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무슬림 문화를 알리고 싶다’ 말하는 이유비영리 이주인권단체 활동가의 질문-‘다름’이 수용되는 사회인가?나는 가끔씩 한국 사회가 아랍 무슬림, 그리고 무슬림 여성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꽤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슬림 문화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할랄(Halal, 허용된 것) 음식을 먹고, 라마단 기간에는 낮에 금식을 하고, 남녀를 구분하는 질서가 있으며, 다수의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쓴다는 것 등은 이미 많은 한국사람들이 알고 있는 무슬림에 관한 정보이다. 또한 내가 만나는 무슬림 여성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인들의 문화이다.
나는 〈와하〉(한국이주인권센터에서 2018년에 개소한 난민/아랍 여성들의 오아이스 쉼터) 공간에서 여성들과 만나며, 오랫동안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무슨 활동을 할까, 함께 고민할 때마다 몇몇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 아랍 무슬림 문화를 알리고 싶다’고 얘기했다. 한국 사회에서 자신들이 경험하는 어려움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또는 ‘우리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무슬림 여성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들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면, 많은 문제들이 점차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와하’ 여성들과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알리고 싶어하는 이유에는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겪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들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랍 무슬림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은 특히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무슬림 문화를 알리고 싶어했다. 무슬림들은 할랄 고기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이유에는, 보육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자녀들이 먹기 어렵다는 사실과 필요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여성들의 자녀가 다니는 대다수의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들은 소수의 무슬림 아동을 위해서 급식을 따로 준비할 수 없다고 한다. 도시락을 따로 싸오게 하거나, 제공받는 급식에서 알아서 골라 먹어야 한다. 조금 더 배려를 하는 기관들은 아동들에게 가끔 계란 후라이를 해주기도 한다. 무슬림 가정 아이들은 그 정도에서 만족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이 어머니들은 ‘우리가 할랄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이해시키면, 언젠가 아이들 급식에 변화가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히잡을 쓰는 것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싶어했던 것 역시,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딸들은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쯤 히잡을 쓰기 시작하면서 또래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게 되었다. 또한 또래 집단으로부터 소외를 경험하기도 했다. 자신의 아이들이 ‘왜 히잡을 쓰냐’,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 ‘왜 라마단 기간에 밥을 먹지 않느냐’ 등 또래들로부터 돌아가면서 질문을 받거나, 심지어 어울리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설명하면서 자녀가 학교에서 좀 더 수용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와하’에서 만난 여성들이 ‘문화를 설명하고 싶다는 것’에 함의된 한국 사회에서의 소외의 경험들을 알아가면서, ‘그 정보는 한국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나의 생각이 매우 오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화를 설명하고 싶다’는 말의 기저에 딸린 의미와, ‘알고 있는 정보이다’라는 말의 기저에 딸린 의미를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다르다. 이를테면 무슬림 여성들의 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당사자들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코드들과 연결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행위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해석과 바로 연결된다. 또한 히잡을 쓰는 여성은 ‘여성 억압을 내면화한 것’으로 쉽게 해석된다. 하지만, 실제로 히잡을 쓰는 여성들이 연결시키는 의미와 문화적 코드는 좀 다르다. 히잡을 쓰기로 결정한 여학생들에게 히잡은 종교를 경건한 마음으로 따르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이상 아이가 아니라 여자 또는 어른이 되었다는 표상이기도 하며, 예뻐 보이는 패션이기도 하다.
우리 센터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소풍을 갈 때마다, 버스기사들이 하는 말이 있다. “히잡을 써서 소극적인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이다. 버스에서 여성들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함께 손뼉 치며 큰소리로 노래 부르는 그 흥은 아랍 무슬림 여성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장면일 거다.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견고함
결국 이곳 여성들이 ‘우리의 문화를 설명하고 싶다’고 했던 바람은, 자신과 자녀들이 일상에서 늘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았을 때 수동적으로 대답하고 해명하듯 설명해야 했던 경험들이 쌓여 생겨난 욕구인 것이다. 이러한 욕구는 그들이 한국 사회에 ‘이주’했기에 생겨난 욕구이다. 여성들이 모국에 있었다면, 자신들의 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을 일도, 대답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주 이후의 경험과 필요들이 쌓여, 여성들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수동적으로 대답을 해야 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싶은 위치로 이동하고 싶어했다.
우리가 하려고 했던 활동은 무슬림 문화의 피상적인 당위성 같은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학교에서 자녀들이 많이 받는 질문들, 길거리에서 동네 이웃들에게 받는 질문들,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받게 되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잘, 그리고 주체적으로 설명해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해보고자 하는 활동을 외부 사람에게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들었던 반응 중 하나가 “그런 만남이 오히려 거부감을 가져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특정한 무슬림 문화를 주입시키려고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런 반응을 들으면서, 처음에 ‘와하’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설명하고 싶다고 했을 때 “한국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던 나의 오만함과 생각의 변화가 떠올랐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 익숙한 질서를 이주민들이 따르기를, 한국 사회에 익숙한 가치를 이주민이 말하기를, 한국 사회에 익숙한 시각을 이주민이 재현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사회 통합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들의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와하’의 여성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몇몇 한국 사람을 통해서, 나는 이주민의 ‘다름’을 수용해 줄 생각이 없는 한국 사회의 권위적인 견고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필자 소개]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현재는 아랍여성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위해 센터에서 만든 ‘오아시스 와하’의 공간지킴이 역할이 크다. 이주민들이 처하는 어려움들을 상담하고 이주민들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존재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쌓여갔다. 그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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