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을 사용하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관련 전문 지식을 알아야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그게 없어도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그 프로그램을 이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너무 쉬워졌죠. 공학자나 개발자는 언제나 어제보다 더 나은 기술을 만드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사실적이고 더 세밀한 생성형 AI 콘텐츠들이 생겨날 겁니다.” (강현주 전기전자공학부 박사)
국가의 빈 자리, 홀로 고군분투하는 피해자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현 사태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버닝썬, 웰컴투비디오, 텔레그램 성착취 등을 거치며 ‘여성 신체 이미지’를 상품화하여 돈을 버는 이들이 있고, 이들이 성폭력으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이버 성폭력/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너무나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운동해왔고,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게도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또 다시 이런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사이버 성폭력/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성폭력처벌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불법 성인사이트가 넘쳐나고 관련 범죄자들은 미비한 처벌을 받고 있다. 법적인 부분만이 문제가 아니다. 김여진 대표는 “남성의 ‘성적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 그 자체이든, 촬영된 신체 이미지이든, 합성/편집/가공한 신체 이미지든, 신체를 본 따 만든 리얼돌이든, 무엇이든 제공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질문했다.
“‘집게손가락’이 그토록 논쟁이 되는 놀랍도록 우습고 기가 막힌 이 사회의 모습”과 “여성을 도구나 대가가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데에 여전히 방점이 있는 정부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피해자들은 갈 길을 잃고 “체념하거나”, “국가가 비어있는 상황을 버텨내고” 있다는 것.
김여진 대표는 “삭제업체는 ‘100퍼센트 지울 수 있다’며 허위에 가까운 광고를 하기도 하고, 디지털장의사가 포르노사이트 운영자에게 뒷돈을 주어 의뢰 건들에 대해 삭제를 잘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디지털장의사가 피해자를 다시 협박하거나 성희롱하는 사례도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삭제업체 중엔 법무법인과 연결한 후, 피해자에게 완벽한 삭제를 위해서는 재유포자들에게 민사소송을 걸어 경제적 타격을 주어야 한다며, 우리가 아는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권유까지 하는 일”까지 있다고 고발했다.
온라인 성착취 실태, “정치의 책임”이다
긴급 집담회에 모인 이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정치에 책임을 물었다. 이번 일을 “딥페이크 포르노 대량제작 사태”라 명명하며, “성착취의 형태가 누구나 ‘딥페이크’라는 기술을 이용해, 여성 신체 이미지를 ‘포르노’로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이번 사태의 특이점”이라고 말한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권김현영 소장은 “2019년 돈 브룩센 미국 국토안보국수사국(HSI) 한국지부장은 한국은 곧 아동음란물 주요 생산기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음에도, 정치권이 안일하게 있었기에 “(지금의) 일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2016년부터의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여러 변화가 있었고, 법 개정뿐만 아니라 “이미지 기반 성착취 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법조인들 역시 영향을 받았지만” 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권김 소장은 “무엇보다 ‘정치’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금의 사태를 조금 더 방치하면 아마 이 문제는 심각해지겠지만, 문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문제, 그래서 결국은 심각하지 않은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이것이 지금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하는 여론전”이라고 분석했다. “이준석 의원이 ‘(22만명이라고 추산되는 텔레그램 불법합성방 참여자 중) 한국인은 약 700명 수준인데 위험이 과대평가되고 있다’, ‘카톡과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전수조사 검열이 들어갈 수 있다’ 등의 발언으로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김현영 소장은 “딥페이크 문제가 ‘검열’ 혹은 ‘표현의 자유’ 같은 말로는 해명될 수 없는 차원의 심각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성범죄 이슈가 터질 때마다 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만, 현재 학교 성교육은 어떤 모습인가?” 장병순 위원장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며 “체계적인 교과수업이 아닌 성교육, 문제적인 성교육 표준안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성교육 커리큘럼은 교육부가 학교 성교육의 유일한 지침으로 인정하는 2015 성교육 표준안에 의한 내용만 인정되고 있다. 여기선 주로 남녀 생물학적 차이나 욕망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남학생에게는 ‘성적 충동을 관리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여학생에게는 ‘성적 행동을 단속하는 내용’을 다룬다. 성차별은 이러한 성적 차이가 ‘불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정의할 뿐, 성차별적 구조인 젠더위계로 인해 여학생과 남학생에게 주어진 상황과 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장 위원장은 “성교육이 젠더 권력관계와 규범을 성찰하지 않음, 즉 ‘성적 차이’가 개인적 경험의 불평등으로 사회적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구조와 맥락을 놓침으로써, 오히려 젠더 불평등 구조를 용인하면서 차별과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성차별적이고 여성에게만 수치심을 주입하는 젠더화된 성교육과 학교 사회가 가해자들에게 딥페이크 범죄 행위의 동기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라고 진단했다.
尹정부 들어와 묻혀버린 ‘디지털성범죄 대응TF’ 11개 권고안 살려야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법무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TF)’는 2021년 10월부터 2022년 4월까지,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 ‘11개 권고안(60여개 조문)’을 만들었다. 당시 TF팀 팀장이었던 서지현 전 검사는 “보통 정부 위원회는 분기 별로 한두 개 권고안 내는데, 우리 위원회는 11개를 냈다. 참여 위원들이 완전히 몸을 갈아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부임하면서, ‘디지털성범죄 대응TF’는 갑작스럽게 해산되어버렸고, 11개의 권고안은 흐지부지되었다.
또한 사이버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보호관찰을 위해 “불법촬영물(성폭력처벌법 상 촬영물, 복제물, 편집물 등과 청소년성보호법 상 아동·청소년성착취물) 등의 소지-보관-시청 금지, 이를 점검하기 위한 보호관찰관의 지시(기기 제출 요구 및 불법촬영물 차단 프로그램 설치 등)에 따르고 이를 방해하지 아니할 것” 조항을 추가하는 개정안도 포함됐다. “범죄 영상의 효율적 압수와 재유포 방지를 위한 ‘사이버 범죄협약 가입’”도 권고 사항이며 “현행 성폭력처벌법에 ‘성착취물 필요적 몰수추징’을 포함하는 것” 등이 들어가 있다.
서지현 전 검사는 “사실 이 권고안 또한 2022년, 그러니까 2년 전에 나온 거라 더 업데이트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 권고안을 토대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 권고안의 내용 다수가 담긴 '딥페이크 차단 6법'(서지현법)이 지난 9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발표된 상태다. 서지현 전 검사는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가해자 연대’를 해체해야
강현주 박사는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면, 앞으로 지옥이 펼쳐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단지 성착취 영상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피해여성에 대한 가짜 이력,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 수사 기관도 속일 수 있고, ‘피해를 당할 만한 여성이었다는 식’의 서사를 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현주 박사는 “AI기술이 일상생활 곳곳에 파고드는 지금,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당부했다.
현재 상황을 “총체적 실패”라고 진단한 권김현영 소장은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자”며, 여성운동 또한 “우리의 언어를 더 풍부하게 하고, 더 많은 전략을 실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 조직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책과 처방 이전에, 증언과 해석을 쏟아내는 장을 더 만들자. 더 많은 연결되고 공존하며, ‘가해자 연대’를 해체하고 그들의 언어를 고립시키자.”라며, 더불어 “정부에게 대책 마련에 대한 해법을 요구하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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