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살인 막으려면 ‘친밀한 관계 내 폭력’ 처벌법 필요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처벌법’ 전면개정안 제안

박주연 | 기사입력 2024/09/23 [10:08]

교제살인 막으려면 ‘친밀한 관계 내 폭력’ 처벌법 필요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처벌법’ 전면개정안 제안

박주연 | 입력 : 2024/09/23 [10:08]

한국여성의전화가 2009년부터 ‘분노의 게이지’라는 이름으로 매년 발표하고 있는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38명, 살인미수 등 포함 449명이다.

 

그 중 피해자의 연령대를 확인할 수 있는 291명을 분석한 결과, 40대가 23.37%(68명), 30대가 20.96%(61명), 50대가 19.93%(58명), 20대가 17.53%(51명), 60대는 8.93%(26명), 70대 이상은 4.12%(12명), 10대는 5.15%(15명)였다. 전 연령대에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인의 피해도 심각하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주변인 피해자 수는 최소 96명, 반려동물 포함 119명(건)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어서, 언론 보도를 분석해야 하는 실정이다.

 

▲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 입법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공동주최 기본소득당 용혜인, 더불어민주당 김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여성폭력통합지원상담소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운동단체들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법안 마련을 요구해왔지만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지난 11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 입법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 모인 이들은 다시 한번 사회의 책임을 물었다.

 

‘가정폭력’ 대신 ‘친밀한 관계 내 폭력’으로 접근해야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약칭 가정폭력처벌법)엔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①고소 특례조항 등을 통해 형법상 ‘배우자’, ‘친족’은 처벌되지 않거나 고소할 수 없었던 일부 범죄를 처벌, 고소 가능하게 했다는 점, ②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강력한 통제를 수반하는 폭력의 특성을 반영하여 ‘응급조치, (긴급)임시조치 제도를 통해 경찰 신고 시 사건 초기 단계부터 수사기관이 피해자 신변보호 및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치할 수 있다는 점, ③피해자보호명령제도를 통해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청구하여 일상을 가해자의 추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정폭력처벌법은 “가해자 처벌을 실질화하지 못한다”는 등의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최선혜 사무처장은 지적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한국여성의전화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 법안’으로서의 내용을 담은 가정폭력처벌법 전면개정안을 제안했다.

 

▲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 입법 방향’을 발표하는 한국여성의전화 최선혜 사무처장. ©한국여성의전화

 

개정안엔 여성계가 오랜 기간 요구해왔던 ‘법의 목적’ 변경이 포함되어 있다. 현행법의 목적엔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최선혜 사무처장은 “‘가정유지‘ 관점으로 인한 문제점은 꾸준히 문제 제기 받아왔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관점의 목적 조항에 대한 우려와, 관련 조항 폐기를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선 “이 법은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하고, 피해자의 자유로운 생활 형성과 인권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변경했다.

 

또한 ‘가정구성원’이 아닌 ‘친밀한 관계’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그에 대한 정의도 규정했다. 현행법에선 ‘가정구성원’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배우자 또는 배우자였던 사람, 자기 또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계부모와 자녀의 관계 또는 적모와 서자의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 동거하는 친족”으로 설명되어 있다. 전면개정안에선 ‘친밀한 관계’를 “유대감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상 밀접한 관계”로 규정하고, “배우자(사실상 이에 준하는 관계), 자기 또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관계, 계부모와 자녀의 관계 또는 적모와 서자의 관계, 친족, 교제 관계,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관계, 주거를 같이 하는 관계, 기타 이에 준하는 관계”를 포함했다.

 

최 사무처장은 “해외입법례를 참고하여,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이성애 중심의 혼인 관계, 혈연 관계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관계의 개념으로서 ‘친밀한 관계’로 규정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친밀한 관계를 배우자, 애인, 친족 등의 관계로 한정하지 않고 ‘유대감’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생활상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요건으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친밀한 관계’의 개념은 사회문화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되며,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계속 변화하고 확장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관계의 유형을 표현하는 기술 방식에 대해선 고민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 입법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의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 입법방향’ 발표 자료 중. “해외입법례를 참고하여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행위 규정을 명기한 것”


이외에도 “‘친밀한 관계 내 폭력범죄’에 더 다양한 범죄 유형을 포섭했고, 현행법상 범죄로 구성하지 않는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 대해서도 별도로 국가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했으며, 경찰의 초동수사 강화 및 임시조치, 피해자보호명령제도의 실효성 강화, 피해자 지원 관련 보호법 개정 등의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혼인, 혈연, 이성애 중심의 접근으로는 한계 뚜렷해

 

토론회 참여자들은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에 한 목소리를 내는 한편, ‘친밀한 관계’의 범주에 관해 의견을 보탰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대사회의 친밀 관계의 범주와 친밀성의 의미가 확장되고 새로운 관계적 실천이 이루어지면서, 혼인 및 혈연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는 다양한 친밀 관계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 이슈를 포괄하는 데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가족 관계에 제한되지 않는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의 범위를 재검토하여, 친밀성에 기반한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

 

또한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한 친밀한 관계의 등장과 가족질서 및 실천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이다. 현재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여러 해외 국가에서 동성결혼이 인정되고 있으며, 생활동반자법 역시 혼인 외의 독자적 파트너십 제도로 변모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효정 부연구위원은 “이러한 논의들은 누구나 가족을 이루고 살아갈 자유와 보편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공통적인 초점을 맞춘다.”며 “친밀성의 구조변동과 가족 다양성의 증가를 배경으로 보편적 권리로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 혼인할 권리, 비혼의 재생산권과 출산권을 보장할 권리를 둘러싼 논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성공회대 연구교수)는 “내가, 어떤 가족상황에 놓여지는가에 따라서 사회가 나를 차등적으로 보호하거나 혹은 보호를 누락하는 사회에서, 시민들의 유대는 취약할 수밖에 없고, 시민들은 분리되고 고립과 낙인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정폭력방지법을 해체하고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으로 입법 방향을 갖는 것은 폭력과 착취의 구조가 ‘정상가족’ 안의 개인의 문제이거나, 혹은 ‘정상가족’을 갖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로 폐쇄적으로 접근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떤 가족적인 상황 아래서도 폭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공적으로 가시화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대표는 또 “동성커플이나 동거관계나 연인관계 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인 권리를 동등하게 갖게 하는 것은 그러한 관계 안에 있는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서, 불평등한 가족제도를 바꾸는 사회적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친밀한 관계 내 폭력’ 관련법이 “건강가정기본법 폐지, 민법 779조(가족의 범위)의 폐지, 동성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동반자 관계에 대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교제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미흡…제도적 뒷받침 필요

 

한편, 조윤희 공동법률사무소 ‘이채’ 대표 변호사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은 친밀한 관계에 기반하여 발생한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취약한 지위에 처해 있고,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우며, 피해가 지속·반복적으로 발생하며 결국 중대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특징”이 있으며, “교제폭력 등의 발생 빈도가 상승하고 있다”고 했다고 경고했다. 또한 여전히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범죄)의 중대성이 과소평가되는 등 교제폭력 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측면도 존재한다”고 짚었다.

 

▲ 지난 6월 4일, 한국여성의전화는 “계속되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논의가 아닌 대책을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가해자의 자살 협박과 주변인들의 괴롭힘에 시달린 피해자, 현행 스토킹처벌법의 한계로 인해 법적 대응이 어려운 피해자, 가해자가 ‘가족’이라서 가해자 형사처벌의 어려움을 겪은 피해자 등…. 박예림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사건을 지원할 때 피해자가 법·제도상의 한계를 느껴 답답해하는 경우를 매번 목격한다”고 토로했다. “오랜 시간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여겨져 왔고, 여전히 법과 제도는 피해자의 경험과 완전히 맞닿아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개원한 22대 국회에서도 ‘친밀한 관계 내 폭력’과 관련된 법안이 3개 발의된 상황이다. 국회에서 더 깊은 고민과 논의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해결 방안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