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말라 해리스와 유리절벽

여성의 대표성과 젠더 정치 관점에서 미국 대선 분석

이영임 | 기사입력 2024/12/08 [13:20]

카말라 해리스와 유리절벽

여성의 대표성과 젠더 정치 관점에서 미국 대선 분석

이영임 | 입력 : 2024/12/08 [13:20]

미국 시간으로 12월 3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언제나처럼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미국인 친구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한국(South Korea)에 계엄령이 내렸다는데, 너희 가족들은 괜찮니?”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가짜 뉴스를 봤나? 하며 카톡을 열어보았다.

 “봐, 트럼프가 낫다고 했지?”

약 한 달 전, 미국 대선 개표 상황을 밤새 지켜보며 ‘윤석열과 도널드 트럼프 중 누가 더 비민주적인지’ 논쟁했던 친구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뉴스를 검색했다. ‘이게 말이 돼? 진짜로 계엄이야? 전두환 때 그 계엄?’

대학에 출근하니 동료와 학생들이 “한국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질문했다. “한국에서”를 강조하는 그들의 말투에 의아함과 놀라움이 묻어났다. 다행히 비상계엄은 해제 선언되었다고 설명하니, “그럼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힘주어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글은 계엄령이 내려지기 전에 마무리되었고, 마지막 수정을 앞두고 있었다. 충격적인 계엄 사태를 맞이한 가운데, 미국 대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한 정치적 백래시, 남성중심의 정치 구조와 ‘남성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 학연‧지연을 동원하여 인맥에 기댄 남성연대와 ‘보이(Boy)들의 정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할 시기인지 모른다. 젠더 정치의 관점에서 미국 대선을 분석한 이 글이 그러한 사유를 촉진시키길 바라며, 젠더와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들어가는 말]

 

미국 대선에 도전한 여성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과거회귀적 슬로건과 “우리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의 미래지향적 구호가 대결한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상 최초로 유색인종 여성인 해리스가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만큼, 젠더 정치의 관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 카말라 해리스의 2024년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장면. 출처: 해리스 엑스(X) 갈무리 @KamalaHarris


미국 외교협의회의 여성권력지수(Women’s Power Index)에 따르면, 1946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총 79개국에서 여성 대통령 또는 총리가 임명되거나 선출되었다. 그 중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 그렇듯이 ‘정치 가문 출신’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나, 한국 역시 이 국가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아직 한 명도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적이 없다. 왜 그럴까?

 

럿거스 대학의 미국여성정치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 대선에 도전한 여성은 총 24명이다. 최초는 1872년에 평등권당(Equal Rights Party) 후보로 출마한 빅토리아 우드헐(Victoria Woodhull)이다. 1972년에는 미국 최초의 흑인여성 의원이었던 뉴욕 하원의원 셜리 치솜(Shirley Chisholm)이 민주당 경선에 도전하여,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으로서 주요 정당 경선에 도전한 첫 사례로 역사에 남았다.

 

▲ 미국 최초 여성 대선 후보 빅토리아 우드헐. 1872년에 평등권당(Equal Rights Party) 후보로 출마했다. *출처: Harvard Art Museum/Fogg Museum, Historical Photographs and Special Visual Collections Department, Fine Arts Library. Public Domain.

 

▲ 1972년, 흑인 여성으로서 최초로 미국 주요 정당(민주당) 경선에 도전한 셜리 치솜 전 뉴욕 하원의원. 출처: 위키피디아


녹색당 후보였던 질 스타인(Jill Stein)은 2012년, 2016년, 2024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1 퍼센트 정도의 득표밖에 하지 못했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은 2008년 민주당 경선에 도전했으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에게 밀려 후보 지명을 받지 못했다. 이후 2016년에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며 미국 역사상 최초로 주요 정당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되는 역사를 썼다. 클린턴은 트럼프보다 287만 표를 더 얻었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하며 당선되지 못했다.

 

올해는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였던 니키 헤일리(Nikki Haley)가 트럼프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맞붙었으나, 3월에 하차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두 번째 여성 대선 후보이자 최초의 흑인여성, 그리고 첫 남아시아계 인물인 현직 부통령 해리스를 대선 후보로 지명했다. 해리스는 미국 부통령직에 당선된 최초의 여성이다. 1984년 민주당의 제랄딘 페라로(Geraldine Ferraro)와 2008년 공화당의 세라 페일린(Sarah Palin)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당선되지는 못했다.

 

왜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기 어려울까?

 

미국 정치에서 젠더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기존 연구들은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과 막강한 군사력을 꼽는다. 미국 대통령은 정부의 수장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 통수권자이기에, 이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결단력, 강인함, 카리스마 등 남성적인 특성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는 것. 유권자들의 인식 속의 이상적인 지도자상 자체가 남성성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은 제도적 장벽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깊은 고정관념을 바꾸기 어렵다. 트럼프는 이를 이용해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해외 정상들이 그녀를 장난감 (play toy) 취급할 것”이라며 조롱했다.

 

성별 고정관념은 여성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으로도 발현된다.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정당의 주요 인사들도 여성 후보는 당선 경쟁력이 낮다고 우려하기에, 정당은 여성을 후보로 내세우는 것을 꺼리고, 유권자들은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표를 낭비하기 꺼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경력을 가지고도 자격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유권자들은 여성 후보의 경력 부족을 남성 후보의 경력 부족보다 더 큰 문제로 생각한다. 2004년 응용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성공에 대한 처벌”(Penalties for Success)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이력서에 “제임스”라는 남성 이름과 “안드레아”라는 여성 이름을 적은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항공사의 부사장 후보라고 제시했을 때, 참가자들은 제임스가 안드레아보다 더 유능한 후보라는 평가를 내렸다.

 

실제 정치에서도 경력 및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기대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2020년 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예비후보였던 미네소타 상원의원 에이미 클로버샤(Amy Klobuchar)는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 사우스벤드의 시장 출신인 피트 부티저지(Pete Buttigieg) 예비후보를 겨냥하여, ‘여성이라면 이 정도의 정치 경험만으로는 대선 출마를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을 비롯한 다른 여성 후보들이 자신의 자격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이중잣대를 꼬집은 것이다.

 

▲ 2020년 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에이미 클로버샤 메니소타 상원의원이 피트 부티저지 전직 사우드벤드 시장의 정치 경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자, 부티저지가 “워싱턴에서의 정치경험만이 중요한 정치경험은 아니다”라며 반박하는 장면. 클로버샤 의원은 ‘여성이라면 이 정도의 정치 경험만으로는 대선 출마를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MSNBC 유튜브 채널)


올해 트럼프의 선거 유세에서는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며느리 라라 트럼프(Lara Trump)까지도 해리스가 남성들에게 성적인 호의를 제공하고 유색인종 여성임을 이용하여 다양성 정책의 일환으로 기회를 얻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펼치며, 해리스의 자격을 깎아내렸다. 

 

여성 후보는 경력과 유능함을 입증하면서도 동시에 유권자들에게 ‘호감 가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둘은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능력이 좋지만 호감도가 낮은 경우, 공격적이거나 냉혹하다는 비판을 받기 쉽고, 호감도는 높지만 강한 이미지를 주지 못하면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강함, 호감도, 유능함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경우, 여성 후보는 남성 후보에 비해 더 냉혹한 평가를 받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제임스”와 “안드레아” 실험에서도, 참가자들에게 두 후보가 동일한 능력을 가졌다는 점을 강조하면 후보의 능력에 대한 성차별적 평가는 줄어들지만, 동시에 안드레아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는 여성이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뿐만 아니라 따뜻함과 공감 능력까지 보여줘야 한다는, 즉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을 모두 어필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젠더 고정관념은 유권자, 미디어, 그리고 후보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화되며, 여성 후보들이 넘어야 할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리스는 정말 정치 경험이 부족했나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최초로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말라 해리스는 여러 면에서 “최초”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자메이카 출신의 경제학자인 아버지와 인도 출신의 영양학 및 내분비학 박사인 어머니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대학원에서 만나 결혼했다. 해리스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민권운동 시위에 참여하며 ‘사회적 정의’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고, 맥길 대학의 의학대학 연구원직을 얻은 어머니를 따라 캐나다 퀘벡으로 이주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워싱턴 디씨의 하워드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하고 검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해리스는 2024년 대선후보로 지명되기 전까지 20년 이상 공직생활을 했다. 2002년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찰청장 선거에서 유색인종 최초로 당선되었고, 2009년 한 정치평론 프로그램에서는 그녀를 “여성 오바마”로 소개하였으며, 종종 미래 대권주자 물망에 올랐다. 2011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검찰총장으로 선출되어 2017년까지 소비자 보호, 성소수자 인권, 그리고 범죄 재범방지 시스템 구축에 힘썼다. 2017년에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여성 상원의원이자 첫 남아시아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성폭행 미수 논란을 받은 연방 대법관 후보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 청문회에서 “청문회 스타”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도전했지만, 지지율과 자금 부족으로 중도 사퇴한 해리스는 조 바이든(Joe Biden)의 부통령 후보로 발탁되어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부통령으로서 국경 및 이민 문제를 포함한 여러 과제를 맡았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바이든이 트럼프와의 첫 대선 토론 이후 후보직에서 물러나고,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해리스의 대선 캠페인은 젊은 여성들, 특히 대학 학위를 가진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는데,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특히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당선될 가능성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해리스는 소셜미디어와 밈을 활용하는 능력으로 특히 MZ 세대의 주목을 받았고,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들의 공개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해리스 캠페인은 선거자금 동원 능력도 뛰어났다. 미국 선거자금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는 Opensecrets.org에 따르면, 해리스 캠페인은 총 16억 5천만 달러(약 2조 3천억 원)를 모금했으며, 이는 트럼프의 10억 9천만 달러(약 1조 5천억 원)보다 8천억 원 이상 많은 금액이고,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캠페인의 자금보다도 많다. 전반적으로 캠페인의 내부 운영에서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으며, 잘 정리된 전략과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선거를 치렀다.

 

어떤 유권자들이 해리스와 트럼프를 지지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선에서 예년에 비해 유권자들의 후보 투표 행태에서 성별 격차가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2022년 미국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은 이후, 공화당이 이끄는 여러 주에서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을 제한하는 정책이 실행되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 예상되었기에, 여성의 재생산권이 유권자들을 결집하는 중요한 이슈였다. 트럼프의 여혐 발언, 다수의 성추행/성폭력 소송, 그리고 해리스라는 여성 후보의 요인도 성별 격차에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유권자 비율 또한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었다. 미국에서는 여성의 유권자 등록율이 남성보다 높다.(2022년 기준 여성 70%, 남성 68.2%) 또한 실제 투표를 한 성인 비율도 여성이 약간 높다.(2020년 기준 여성 68.4%, 남성 65%)

 

그러나 실제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성별 격차 지수(Gender Gap)는 남성 유권자 중 대선에서 우승한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과 여성 유권자 중 우승한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을 비교하여 계산한다. 올해 남성 유권자 중 트럼프를 지지한 비율은 55%, 여성은 45%로 나타나 성별 격차 지수는 10%였다. 이는 2012년 대선에서 10%, 2016년 11%, 2020년 12%였던 것과 비교할 때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비록 젠더 이슈가 선거 기간 동안 강하게 부각되었지만, 유권자들의 성별 외에도 정당 충성도, 인종, 계층, 교육 등 다른 요인들이 교차하며 후보 선호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선에서 예년에 비해 유권자들의 후보 투표 행태에서 성별 격차가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해리스라는 인물이 갖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여성 유권자 및 유색인종 유권자들의 지지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출처-Pixabay from Yamu_Jay)


해리스라는 인물이 갖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여성 유권자 및 유색인종 유권자들의 지지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트럼프가 출마한 세 대선(2016, 2020, 2024)에서의 유권자 투표행태를 분석한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올해 여성 유권자 중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이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8%p 높았다. 이는 2020년 바이든에게 투표한 여성 비율이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15%p 높았던 것과 비교할 때 훨씬 낮아진 수치다. 또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한 여성 비율이 트럼프보다 13%p 높았던 것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반면, 남성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이 바이든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13%p 높았고, 이는 2020년 선거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남성 비율이 바이든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8%p 높았던 것과 비교할 때 증가한 수치다.

 

이전과 비슷하게 흑인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흑인 여성의 경우,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이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84%p 높았는데, 이는 클린턴의 90%p보다 낮기는 하지만 여전히 흑인 여성이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임을 나타낸다. 흑인 남성의 경우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이 트럼프에 비해 56%p 높았는데, 이는 바이든(60%p)과 클린턴(69%p)보다 낮은 수치다.

 

무엇보다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는 라틴계 남성들의 공화당으로의 전향이다. 2016년 클린턴에게 31%p, 2020년 바이든에게 23%p 더 많은 표를 주었던 것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트럼프에게 투표한 라틴계 남성 비율이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12%p 더 높았다. 라틴계 여성의 경우 여전히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이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높았지만, 과거 두 선거에 비해서는 그 격차가 줄어들었다.(44%, 39%, 22%p)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 인구에서 백인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지만, 2010년 기준63.7%, 2020년 기준 57.8%로 여전히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투표율 또한 2020년 대선 기준 백인 유권자가 남녀 모두 70% 이상으로 가장 높다. 한편 라틴계 유권자들의 투표율은60%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을 분석한 여러 연구에서 유색인종의 투표 행태를 주의 깊게 다루고 있지만, 인구 비율을 고려할 때 여전히 백인들의 투표 경향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백인 유권자들의 경우 세 대선에서 지속적으로 민주당 후보보다 트럼프를 선호했다. 백인 남성은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이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23%p 높았고, 백인 여성은 8%p 더 높았다. 백인 여성의 경우 2020년의 11%p, 2016년의 9%p와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며, 백인 남성의 경우 2016년의 31%p와 비교해 낮아졌지만, 2020년의 23%p와는 유사한 수준이다.

 

성별 내 학위 격차(diploma gap)도 두드러졌다. 대학 학위가 있는 백인 남성 중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은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3%p 높았고,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 남성 중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은 해리스보다 40%p 더 높았다. 대학 학위가 있는 백인 여성 중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이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16%p 이상 높았지만,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 여성은 트럼프에게 28%p 이상 더 투표했다.

 

왜 저소득층, 저학력 백인 여성들은 트럼프를 선택하는가

 

트럼프가 출마한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백인 여성들은 민주당 후보보다 트럼프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저소득층, 저학력층 여성들의 트럼프 지지 성향이 강력했다. 델라웨어 대학교의 에린 카세스(Erin Cassese)와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의 티파니 반스(Tiffany Barnes)는 이러한 지지패턴을 설명하기 위해 ‘시스템 정당화 동기’(system justification motivation)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의 현재 상태를 자연스럽고 공정하며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옹호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백인 여성들은 비록 성별 권력 문제에서는 주류가 아니지만, 백인 남성과의 긴밀한 사회적 연대를 통해 백인으로서 누리는 상대적 인종 특권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러한 이유로 성차별적 신념을 지지하거나, 젠더 불평등을 차별로 인식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들은 현 사회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다른 여성들보다 크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보수 진영에서 부상한 “전통적 아내”(tradwife) 운동은 젠더, 계급, 그리고 백인성의 교차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 〈백인 여성이여 응답하라〉 캠페인의 줌 회의 이미지 갈무리. “지난 일요일 밤 ‘흑인 여성과 함께 승리로’ 캠페인을 통해 44,000명의 여성이 모여 해리스를 지지했고 백만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백인 여성이여, 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이다.”


2016년과 2020년의 선거 결과를 반영해, 해리스가 후보로 확정되었을 때 민주당을 지지하는 여성들은 “백인 여성이여 응답하라”(White women: Answer the Call) 캠페인을 시작했다. 백인 여성들이 인종 문제와 성별 문제에서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항할 책임감을 가지고 해리스를 지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또한 해리스 캠페인에서 활동한 선거운동원들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남편이 아내의 투표 선택에 영향을 미치거나, 남편과는 달리 해리스를 지지하지만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보수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당신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아, 남편에게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고 해리스에게 투표하는 여성들을 연출한 “당신의 투표, 당신의 선택”이라는 제목의 TV 광고를 제작했다. 그러나 이 광고는 보수 진영으로부터 부부 간 갈등을 조장하고 거짓말을 부추기며, 보수 여성들을 남편에게 휘둘리는 자율성이 부족한 존재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아 역풍을 맞았다. 이러한 캠페인 전략에도 불구하고, 성별 격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영화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내레이션한 Vote Common Good 캠페인의 “당신의 투표, 당신의 선택” TV광고 이미지. 공화당을 지지하는 남편을 둔 여성이 남편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 해리스에게 투표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출처: Vote Common Good 유튜브 채널


해리스는 여성이라서 패배한 것?

 

바이든이 트럼프에 필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민주당은 해리스가 후보로 선출된 이후, 이번 선거가 해볼 만한 승부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선거 직전까지 각종 여론조사는 이번 선거가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비록 입증할 수는 없지만, 일부 의견에 따르면 바이든이 후보였을 경우 트럼프와의 득표 격차가 더 컸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해리스의 패배를 단순히 "여성이라서 졌다"고 결론짓는 것은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젠더가 선거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매우 중첩적이고 교차적이며, 다양한 선거 이슈의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해리스의 대선 캠페인은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과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고, 여당이 패배하는 경향이 강한 상황에서 치러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불리한 환경 속에서 유색인종 여성 부통령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해리스가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평소처럼 당내 경선을 거치지 않았기에 당 내부에서도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트럼프가 세 번째 대선에 출마한 반면, 해리스는 단 107일 만에 선거를 준비해야 했다는 점 역시 불리하게 작용했다.

 

선거의 큰 틀이 이미 민주당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짜인 상황에서, 해리스가 위기에 빠진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은 전형적인 유리절벽(glass cliff) 시나리오로 볼 수 있다. 선거 이후폴리티코 (Politico)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의 법무부 대변인이었던 사라 이스거(Sarah Isgur)는 해리스가 여성이라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후보로 지목되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이 해리스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것도, 해리스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바이든을 위한 선택이었고,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황에서 해리스를 후보로 임명한 것도 당을 위한 결정이었다. 유색인종 부통령을 건너뛰고 다른 인물을 임명했을 때 발생할 정치적 논란과 비용을 고려한 결과이지, 해리스를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해리스의 실패는 젠더를 포함한 여러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기존 선거 연구에서는 “현직의 이점”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직 후보가 선거에서 누리는 유리함을 이야기하지만, 해리스의 경우 바이든의 부통령이라는 지위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했다. 현 정부의 경제 문제에 대한 책임을 떠안게 되면서, “현직의 단점”이 부각된 것이다. 해리스 캠페인은 여성의 재생산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여성들의 지지를 유도했지만,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투표 요인은 경제 문제로 나타났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빌 클린턴 캠페인의 유명한 슬로건이 다시 한번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CNN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느낀 유권자들 중 트럼프를 지지한 비율이 해리스를 지지한 비율보다 42%p 높았다. 반면, 현 경제 상황이 긍정적이라고 본 유권자들 중에서는 해리스에게 투표한 비율이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보다 83%p 높았다.

 

민주당은 경제 상황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려 했으나,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경제 문제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 재임 중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평균 5.2% 증가했으며, 이는 지미 카터(9.9%), 제럴드 포드(8%), 리처드 닉슨(5.7%)에 이어 높은 수치다. 카터와 포드는 재선에 실패했다. 반대로 트럼프는 경제와 이민 문제가 주요 문제임을 강조하며 지지자들의 공감을 얻는 내러티브를 구축했다. 경제와 이민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원인 진단이 사실과 맞지 않고, 반이민 정서에 호소하며, 그가 제시한 해결책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최소한 자신의 지지자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선거에서 경제 문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젠더화된 이슈로,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경제적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식과 결부되어 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남성들은 본인의 사회적 지위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이러한 심리를 자극하며 마초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 이미지를 어필한 공화당 후보에게 지지를 보냈다.

 

올해 7월 13일, 펜실베니아 유세에서 트럼프를 겨냥한 암살 시도 직후 그가 주먹을 번쩍 든 장면은 지지자들에게 트럼프의 남성성과 강인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져 큰 환호를 받았다.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 사건을 ‘신이 트럼프를 선택한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성, 백인 피해자’ 담론에 기반한 공화당의 정치적 동원도 두드러졌다. 미투(#MeToo) 이후 남성 역차별 주장과 여성 특혜에 대한 불만, 그리고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정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었다. 이러한 반페미니즘 정서는 특히 미국의 “이대남”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남성 팔로워를 보유한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종종 반페미니즘, 반성소수자 담론을 증폭시켰다. 선거 직후 26세 극우 성향의 인플루언서 닉 푸엔테스(Nick Fuentes)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비꼬며 “너의 몸은 내가 선택한다”(your body, my choice)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것도 대표적이다.

 

임신중지 이슈는 2022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게 한 핵심 투표 이슈였다. 해리스 캠프가 이번 대선에서 여성의 재생산권을 전면에 내세운 데에는 후보 본인의 입장뿐만 아니라 2년 전 선거 경험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과 같은 날, 10개 주에서 임신중지 권리를 보호하는 주 헌법 개정안 투표가 진행되었는데, 그 중 애리조나, 미주리, 몬태나 등 공화당 성향이 강한 주를 포함한 7개 주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며, 보수 유권자들에게도 임신중지 이슈가 중요한 문제였고 찬성 여론이 강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이슈가 경제 이슈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상쇄하지 못했고, 해리스를 위한 투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0월경 트럼프 캠프 내부에서 임신중지 금지를 주장하는 것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후, 트럼프는 이 문제를 여성 권리 제한이 아니라 연방정부와 대비되는 주정부의 자율성 문제로 프레이밍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여성의 선택권이 제한될 것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의 설득력을 약화시켰다. 또한 여성의 재생산권을 옹호하는 보수 유권자들은 굳이 해리스를 지지하지 않아도 주 헌법 개정안 투표라는 선택지를 통해 주 정부가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다.

 

‘여성’ 정체성을 전면에 세우지 않은 해리스의 선거 전략

 

여성과 소수자 후보들은 특정 유권자를 우선시하거나, 이민 또는 사회정책 등 ‘정체성’과 관련된 이슈에만 강점이 있다는 선입견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미국인”을 강조하는 선거 전략을 짜는 경우가 많다.

 

해리스는 20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여성 정체성과 유색인종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9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대통령직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마했다”며,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묻는 질문을 회피했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이 이민자라는 점을 이야기할 때에도, 이를 정체성의 문제로 다루기보다는 자신이 배운 가치와 경험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해리스는 항상 자신을 모든 미국인을 대표할 후보로 자리매김했으며, 이는 트럼프와 같은 상대가 그녀의 성별과 인종을 약점으로 공격하는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전략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선거 전략은 힐러리 클린턴 그리고 버락 오바마의 선거 캠페인을 분석한 결과일수 있다. 2008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는 본인의 ‘인종’ 정체성을 캠페인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고, 2012년에 재선되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선거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선출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강하게 부각했다. 본인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색인 흰색 정장을 입어, 자신이 후보가 된 것이 여성의 정치 참여와 대표성을 증진하기 위한 역사적인 투쟁의 결과이자 연장선에 있다는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트럼프 및 반대진영으로부터 “정체성 정치”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백인 여성들은 클린턴보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 힐러리 클린턴의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장면.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색인 흰색 정장을 입어,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대표성의 의미를 강조했다. (출처: PBS NewsHour 유튜브 채널)


해리스는 클린턴의 선거 전략이 한계였다고 보고, 2016년과 달리 여성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미국 유권자들에게 더이상 생경하지 않기에 굳이 본인이 여성임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할 때 클린턴의 흰색 정장이 아닌, 남성 후보들이 주로 선택하는 남색 정장을 입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여성성을 부각하기보다 강인함과 권력을 강조하려 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당대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흰색 옷을 입었다.) 연설에서 해리스는 자신을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거부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가치를 이어가는 담지자로 제시하며,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해리스는 자신의 ‘최초’ 타이틀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생전 어머니로부터 “앞으로 여러 자리에서 첫 번째 여성이 될 수 있지만 절대 마지막 여성이 되지 않도록 하라”(first but not the last)라는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연대’를 이야기하고 다른 여성들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데 노력한다는 본인의 신념을 강조했다.

 

해리스는 여성의 재생산권, 트럼프의 위협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수호를 핵심 선거 이슈로 삼으면서 동시에   보통 보수 진영에서 선호하는 ‘자유’, 그리고 총기 소지 권리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2조에 대한 지지와 같은 전통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었다. 트럼프가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사람들의 총을 압수할 것이라는 주장을 퍼뜨리자, 해리스는 본인과 자신의 부통령 후보인 팀 월츠 둘 다 총기 소유자임을 강조하며 이를 반박했다. 이는 해리스가 이미 “캘리포니아 출신 급진주의자”라는 낙인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정체성 정치로 인한 정치적 위험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시카고 대학 여론조사센터 NORC에서 유권자 등록을 한 12만 명을 대상으로 올해 10월 28일부터 11월 5일까지 인터뷰한 AP VoteCast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단지 10%만이 ‘유색인종 여성’이라는 해리스 후보의 역사적 의미가 본인의 투표 결정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25%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중요한 요소였다고 답했다. 이번 선거에서 성별 격차가 이전 대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결과를 고려할 때, 해리스가 자신의 성별을 강조하지 않았던 것은 전략적으로 큰 실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본인은 ‘여성성’을 선거운동의 전면에 내세우거나 본인을 겨냥한 인종차별, 성차별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았지만, 미셸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와 같은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유권자들에게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해리스에 대한 지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계할 것을 촉구했다. 많은 평론가들은 유권자들이 해리스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바이든 정부의 성과에 불만족해서 해리스에게 투표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해리스에 대한 유권자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암묵적인 성차별, 인종차별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해리스의 실패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회 전반과 유권자들에게 깊이 박힌 성차별/인종차별 인식은 후보의 자질, 경쟁력, 메시지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틀을 제공한다. 

 

오늘은 내가 강의하는 〈젠더와 정치〉 수업의 종강일이다. 선거 다음 날, 몇몇 학생들이 충격과 분노를 표현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수업을 마무리하며 이번 학기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번 선거 결과 때문에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더 어려워질까요?” 학생들은 입을 모아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이라고 대답한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있었기에 올해 해리스의 캠페인이 가능했으며, 비록 이번 선거에서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클린턴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트럼프보다 일반 투표에서 더 많은 표를 얻는 성과를 냈다. 2024년 해리스의 득표율은 클린턴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녀가 유색인종 여성이자 민주당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투표 인구48%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선거는 끝났지만 앞으로 4년간 싸울 준비가 되었다며 결의를 다지고 강의실을 떠나는 학생들을 보며, 언젠가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필자 소개] 이영임. 현재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 젠더정치와 동아시아정치에 대해 가르치고 글을 쓰고 있다. 특히 박근혜의 탄핵이 여성 정치 세력화와 박정희 향수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ㅋㅋ 2024/12/12 [05:09] 수정 | 삭제
  • 여성주의 기사 일다 ㅋㅋㅋㅋㅋ 어휴 진짜 대놓고 여성일보였네
  • ㅇㅇ 2024/12/12 [05:07] 수정 | 삭제
  • 군대는 남자만 보내 전쟁도 남자가 해 나라도 남자가 지켜 당연히 남자가 주도가 될 수 밖에 없지, 전쟁나면 여자들이 총 들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맨날 가장 안전한 곳에서 숨어있는 주제에 대체 나라 지키고 문명 발전 시켜온 남성들을 악마화하는거보면 참 ㅎㅎ 너네 아버지는 남자 아냐? 자기 아버지 욕먹이네
  • ㅇㅇ 2024/12/12 [05:06] 수정 | 삭제
  • 현 문명은 죄다 남자가 만들어놨는데 여자들이 대체 뭘 했다고 자꾸 여성인권타령하는건지? 트럼프한테 패배한 것도 해리스가 실력이 부족하고 말도 못하고 언론이나 기업들이나 연예인들도 전 민주당 대통령들도 죄다 해리스 편을 들어줬는데도 패배했는데 뭔 여자라서 졌다고 핑계질... 여기 언론사 죄다 남성혐오글만 잔뜩 써놨네 너네 아버지는 남자 아님?
  • 지금 2024/12/09 [14:01] 수정 | 삭제
  • 해리스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트럼프 두번 뽑아주는 미국 보면서 수준이 그렇구나 했는데 한국은.........
  • ㅇㅇ 2024/12/09 [13:02] 수정 | 삭제
  •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음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