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은 헌법적 권리”

현지에서 지켜본 일본의 혼인평등 소송-도쿄 편

이호림 | 기사입력 2024/04/12 [14:04]

“혼인평등은 헌법적 권리”

현지에서 지켜본 일본의 혼인평등 소송-도쿄 편

이호림 | 입력 : 2024/04/12 [14:04]

[필자 소개] 이호림. 성소수자 건강 연구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lgbtpride.or.kr)에서 상임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혼인평등 실현과 이를 위한 여정이 한국 사회를 보다 평등한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 믿으며, 모두의 결혼에서 활동하고 있다.

 

▲ 3월 14일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Marriage for ALL) 도쿄 2차 소송의 재판이 진행된 도쿄지방재판소 앞에서, 선고를 기다리며 (출처: 이호림)

 

‘모두의 결혼’은 2023년 6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혼인평등연대가 시작한 한국의 혼인평등 실현을 위한 캠페인 조직이다. 우리는 작년 모두의 결혼 캠페인을 시작할 때부터 일본의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 소송 기일에 맞추어 ‘견학’을 다녀오는 일을 생각해왔다. 2019년 소송과 함께 시작한 일본의 마리포재팬(@marriage4all_) 활동을 꾸준히 지켜보며, 우리도 한국에서 보다 본격적인 혼인평등 운동의 상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SNS 중계나 유튜브 영상으로 지켜보거나, 국제 컨퍼런스에서 소식으로 접하던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이 흐름을 만들어 온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우리에게도 10년 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 취소 소송이나, 김용민-소성욱 부부의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소송과 같은 소송 운동의 경험은 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 시작할 본격적인 소송 운동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면서, 바로 옆 나라에서 5년째 진행 중인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Marriage for ALL) 소송 운동의 경험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작년 12월, 태국 방콕에서 있었던 아시아 지역 혼인평등 활동가들의 회의에서 올해 3월 14일 ‘더블 판결(도쿄 2차 소송 1심과 삿포로 소송 2심)’이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모두의 결혼 활동가들과 일본에 방문할 적절한 기회였다. 발렌타인데이에 시작한 소송의 중요한 판결이 화이트데이에 나온다니, 의미심장한 선고 기일에 가슴이 뛰기도 했다. 여러모로 바쁜 와중에도 넉넉한 마음으로 우리의 방문을 환대해 준 마리포재팬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모두의 결혼 8명의 활동가는 3월 13~15일 2박3일동안 삿포로와 도쿄로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일본 5개 지역에서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 소송 진행 중

 

2019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일본 전국 5개 지역(도쿄, 나고야, 후쿠오카, 오사카, 삿포로)에서 13쌍의 동성부부가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 위반임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3월 27일, 도쿄에서 8명의 원고가 추가로 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6개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소송의 쟁점은 동성혼의 불인정이 일본 헌법 14조(평등권)과 24조 1항(혼인의 자유), 2항(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 등의 조항을 위반하는지 여부다. 지난 5년 간 이어진 소송과 운동을 통해 마리포재팬과 대리인단, 원고들은 제도로부터의 배제가 동성부부와 성소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혼인평등이 왜 헌법적 권리인지를 입증해왔다.

 

그리고, 오사카 소송을 제외한 4개의 소송(도쿄 1차, 나고야, 후쿠오카, 삿포로)의 1심에서 동성혼의 불인정이 일부 헌법 조항을 위반한 위헌 혹은 위헌상태임을 확인하는 판결이 이어졌다. 아쉬운 점은 ‘혼인의 자유’를 규정한 24조 1항의 위반임을 인정한 판결은 없었으며, 항소심 판결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의 결혼 활동가들이 출장을 다녀온 3월 14일, 도쿄 2차 소송과 삿포로 항소심의 판결이 있었다. 14일 오전에 판결이 나온 도쿄 2차 소송의 경우, 동성혼 불인정이 성적지향만이 아니라 성별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임을 추가로 인정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미 24조 2항(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을 위반한 ‘위헌상태’임을 확인한 도쿄 1차 소송에서 더 크게 나아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삿포로 소송의 항소심 판결은 그동안 한번도 인정되지 않았던 24조 1항(혼인의 자유)의 위반을 포함하여 원고측이 주장하는 모든 조항의 위헌을 확인하며, 일본 혼인평등 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으로 만들었다.

 

▲ 3월 14일 도쿄 일본변호사회관 로비에서 찍은 이날의 기념 사진 (출처: 마리포재팬)

 

더블판결데이

 

3월 14일 오전 9시 30분, 도쿄지방재판소 근처 일본변호사회관 로비. 선고 1시간 전부터 원고인단과 대리인단, 활동가들로 북적였다. 우리도 일본의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대리인단의 간사 변호사가 이날 하루의 스케줄과 주요 사항을 브리핑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 날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로비에 모인 사람들은 원고인단과 대리인단을 선두로 현수막을 펼쳐들고, 응원을 보내러 모인 이들과 취재진이 기다리는 재판소 앞으로 행진하듯 이동했다.

 

재판소 앞에 모인 취재진에게 짧은 브리핑을 마친 원고와 대리인단, 방청권을 배부받은 이들은 선고를 듣기 위해 법정으로 향했다. 남은 사람들은 선고를 기다리는 시간. 취재진도 많았지만, 평일 오전임에도 응원 보내러 모인 커뮤니티 구성원들만 어림잡아 100여명. 40,50대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고, 아마도 이 날을 위해 등교를 포기하고 왔을 교복 입은 청소년이 있는 것도 묘한 감동이었다.

 

선고가 끝나고, 재판소 앞에서 선고의 요지가 적힌 현수막을 펼치는 퍼포먼스와 기자회견이 있었다.(현수막 퍼포먼스는 일본 시민사회 소송 운동의 전통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도쿄 2차 소송의 판결은, 물론 위헌상태(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임을 확인 받긴 했지만 ‘혼인의 자유’와 평등권 조항에 대해서는 위헌을 인정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는 결과였다. 발언을 하는 원고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 도쿄지방법원 앞에서 선고 결과를 알리는 도쿄 2차소송 원고인단과 대리인단. 도쿄 1차소송과 마찬가지로, 동성혼 불인정이 일본 헌법 24조 2항(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을 위반한 ‘위헌상태’임을 밝혔고, 성적지향만이 아니라 성별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임을 추가로 인정하였다. (출처: 모두의결혼)

 

재판소에서의 선고와 기자회견은 더블판결데이의 시작일 뿐이었다. 오후 일정은 장소를 실내로 옮겨서 취재진과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판결문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의미를 설명하고, 원고인단의 소회를 나누는 브리핑이 있었다. 이어서, 삿포로 소송 결과의 기자회견 생중계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뒷풀이까지 총 12시간의 긴 일정이었다. 이 모든 일정에 원고인단과 대리인단,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자원활동가들과 관심있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함께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도쿄의 판결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다행히 같은 날 삿포로에서 ‘결혼의 자유’와 평등권 침해를 인정하는 획기적인 판결이 나온 덕에, 도쿄에서도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삿포로 판결문을 받아 본 현장의 변호사들이 판결문에서 아쉬운 점을 찾을 수 없다며 “완벽하다”, “대단하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을 들으며, 이 판결이 변호사들도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전향적인 것이었음을 실감했다. 소감을 나누며 눈물을 흘리는 참여자들도 많았다.

 

도쿄에 함께 간 박한희 변호사는 모두의결혼을 대표해서 ‘한국의 법체계와 일본의 법체계의 유사성이 있고, 한국 법원도 꾸준히 외국의 판례의 흐름을 연구할 것이기 때문에 이후 있을 우리 소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임을 짚으며, 오늘의 결과를 함께 만들어 낸 일본의 동료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발언을 했다.

 

▲ 도쿄에서 함께 삿포로 소송의 선고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순간. 삿포로 재판소에서는 동성혼 불인정이 일본 헌법 14조(평등권)과 24조 1항(혼인의 자유), 2항(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 등을 모두 위반한 위헌임을 밝히는 획기적인 판결이 나왔다. (출처: 이호림)


오후 일정과 이어지는 뒷풀이 동안 여러 사람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일본의 원고인단과 활동가들에게 한국의 혼인평등 운동, 특히 곧 시작할 소송에 대한 지지와 응원을 듬뿍 받아 힘이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던 순간은 그동안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지켜봐 온 도쿄의 원고분들과 직접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눌 때였다. 모두의결혼에서 강연이나 프로그램을 할 때 이 분들의 사진을 종종 활용해 온 터라,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을 때에는 마치 연예인을 만난 느낌이기도 했다. 본인들의 사진을 활용한 우리의 발표 자료를 보여드리니 크게 기뻐하셨다.

 

한국과 일본의 혼인평등 운동이 함께 변화를 만들 수 있길

 

2024년 4월 현재, 일본과 한국의 혼인평등 운동의 현황을 비교해본다면 일본이 한국보다 성큼 앞서 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도쿄 이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오랫동안 풀뿌리로 활동해 온 성소수자 커뮤니티 조직들을 통해 지역 기반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오고 있는 모습이나, 40,50대 이상의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원고인단이나 자원활동가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성소수자 운동이 수도권 중심, 청년 세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국과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기울어진 정치 지형으로 인해 입법을 통한 권리 진전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서로 이웃한 양국이 모두 혼인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의 주요 경로로 소송을 택했다는 것에서부터, 국회의 입법을 통한 동성혼 법제화가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성소수자 시민의 존재를 직면하고 이들을 위한 법제도 마련에 제대로 나서지 않는 낡은 정치를 변화시키지 않고서 성소수자 시민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는 없다. 결국 한국과 일본 모두 지금의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거대한 과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변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일본의 마리포재팬처럼 아시아 곳곳에서 혼인평등 실현이라는 변화를 함께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의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사건’ 승소 소식(2023년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건강보험공단이 동성결합 상대방을 사실혼 배우자와 차별하여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하다’고 판결함)이 아시아 동료들에게 힘을 준 것처럼, 우리도 삿포로 2심의 승소 소식이나, 뒤이어 들려온 태국의 혼인평등법 하원 통과 소식을 통해 변화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아시아의 혼인평등의 물결이 만들어지는 지금, 우리는 서로의 진전을 공유하고, 축하를 나누며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사랑이 이길 때까지.

 

(이 글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에 기고한 원고를 수정한 것입니다. lgbtpride.tistory.com/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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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4/04/18 [14:23] 수정 | 삭제
  • 일본 소식이라는 게 고무적이네요!
  • 퍼슨 2024/04/17 [19:21] 수정 | 삭제
  • 자기가 소속된 사회에서 동성 간에 결혼이 인정된다는 건, 보편적인 평등권을 인정 받는 것이기 때문에 동성애 관계의 인정을 굳이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아요.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상식과 법적 기준에 어긋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한국에서도 어서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결혼의 자유 2024/04/17 [16:38] 수정 | 삭제
  •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 필요가 있나? 라고 의아해 했는데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라는 내용이었군요. 하긴 양성애자, 동성애자 등이 자신이 의도해서 그리 된 게 아니고 타고난 천부적인 성애(性愛)인데 이걸 규제하고 차별화 한다는 건 당사자에게 매우 억울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건 일리 있는 주장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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