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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환우회 카페에서 ‘불안’과 ‘정보’를 나눈다
<질병과 함께 춤을>③ 온라인 의료 연대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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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눈뜨자마자 카페 앱을 켠다. 자궁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카페. ‘자궁근종 때문에 병원을 가려는데 어디를 더 가야 할까요?’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댓글에 사람들이 자신이 가본 병원과 의사 선생님을 실명은 밝히지 않고 초성으로 추천하고 있다. 카페 규정상, 병원 측 검색에 걸릴까 봐 병원명을 다 공개할 수 없고 초성만 공개할 수 있다. 처음 가입했을 때는 초성만으로는 어디 병원인지 어느 의사 선생님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카페 내 각 지역 병원명을 익히고 자주 보다 보니 이제 초성만 봐도 어느 병원인지, 어느 의사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나도 내가 가본 병원과 의사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올린다. 의사 선생님의 성향은 어떤지, 개복 수술을 주로 하시는지 아니면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을 하시는지, 친절도는 어떤지 이야기한다.

 

다양한 수술 후기들도 올라와 있다. 수술 전 금식을 몇 시부터 하는지, 저녁을 제공하는 병원은 어떤 메뉴가 나왔는지, 제모는 미리 하고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간호사가 해준다면 민망하진 않은지를 이야기한다. 수술 가격과 수술 전 어떤 검사를 하는지, 입원 시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보도 공유한다.

 

‘병원 침대에 걸어놓고 물품을 쓸 수 있는 거는 바구니와 마이비데, 그리고 미니가습기가 제일 유용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제공해주지만 부족할지 모르니 생리대 챙기시고 수술 후 코와 입이 건조해져서 아프기 때문에 면마스크가 필요합니다.’

 

나는 ‘면마스크’를 수첩에 적는다. 물론 수술 후 통증과 의사의 처지, 그리고 소변줄과 피통 빼기 등의 통증 얘기도 나와 있다.

 

그리고 병을 가지고 살면서 겪는 고통과 일상생활 유지의 어려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호소도 많다. 친구들에게나 부모님들에게 이 얘기를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가 수술한 사실을 잊는 것인지, 남편은 집에 들어와 집안일을 하나도 하지 않아요.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고 간신히 밥을 차려줬는데 밥 먹더니 그냥 개수대 통에 그릇을 밀어넣고 끝이네요.” “직장에 갔는데 몸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 병에 걸린 거 아니냐며 묻는 사람이 있었어요. 돌려 말하지만 문란해서 그런 거냐는 얘기도 있었고요. 화장실 가서 펑펑 울었네요.”

 

▲ 질병이라는 긴 터널을 걸어가면서 너무나 막막했다. 의료시스템 안에서 전문가를 만나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그래서 온라인상에서 같이 손잡고 걸어갈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 박현진

 

왜 의료인에게 얻어야 할 정보를 환자들끼리 나눌까?

 

매일 카페에 들어가는 이유는 불안을 나누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당사자들끼리 불안을 나눈다는 말은 이해되지만, 정보를 나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3분 진료가 일상화된 한국 의료시스템에서 의사에게 자신이 받는 치료과정 그리고 수술 방법과 호르몬 약 복용 시 부작용을 충분히 듣기가 어렵다. 그럴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사람들은 의사 앞에서 주눅 들거나 얼어버려 질문을 채 못하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이 증상에는 어떤 식습관을 유지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갑자기 몸이 아픈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카페에서 묻고 답한다.

 

가끔 의사만 알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속으로 나는 ‘이런 건 카페에 올려도 소용없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몸에 급격한 통증이 생겼거나 출혈이 있는 경우 원인을 묻거나, 이게 나아질까요 라고 묻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빨리 병원에 가보세요 라는 댓글을 거의 달지만, 나도 같은 증상이 있었는데 며칠 후에 나아졌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그러면 질문자는 그 와중에 불안을 약간이나마 덜어낸다. 왜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이뤄져야 할 의사소통을 이렇게 환자끼리 나누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10년 전에 자궁근종을 수술했다. 30대 초반에 부정출혈로 자궁근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근종의 크기는 3센티였다. 의사는 크기가 커지지만 않는다면 평생 근종을 살고 달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혹을 떼고 나면 내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야간빈뇨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 달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혹은 한 달만에 배로 커져 6센티가 되었다.

 

그때 아마 이런 카페가 있었다면 내 선택이 달라졌으리라. 그때 이런 정보를 환우들끼리 나눌 수 있었다면, 수술을 한다고 해서 기존에 갖고 있는 불편한 증상이 한 번에 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수술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 재발이 잦으므로 그 이후 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염두에 두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당시 아무 정보가 없었고 수술에 지나친 기대를 걸었다.

 

결론은 수술 몇 달만에 자궁선근증으로 재발했다. 선근증은 근종과 달리 혹의 형태가 아니라 자궁벽에 병변이 붙어 자라는 것이므로 자궁 자체가 커지는 병이다. 혹의 형태가 아니라서 병변만 잘라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보통 자궁선근증 치료는 병원에서 대부분 자궁적출을 권한다. 그런데 적출을 이야기할 때 설명은 한 문장이 다이다.

 

“아기 낳을 일이 없는 한, 병변이 있는 자궁은 적출하는 것이 좋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적출한 후 부작용 여부를 물었을 때 반응은, 별 걸 다 걱정한다는 식의 헛웃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장기를 떼 내야 하는 가장 큰 수술임에도 소통이 부재하는 것이다.

 

한국의 자궁적출률은 최근 10년 동안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자료를 보면 영국의 12배이며 OECD 평균으로 봐도 3배나 많다. 자궁은 아이를 낳는 장기일 뿐이며 앞으로 아이를 낳을 일이 없다면 적출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한국의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자궁을 적출하고 나서 갑자기 수술 전보다 훨씬 몸이 안 좋아지거나 없던 통증이 생겨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적출하고도 괜찮은 사람이 있지만, 내가 괜찮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지는 수술 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두려움에 관해 의사들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심리적 요인이라고만 말한다.

 

환자들이 ‘병원 투어’를 하는 이유

 

그래서 사람들은 소위 ‘병원 투어’를 한다. 의사는 매일 행하는 의료시술 중 하나가 수술이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이가 덜덜 떨릴 정도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게 수술이다. 그런데 같은 병을 두고 의사들의 진단과 수술 방법이 다르다. 사람들의 경험담을 보면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가령 A의사는 자궁선근증과 내막증이 있으며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말하고 근종 크기도 8센티외 자잘한 근종이 7~8개 있다고 하는데, B의사는 근종 5센티 하나 있고 선근증은 없으며 좀더 지켜보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에 너무나 혼란을 느낀다.

 

그래서 병원 투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마치 놀러다니는 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3차 병원의 경우 10만 원이 넘는 자궁초음파를 병원마다 다시 찍어야 한다. 분명 며칠 전에 다른 3차 병원에서 10만 원을 주고 자궁초음파를 찍고 진료의뢰기록서와 함께 영상 CD로 담아가도, 해당 병원에서는 다시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음파 사진이 다르게 찍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실비보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보험처리를 하면 되지만 나처럼 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아연실색하게 된다. 하지만 돈 때문에 병원을 한 군데만 가고 수술하기는 더 불안한 현실이다.

 

▲ 통증 때문에 수면장애가 심하니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매일 먹어야 한다. 매일 수면제를 먹는 것에 심적 부담감이 있었지만 잠을 자야 일상생활이 가능하니 맘을 비우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박현진

 

나도 이번에 수술을 생각하면서 병원 투어를 했다. 2009년에 재발한 자궁선근증은 자궁을 10센티 크기로 만들어놓았다. 임신 5~6개월 정도의 자궁 크기다. 의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지만 주변에서 분명 자궁적출로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을 본 나로서는 심리적으로 자궁적출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선근증을 완전 절제할 수 있다는 의사가 나타났다. 선근증은 병변이 자궁벽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어서 절제한다고 해도 어차피 부분절제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술로 완전절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궁을 살리고픈 사람들은 ‘완전절제’라는 말에 매료되었다. 진료 예약이 밀려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지경이 되었다. 나도 그 의사에게 진료를 보았다.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였고 수술 후 호르몬 치료도 필요 없다고 하였다. 다만 신기술이어서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비급여 수술이었다. 이미 수술받은 사람들이 올려준 정보에 따르면 5박 6일 입원에 400만 원 정도가 나온다고 하였다. 나는 6월로 수술을 잡았다. 그러다가 이사가 겹치면서 내 체력상 수술과 이사를 동시에 할 수가 없어서 수술을 미뤘다.

 

한 달 후, 완전절제 수술을 받았으나 재발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글의 댓글로 재발한 몇몇 다른 사람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달에 걸쳐 재발한 사람들이 나타나자 의사는 ‘나에게 수술받으면 재발률 0’에서 ‘재발률 5% 내외’ 그리고 마지막엔 ‘선근증이라 재발할 수 있다’로 말을 바꿨다.

 

통증과 무기력, 야간빈뇨로 인한 수면장애와 위장장애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던 사람들이 공포를 이겨내고 수술 후 부작용들을 견뎌내며 싸워왔다. 수술 후에도 여전히 출혈이 계속되고 통증이 있고 수술 부위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도 다 나으리라는 희망으로 버텼는데, 몇 달만에 재발하고 이제는 적출밖에 방법이 남지 않았을 때 그 절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누구를 위한 신기술이었고 누구를 위한 자신감이었나.

 

나는 수술을 6월에서 9월로 연기한 후 그 소식을 접하고 병원을 바꾸기로 하였다. 그래서 몇 군데 병원을 더 가봤다. 한 병원에서는 자궁선근증이라 해도 굳이 적출할 필요는 없고 부분절제술 후에 완경 때까지 계속 호르몬 치료를 하자고 하였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부분절제술을 해도 자궁선근증은 재발률이 높으니 그냥 지금 하는 것처럼 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정 문제가 생기면 그때 자궁적출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안 그러면 부분절제술을 하고 최악의 경우 다시 자궁적출을 하는 이중의 수술을 겪어야 하는데 몸에 상당히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나는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갖가지 부작용을 겪고 있는데, 수술을 해도 또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면 일단 수술을 미루자는 결론에 도달해 수술은 올해 안 하기로 했다. 이 결론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은 수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이 선택지를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오늘도 나는 환우회 카페 앱을 켠다

 

‘아는 의사 하나 있으면 세상 든든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인맥을 통해 아는 의사가 없어 오늘도 나는 환우회 카페를 통해 서로의 근심을 나누고 정보를 얻는다.

 

▲ 우리는 얼굴도 모르고 아는 것도 없지만 서로에 대해 가장 많이 걱정하고 일상을 나눈다. 건강정보를 공유하며 불안을 해소한다. 온라인 의료연대기는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박현진

 

그리고 내가 몇 년째 다니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에게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내 주치의 선생님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환자권익을 위해 실천하는 분이었다. 한 환자당 15분 이상 자세한 설명으로 진료를 보고 환자가 궁금한 점을 언제든지 물을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수술 방향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달라 내가 적출은 하지 않겠다고 하며 다른 선생님께 가서 자궁보존 수술을 받겠다고 했을 때도, 본인에게 수술받지 않는 걸 섭섭해하지 않으셨다. “논문을 보면 심리적 거부감을 가지고 자궁적출을 받을 경우 부작용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해요. 그러니 본인이 제일 마음 편한 방향으로 결정하세요”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뵐 수가 없다. 좀 더 공부하기 위해 병원 근무를 쉰다고 하셨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다. 수술을 아예 하지 않을 계획은 아니니 3차 병원에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번 진료 보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고 3분 정도면 진료가 끝나버리는 구조에서, 내 병을 어떻게 잘 다스리며 살아야 할지 고민이다. 완경 때까지 몇 년 남았는지 알 수가 없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호르몬 치료 부작용들을 겪으며 살아낼 수 있을까?

 

몇 달 전부터 복통과 설사가 끊이지 않는다. 이 또한 카페에 질문하고 그에 대한 환우분들의 댓글을 통해 호르몬주사 부작용임을 알았고, 아예 원인을 모를 때보다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은 끝이 없다. 얼마 전부터는 심계항진이 생겨 자다가 가슴두근거림 때문에 깬다. 카페에 들어가 이 증세도 호르몬치료 부작용임을 알고 심장내과에 가서 검사하는 대신 호르몬 치료를 중단하고 생리를 기다리며 증세를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부작용이 심하다면 자궁을 적출하지 않고 호르몬 치료를 통해 장기를 지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고민된다.

 

어떤 치료가 맞는지는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문가와 충분히 상담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카페앱을 켜서 내 병의 증세에 대한 정보를 얻고 병의 추이를 예측한다. 온라인 질병 연대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 세상을 바꾸는 작은 변화, 이 연재는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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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0 [11:02]  최종편집: ⓒ 일다
 
ㅇㅇ 20/01/20 [13:31] 수정 삭제  
  저도 작은 병들로 병원다닐 때는 몰랐는데 큰병으로 큰병원을 가야했던 시기부터 주치의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주치의”는 이름뿐이더라구요. 자연히 검색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불안하고 이런 상황들이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돈은 돈대로 드는데 왜 의사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먼지? 환우회카페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낱개 20/01/20 [20:05] 수정 삭제  
  투병 중인 필자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술이든 아니든 더 나은 선택이 되길 바랍니다. 처음엔 온라인 의료연대기라는 말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절박한 현실이란 생각이 드네요. 저는 비인간적인 의료시스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닥터"가 생각납니다. 환자에게 냉정했던 의사가 본인이 암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의료진들의 불친절함에 충격을 받는 내용이죠. 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병원의 모습을 모든 의사들이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그때도 생각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 드네요.
mocha 20/01/23 [11:45] 수정 삭제  
  초성만 보고도 어느 병원인지 어느 의사인지 알 수 있다는 경지.. 저도 이해합니다.
페르 20/01/25 [01:11]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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