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부터 시작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시위는 한동안 한국 사회의 큰 이슈였다. 여러 보수 성향 정치인들, 특히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는 “비문명적”, “불법”이라며 비난했고, 그에 동조하는 이들 또한 전장연의 시위가 과격하다,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을 보탰다. 언론들 또한 지하철 시위에 대한 ‘찬반’을 이야기하며 ‘논쟁’으로 만들어 갔다. 그때마다 거론되는 것은 장애인들의 시위로 인해 ‘시민’들이 겪는 불편과 고충이었다.
휠체어로 이동한다는 것
영화의 초반, 카메라는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의 생활을 따라간다. 현관엔 전동휠체어가 세워져 있고, 집 안에서 이형숙 씨는 앉아서 TV를 보다가 통화도 하고 외출 준비를 한다. 딸들과 사위, 손자와 함께 시간도 보낸다. 이렇게만 보면 ‘보통의’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있다. 그가 휠체어를 이용해야 이동할 수 있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휠체어를 한번도 이용한 적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 친구와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치자. 비장애인이라면 모바일 앱으로 가는 길만 검색해 보면 끝이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자라면? 저상버스나 지하철로 이동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장애인콜택시를 불러야 한다. 장애인콜택시는 일반 택시와 달리 부른다고 바로 오는 게 아니라, 때로는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한다. 너무 오래 걸릴까 봐 일찍 불렀는데 예상보다 빨리 와서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비장애인 친구가 신경써 준다고 1층 카페로 약속 장소를 정했는데, 막상 카페에 도착하니 턱이 있다면? 그래서 들어갈 수 없다면? 한국 사회엔 턱이 있는 1층이 생각보다 많다. (관련 기사: “1층이 있는 삶을 모두에게”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들 https://ildaro.com/9751)
이형숙 대표는 횡단보도가 잘 없고 대부분 육교가 놓여 있던 시절, “내가 걸을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에 계단이 없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내가 계단을 올라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걸을 수 없는 건 뻔한 거고, 내가 바뀔 수 없다는 건 명확”한 현실에도 ‘계단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그의 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반복되어 온 시위와 집회
혹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돼야지, 맞아. 근데… 이런 ‘과격한’ 시위는 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알까?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고 외친지 얼마나 됐는지,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또 얼마나 변했는지 말이다.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는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용 리프트 추락 참사’ 사건과, 이후 장애인 인권 단체에서 어떤 시위와 행동을 강행했는지 보여준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그 때부터 목소리를 낸 사람 중 한 명이다. 당시 박 대표는 “장애인의 60% 가까이가 한 달에 두 번, 세 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이 현실은 분명히 야만적이며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고치지 못하면, 우린 ‘평생’ 낙후된 고물 같은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그걸 감당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많은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지하철 엘리베이터 도입,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뜨거운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했다. 또한 2004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만들어졌다(2005년 공포). 장애인 뿐만 아니라 이동에 불편을 겪는 노인, 유아차 이용자, 임산부를 비롯해 일시적 질병으로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모두가 조금 더 편리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세상을 바꾸고자 했고, 덕분에 세상이 ‘조금’ 나아지게 됐다. 하지만 장애인의 삶은 그 ‘조금’으로 괜찮지가 않다. 비장애중심 사회에서 늘 뒷전이 되는 장애인들은 생존을 위협 받는다. 사실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 좀 타자’는 게 아니라 ‘우리도 이동하고, 학교 가고, 일터에 가고, 친구와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외침이다.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임에도, 여전히 사회는 ‘조금만 기다리면, 나중에, 추후에…’라는 말들로 입막음 하기 급급하다. 그 입막음이 결국 장애인들을 죽게 만들고 있음에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엔 전장연의 ‘지하철 선전전’ 현장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 경찰과 공권력이 활동가들을 대하는 모습,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
“왜 여기서 하냐고!” “저런 식으로 하면 더 싫어. 더 위해주려고 하는 마음도 없어진다고.” “조용히 해, 조용히 해!!” “시민이 시민을 피해 줘? 시민은 시민 피해 안줘” “최선을 다하세요. 남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시민’들의 말이 쏟아진다. 출근길이 막힌다는 것, 불편한 일이다. 혼란의 현장을 보는 것 또한 마음 편치 않다. 하지만 저 말들을 천천히 곱씹어 보고 질문할 필요가 있다. 시민이란 무엇인가?
유네스코학교네트워크에서 설명하는 ‘시민’은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공동체와 공동체에서 같이 살아가는 다른 시민들에 대하여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더불어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책임을 다하는 사람. 우린 이 현실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아니,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 20년이 넘게 외치고 있는 장애인들의 말을 제대로 들은 적 있는가? 장애인들의 마땅한 권리가 행사되고 있지 않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함께 목소리 높인 적 있는가? 장애인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기다린 적 있는가?
그리고 질문을 더해야 한다. 장애인은 시민이 아닌가?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엔 시민이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 보고 접할 때마다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다면, 시민이라는 말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시민이 무엇이며, 시민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기회를 우리에게 전한다.
지난 10월 30일, 전장연은 100일 간의 출근길 지하철 100일 포체투지(匍體投地, 불교에서 자기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으로,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게 절하는 것을 ‘오체투지’라고 한다. ‘포체투지’는 오체투지를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 기어가는 방식으로 하는 행동을 뜻한다)를 끝내고, 일단 포체투지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장애인권리 스티커를 부착하는 투쟁은 이어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새해가 될 때까지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복원하고 400명 중증장애인 노동자의 복직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2025년 1월 2일부터 다시 포체투지를 시작할 것이라 선언했다.
장애인들의 권리 투쟁은 계속된다. 시민의 책임, 역할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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