검찰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포럼 <성폭력 무고의 젠더분석과 성폭력 범죄 분류의 새로운 범주화>에서, ‘성폭력 무고죄’에 대한 범죄 기록 분석이 발표된 것이다. 이 연구는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작년 12월 업무협약 이후 진행하고 있는 공동연구 중 하나다.

 

성폭력 처리사건 중 ‘무고’ 기소는 1% 미만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과 연구팀은 2017년부터 2년간 검찰 처리 사건 중에서 죄명에 ‘무고’가 포함된 사건 목록을 추출한 후, 무고죄 단일범을 추출했다. 그리고 원사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사건을 골라 성폭력범죄 피해자에서 무고죄 피의자가 된 사례 1,190건에 대해 분석했다. 그중 검찰이 무고를 인지한 경우는 27.7% 경찰이 무고를 인지한 경우는 2.5%였고, 고소/고발을 한 경우가 약 70%로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다.

 

사례들에서 성폭력범죄 유형은 특수강간, 강제추행, 준강간의 비율이 1.8%로 가장 낮았다. 간음/강간/추행 상해치상이 2.4%, 카메라등 이용촬영, 통신매체이용음란, 성적목적 장소침입이 2.9%였으며, 준강간/강제추행/상해/치상이 12.4%, 간음/강간/강제추행이 80.6%로 가장 높았다. 물질적 증거가 있을 확률이 높지 않고 특수강간, 상해치상이 아닌 ‘일반적인’ 간음/강간/강제추행의 경우 무고죄 고소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범죄 피해자(무고죄 피의자)의 성별은 여성이 91.1%였고, 성년이 다수였지만 미성년자에 대한 고소, 고발도 44건이나 되었다. 다만 이 중 기소된 경우는 단 1건이었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까지도 가해자에 의해 무고로 고소, 고발당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 2018년 기준 성폭력 월별 사건 수리 현황과 성폭력 무고죄 월별 처분 현황.     ©출처: 대검찰청,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공동 주최 <성폭력 무고의 젠더분석과 성폭력 범죄 분류의 새로운 범주화> 포럼 자료집

 

성폭력 무고와 관련한 총 1,190개의 사건 중에서 정작 기소가 된 경우는 32.7%였다. 이 중에서 고소/고발에 의해 기소까지 이어진 경우는 겨우 7.6%에 불과했다. 이러한 통계는 성폭력범죄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허위로 무고로 역고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연구팀은 2017년부터 2년간 성폭력 무고죄로 인지/고소/고발되어 기소까지 된 인원은 약 556명(단일범 외 경합범까지 포함)으로 추정했다. 이걸 성폭력범죄 처리 인원수인 71,740명에 대비하면 성폭력 무고의 기소 비율은 약 0.78%밖에 되지 않는다. 유죄 선고를 받는 인원은 더 적을 것이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결과에 대한 시사점을 설명하며, 단지 성폭력 무고죄 기소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 밝혀진 점뿐만 아니라 “성폭력 무고죄가 성폭력 가해자의 방어 수단으로써 활용되는 건 강력하게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변호사들이 (가해자의) 역고소를 부추기는 일이 변호사 윤리에 어긋난다는 점이 명확히 인식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혐의없음’이 피해자의 ‘무고’ 뜻하는 건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 박은정 검사는 “현행 법령체계에서 성폭력의 무고는 피해자의 진술에서 성폭력범죄 구성요건에 관한 명백히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은정 부장검사는 “한국의 성폭력 법령체계에서 피해자의 동의가 아닌 폭행, 협박을 성폭력 범죄 성립의 전제로 판단함으로써 폭행, 협박에 이르지 않았으나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에 대하여는 성폭력범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가 있었음에도, 폭행이나 협박을 증명하지 못하면 성폭력범죄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의 법령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성폭력범죄의 ‘증거불충분’, ‘혐의없음’ 처분 비율이 다른 범죄에 비하여 두 배 가까이 월등하게 높은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성폭력범죄의 높은 ‘혐의없음’ 비율은 무고의 비율도 두 배 가량 높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임에도, 실무상 성폭력범죄의 무고 비율은 ‘혐의없음’ 비율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분석하며 최근 대법원 판결의 소개했다.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실에 대하여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되거나 무죄 판결이 선고된 경우, 그 자체를 무고를 하였다는 적극적인 근거로 삼아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하여서는 아니됨은 물론,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처하였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아니한 채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 및 신고를 이르게 된 경위 등에 관한 변소를 쉽게 배척하여서는 아니된다.>(대법원 2019.7.11 선고 2018도2614 판결)

 

박 부장검사는 “성폭력 수사 실무상, 피해자는 명백히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고소하기도 하고 실제 폭행, 협박이 있는 경우에도 성폭력 현장에서 피해자가 저항하는 유형은 매우 다양하며, 그러한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는 개별 사건에 따라 다른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설사 피해자의 저항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허위 주장에 이를 정도의 무고가 성립하기까지는 매우 엄격한 판단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이 불기소되거나 무죄가 선고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피해자의 진술이 무고라고 볼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작년 법무부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성폭력 사건 종결 시까지 성폭력 무고 사건의 진행을 중단하도록 권고’한 것에 대하여, 일각에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무죄 추정 원칙에 반하여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성폭력) 피의자가 무죄 추정 원칙을 적용받는 것과 (성폭력) 피해자를 고소하여 피해자에 대하여 무고 수사가 진행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절차이고 다른 법적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피의자의 무죄 추정 권리에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하는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피해자의 무고에 대하여 무죄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면, 원 사건의 수사에서 실체가 밝혀진 다음 무고 수사가 진행되어야 함으로 더더욱 무고 수사가 중단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폭행 협박’을 강간죄 판단기준으로 삼는 법령 개정돼야

 

박은정 부장검사는 “실제로 무고 사건은 불기소 비율이 높고 무죄율도 높은 편으로, 성폭력 무고가 많을 거라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배치된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의 성폭력 법령체계에서 피해자가 성폭력이라고 주장하는 지점과 법률이 피해 사실을 성폭력으로 인정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지난 3.8 여성의 날 행사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진행한 ‘적극적 합의 오답 노트’ 이벤트.     © 일다(박주연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성폭력이란 광의의 개념으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또는 동의 없이, 권력이나 힘의 차이를 이용하여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폭력 행위’로 보며, UN Women에서도 성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나 상황과 상관없이 강압을 이용하여 타인의 성을 침해하는 원치 않는 성적인 발언, 성행위의 시도, 성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법령체계에서 성폭력범죄 판단기준은 그와 다르다. “형법상 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에 한하고 있어 불기소율이 높고, 국민들의 인식이나 실제 성폭력 상황과도 맞지 않으며, 심지어 무고로 의심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변호사로서 경험을 이야기한 오선희 변호사도 “성폭력 가해자들은 ‘성폭력은 가두고 때리고 칼로 협박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피해자들은 ‘내 의사에 반하여 성적 행위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비동의간음죄가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여성들이 이미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라고 외치며 그동안 매우 좁게 해석되었던 성폭력의 범주를 확장하고자 노력해왔지만, 정작 법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성폭력과 관련된 논의는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이번 검찰청 통계 분석을 통해 성폭력 무고가 ‘일반적 통념’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의미가 있지만, 무엇이 성폭력 무고를 만드는가에 대한 분석이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강간죄 개정’을 위한 논의에 박차가 가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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