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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은 ‘빈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 조문영, 이은기에게 듣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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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 암울한 뉴스가 이어졌다. 서울대 청소 노동자 사망 사건, 북한이탈주민 모자 사망 사건, 전주 여인숙 화재 사건. 2019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60대 청소 노동자가 에어컨도 창문도 없는 ‘휴식’ 공간에서 사망했고, 죽은 지 2달 만에 발견된 40대 엄마와 어린 아들은 다른 이유도 아닌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며칠 뒤엔 비적정 주거지라 분류될 수 있는 여인숙에서 화재가 발생해 장기투숙 노인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겨울, 서울 종로 한 고시원에서 화재로 7명이 목숨을 잃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또 참사가 발생했다.

 

이들의 사망이 가난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건, 이러한 가난을 지속해서 외면해 온 우리 사회가 아닐까. 매번 이런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호들갑을 떨지만 그에 비해 얼마나 노력과 변화가 이뤄졌나.

 

최근에 나온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라는 책 제목이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청년들의 눈으로 본 우리 시대 빈곤 보고서’라는 부제도 상당히 끌렸다. 무한경쟁에 내몰려 내 삶을 헤쳐가기 바쁜 청년들이 가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를 인터뷰할 당시 사진. 오른쪽에 손으로 턱을 받치고 밝게 웃는 이가 이은기 씨다.  ©조문영 촬영

 

책은 연세대학교에서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들은 학부생들이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등 반(反)빈곤운동 단체 활동가들을 인터뷰하며, 반(反)빈곤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어왔고 각 단체는 어떤 성격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듣고, 대학생 청년들이 느끼고 생각한 것과 그들의 고민까지 담겨있다.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를 흥미롭게 읽고 나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여전히 ‘한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 학생들이 빈곤을 얼마나 이해했을까’라는,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는 의구심도 남았다.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책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이끈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문영 교수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이자 <홈리스행동>에서 홈리스야학 자원교사로 활동 중인 이은기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로벌 빈곤’에 관심 갖는 대학생들

 

책 서문에서 조문영 교수는 “폐강이 될까 염려하며 개설한 빈곤의 인류학 수업은 의외로 인기가 많았다”며 학생들이 “대개 두 종류의 빈곤에 관심을 내비쳤다. 하나는 ‘글로벌 빈곤’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의 빈곤’”이라 설명한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아무리 노력해도 격차를 줄이거나 앞설 수 없는 상대를 뜻함)의 그들만의 리그 속 금수저가 아니라면,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을 안고 사는 대학생들이 ‘실존의 빈곤’에 관심을 가지는 건 쉽게 이해가 되었지만 ‘글로벌 빈곤’에 대한 건 선뜻 와 닿지 않았다. 난민 이슈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글로벌 빈곤’에 관심을 갖는 건 왜일까?

 

“저도 굉장히 놀랐는데,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이티 등 자기가 다녀온 곳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요즘은 대학이나 기업을 통해서 해외로 나가기도 하고, 또 중고등학교 때 스펙 쌓는 경험으로 해외 자원봉사를 다녀온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걸 통해서 ‘그때 내가 빈곤을 봤다/경험했다’고 얘기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런 경험이 어떻게 많을 수 있었나 살펴보니까, 대한민국이 돈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국제개발 및 해외지원이 커진 것과 맞물러 돌아가더라고요. KOICA가 개발NGO에 자금을 지원하고 그 개발NGO가 해외 자원활동을 할 수 있는 대학생이나 대학 졸업생들을 자원활동가 혹은 인턴으로 뽑는 거죠. ‘글로벌 빈곤’ 자체가 하나의 붐이 되었구나 싶어요. 또 지금 국내 기업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주진 않지만 인턴이나 해외 자원봉사 기회를 주죠. 이걸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요즘 학생들에게 글로벌이 좀 친숙한 것 같긴 해요.”

 

조문영 교수의 말을 들으니 대학생들이 어떤 이유로 ‘글로벌 빈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경로를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즉 ‘돈이 있는 집단’의 제한된 관심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조 교수도 그런 의문을 예상했는지, 이전에 진행한 ‘한국 청년 글로벌 이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점들을 이야기했다. 이 연구는 조문영 교수 외 6명의 작업으로 이뤄졌으며, <헬조선 인 앤 아웃>(떠나는 사람, 머무는 사람, 서성이는 사람, 한국 청년 글로벌 이동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 눌민, 2017)으로 발간되었다.

 

▲ 책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조문영 외, 21세기북스, 2019)   

 

“저도 사실 ‘돈이 있어야 해외에 나가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건, 한국에서 삼각김밥을 한 달 내내 주구장창 먹고 돈을 모아서 요가하러 인도 등으로 나간다는 청년들이 많아진 거예요. 워킹홀리데이로 해외 나간 후에도 한국으로 바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번 돈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쓰면서 생활하기도 하고.

 

그리고 흔히 미국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미국 커뮤니티 칼리지(한국의 전문대학 정도에 해당)에서 부유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 중에 하위중산층이나 저소득층 학생들도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돈이 있든 없든 간에 지금 청년 세대들은 어느 정도 영어가 가능하고 인터넷을 통해 외국을 가깝게 느끼고 있어요. 가끔 학생들 보면, 현지 조사로 농촌이나 어촌 가서 할아버지 만나는 것보다 일본 도쿄에 가서 사람들 만나는 게 더 친숙한 세상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이렇듯 대학생 청년들은 ‘글로벌 빈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있고, 또 실제로 관심도 높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빈곤 문제와 빈곤층에 대한 관심이라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해 홈리스야학 자원교사로 활동하는 이은기 씨는 냉정하게 진단하는 의견을 냈다.

 

“(요즘 청년들이) 스펙으로 ‘글로벌 빈곤’을 이용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들어요. ‘해외 봉사를 갔다 와서 나는 엄청난 걸 느꼈다, 봉사활동을 통해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다’고 감동하고 온 친구들이 많고 또 그들을 향해서 ‘진짜 대단하다, 고생했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런데 거리 홈리스(노숙인)들이 있는 현장이나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현재 노량진 수산시장 재개발과 관련하여 구시장 상인들이 철거에 반대하는 운동을 해오고 있다) 같은 철거 현장에 가서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는 친구들을 향해서는 전혀 그런 시선이 아니란 말이죠.

 

전 ‘이 간극이 뭘까’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글로벌 빈곤’은 내가 돕고 있는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순수한 (주로 교육 봉사활동으로 만난) 아이들로 향유할 수 있으니까. ‘글로벌 빈곤’이 나의 삶에 전혀 위협을 끼치지 않아서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런 빈곤은 ‘아름다움’으로 향유할 수 있으니까요.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동행하는 나’. 이런 이미지인 거죠.”

 

▲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활동가를 인터뷰할 당시 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 서 있는 자세로 사진을 찍은 이가 조문영 교수다.     ©한선영 촬영

 

미디어 통해 단편적으로만 보는 ‘빈곤’을 더 가까이

 

몇 번 수업을 진행하며 예상치 못한 학생들의 ‘글로벌 빈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조문영 교수는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그게 빈곤의 인류학 수업 형태에 변화를 주게 된 계기였다.

 

“워킹홀리데이 가서 처음 빈곤을 느꼈다고 하고, 또 한편에선 부모님은 전문직인데 내 삶은 가장 비극적이라고 생각하며 ‘관계의 빈곤’, ‘실존의 빈곤’을 느꼈다는 학생들. 또 이들이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precarious+프롤레타리아트 proletariat 합성한 조어. 불안정한 고용·노동 상황에 있는 노동자 집단을 일컫는 말)에도 정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예전에 내가 빈곤하면 떠올렸던 것들이 이 학생들 머릿속에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빈곤이 사라졌나?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 문제의식을 느껴서 이번 수업 땐 반(反)빈곤운동 활동가 인터뷰를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의 만남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우려되진 않았는지 묻자, 조 교수는 “그래서 그동안 못했던 것”이라며 “그렇지만 이런 방법이 아니면 아예 접촉할 기회가 없다는 고민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활동가’라는 우회로를 활용해 보자는 생각을 했죠. 근데 또 ‘활동가’라는 것 자체도 학생들에겐 낯설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활동가라는 게 좀 올드해 보이기도 하잖아요. 꼰대 같고 화석화된 인간들 같고. 대단하긴 한데, 나는 저렇게 살긴 싫다는 그런 생각도 들고. 좀 놀란 게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이거 정치적이야’라는 말이, 어떤 접근을 차단하게 되는 굉장히 중요한 어구가 되었더라고요. 심지어 팬클럽 사이트나 문화 활동에서도 ‘우리 정치적인 이야긴 하지 맙시다’ 그러잖아요. 그래서 ‘활동가’는 뭔가 불온하고 정치적이고 또 올드하고. 그런데 그들이 우리에겐 낯선 종류의 반빈곤 운동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다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시선에서 빈곤의 현장도 멀어지고, 그 빈곤의 현장 안에서 고투하고 있는 사람들도 멀어지고 있는 거죠. 우리는 언제나 아주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미디어를 통해서만 그 사람들을 보게 되고요. 그러니까 기초생활 수급자나 홈리스들이 ‘죽어야’ 그제야 그들의 이야기를 물어보거나, 범죄자로 보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활동가’를 경유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자. 대신에 준비를 열심히 했죠.”

 

조문영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또 주변의 도움을 얻어 인터뷰할 단체를 열 군데를 선정했고, 학생들은 제비뽑기로 인터뷰할 단체를 정해 단체의 활동과 역사 등을 조사해 수업 시간에 발표했다. 인터뷰 질문도 미리 뽑아서 수업 시간에 서로 논의했다.

 

“예를 들어, 활동가한테 ‘수급자, 이런 사람들이 자립이 어려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 얘기는 ‘자립’이라는 걸 반드시 이들이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는 걸 가정하는 질문이잖아요. 이 질문이 왜 문제적인가에 대해 토론하는 그런 과정도 거쳤어요.”

 

반(反)빈곤운동 X 페미니즘, 교차점을 발견하다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를 읽으며 나 자신도 반(反)빈곤운동이 낯설고, 그에 관한 고민도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한 명의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내가 반빈곤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령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가 “살기 좋은 방이란 안전한 방이다. 스프링쿨러, 비상구, 완강기 같은 소방시설, 안전시설만 얘기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런 불안정하고 불충분한 주거지를 용인했다는 걸 인정하고, 이런 곳을 어떻게 좀 더 인간적인 주거지로 변모시킬 건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지점이 그렇다. 안전한 주거에 대한 고민 말이다. 알고 보면 페미니즘 운동과 반빈곤운동이 함께 논의할 부분이 많은데, 아직 서로 낯설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미 학생들은 부지불식간에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이 운동을 바라보고 또 접근하고 있었다.

 

“저는 ‘실존의 빈곤’을 겪는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그 핵심 중의 하나가 페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학생들이 인터뷰하는 과정을 관찰했잖아요. 그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게, 학생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문제의식을 질문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예를 들어 여성 활동가로서 느꼈던 딜레마가 있냐, 그걸 어떤 방식으로 극복했고 여전히 활동 속에서 녹여내고 있는지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더라고요.

 

그리고 <홈리스행동>에 갔을 때도, 학생들이 관심 있는 걸 사진을 찍잖아요. 그런데 제일 먼저 사진을 찍는 게 그거였어요, 성평등 약속문. 학생들 눈에 그게 제일 먼저 들어온다는 거죠. ‘요즘 청년들은 기초생활 수급자나 홈리스나 철거민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던 건데, 학생들이 인터뷰하는 과정을 보면서 내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느끼고 있었던 빈곤의 문제, 특히 페미니즘과 빈곤과의 접합의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나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포착하는 지점이 있다는 걸 보게 되는 계기였어요.”

 

▲  홈리스행동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학생들의 눈길을 끈 <성평등한 홈리스 야학을 위한 5가지 실천> 약속문.   ©홈리스행동 인터뷰팀 제공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함께 경계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조문영 교수는 빈곤에서도, 페미니즘에서도 문제를 단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개인이 개인을 응징하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제가 중국 폭스콘 노동자들(애플, 아마존 등에 전자기기를 공급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기기 OEM 생산업체인 폭스콘은 노동자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등 노동 착취로 인한 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폭스콘 공장 지대에 산부인과가 정말 많아요. 인공 임신중지가 많은 거죠. 근데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들조차 ‘그냥 외지에서 온 젊은 애들이 성 관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치부해요.

 

근데 실제로 제가 공장 노동자들이 사는 곳에서 지내보니까 방에 창문 자체가 없고 창살만 있어요. 불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인 데다가 창살과 창살 사이가 손을 맞잡을 수 있을 정도로 너무 가까워요. 근데 이주노동자들도 어차피 잠깐 있을 거라 여기기 때문에 값만 따지지 공간의 안전에 대해서 생각 못 하는 거예요. 사회가 어떻게 일회용 인간을 만들어내고 일회용 환경을 만들어내는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죠.

 

그런데 이런 게 결국 성폭력과 개인의 문제로밖에 얘기가 안 되는 거예요. 신림동 고시촌에 살아가는 여성이든, 중산층 여성이든 간에 최소한 인간으로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논의하기보다는 철저하게 누굴 응징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나아가고 있는 건 우려스럽죠.”

 

대학생인 우리가 ‘가진 것들’

 

책 출판 이후에도 조문영 교수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개별 인터뷰하면서 여전히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이제 그들은 빈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선생님, 여성이 단수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학생도 있었고요. ‘여성 홈리스가 겪고 있는 고통과 내가 겪는 고통을 어떻게 같이 놓고 생각해볼 수 있을까?’ 이런 게 화두가 되기 시작했죠. 특히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예전엔 성인지 감수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봤을 때 공포스럽고 너무 화가 나고 그랬는데, 좀 다른 세계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변화가 생겼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에 대해 조금 더 느리게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 ‘너 같은 인간은 안돼, 너 같은 인간과는 상종도 못 해’라고 딱 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놓여있는 환경과 이 시스템을 같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한발 한발 고민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요. 고무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 서울 공덕역 경의선경유지에서 진행된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 출판 기념 북토크 현장.    ©경의선 공유지 문제해결과 철도부지 공유화를 위한 범시민공동대책위원회

 

수업 전부터 홈리스야학 자원교사 활동을 하고 있었고, 반빈곤운동을 더 이해하기 위해 수업을 듣게 되었다는 이은기 씨의 생활에도 좀 더 변화가 생겼다. 고민이 깊어진 건 물론이다.

 

“교수님이 말했던 ‘실존의 빈곤’에 대해서 친구들과 서로 토로하고 고민하고 있죠. 전 사회과학대학 잡지 ‘연희관 015B’에서 글을 쓰는데요. 요즘 느끼는 문제의식이 있어요. 학내 다른 친구들이 풍족하게 사는지 어떤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우리가 계급적인 위치나 명문대생으로서의 위치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실제로 내가 그 자원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의 삶도 너무 위급하고 빈곤하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이런 자원들이 별로 자원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그렇긴 하지만요.

 

전 ‘연희관 015B’가 급진적인 잡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홈리스행동> 야학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글들이 닿지 않는 공간이나 담지 못하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 노량진수산시장 철거 문제 같은 이야기도 쓰려고 하는데, 친구들 반응이 좀 애매해요. 원래 ‘이런 표현 문제적이다’, ‘이건 솔직히 너무 차별적이다’ 등의 피드백을 엄청 하는데 이번엔 ‘이런 일이 있는지 몰랐다’, ‘이런 글을 싣는 거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곤 피드백은 없는 거예요.(웃음)”

 

당신이 어떻게 ‘당사자’가 아닌가요?

 

노량진수산시장 철거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철거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경찰, 수협, 서울시랑 투쟁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은기 씨. 그의 말에 조문영 교수는 용산 참사 때 당사자/비(非)당사자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철거민과 활동가를 힘들게 했는지 덧붙이며, 운동에서의 ‘당사자’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책에서도 드러나지만 ‘누가 당사자인가?’는 학생들에게도 큰 고민 주제였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부터 이렇게 당사자라는 말을 많이 쓰기 시작했을까?’ 한번 조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당사자라는 말이 힘을 가졌을 시기가 있었죠. 한국 사회에서 특히 여성운동, 장애인 운동 등에서 ‘당사자’로 호명하며 임파워링을 해서 자기 목소리를 스스로 낼 수 있는 장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죠. 다만 이게 용산의 사례처럼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임의로 가르는 정치에 아주 쉽게 농락당할 수 있고, 또 한편에서는 ‘당사자가 아닌데 왜 나서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당사자한테 무게를 주게 되면서 ‘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건 발언할 수 없다’고 스스로 그런 식으로 물러서게 된다던가.

 

학생들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공기 활동가한테 ‘당사자가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공기 활동가는 오히려 ‘당신이 어떻게 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냐?’고 반문했죠. ‘당사자’ 프레임이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여러 운동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이젠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는 빈곤이라는 주제에 가까이 가닿고자 한 이들의 시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마주하고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담아내는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질문한다. 죄책감을 들쑤시는 ‘너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했냐?’는 물음이 아니라 ‘지금 너는 어디에 위치해 있냐?’고.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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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28 [19:48]  최종편집: ⓒ 일다
 
시니 19/08/29 [08:13] 수정 삭제  
  해외자원봉사 다녀오는 거에 대해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데. 글로벌 빈곤에 대한 관심이 큰 거에 대해 비해 내 주위의 가난은 잘 안보려하는 거 있죠. 그래도 자원봉사할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거는 좋은 일일 거라고 봅니다. 글로벌 빈곤에 대한 관심이 기부문화로도 이어질 수 있고 아예 무관심한 것보다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 19/08/29 [09:44] 수정 삭제  
  나는 무엇을, 누구를 외면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 앍고싶어지네..
19/08/30 [10:03] 수정 삭제  
  빈곤의인류학 수업 나도 듣고 싶다. 학생들이 여럿이 함께 쓴 책이라고 하니까 왠지 더 끌리네요. 이런 수업들이 널리 퍼져야 돼.
ㅇㅇ 19/08/31 [23:28] 수정 삭제  
  아 정말 중요한 시도이고 결과물입니다.
독자 19/09/01 [15:54] 수정 삭제  
  사회 진입기에 읽을 필독서가 되면 좋겠네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알게되지 않나요, 각자도생이란 말은 너무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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