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죽음으로 ‘지워진 고모의 이야기’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 양주연 감독 인터뷰

박주연 | 기사입력 2024/09/29 [17:59]

알 수 없는 죽음으로 ‘지워진 고모의 이야기’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 양주연 감독 인터뷰

박주연 | 입력 : 2024/09/29 [17:59]

어느 겨울밤, 주연은 아빠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아빠는 술에 취해 혀가 꼬인 목소리로 주연에게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그날 40년 전 자살한 고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주연은 가족의 수치스러운 비밀이 된 고모의 흔적을 추적한다. 주연은 그동안 역사 속에서 지워져 온 여성들을 기억하며, 애니메이션을 통해 고모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간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의 시놉시스다. 양주연 감독은 어느 날 걸려 온 아빠의 전화로 인해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생전 처음 듣는 고모의 존재, 양 감독은 그 고모의 이야기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사회에서도, 가족 내에서도 완전히 ‘지워진’ 존재였던 고모를 쫓아가며 감독은 자신의 경험도 돌이켜 보게 된다. 또한 영화는 40년 전인 1975년, 대학교 4학년이었던 고모의 죽음이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여성들의 죽음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양양〉은 여성 서사로서 훌륭한 기록이며, 사라져 간 여성에게 바치는 따뜻한 헌사이자 그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고자 하는 한 여성의 강인한 집념이 담긴, 사회의 관심과 변화를 촉구하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양주연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을 만든 양주연 감독과 작업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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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필모그래피를 살펴봤어요. 서울역 앞 양동 쪽방촌과 그곳에 살았던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양동의 그림자〉(2013),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내일의 노래〉(2014), 외할머니의 광주에서의 1980년 5월에 대한 기억을 담은 〈옥상자국〉(2015)… 꾸준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오셨어요.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셨나요?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서 대학 갈 때 고고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나랑 안 맞더라고요. 현재 이야기와 조금 더 상호작용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좀 달라서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인디다큐페스티벌’을 가게 됐죠.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됐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다큐 영화에 대해 배우러 학교를 다시 들어갔어요.

 

영화 소재는 우연히 얻게 된달까, 내가 지금 있는 환경과 접하게 되는 이야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양동의 그림자〉는 학교 수업으로 양동이라는 동네 답사를 가게 됐는데 언제부터 여기 쪽방촌이 있었을까 너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 의문으로 시작하게 됐고, 〈내일의 노래〉는 학교에서 청소노동자들을 계속 마주치는데,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을까? 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어요. 내가 어떤 상황에 있고 누굴 만나는지가 늘 중요한 영감이었던 것 같아요.

 

-〈양양〉은 아버지의 전화로부터 시작하게 된 건데요.

 

그 때 제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아빠한테 온 전화가 졸업한지 한참 뒤, 혹은 결혼한 후였다면 다른 느낌이었을 수도 있는데, 혼자 서울에 살면서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던 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아빠의 죽은 누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죽었다는 고모 이야기가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고, 또 충격적이었죠. 나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모의 이야기가 맞물린 거에요.

 

▲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 중 ‘지워졌던’ 고모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제공: 양주연)


-그렇다고 해도, 정말 영화를 만드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인데요. 어떤 결심이 있었나요?

 

그쵸. 사실 처음 아빠한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이게 뭐지?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였어요. 그러다 대학원에 가서 여성학을 배우고 됐고, 그 때의 감정들을 돌이켜 보며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어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고모의 일이 왜 그렇게 혼란스럽고 충격이었을까?’ 질문하다 보니, 어쩌면 이건 나와 관련된 문제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고모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영화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고모 이야기를 들은 후 3년이 지난 시점이에요.

 

-사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특히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여서 감독님만 결심한다고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그 대화와 설득의 과정도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일단 나 스스로 이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 납득할 시간이 필요했고, 이후에 가족과 이야기를 해야 했죠. 아빠한테 고모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게 너무 어렵긴 했어요. 아빠가 나한테 고모 이야길 했을 땐 술에 취한 상황이었고, 어쩌면 기억을 못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고모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빠를 괴롭히는 일은 아닐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빠랑 이야기하기 전에 엄마한테 조언을 좀 구했죠. 엄마랑 대화를 하다 보니, 아빠가 엄마한테도 한번 술 먹고 고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아빠도 고모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을 수도, 좀 풀고 싶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용기를 갖고 아빠한테 말을 꺼냈어요.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빠의 마음도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그냥 넘어가고 싶은 마음, 누가 물어봐 주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처음 인터뷰할 때 긴장했는데, 본인 어린 시절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하시더라고요.

 

▲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 중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는 모습 (제공: 양주연)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 인터뷰를 통해 가족 이야기를 따라가고, 감독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나옵니다. 고모의 이야기가 주된 부분이긴 하지만, 감독님 이야기와 연결되는 지점이 드러나는 부분도 흥미로웠어요. 조금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여자로서 겪는 성차별, 가족 내에서도 일어나는 성차별에 대한 공통된 경험이 있는 거죠.

 

사실 전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세대를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남동생과의 관계, 가족들이 남동생과 나를 대하는 것의 차이를 인지하면서 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내 경험과 고모의 경험을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어요. 고모가 살았던 시대엔 정말 ‘여자이기 때문에’ 대학도 못 가는 등 직접적인 차별을 겪었으니까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종종 영화 소개를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도 ‘(그렇게 여자가 차별 받던 시대는) 다 옛날 이야기 아니냐’는 얘길 듣곤 했어요.

 

그렇지만 분명 여전히 성차별이 사회에 존재하는데, 그걸 어떻게 드러낼지가 고민이었죠. 그런데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는 과정 속에서 발견하게 된 게 있어요. 영화에 나온 ‘크레파스’(할아버지가 남동생에겐 큰 크레파스를, 감독에겐 작은 크레파스를 선물한 일) 건도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거든요. 근데 같이 영화를 만드는 스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다들 “그거 너무 차별인데?” 하더라고요. 점점 되돌아보게 됐어요. 아빠와 남동생과의 관계, 아빠가 남동생이 집안의 기둥이라고 했던 일 등.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다 차별이었구나 싶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걸 인정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 땐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뭐든지 잘해서 여자라서 뭘 못한다는 생각을 못 하며 자랐잖아요. 근데 돌이켜 보니까 일상에 미세한 차별들이 이미 곳곳에 있었던 거에요. 나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의 경험이 사실 내 안에도 쌓여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이젠 이야기해야겠다, 그런 차별이 아직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고모의 경험도 사실 더 궁금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고 싶은데, 물을 수 없으니까. 나 자신에게 계속 물으며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고모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고모의 존재를 전혀 몰랐을 만큼, 가족 내에서도 고모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으니까요.

 

영화를 만들어 볼까 생각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집을 뒤져보는 거였어요. 고모에 대한 자료가 뭐라도 남아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지금 부모님이 사는 집이 조부모님이 살던 곳이어서 창고 내 짐을 뒤졌죠. 그렇게 찾다 보니 모르는 여자의 사진 앨범이 있더라고요. ‘이 사람이 고모인 것 같다’ 생각했어요. 사진이 시간 순으로 굉장히 정성스럽게 정리되어 있었거든요. 그 외의 물건들, 노트, 일기, 메모 등 뭐라도 있나 싶어 다 뒤졌는데 하나도 없더라고요. 고모가 죽고 나서 다 불태우거나 없앴던 것 같아요. 그나마 사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죠.

 

집 밖에서도 고모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고모를 아는 사람을 찾으려고도 했고요.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는 부분이 있었고, (고모가 살았던) 광주는 그나마 1980년대 자료들은 아카이빙이 되어 있는데 1970년대 자료는 정말 없더라고요. 전산화도 안 되어 있었고요.

 

▲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 중 양주연 감독이 책상에 앉아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다 (제공: 양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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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러 방면으로 고모의 이야기를 쫓았고, 고모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죠. 고모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기도 한데요.

 

그 사람을 찾아 보려고 하긴 했어요. 만나게 되면 뭘 물어봐야 할까, 그 사람이 과연 솔직하게 답해 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근데, 찾는 게 거의 불가능이더라고요. 당시에 가명을 써서 정보를 찾을 수 없었어요. 소문만 무성할 뿐이이었고요.

 

설사 그 사람을 찾더라도 그가 고모의 이야기를 대신해 줄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모가 교제폭력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교제살인 판결문을 분석한 기사를 읽었는데 (참고: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 분석, 오마이뉴스) 판결문에서 여성들의 죽음은 결국 죽은 여성이 아니라 상대 남성들의 말로만 이야기되고 있더라고요. 당연히 피해자중심적인 말이 아니었고요.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고모의 이야기를 더 따라가야겠다 싶었어요.

 

-그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여러 개였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도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전 감독님이 선택한 방식이 너무 좋았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도 그런 죽음들이 피해자중심적으로 이야기 될 수 없다는 것, 그걸 드러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럼 그냥 나의 말을 통해서 이야기를 끌고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지금 말하면서 깨달았는데… 고모의 마지막을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장면 중 (제공: 양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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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은 다큐멘터리 영화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이기도 해요. 애니메이션이 적재적소 중요한 장면에 쓰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모와 관련된 건 사진인데, 사진은 멈춰있는 이미지잖아요. 이걸 움직이고 싶더라고요. 고모가 움직이는 모습, 변화하는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어서 그 부분을 고민하다 보니까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됐어요. 영화 제작 초기부터 이 부분은 결정했었어요. 그래서 사람을 찾던 중에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양홍지 감독의 〈단추를 잃어버린 날〉(2020)을 보게 됐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작업을 해 보니 서로 또 잘 맞더라고요. 정말 귀인을 만난 거죠. 양홍지 감독이랑 논의하면서 ‘검은 물’과 ‘상자’라는 컨셉도 정하게 됐어요. 검은 물은 금기지만 머물러 있지 않고 흘러가는 것, 상자는 갇혀있는 시간, 판도라의 상자를 생각했어요.

 

-영화를 본 가족들, 특히 아버지 반응은 어땠나요?

 

아빠가 감정 표현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막 적극적으로 말씀하진 않으셨는데요. 조금 놀랍다고 생각한 점은 이제 아빠가 누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낸다는 거에요. ‘누나도 그랬지’ 이런 식으로요. 아빠에게도 좀 변화가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부모님이 예전엔 ‘여자라서 어쩌고. 남자라서 어쩌고’ 이런 표현을 많이 썼는데 이젠 좀 안 쓰시는 것 같아요. 내 앞에서 조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요.(웃음) 엄마가 유독 〈양양〉은 또 보고 싶은 작품이라며 응원을 많이 해주고 있어요.

 

주변에서도 의외의 반응이 있는데, 남성인 분이 영화를 보고 엄청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장남이고 여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이 차별 받는 걸 늘 인지하고 있었나봐요. 본인도 아버지랑 사이가 좋지도 않고요. 영화 보고 여동생한테 바로 전화했대요. 뭔가 공감이 됐나 보더라고요.

 

-맞아요. 가부장제가 문제라니까요. 남성들도 그걸 더 인지했음 좋겠어요.

 

아빠도 3대 독자의 아들이라 좀 쓸쓸했나 보더라고요. 영화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 같은 걸 얘기하잖아요. 자기한테도 트라우마가 있다고. 그런 아빠의 감정을 보는 건 되게 새로웠어요. 사실 난 아빠랑 할아버지가 비슷한 사람, 닮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빠가 할아버지에 대해 그런 마음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됐죠. 아빠의 이런 점들을 알게 돼서 나도 좋았던 것 같아요.

 

-40년 전에 죽은 고모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여러 갈래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슬프기도 하지만, 계속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하는데, 추후 상영 계획이 있으신가요?

 

일단 영화제들에 출품도 하고 있는데 지금 확정된 곳은 없어요. 내년에 개봉하려고 하고 있어요. 아마 하반기 정도가 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개봉 계획이 있으니까요.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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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리엘 2024/10/05 [16:46] 수정 | 삭제
  • 나도 그런 친척이 있는데 궁금해도 묻지 못했는데.. 이 다큐 꼭 한번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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