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또 하나의 공학이 탄생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동덕여대 공학 전환 논란, ‘여자대학’의 비전을 묻다

신기영 | 기사입력 2024/12/10 [10:42]

단지 또 하나의 공학이 탄생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동덕여대 공학 전환 논란, ‘여자대학’의 비전을 묻다

신기영 | 입력 : 2024/12/10 [10:42]

동덕여자대학교의 공학 전환 논란과 관련하여, 신기영 일본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의 기고를 싣습니다. [편집자 주]

 

한국의 20대 여성들이 다시금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학교 측의 일방적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반발한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 뉴스를 해외에서 접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재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단체로 수업 거부에 돌입할 정도로 강렬하게 항의해야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문제의 발단은 공학 전환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학교와의 의견 차이가 아니라, 학교 당국이 비밀리에 공학 전환을 논의하고 있었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학교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에서 배제된 학생들이 학교 당국에 대해 불신과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반발한 이후에도 학생들을 대하는 학교 측의 고압적인 태도를 보면서 사뭇 놀랐다. 소통의 부재와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고질적 문제인 학교 거버넌스에 대해, 학생들이 느꼈을 절박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 2024년 11월 8일, 동덕여대 총학생회가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대해 항의하며 ‘공학전환에 반대’하는 대자보를 학내 곳곳에 부착한 모습. [출처] 민주동덕 제57대 총학생회 ‘나란’ 인스타그램 @dongduk_chonghak


이후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11월 20일 학생총회를 열어 공학 전환에 대한 안건을 표결했는데, 표결 참석자 1973명 중 1971명이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했다.(이 숫자는 재학생의 3분의1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만큼 재학생들이 이 사태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온라인의 여론이나 외부인들은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기보다, 여자대학의 시대적 소명이 다했다는 주장이나, 학생들의 품행을 비난하는 등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다른 여자대학 학생들도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철회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연대 의사를 밝히면서,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문제는 여대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국립 오차노미즈 대학의 경우: 공학과는 차별화된 커리큘럼

젠더 연구와 여성 리더십 교육에서 선도적 역할

 

2008년부터 일본의 국립 여자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나에게 동덕여대를 둘러싼 여러 논쟁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일본에서도 많은 여대가 경영상 어려움이나 정책 변화를 이유로 공학으로 전환하거나, 신입생 모집을 정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에는 내가 재직하고 있는 오차노미즈 여자대학과 같은 ‘국립’ 여자대학이 2곳(다른 한 곳은 나라 여자대학) 있고, 지방자치단체인 현(우리나라의 도에 해당)에서 설립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공립’ 여자대학이 2곳 (군마현립 여자대학과 후쿠오카 여자대학) 있다. 그 밖에도 사립 여대가 약 70여곳이 더 있다. (과거에는 훨씬 많은 여자대학이 있었지만 공립 여대들이 공학으로 통합되면서, 그 수가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지금 한국에 남아 있는 4년제 여대는 7곳(광주·덕성·동덕·서울·성신·숙명·이화여대)에 불과하다. 이 대학들은 모두 서울과 대도시에 소재한 사립대학으로, 학생 모집의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대학들이다. 동덕여대가 경영상의 이유로 갑자기 공학으로 전환하려 한다는 설명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학교 규모가 작거나, 학교 캠퍼스가 도심에서 먼 경우에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 동덕여자대학교 홈페이지(dongduk.ac.kr)에서 소개하고 있는 학교 홍보 영상 갈무리.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동덕여대는 116년 역사를 지닌 사립대학이다.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학교측에 끊임없이 ‘여대의 존재 의의’를 상기시켰다.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시대에 여대는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내년으로 개교 150주년을 맞는 오차노미즈 대학의 역사를 보면, 여대의 사회적인 역할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특히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국가가 여성의 고등교육을 어떤 목적으로 장려했는지 알 수 있다. 오차노미즈 대학은 일반 대학들이 여학생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던 시대에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던 전문 교육(주로 근대적인 가정/가사학과 같은 현모양처 교육)을 제공하고 전국의 여중고에서 여학생들을 가르칠 교사를 길러내는 단기 여자사범학교로 출발했다. 2차 대전 후인 1940년대 말에야 4년제 대학으로 승인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차노미즈 대학은 오랫동안 여학생이 진학하는 최고봉의 대학으로 여겨져 왔지만, 일본 사회의 뿌리깊은 젠더(성역할) 규범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의 학문’으로 생각되었던 정치학이나 법학, 의학과 같은 학과는 설치조차 되지 않았다.(최근에 공학부가 새롭게 설치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 선구적으로 ‘젠더연구센터’를 설립하고, 2000년대 초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젠더 연구의 프론티어〉라는 대형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명실공히 일본의 젠더 연구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교육 커리큘럼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젠더 백래시(backlash, 사회적 진보적 변화에 대한 반동 현상)가 일본 사회를 휩쓸었지만, 젠더연구센터는 백래시를 버텨냈다. 그리고 학부에는 다양한 학문을 젠더 이론과 젠더 분석 시각에서 배울 수 있는 교양 과목군을 개설했다. 또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학제적 젠더 연구를 위한 대학원 박사과정도 설치했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일본 여대로서는 처음으로 입학 대상인 “여성”의 범위를 확대하여, 2020년부터 호적상의 여성 뿐 아니라 트랜스 여성(호적상 남성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젠더 정체성이 여성인 경우) 학생에게도 입학을 허가하고 있다. 나아가 글로벌 여성 리더십 교육과, 이공계 연구에 젠더 시각을 도입하는 과제 등도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국공립대학들과 비교해, 오차노미즈 대학의 커리큘럼은 여대이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된 분명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이 개개인의 전공과목과 더불어, 젠더 이론과 여성 리더십 교육을 함께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 도쿄도 분쿄구에 위치한 오차노미즈 대학은 국립여자대학으로, 내년이면 150주년을 맞이한다. 다른 국공립대학들과 비교했을 때, 재학생들은 다양한 학문을 젠더 이론과 젠더 분석 시각에서 배울 수 있고, 여성 리더십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출처: 오차노미즈 대학교 홈페이지 ocha.ac.jp)


여성친화적 교육환경에서 놀랍게 성장하는 여성/성소수자 학생들

 

나는 여자대학교의 의미를, 여대가 여성이 중심이 되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제공할 수 있는 커리큘럼(젠더 분석 시각과 여성 역량 기르기)과, 여성친화적 조직 특성(일가정 양립, 여성 네트워크 형성 등)을 얼마나 살릴 수 있는지 여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최근 한국에서 많이 지적되고 있는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이라는 개념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여성에게 적대적인 사회적인 환경에 대한 인식때문에 생겨난 시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많은 여대가 이 개념을 젠더 마이너리티(성소수자)를 포함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출되는 폭력이나 억압적인 젠더 규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물질적 공간이라는 일차적 의미가 있다. 또한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기검열을 하거나,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연구에 대해 ‘그런 주제는 학문이 아니야’라고 무시당하거나, 여성의 주장이 지엽적이거나 특수하다고 배척당하지 않는 교육환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을 제공받는 일은 젠더 마이너리티 학생들에게는 더욱 더 절실하다. LGBTQ 청소년들은 사회적으로 훨씬 많은 폭력에 노출되고 우울증 등을 겪고 있으며, 정체성의 위기 없이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려면, 지금까지의 (남성 중심적인) 교육 내용과 교육 방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는데, 대부분의 공학에서는 쉽지 않다. 교수진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고, 기계적인 평등 개념이 지배적인 한국의 대학에서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여성과 젠더 마이너리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나는, 교육 환경에 따라 학생 개개인이 학문적, 인격적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가부장적 가족, 불평등한 젠더 관계, 다양한 온/오프라인의 폭력과 여성 혐오 등으로 겪은 불합리한 경험과 상처를 학교 활동과 수업에서 공유하고, 이러한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인 시각을 가지게 될 때, 학생들은 진정한 용기를 얻고 연대를 형성하며 놀랍게 성장한다.

 

여학생들이 진학하고 싶은 대학을 만드는 것이 열쇠

학교는 경제논리가 아닌 여성고등교육 비전을 제시해야

 

여대가 공학으로 전환할 것인지, 여대로 남을지는 학교 공동체가 함께 진지하게 논의해서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학교가 ‘어떠한 교육의 장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이다. 여성의 공간이 소멸되고, 기계적인 남녀 평등만이 정답이며, 교육자가 압도적으로 남성인, 단지 또 하나의 공학이 탄생하는 것에 그친다면 여대의 공학 전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국 뉴저지주의 주립대학인 럿거스 대학과 기숙사형 여성 칼리지인 더글러스 칼리지의 관계는 공학 전환이 여대의 소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럿거스 대학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는 더글러스 칼리지는 럿거스 대학과 합병한 이후에도 독립적인 여대로 존재했던 100여년의 역사를 살려나가고 있다. 더글러스 칼리지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에는 페미니즘에 기반한 교육 내용과 여성들간의 멘토링 및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교육방법론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여대의 존재 의의는 일괄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대이건 공학이건 여학생들이 진정으로 진학하고 싶어하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 열쇠이다. 동덕여대가 단순한 경제논리가 아닌, 어떤 미래 비전을 가지고 100년이 넘는 유구한 한국 여성 고등교육의 역사를 계승하면서, 21세기의 우리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여성 인재를 양성할 것인지, 진지한 논의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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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8 [14:35] 수정 | 삭제
  • 진짜 좋은 글이네요.
  • 독자 2024/12/16 [10:42] 수정 | 삭제
  • 이렇게 설명해주시니 납득이 갑니다. 타여대들도 공학들도 생각해봐야할 문제네요.
  • 싱긋 2024/12/12 [18:15] 수정 | 삭제
  • 진짜 속이 확 뚫리는 시원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촛불 2024/12/11 [11:06] 수정 | 삭제
  • 대학 내부의 여성친화적 조직 구성...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중요한 부분 같다.
  • 우드 2024/12/10 [12:25] 수정 | 삭제
  • "교육 환경에 따라 학생 개개인이 학문적, 인격적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이거 정말 공감합니다. 초중고 교육뿐 아니라 대학도 마찬가지란 걸, 많은 교육자들과 학교 관계자 분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대학들이 교수와 교직원들 먹고사니즘 외에 이런 점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까요? 임파워먼트가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고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을 알게 하고 가진 재량 다 펼칠 수 있게 하는 힘인지...그게 특히 여성과 마이너리티에게 중요하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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